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짜 부부의 세계에서 탈출합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21 Chapters

제11화

성태건이 직접 확인하겠다며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임다빈이 울음을 터뜨렸다.“나도 같이 가. 내가 아란 씨한테 널 용서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게.”그가 가녀리고 사려가 깊은 임다빈을 그윽하게 바라봤다.“넌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아란이는 내가 찾을 테니까 넌 올 필요 없어. 지금 상태에서 널 보면 더 화를 낼지도 몰라.”말을 마치기 무섭게 병실을 나갔다.쾅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임다빈이 눈물을 뚝 멈추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하아란, 드디어 떠났구나. 더 버텼다간 네 목숨 줄을 끊어놓으려 했는데.”별장으로 돌아온 성태건이 별장 전체를 다 뒤졌지만 끝내 하아란을 찾지 못했다.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도우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사모님의 짐이 진작에 다 없어졌어요. 뒷마당에 커다란 통이 하나 있는데 물건들을 한가득 태우신 것 같아요.”성태건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그걸 왜 이제야 말해?”도우미가 벌벌 떨었다.“두 분 헤어진 거 아니었어요?”얼마 전 우강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사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성태건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아란이 아닌 임다빈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발표한 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아란을 매정하게 도려낸 게 그였다.그는 미친 사람처럼 안방으로 뛰어가 옷장을 열어봤다. 하아란의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심지어 두 사람의 커플 옷과 생활용품조차 성태건의 것만 덩그러니 남겨졌다.허둥지둥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커다란 철통 안에 타다 만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자세히 보니 전부 그가 하아란에게 줬던 선물이었다. 하아란이 가장 아끼던 토끼 인형도 있었다.어린 시절 성태건은 토끼 인형으로 그녀를 달랬고 오락실을 다니며 인형을 뽑아주곤 했었다.나중에 성장한 후 하아란이 가방을 좋아하게 되자 구찌 신상 백을 구해다 주기 위해 새벽에도 자지 않고 기다렸었다. 가방을 사줄 때마다 하아란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고 무척 좋아하면서 그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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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남궁정현이 불안에 떨며 입을 열었다.“태건아, 남일 그룹에서 날 지지해주던 18%의 지분이 원래 아란이 거였어. 걔가 그 지분을 몽땅 우리 형한테 넘기는 바람에 내가 남일 그룹에서 쫓겨난 거야. 지난번 너랑 다빈이가 웨딩드레스 샵에서 결혼식 올렸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한테 하아란이 전부 손을 썼어.”“우씨 가문은 무너졌고 난 쫓겨났어. 곽씨 가문의 곽지원은 해외로 쫓겨났고 기씨 가문의 기혜정은 아주 먼 곳으로 시집갔어. 걔들 전부 예전에 하아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든. 하아란이 걔네 가문들을 압박하는 바람에 결국 다들 가문에서 버림받은 신세가 됐어.”“우리 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이잖아. 그런데 네가 아란이를 배신했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어. 지금 우리 모두를 증오하고 있어.”성태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 고통이 일렁거렸다.“나뿐만이 아니라 너희들까지 전부 다 원망하고 있어.”비서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알아냈어요. 하아란 씨가 떠나기 전에 병원에서 나왔더라고요. 나와서 명성 그룹 맞은편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황유석이었습니다.”성태건의 두 눈에 질투와 분노가 가득해졌다.황씨 가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 황유석이 하아란을 사랑하고 있었다.성태건이 곧장 황유석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아란이 왜 우강시를 떠났는지, 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황유석이었는지 알아야만 했다.그가 하아란에 대해 묻자 황유석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성태건, 너무 늦게 묻는 거 아니야? 너랑 아란이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이었어. 아란이만 이제야 그 진실을 알게 된 거고.”“황유석, 이건 나랑 아란이의 일이야. 아란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몰라?”“알아. Y국으로 갔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아, 깜빡하고 얘기 안 할 뻔했네. 내일이 명성 그룹 주주총회 날이야.”성태건이 싸늘하게 맞받아쳤다.“네가 뭔데 우리 명성 그룹 주주총회를 걱정해?”황유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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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임다빈이 새하얀 새끼 고양이처럼 가여운 모습으로 성진택의 두 다리 사이에 앉아 있었다.몸에 간신히 걸쳐진 몇 가닥의 얄팍한 천 쪼가리가 흔들렸고 성진택을 만족시키기 위한 추잡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성태건은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그가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으로 문을 꽉 잡고 살기 어린 눈으로 멀지 않은 곳의 두 남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성태건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할아버지, 지금 다빈이랑 뭘 하고 계세요?”성태건을 보자마자 임다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섹시한 속옷 차림으로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급격히 흔들리는 두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고 목소리도 심하게 떨렸다.“태건아, 내 말 좀 들어봐.”임다빈이 재빨리 치마를 입으려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입지 못했다. 그녀가 엉엉 울면서 성태건에게 기어갔다.“내가 다 설명할게.”뜻밖에도 성진택은 침착하기만 했다. 탁한 눈동자에 권력자 특유의 무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딱히 설명할 게 없어. 다빈이가 물건이라는 건 이 할아버지가 보증하마.”성태건의 두 눈에 매서운 서릿발이 맺혔다.“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먼저 맛을 보신 뒤에 저더러 결혼하라고 하신 거네요?”바닥에 있는 임다빈이 성태건의 다리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태건아,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야. 널 위해서였다고. 너의 사촌 형이 계속 너의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잖아. 어르신이 그러셨어. 내가 어르신을 만족시켜주면 성씨 가문과 회사가 온전히 너의 차지가 될 거라고.”성태건의 안색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임다빈을 걷어차고는 싸늘하게 말했다.“내 사촌 형? 임다빈, 그딴 쓰레기가 감히 나랑 비빌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내가 고작 네가 몸뚱이나 팔아서 자리를 지켜야 할 무능한 놈으로 보였어?”임다빈을 향한 성태건의 신뢰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그가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전부 성진택과 임다빈이 짜놓은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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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성태건이 임다빈의 따귀를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네가 날 좋아하면 나도 널 똑같이 좋아해야 해? 나랑 아란이 사이를 망쳐놓은 너한테 어떻게 복수해야 내 속이 풀릴까?”성태건의 목소리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임다빈, 이혼 절차를 이미 변호사한테 넘겨서 밟고 있어.”임다빈이 경악한 얼굴로 성태건의 품에 와락 안기려 했다. 그런데 그가 매정하게 밀어내자 조급해진 그녀가 울면서 매달렸다.“나도 알아. 네가 아직 하아란을 원한다는 거. 하아란이랑 싸우지 않을게. 너의 아내 자리를 하아란한테 줘야겠다면 난 그냥 뒤에서 너의 애인으로 살게. 응?”성태건이 슬프게 우는 임다빈을 차갑게 쳐다봤다. 머릿속에 하아란이 서럽게 울던 모습이 가득했다.하아란은 성격이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꽤 까탈스러웠다. 울 때면 성태건의 품에 파고들어 사정없이 깨물어 대곤 했었다. 그녀가 속상한 만큼 성태건도 참아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었다.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임다빈을 애틋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성진택이 그동안 성태건을 구해준 사람이 임다빈이라고 했다. 조금만 의심을 품고 조사해 보았더라면 금세 들통날 거짓말이었는데 그는 너무도 쉽게 믿어버렸다.성태건이 사진 뭉치를 임다빈에게 집어 던졌다.“너 10년 전부터 할아버지를 꼬드겨서 나랑 아란이 갈라놓으려고 수작 부렸지? 할아버지가 나한테 너랑 혼인신고 하고 아란이한테 불임약을 먹이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다 너의 계획이었어.”그가 오래전 과거의 만행들까지 낱낱이 파헤쳐졌다는 사실에 임다빈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그런 거 아니야, 태건아. 다 성진택의 짓이야. 전부 노인네가 꾸민 일이라고.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하아란을 아주 말려 죽여야 한다면서 고집을 부렸어.”성태건의 눈동자에 얼어붙을 듯한 냉기만 가득했다. 임다빈의 휴대폰을 빼앗아 직접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임다빈이 그동안 삭제했던 대화 기록들이 전부 복구되었다.그는 그녀가 번호 두 개로 끊임없이 하아란에서 메시지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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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성태건이 노숙자들에게 임다빈을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했다.임다빈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성태건, 나한테 아무리 복수해도 나랑은 절대 이혼 못 해. 성진택이 허락하지 않을 거거든. 내가 낳은 성진택의 아들을 너의 호적에 올리겠다고 했어. 내가 말했지? 평생 너랑 붙어살 거라고. 만약 그 늙은이가 약속을 어기면 그 늙은이의 추악한 짓거리를 세상에 다 까발릴 거야.”성태건의 두 눈이 차가워진 그때 변호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혼 증명서였다.그가 덤덤하게 내뱉었다.“이제부터 할아버지는 내 일에 전혀 관여할 수 없어. 임다빈, 우린 이혼했어.”눈앞의 이혼 증명서 사진이 임다빈의 알량한 희망을 산산조각 내는 가장 잔인하고도 확실한 일격이었다.그녀가 고통스럽게 절규했다.“안 돼. 난 평생 너의 아내로 살 거야. 내가 진짜 사모님이라고.”노숙자들이 임다빈의 옷을 거칠게 벗기는 모습을 성태건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허름한 창고를 나온 뒤 경호원에게 지시했다.“내일 아침에 임다빈을 경찰에 넘겨. 그리고 전에 사고 냈던 운전기사도. 관련된 모든 증거 자료를 검찰에 넘겨서 임다빈을 살인미수로 기소하라고 해.”...성태건이 기용하를 찾으러 우강 병원으로 달려갔다.기용하는 이 바닥에서 유일하게 권력과 탐욕에 물들지 않은 맑고 곧은 성정의 인물이었다. 성태건을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여기, 하아란의 임신 진료 기록.”성태건이 결과서를 받고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살펴봤다.[하아란, 임신 8주 차. 쌍둥이.]순간 성태건은 심장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통증에 휩싸여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크고 다부졌던 몸이 중심을 잃고 자꾸만 뒤로 비틀거렸고 안색이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얘졌다.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란이가 정말 내 아이를 가졌었다고? 그것도 쌍둥이를?”기용하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아란이한테 시험관 시술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후로 병원으로 날 찾아왔었어. 너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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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성태건이 임다빈을 위해서 하아란의 자궁마저 통째로 들어내 버렸다.당시 수술실에 누워있던 하아란이 얼마나 절망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의 그는 그저 임다빈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어차피 하아란이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자궁이 없어도 별 상관 없을 거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하지만 성태건은 몰랐다. 그 연약한 자궁이 그의 아이 두 명을 품었었다는 것을.하아란은 그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 모든 것을 잔인하게 짓밟은 게 성태건이었다.그녀는 임신을 준비하는 동안 매번 그에게 비밀로 하고 병원에 다녔다. 진단서에 찍힌 시간들이 전부 그가 회사에 있던 시간이었다.어느 한 번 하아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성태건, 왜 자꾸 전화를 걸고 그래? 나 몸이 안 좋아.”그 말에 깜짝 놀라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더니 하아란이 창백한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방 안에 피비린내가 조금 감돌기도 했다.그런데 하아란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생리 터졌어. 생리통 때문에 그러니까 배 좀 따뜻하게 해줘.”성태건이 손으로 배를 어루만져주자 하아란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나 너무 아파.”성태건이 당황하고 놀란 마음에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하아란은 본래 생리통이라곤 없었다.기용하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알려준 대로 생강차를 끓여 먹이고 몸을 따뜻하게 해줬다.그렇게 며칠을 보살핀 뒤에야 조금 나아졌다.성태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생리통이 아니라 아이를 가지기 위한 고통이었다.그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신혼 첫날밤 하아란에게 강제로 먹였던 약이 그녀의 몸에 치명상을 입혔다.그때는 그저 그녀를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결국 그녀에게 가장 잔혹한 가해가 돼버렸다.임다빈과 할아버지가 원흉이라면 정작 실행에 옮긴 가해자는 성태건이었다.성태건이 영혼이 통째로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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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7년 전 아란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저의 명의로 되어 있던 명성 그룹의 모든 지분을 아란이한테 넘겼었어요. 그리고 지금 황씨 가문에서 그 지분을 전부 매각했고요. 그때 할아버지가 저한테 임다빈이랑 결혼하라고 강요했을 때 할아버지가 가진 명성 그룹 지분을 전부 달라고 했잖아요. 이제 명성 그룹이 완전히 망해버렸어요.”성진택이 충격에 휩싸였다.“뭐라고?”성태건의 입가에 짙은 비웃음이 번졌다.“지난 몇 년간 명성 그룹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쥐고 있었던 사람은 아란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명성 그룹을 팔아넘기셨다고요.”성진택이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빌어먹을 놈! 당장 지분을 되찾아와. 내 평생의 피땀이 서린 회사를 하씨 가문 늙은이의 핏줄한테 갖다 바치다니. 애초에 하아란 그년도 같이 죽여버렸어야 했어. 그 화근을 살려둔 바람에 우리 가문이 무너진 거라고.”하씨 가문과 하아란을 향한 성진택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고스란히 느껴졌다.그동안 성태건이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하아란이 유약해서 성진택이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이 모든 뿌리는 윗세대부터 얽히고설킨 깊은 원한 때문이었다.성태건이 말했다.“할아버지는 감옥에 남아 저의 부모님한테 사죄하며 사세요.”성진택이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태건아. 요양원에 처박혀 있던 하씨 가문 그 늙은이 말이야. 나중에 죽은 것도 다 내가 사람을 시켜서 한 짓이야.”성태건이 그대로 얼어붙었고 두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만 가득했다....한편 머나먼 외국에 있던 하아란이 국내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하아란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저희 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살해당하셨다고요?”“아란 씨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지 않긴 했으나 담당의 소견으로는 2년은 더 버티실 수 있는 상태였어요. 성진택이 죽였다고 자백했으니 경찰서로 오셔서 사건을 처리하셔야 해요.”하아란은 할아버지가 살해당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아란의 부모 역시 기사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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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한 달 전 하아란이 우강시를 떠날 때만 해도 성태건은 임다빈과의 관계를 세상에 요란하게 발표했었다. 그래 놓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렇게 구걸하며 매달리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하아란이 호텔로 돌아왔다가 호텔 앞에서 황유석과 마주쳤다.황유석이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말했다.“성태건이 호텔로 찾아왔었는데 경비원들한테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어.”“고마워, 황 대표.”황유석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그냥 이름 불러. 우리 동기인데.”하아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며칠 동안 네 신세 좀 져야겠어.”“신세는 무슨.”그때 성태건의 차도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성태건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황유석의 두 눈에 날 선 경계심이 어렸다.하아란이 뒤따라온 성태건을 힐끗 쳐다봤다.“지금 하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원고와 피고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우리 법정에서 보자, 성태건.”하씨 가문 측에서 성진택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 변호인에게 꼭 사형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외의 어떤 형벌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성태건이 황유석과 하아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괴로웠다.그제야 불현듯 깨달았다. 웨딩드레스 샵에서 하아란이 높은 곳에 서서 그와 임다빈의 결혼식을 내려다보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를.고작 황유석과 하아란이 나란히 걷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그녀는 오죽했을까?‘아란아, 미안해.’2주 후 하씨 가문 어르신 사건의 판결이 내려졌다.무려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로 성진택은 사형을 선고받았다.하아란은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다. 그때 성태건이 999송이의 장미와 함께 보황 그룹의 호텔 앞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다.그녀는 성태건이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고 그와 임다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이 어떻게 식어버린 것인지, 그 내막 따위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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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성태건은 하아란이 탄 헬기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의 헬기가 어느 잔디밭에 착륙했다. 오랫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핏발이 선 두 눈에 고통만 들어차 있었다.하아란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젠 그가 뭐라 변명하든 중요하지 않았다.성태건의 무기력한 얼굴에 실망과 절망이 가득했다.그가 하아란에게 그토록 잔인한 상처를 주었건만 하아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성태건에게 한 가장 잔혹한 복수가 바로 그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실려 간 성태건은 꼬박 사흘 밤낮을 사경을 헤맨 끝에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그를 보러 온 사람이 오직 남궁정현뿐이었다.남궁정현이 입을 열었다.“태건아, 네가 임다빈이랑 결혼식 올렸던 그 웨딩드레스 샵 말이야. 그거 원래 하아란의 소유였어.”성태건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링거 바늘을 거칠게 뽑아버리자 피가 뚝뚝 떨어졌다.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웨딩드레스 샵을 향해 달려갔다.드레스 샵이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성태건을 본 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성태건 씨?”“여기 아란이 가게 아닌가요?”“이젠 제 가게입니다. 하아란 씨가 제게 파셨거든요.”사장이 안으로 들어가 웨딩드레스 디자인 북 하나를 성태건에게 건넸다.“전부 하아란 씨가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들입니다. 보고 싶으실 것 같아서요.”성태건이 떨리는 손으로 스케치북의 첫 장을 넘겼다.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그 옆에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그가 그랬다. 내가 바다의 해파리처럼 귀엽지만 독이 있다고. 웃을 때 파이는 보조개가 예쁘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해파리처럼 예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주고 싶다.]웨딩드레스의 디자인이 해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면서도 아름다웠고 또 보송보송했다.성태건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모든 드레스마다 짧은 글귀가 덧붙여져 있었는데 전부 그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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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성태건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외국을 미친 듯이 헤매며 5년 동안 찾아다닌 하아란이 줄곧 국내에 머물며 황유석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다음 날 성태건이 급히 비행기를 타고 우강시로 돌아왔다. 망설임 없이 보황 그룹으로 달려가 대표실로 쳐들어갔다.뜻밖에도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하아란이었다.성태건이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달려가 하아란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가 몸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아란아... 드디어 널 찾았어.”지난 몇 년간 성태건이 세계 곳곳을 뒤지며 그녀를 찾아다녔다는 것을 하아란도 알고 있었다.이번에 결혼 소식을 세상에 알렸으니 성태건이 찾아올 거란 것도 당연히 예상한 바였다.“성태건. 여긴 내 남편의 사무실이야.”성태건이 흠칫하더니 이내 분노하며 소리쳤다.“안 돼. 네가 다른 놈한테 시집가는 꼴 절대 못 봐. 넌 내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애타게 찾아다녔는데.”“나 외국에서 1년밖에 안 있었어. 그 뒤로 4년 동안 쭉 우강시에 있었고.”성태건을 쳐다보는 하아란의 눈동자에 냉기가 감돌았다. 한없이 평온한 그녀와 달리 성태건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괜찮아. 앞으로는 내가 평생 옆에 있을게.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네가 아직 화가 채 풀리지 않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란아, 우리 2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했어.”하아란이 초췌한 모습의 성태건을 응시했다. 5년 전 그토록 오만하고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명성 그룹을 잃어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하아란을 잃어서 이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녀가 카드 한 장을 꺼내 성태건에게 내밀었다.“지난 5년 동안 나도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이거 6조 원이야. 예전에 내가 명성 그룹 지분을 팔고 받았던 돈. 이제 돌려줄 테니 다시는 만나지 말자.”성태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아란아, 제발... 다시 한번만 결혼해 줘.”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결혼 증명서였다. 위에는 하아란과 황유석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성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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