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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Chapters

31화 마리가 있었다.

제레미가 무심하게 말을 남기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이 곳에서 살라는 뜻이었고 마리가 가진 능력을 실감하지 않았느냐 하는 비웃음이었다. 마리는 두 눈 가득 눈물이 차서 엘리의 옷자락만 잡고 어깨를 들썩였다. 엘리는 아이를 두고 간다는 선택지가 이미 결정된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다.그러나 제레미가 저렇게 완고하게 정한 일을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레미를 거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마음처럼 따르기만 하지 않았나. 그리고 수사관의 양심이 외쳤다.직접 눈으로 본 저 애의 능력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면, 누구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머무른 지가 벌써, 오 년이다. 아이는 최근에서야 자기 뒤를 따르던 꼬리표를 벗었다.아이가 크는 속도는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다.꽃잎이 구름처럼 몰려서 가지에 달려있었다. 텔레비전은 다른 지역에서 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대 이불보를 대충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던 소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텔레비전 바로 앞에 달라붙었다.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이 이불같기도 했고 점점이 내리는 건 눈을 닮기도 했다. 마리가 사는 섬에는 저런 꽃이 없었고, 안타깝게도 렘즈에도 벚나무는 없었다.제레미가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지금이라면 알만했다.마리는 제레미가 잠든 방문을 잠시 바라봤다가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테오는 마리가 재판을 다녀온 후에 태도가 달라졌다.마냥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이유를 묻거나 대화를 먼저 시작하려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마리는 그의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태도 덕에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제법 만족스러웠다.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제레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였다.처음 등산을 함께했을 때 들려준 이야기보다 조금 먼저 생긴 일이라는데 생각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마리는 자기만의 일기에 작은 연표를 그려놓았다.연표는 굵직하게 마리, 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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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신은 나뭇잎에서 지켜본다.

“누구를 생각하시는지요, 미네르바.”율리아,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소년을 보기 좋게 꺾었던 여인이 다가왔다. 휠체어를 조용히 이끌어 어느새 옆에 자리 잡은 그녀가 미네르바와 시선을 같이했다. 마리가 있던 덩굴 담장을 바라봤다.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는 이미 모든 걸 알고서도 침묵해주는 것일까. 마리는 이런 사람과 매일 어떻게 놀 수 있다는 건지. 그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속을 털어놔야 함을 알았다. 어설프게 속이느니 열어버리는 것이 나을 상대였다. 그럼에도, 그래도. 이제와 모든 걸 포기하고 왔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미네르바는 마냥 소녀를 생경한 작품 보듯이 바라봤다.“봄 풍경이 어여쁘다 하여 들렀습니다.”“가을이 더 볼만하지요 이 곳은. 마리도 단풍을 더 좋아하고요.”화제를 마리로 바꿔버린 율리아가 슬쩍 미네르바에게 말꼬리를 돌렸다. 그는 굳은 표정을 겨우 풀고서 손 안에 있는 바구니를 들어보였다.“그래도 모처럼이라 곁들일 간식도 가져왔습니다.”그 애가 좋아한다던 간식의 종류도 다 눈앞의 사람에게 들어서 안 것이었다. 율리아는 미네르바가 가져온 간식을 보고 마리가 참 좋아하겠다며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테오 선생이나 헤게 선생, 제레미를 포함해도 역시 렘즈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 노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율리아의 부름에 마리는 금세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 누가 있건 전혀 개의치않는 것처럼 굴었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고갯짓으로 살짝 목례만 해오는 것이 더 그랬다.미네르바는 퍽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을 몰래 숨기려 했다. 그러다가 마리가 재빨리 바구니를 잡았고 둘이서 말없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율리아는 둘이 만났으니 됐다는 듯 금세 스카프를 마리에 목에 둘러주고는 낮잠을 자러 간다며 등을 돌렸다.“율,율리아!”마리가 그녀를 붙잡으려 남은 한손을 급하게 뻗었고, 한 손도 흔들리자 바구니는 균형이 깨져서 크게 흔들렸다. 미네르바는 천천히 쿠키와 티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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