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가 잠시 동안 조용해졌다.[진심이에요?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셨잖아요. 그분 때문에 포기한 기회도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왜...]고가은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안 좋아해요.”전화를 끊은 뒤, 고가은은 차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문우빈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자존심도 다 버리고,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가 되는 걸 감내하면서도 좋아했다.하지만 이제 지쳤다.마음속에 늘 다른 여자를 품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 고단했다.18살, 고가은은 대학 신입생 표창식에서 처음 문우빈을 보았다.그날 햇살은 밝았다. 문우빈은 흰 셔츠와 검은 슬랙스 차림으로 단상 위에 서 있었다. 맑고 단정한 기품,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객석의 여학생들은 거의 모두 얼굴을 붉혔다.고가은도 그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우빈의 마음에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진채원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진채원은 제멋대로인 데다가, 잘 토라졌고 성격도 까다로웠다. 그런데 문우빈은 그런 진채원을 다 받아 주면서 감싸 주었다. 사람들은 그가 진채원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했다.문우빈이 진채원을 사랑한 시간만큼, 고가은은 그의 뒤에서 조용히 이 남자를 사랑했다.그러다 진채원은 문우빈과의 결혼을 피하면서 몇 번이나 달아났다.첫 번째는 아직 어리다며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두 번째는 결혼 전 불안이 심하다고 했다.세 번째는 문우빈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그런 일이 반복되었다.아홉 번째 잡은 결혼식 전날 밤, 진채원은 해외에서 전화를 걸어왔다.[오빠, 생각해 봤는데 난 아직 자유가 더 소중해. 우리 결혼은 잠시 미루자. 나도 해외에서 몇 년만 더 놀다 올게!]그때 문우빈은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한동안 무너진 사람처럼 지내던 문우빈은 집안에서 주선하는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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