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아 귀국했대. 우리 이혼해.”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이미 서명을 마친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강지혁의 얼굴에 찰나의 당혹감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곧 익숙하다는 듯, 습관적으로 합의서 위에 제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내가 먼저 이혼을 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여섯 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듯, 지극히 당연한 투로 내게 말했다“한 달 뒤, 설아가 떠나면 다시 혼인신고 하자.”예전의 나였다면 이 말에 안도했을 것이다. 혹은 그에게 독한 맹세를 시키거나 각서라도 받아내려 발버둥 쳤겠지.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속에 그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 대꾸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다.“하연주, 내 말 안 들려?”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침묵이 꽤 거슬리는 모양이었다.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대답은 했지만,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차분히 옷가지를 접어 캐리어에 넣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다.강지혁은 재혼을 약속하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켰다. 업계에서도 정직한 사업가로 명망이 높았고, 그 점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공교롭게도 우리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는 정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하는 갑과 을에 가까웠다. 일 년에 두 장씩, 우리는 의례처럼 혼인신고서와 이혼 합의서라는 이름의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서명한 종이만 벌써 열두 장이었다.결혼식장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맹세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결혼 생활 동안만큼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그 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약속만큼은 정말로 지켰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어디까지나 ‘결혼 생활 동안’이라는 조건 안에서만 유효했다. 우리가 이혼한 뒤, 그가 누구를 만나든 나는 더 이상 따질 자격이 없었다.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부르면 가고 밀어내면 물러나는 사람, 세상 모두가 다 아는 ‘강지혁의 장난감’이 되어 있었다.하지만 오늘의 나는 이상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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