Все главы 당신이 없는 세상 참 좋다: Глава 1 - Глав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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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문우빈은 단숨에 고가은 앞에 섰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이런 일을 당했으면서 왜 나한테 전화도 안 했어?”고가은은 가볍게 웃었다.“전화했으면 받았어?”전날 퇴근길이었다. 한 노인이 갑자기 고가은의 차 앞에서 넘어졌다. 고가은이 내려서 부축하려 하자, 노인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사람을 쳐 놓고 도망가려고 해? 아가씨가 날 쳤잖아!”블랙박스와 CCTV가 고가은의 무고함을 증명했지만, 경찰서에서는 절차상 보호자 확인과 신원보증이 필요하다고 했다.고가은은 가족이 없다고 했다. 경찰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혼인 기록을 확인해 문우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전원 꺼짐.수십 번을 걸어도 결과는 같았다.문우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어젯밤 채원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같이 있었어. 채원이가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핸드폰을 꺼 뒀고.”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미안해.”“괜찮아.” 고가은이 말했다. “애초에 당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당신은 자기 일 보면 돼.”너무나 담담한 말투였다. 눈빛도 지나치게 고요했다. 물결 한 번 일지 않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았다.문우빈은 고가은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뜨거운 남자의 손에 거칠게 힘이 들어갔다. 고가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왜 화를 안 내?” 그녀를 똑바로 보는 문우빈의 눈빛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과,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고가은은 그 모습이 우스웠다.“내가 왜 화를 내야 해? 당신은 이유를 말했고, 나는 이해했어. 화낼 일이 없잖아.”“여보...”“피곤해. 집에 가고 싶어.”그녀는 손을 빼내고 문우빈을 지나 차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우빈은 그 자리에 서서 고가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일주일 만에 본 그녀는 눈에 띄게 말라 있었다. 입고 있는 셔츠도 어깨와 허리가 헐거운 느낌이었다.예전의 고가은은 문우빈이 조금만 외면해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따지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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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화기 너머가 잠시 동안 조용해졌다.[진심이에요?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셨잖아요. 그분 때문에 포기한 기회도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왜...]고가은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안 좋아해요.”전화를 끊은 뒤, 고가은은 차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문우빈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자존심도 다 버리고,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가 되는 걸 감내하면서도 좋아했다.하지만 이제 지쳤다.마음속에 늘 다른 여자를 품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 고단했다.18살, 고가은은 대학 신입생 표창식에서 처음 문우빈을 보았다.그날 햇살은 밝았다. 문우빈은 흰 셔츠와 검은 슬랙스 차림으로 단상 위에 서 있었다. 맑고 단정한 기품,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객석의 여학생들은 거의 모두 얼굴을 붉혔다.고가은도 그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우빈의 마음에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진채원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진채원은 제멋대로인 데다가, 잘 토라졌고 성격도 까다로웠다. 그런데 문우빈은 그런 진채원을 다 받아 주면서 감싸 주었다. 사람들은 그가 진채원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했다.문우빈이 진채원을 사랑한 시간만큼, 고가은은 그의 뒤에서 조용히 이 남자를 사랑했다.그러다 진채원은 문우빈과의 결혼을 피하면서 몇 번이나 달아났다.첫 번째는 아직 어리다며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두 번째는 결혼 전 불안이 심하다고 했다.세 번째는 문우빈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그런 일이 반복되었다.아홉 번째 잡은 결혼식 전날 밤, 진채원은 해외에서 전화를 걸어왔다.[오빠, 생각해 봤는데 난 아직 자유가 더 소중해. 우리 결혼은 잠시 미루자. 나도 해외에서 몇 년만 더 놀다 올게!]그때 문우빈은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한동안 무너진 사람처럼 지내던 문우빈은 집안에서 주선하는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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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고가은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넓은 저택은 텅 비어 있었고 썰렁했다. 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고 위층으로 올라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사실 최근 들어 이미 꽤 많은 물건을 정리했고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그녀는 옷장 안에서 진채원의 취향과 비슷한 옷들을 하나씩 꺼냈고, 차곡차곡 접어 상자에 넣었다.이런 옷은 앞으로 다시는 입지 않을 생각이었다.아래층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우빈이 돌아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진채원이 계단 아래에 서서 고가은을 보며 달콤하게 웃었다.“가은 씨, 오랜만이네.”고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채원이가 구름이를 보고 싶다더라.” 문우빈이 입을 열었지만 말투는 어딘가 어색했다. “오랫동안 못 봤다고 해서.”구름이는 문우빈과 진채원이 사귀던 시절 함께 키우던 사모예드였다. 진채원이 해외로 떠난 뒤, 개는 문우빈에게 남겨졌다. 고가은과 결혼한 뒤로는 줄곧 그녀가 돌보았다.“마음대로 해.”고가은은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구름아! 구름아!” 진채원은 이미 몸을 낮추고 손뼉을 치며 개를 불렀다.하얀 사모예드가 구석에서 달려 나왔다. 진채원을 보자 신이 나서 뛰어들면서, 꼬리를 선풍기처럼 돌렸다.“어머, 구름이가 아직 나를 기억하네!” 진채원이 개를 끌어안고 눈웃음을 쳤다. “다른 여자가 몇 년이나 키웠는데도, 역시 내가 엄마인 걸 아는구나.”그 말에는 분명한 도발이 담겨 있었다.고가은의 발걸음이 멈췄다.문우빈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아무 말 없이 해외로 나가면서 구름이도 두고 갔잖아. 네가 엄마라고 말할 자격은 오래전에 없어졌어.”“이제 봤으니까 돌아가.”진채원이 입술을 삐죽였다.“밖에 어둡고 비도 오잖아. 나 혼자 가면 너무 위험해. 혹시...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문우빈은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창밖에는 정말로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천둥소리도 이어졌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가은을 보면서 그녀가 동의하게 설득하려고 했다. 예전에는 진채원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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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연기는 갈수록 짙어졌다. 고가은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이를 악물고 벽을 짚어 일어선 그녀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향했다.그러나 문 앞에는 무너진 나무 기둥이 불타면서 길을 막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고가은은 절망적으로 그 기둥을 바라보다가 창문 쪽으로 돌아섰다.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면서 조금 정신이 맑아졌다.아래를 내려다보니, 문우빈이 구름이를 안고 저택 밖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채원이 이 남자의 품으로 달려들었다.“오빠!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진채원이 눈물범벅이 되어 울었다. “구름이가 안에서 죽는 줄 알았잖아... 우리 둘이 키운 개잖아. 우리 사랑의 증인이잖아...”문우빈의 몸이 멈칫하며 굳어졌다. 밀어내려던 문우빈은 진채원이 서럽게 울자, 결국 여자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울지 마. 괜찮아. 개도 무사하고, 너도 괜찮아.”고가은은 그 광경을 바라보던고가은은 차가운 손이 심장을 꽉 쥐었다가 놓는 듯했다. 남은 것은 텅 비어 버린 무감각뿐이었다.더 이상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그녀는 창틀 위로 올라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감은 뒤 아래로 뛰어내렸다.몸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땅에 부딪혔다.쾅!전신을 찢는 듯한 통증이 덮쳐 왔다. 바닥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몸 아래로 따뜻한 피가 번졌다.“아악! 사모님! 사모님이 뛰어내리셨어요!”가사도우미의 비명이 울렸다. 고개를 확 돌린 문우빈이 핏속에 누워 있는 고가은을 보았다.“여보!”문우빈의 표정은 고가은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충격에 어쩌면 두려움까지도.고가은은 그를 보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에서 피가 올라왔다.곧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가은의 눈에 하얀 천장이 보였다.몸을 조금 움직이자 온몸이 아팠다. 특히 다리는 뼛속까지 통증이 파고드는 듯했다.“여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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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 뒤로 고가은은 병원에서 조용히 몸을 회복했다.문우빈이 값비싼 보양식과 꽃을 들고 몇 번 찾아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핸드폰은 늘 바쁘게 울렸다.고가은은 다투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응’이라고만 했다. 문우빈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지 않는 벽 앞에 선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퇴원하는 날, 문우빈은 제수용품과 꽃을 챙겨 고가은과 함께 교외의 추모공원으로 향했다.고가은은 창밖의 점점 익숙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허무한 기분에 휩싸였다.5년 만이었다. 문우빈이 사위의 자격으로 장모의 묘지를 찾아가는 것은.추모공원은 조용했다. 바람이 소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문우빈은 묘비 앞에 섰다. 사진 속, 고가은과 많이 닮은 여자를 오래 바라보았다.“장모님.”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 뵙게 됐습니다.”“앞으로는 제가 가은이를 잘 돌보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고가은은 묘비 위 장모님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며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엄마, 들었어요?’‘내가 10년을 좋아한 사람이 이제 와 나를 잘 돌보겠대요.’‘그런데 너무 늦었어요.’‘이제 나는 그 말이 필요 없어요.’묘지 참배를 마친 뒤, 문우빈은 고가은을 그녀가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어 하던 식당으로 데려갔다.예약이 어렵기로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예전에 고가은이 여러 번 말했지만, 문우빈은 늘 시간이 없다고 했다.오늘 그는 식당 전체를 빌리고 두 사람 만의 촛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당신이 여기 와 보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하고 있었어.” 문우빈은 의자를 빼 주었다. “입에 맞는지 먹어 봐.”자리에 앉은 고가은은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도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코스가 반쯤 나왔을 때, 문우빈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진채원이었다.화가 난 목소리가 하도 커서 고가은에게도 똑똑히 들렸다.[오빠! 오빠가 며칠이나 들여서 내 생일파티를 그렇게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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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문우빈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진채원에게 끌려 댄스 플로어로 나간 뒤였다.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진채원의 허리에 손을 얹고도 자꾸만 구석에 있는 고가은을 보았다.그녀는 음식 테이블 앞에 서서 케이크를 조금씩 먹고 있었다. 표정은 평온했고 눈빛은 무심했다. 마치 낯선 사람의 파티에 들른 사람 같았다.문우빈의 마음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진채원은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가 봐. 나는 다른 남자랑 춤출게.”말을 마친 진채원은 문우빈을 놓고 흰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걸어갔다.진채원의 대학 동기인 그 남자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좋아했다. 진채원이 다가오자 곧바로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그녀는 남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은 댄스 플로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그 자리에 선 채, 진채원이 그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던 문우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진채원은 일부러 문우빈을 자극하는 듯했다. 남자에게 점점 가까이 붙었고, 끝내 남자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남자가 웃으며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문우빈의 손에 들고 있던 잔이 ‘팍’ 소리를 내며 깨졌다.술과 피가 손을 타고 흘렀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진채원의 손목을 붙잡더니 그녀를 댄스 플로어에서 끌어내듯 데리고 나갔다.“뭐 하는 거야? 놔!” 진채원이 몸부림쳤다.문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연회장 밖의 한적한 발코니까지 끌고 갔다.그는 진채원을 차가운 난간 쪽으로 밀어붙인 채 나지막하고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채원, 부끄러운 줄 몰라?”진채원은 처음엔 얼어붙었지만, 곧 화를 내면서 남자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나도 미혼이고 그 사람도 미혼이야. 서로 좋다는데 뭐가 문제야? 오빠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간섭해? 전 남자친구? 아니면 남의 남편?”“너...!”문우빈은 그녀의 말에 눈에 핏발이 섰다. 간신히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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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우빈이 병원에 입원했지만 고가은은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그녀는 혼자 집에 머물며 자신의 일을 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짐을 정리했다.그러던 어느 밤, 유 집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사모님, 병원에 한 번만 와 주실 수 없을까요? 대표님 위경련이 또 심하게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도 별로 효과가 없고요.][식은땀을 흘리시면서도 간호사가 가까이 오는 건 싫어하십니다. 예전에는 사모님이 마사지를 해 드리면 좀 나아지셨는데... 저희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고가은은 창가로 걸어가 밖을 보았다. 빗속에 잠긴 도시가 보였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거세게 때리면서 온 세상을 덮어 버릴 듯했다.그녀는 유 집사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비가 너무 많이 와요. 오늘은 안 갈게요.”전화기 너머는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동안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사, 사모님... 뭐라고 하셨습니까?]유 집사는 말까지 더듬었다.“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오늘 밤은 안 갑니다.”[하지만 대표님께서...]“저 먼저 잘게요.” 고가은이 말을 끊었다. “좋은 밤 되세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핸드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더는 어떤 소란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다음 날, 문우빈은 예정보다 일찍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아직 안색이 창백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고가은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고가은 앞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어젯밤...” 남자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고, 시선은 무겁게 그녀를 향했다.“유 집사가 당신한테 전화했어?”“응.” 고가은은 책장을 넘기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왜 안 왔어?” 문우빈이 물었다. 감정을 잔뜩 억누른 목소리였다. “예전에는...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내가 그냥 불편하다고 한마디만 해도 바로 왔잖아.”고가은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눈빛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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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너...!”진채원은 고가은의 눈에 드러난 노골적인 경멸과 연민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시선이 고가은의 뒤쪽, 낮게 설치된 장식용 발코니 난간으로 향했다. 눈 안에 악의가 스쳤다.“죽어 버려!”진채원은 온 힘을 다해 고가은을 밀쳤다.갑작스러운 공격에 고가은의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발코니 밖으로 떨어지려던 때, 살고자 하는 본능이 손을 움직였다. 아무렇게나 뻗은 고가은의 손이 미처 거두지 못한 진채원의 손목을 잡았다.“꺄악!”두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고가은의 몸은 절반 이상이 허공에 매달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진채원의 손목을 붙잡고 버텼다. 같이 끌려 나간 진채원도 난간 끝에 엎어졌고, 다른 손으로 난간을 꽉 붙잡아서 겨우 떨어지지 않았다.“살려줘! 오빠! 살려줘!” 진채원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연회장 사람들이 놀라 발코니로 몰려왔다.문우빈이 가장 먼저 뛰어왔다. 눈앞의 위험한 광경을 보자 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얘졌다.“오빠! 나 좀 살려줘! 떨어질 것 같아! 빨리 나 끌어올려!” 진채원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난간을 붙잡지 않은 손을 그에게 뻗었다.문우빈의 시선이 이를 악물고 말 없이 버티는 고가은과 울며 애원하는 진채원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짧은 판단의 틈에서 그는 거의 망설이지 않았다. 앞으로 뛰어가 진채원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여보, 조금만 버텨!” 문우빈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채원이부터 올리고 바로 당신을 구할게!”고가은은 그를 보더니 웃었다.그녀는 손을 놓았다.몸이 허공으로 떨어지면서 바람소리가 귀를 때렸다.결국 아래 수영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물보라가 크게 솟으면서 차가운 물이 그녀를 삼켰다. 고가은은 눈을 감으면서 의식을 잃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옷은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 입혀져 있었고, 상처도 처리되어 있었다.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보니 문우빈이 보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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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문우빈은 핸드폰을 쥔 채 병원 복도의 창백한 조명 아래 서 있었다. 손에 익은 번호를 몇 번이고 계속 눌렀다.[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차가운 안내 음성이 잔혹한 선고처럼 문우빈의 고막을 반복해서 때렸다.그는 초조하게 끊었다가 다시 걸고, 또 끊었다가 다시 걸었다.힘이 들어간 손가락이 떨렸다. 손등에는 예전 조명 사고 때 유리 파편에 베였던 상처의 딱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설명하고 싶었다.그때 발코니에서 진채원이 더 가까웠고, 그녀가 손을 뻗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조건반사처럼 먼저 잡았다고 말하고 싶었다.정신을 차리고 고가은을 잡으려 했을 때는 이미 그녀가 손을 놓고 아래로 떨어졌다고.“오빠...”검사실 문이 열리고 진채원이 나왔다. 안색은 아직도 창백했고 오른팔에는 작은 거즈가 붙어 있었다. 가벼운 찰과상이었다.그녀는 문우빈을 보자 눈시울을 붉히더니 곧장 문우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몸이 떨리고 있었다.“오빠, 나 너무 무서웠어... 정말 죽는 줄 알았어... 고가은 미친 거 아니야? 나를 죽이려고 한 거지? 왜 내 손을 잡고 같이 떨어지려고 했을까...”진채원에게 안긴 문우빈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채원아.” 그녀를 보며 문우빈이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어?”진채원은 순간 멈칫했다. 그 질문을 듣고 눈빛이 흔들렸지만, 곧 억울한 눈물을 쏟아냈다.“나... 나는 그냥 몇 마디 하러 갔어...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미친 듯이 내 손을 잡고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어!”“나는 난간을 붙잡고 버텼는데, 계속 나까지 끌어내리려고 했어. 같이 죽자는 거였어!”문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날카롭게 바라보기만 할 뿐.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다시 물을게. 솔직히 말해.”남자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소름 끼치는 냉기가 있었다.“가은이 먼저 너를 밀었어? 아니면 네가 먼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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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문우빈은 전화를 끊고 곧장 병원 밖으로 뛰쳐나갔다.‘떠났다고?’‘캐리어를 끌고 떠났다고?’‘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가은이 떠날 리 없어.’‘가은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없이 떠날 수 있어?’“오빠, 어디 가?” 진채원이 갑자기 뛰쳐나가는 그를 보고 소리쳤지만 문우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있었다. 집으로 가야 한다.당장 집으로.‘가은이는 분명 집에 있을 거야!’‘그 문자는 가짜일 수도 있어... 장난일 수도 있어.’ ‘아니면... 가은이 나한테 화가 나서 일부러 겁을 주려는 것일 수도 있지.’‘그래, 분명히 그랬을 거야.’‘가은이 나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진짜 떠날 리 없을 거야.’문우빈은 단숨에 계단을 뛰어내려가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는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검은색 스포츠카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병원을 빠져나와 차량 사이로 파고들었다.그리고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고가은이 발코니에서 떨어질 때 보였던 고요하고 죽은 듯한 눈, 차가운 이혼 안내 문자, 유 집사가 말한 이미 집을 나갔다는 말이 번갈아 떠올랐다.그는 집으로 가는 동안 신호를 세 번이나 무시했다.평소라면 40분 걸릴 길인데 20분 만에 도착했다.차가 저택 앞에서 거칠게 멈추자,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문우빈은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저택은 텅 비어 있었다.“가은아!”그가 소리쳤지만 메아리만 돌아왔다.곧바로 2층으로 뛰어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방은 너무나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깔끔했다.하지만 고가은의 물건은 전부 사라졌다.옷장 안에는 그녀가 자주 입던 옷들이 없었다. 문우빈이 사 주었지만 그녀가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고가의 드레스와 정장만 쓸쓸하게 걸려 있었다.화장대 위에는 스킨케어 제품도 화장품도 없었다. 얇은 먼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침대 옆 탁자에는 서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반지가 올려져 있었다.고가은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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