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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신을 삼킨 소녀: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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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너도 도망갈거지(2)

검은 머리 소녀는 어쨌든 천천히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렘즈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위압감을 줬다. 길게 솟아오른 빌딩은 초승달처럼 반으로 접혀 길게 뻗어있어 위용을 자랑했다.마리는 그 소년이 이렇게 큰 건물의 주인이라는 게 놀라웠다.그때에도 재수없는 꼬마라고는 생각했으나, 재수없을 수 있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이 곳에 올 수 밖에 없었다. 편지는 당연하게 묻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읽으면 이랬다. 너도 도망갈거지.연맹의 경고였다. ‘도’라는 건 엘리를 말하는 것일테다. 그녀를 위해 연맹을 피해가며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려 했던 사람처럼 마리도 혐의로부터 도망을 칠 생각이냐고, 묻는 것이다.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경고가 불쾌했으나 종이를 몇 번 구긴다고 해도 미네르바가 실제로 구겨지는 건 아니니까 마리는 곱게 종이를 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비서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컵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이에도 문으로 몇 사람이 오갔다.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잔뜩 성이 나거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두 종류였다.마리도 그들을 따라 옷을 잠그고 몇 번 목을 움직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미네르바에게 물어보러 간다던 비서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정장을 맞춰 입은 그들은 하나같이 제레미를 구하러 온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보였다. 저런 걸 그들의 ‘연맹’이라고 하는 건가 어렴풋이 마리는 깨달았다.“어서오세요, 마리타.”저번에는 마르샬라더니 이번에는 마리타라고 부른다.마리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렘즈에서 보았던 차분한 초록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을 찾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그저 속이 새카만 우두머리가 앉아있을 뿐이었다.저보다 키가 큰 탓에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봐야 했다.나름의 배려인건지 제 자리에 앉은 그가 마리에게도 앉으라고 안내했다. 여기서 벌써 몇 번이나 앉아있는지 알 수 없다.“편지를 읽었나요?”그는 퍽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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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그날의 진실

까맣게 점멸된 의식 속에 소리가 웅웅대듯 귀에 울렸다. 어느새 어려진 기억 속 마리타가 말했다.“오늘따라 고모가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밖에서 고모를 부르면 안 된다. 나미엘이 손수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줬기 때문이다.오랜만에 시무룩해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딸의 목소리을 들은 이아고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한편으로는 나미엘 생각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러나 마리가 먼저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않았으므로 이번에는 그래도 마리를 위해 나미엘을 위하는 시늉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아이의 손에 쟁반을 쥐어줬다“방에 들어가 보렴, 내 보물. 고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 아침에 따뜻한 차를 드리지 않아서 아직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그날은 그렇게 시작했다. 기분이 안 좋은 거구나. 오늘은 고모의 심사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열었다. 고모는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보통 마리도 아침에 대부분 그렇게 누워 계시는 부분만 보았다. 그러니 오늘은 느끼기로 어째선지 고모가 무언가를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차가 식기 전에 미리 드리고 싶었지만 고모가 주무시는 침대 옆 협탁에만 몰래 차를 두고 나왔다.그녀가 감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감옥이란 호칭 보다는 이아고나 다른 간수들은 보호소라는 말을 쓰라고 했지만 사실 마리에게 그것은 그저 감옥에 불과했다.검고 높다란 벽과 복도와 방을 가른 차가운 쇠창살이 어떻게 감옥이 아닐 수 있을까.슬며시 문을 닫고 달음질치며 나온 마리는 나미엘에게는 저녁에 다시 한번 다가가 차를 받으셨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아고가 꼭 차를 다 마셨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해보라고 했지만,매일 아침 차를 드시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조금은 얌전해지는 고모가 아닌가. 굳이 마리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면 전부 자기가 차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그녀는 아빠의 도시락을 들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남청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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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방법(1)

마리는 남아있는 기억을 토대로 더듬더듬 진술했고, 그때 마리의 이름도 완전해졌고, 이아고의 자식으로 등록됐다. 그들이 가져온 서류로 알 수 있는 건 이아고는 그녀의 아버지지만, 나미엘은 그녀의 고모가 아니다.그제야 밖에서는 그녀를 부르지 말라던 게 기억났다.그리고 때때로 고모라고 부르면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이 생각났다. 그러면, 한자리가 비었다. 그녀의 친모가 없다. 그리고 나미엘은 누군가. 두 가지 의문이 남았다.그때부터 마리는 자기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엘리의 손을 잡고 렘즈에 왔을 때부터 언젠가 재판장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오래 전부터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엘리가 사라지고 테오가 그녀에게 가족사를 묻지 않게 되고 제레미가 겨우겨우 팔에 링거를 끼고 어쨌든 살아남았다. 율리아가 그녀를 위해 휠체어에서 두 발로 일어서 함께 걸어주기도 했다.마리는 다음 할 일을 알았다. 이대로 괜찮은가 생각하면 전혀 아니다.그들의 할 일이 저를 받아주는 것이면, 자신의 할 일은 그녀의 뒤를 따라는 죄의 부산물들을 씻어내는 거였다. 재판에 가자. 가서,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려면 제일 먼저 말해야할 사람은 한 명이었다.미네르바 테일러.마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유리로 사방에 막혀 있는 방이었다. 바깥에서는 보이게 되었지만 안에서는 바깥에서 볼 수 없었다. 감옥보다 시설은 좋았지만 마리는 이곳이 부루가 있던 방을 생각나게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엘레오노라 베버, 누구 덕분에 목숨을 잃은 인재지.”미네르바가 마이크로 빈정댔다. 그 이름을 그가 말할 줄은 몰랐다. 마리는 천천히 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투명한 실루엣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았다.“거짓말하지마, 너 ‘우리들’에게는 관심 없는 거지? 네가 찾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한 것뿐이잖아.”그는 ‘우리들’에 엘 리가 포함된다는 걸 눈치채고 못마땅한 듯 입꼬리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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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방법(2)

테오는 한편, 마리가 재판에 참가하게 됐다는 말이 너무도 급작스러워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그 즉시 연맹의 지사로 달려왔다.“아동의 경우 재판일자 확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또 후견인이 있어야 정당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아는데요.”데스크에서 말을 거는 그에게 직원이 죄송하다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해당 사건의 경우 특별수사TF가 꾸려져있어 연령에 상관없이 능력자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라는 본부의 결정이 있었습니다.”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다. 자이온이 다녀가고, 이아고 마르샬라의 죄가 입증됐으면 마리의 죄는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분명 이미 연맹이 그 애 아빠의 시신을 발견했고. 신원 확인도 끝난채로...테오는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생각하다가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누나의 목소리였다.‘아버지시신이 발견됐고, 마리는 혼자 발견됐어. 아이를 맡아줘, 잠깐이면 될거야.’부모님이라 함은 오직 이아고 마르샬라를 포함한 것이다. 당시에는 친자 관계를 명확히 알지 못해 나미엘 마르샬라를 고모가 아니라 친모라고 생각하고 엘 리가 말을 건넸었다. 테오는 그제야 뒷목을 감싸는 싸늘한 기운에 그의 짐작대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연맹은 이미, 마리타를 잡아들이려고 그의 생각보다 훨씬 면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테오는 곧장 렘즈로 돌아갔다. 그가 제일 먼저 만나야할 사람은 정해져있었다. 제레미는 사라진 마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나서부터는 내내 정원만 바라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게 내심 답답했지만 테오는 제레미가 아니고서야 이 문제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일단 그를 설득해보기로 했다.“모함이야. 아버지 시신으로 장난을 치는거라고.”테오가 다짜고짜 하는 말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얼추 짐작했기 때문이다.“그래, 맞을거야. 마리도 그랬어.”그가 마리에게 의심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들었던 답을 떠올리고 말한 것이다. 테오는 제레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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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방법(3)

벽장 안에 꽂아둔 책 하나는, 먼지가 잔뜩 쌓였고 아주 오래 전에나 읽어보았는지 지금은 종이가 서로 달라붙어 잘 열리지도 않았다. 헤게는 신이며, 제물이며 하는 것들이 하찮았지만, 거래로는 썩 괜찮았다. 연맹은 왜 이런 것에 관심을 갖나했지만 앞뒤사정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그 빌어먹을 병원의 남자들이 아니라 그녀가 찾는 게 빨라보였다. 그녀가 가방을 들고 마리가 전에 방문했던 그곳으로 향했다. 비서는 또 익숙하게 고개를 숙여 그녀를 수장의 방으로 안내했다.미네르바는 기다리던 책이 온 게 기뻤지만 그들이 아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대는 책을 믿을 수가 없어 실제로는 헤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별의 폭발로 만들어진 지금의 세상과는 다른 곳 같기도 했다. 반신이며, 힘이며 낯선 것들은 한가득이었다. 별말도 없이 책만 건네주고 마리를 보러가겠다는 헤게에게 더 물어 볼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미네르바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들의 편으로 만들기 힘들었던 만큼 제대로된 일을 해줬으니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줘도 되겠거니 싶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경쾌한 소리였다. ‘바바를 위해서.’첫장에 있는 낯선 글귀였다. 다른 판본에는 없던 것이다. 오직 초본에는 있다던 걸 직접 목도한 미네르바도 감회가 남달랐다. 작가의 사적인 생활을 엿본 것같았다. 이미 내용은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오직 글귀 하나 때문에 그의 집에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책같이 느껴졌다. 책은 새로운 인물을 알려줬다. 반신 부루.테오는 헤게가 겨우 책 한 권을 들고 병원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나 고민했다. 이게 백지수표 하나랑 맞먹는 일인건지부터 왜 율리아가 저걸 갖고 있으며 헤게는 또 왜 그랬는지 물어볼 게 가득했으나. 제레미가 테오에게 먼저 선수를 쳤다.“아무것도 묻지 마,나도 이것까지 예측하진 못했어.”그래도 테오가 눈을 부릅뜨고 계속 율리아의 방문을 가리켜서, 제레미는 한숨을 내뱉고 짧게 설명해야 했다.“마담이 소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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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방법(4)

테오는 마리에게 자기가 했던 말이 동기가 됐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방아쇠를 당긴 건 그였다. 치사하게 복수를 하고싶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제레미는 그런 그를 알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제레미는 헤게가 건넨 필사본만 읽고 있었다.“다 외워서 썼나요?”“네, 그 정도는 의대시험보다야 쉽습니다.”제레미랑 헤게가 건조한 대화를 나눴고, 테오가 그대로 방을 나갔다. 헤게는 그의 뒤통수를 쳐다보다가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저 남자에게도 잠시 생각할 시간 정도는 주어야 했다.“사실 저는 당신에게도 실망했어요, 제레미.”언제 봐도 이질적인 그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향했다.“제가 마리에게 직접 물어봐서요.”얼마 전의 일을 에둘러 입에 올린 그가 눈으로 묻자 그녀가 끄덕였고, 그도 같이 끄덕였다. 자기도 실망했다는 뜻이리라, 헤게는 그걸 그렇게 이해했다.“최악을 대비하고 싶었어요, 나는.”평범한 삶을 영영 되찾을 수 없게 될 경우요, 제레미가 덧붙였고 헤게가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했다.“그것도 하나의 방식이지만 제대로된 방법은 될 수 없었을 거에요.”제레미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지적이었다. 제레미는 저이가 마리에게 어떤 동기를 부여해준 건지 궁금했다. 그하고 비슷하다고만 여겼던 마리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의 판을 벌릴 줄은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아니, 이 상황 중 어느 것 하나, 마리타가 이 병원으로 오는 것까지 사실 그 애의 삶에서 그가 예상한대로 이루어진 건 하나도 없었다. 능력이 한물 간 건지, 아이가 특별한 건지 알 수 없어 쓴웃음을 흘렸다.“헤게 선생님의 방법은 뭐죠 그럼,”그는 헤게에게 궁금한 사실을 물어놓고 정작 취조하는 것같은 말투에 슬쩍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귀가 살짝 붉어졌다. 헤게는 이를 보지 못하고 말했다.“변호사를 선임해 줄 거에요. 보석금도 준비할거고요.”제레미는 자기가 들은 말이 맞나싶어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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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방법(5)

한때 저 사실이 기사로 빼곡하게 찼던 시절이 있었다. 헤게도 테오도 기억하리라. 배심원들도 아는 사실을 수사관은 한 번 더 읊었다. 그러나 판사는 제법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이때 변호사가 다시 일어났다. 발언권이 아직 오지 않았을 차례였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해야했으나, 그에게도 사실 할만한 것들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느린 속도로 누군가 등장했다. 분명 본인은 빨리 걸었지만 걸음이 느려 아직도 자기 자리의 절반도 가지 못한, 어린 소녀였다. 멜빵 치마를 입고 굽이 없는 구두를 신은 아이는 테오와 헤게가 이곳에서 무수히 찾던 얼굴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로 자리에 선 소녀가 자리에 앉았다. 판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배심원들도 실제로 ‘소문의 마르샬라’를 보는 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채였다. 최고위험군이고, 이미 폐기시설에서 지내는 아이. 자기를 감싼 수식에 비해 지나치게 가녀린 소녀가 그들을 바라봤다. 담담한 표정에서 어떤 결과도 감내할 듯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긴 침묵을 지속하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마리타 마르샬라입니다. 변호사님 대신 말해도 될까요.”마리는 변호사와 대충 목례로 인사를 하고, 판사를 바라봤다. 차분한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봤고, 판사도 그러라고 했다.“저희 아버지는 이아고 마르샬라입니다. 고모는 나미엘 마르샬라고,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항상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차를 마실 때면 기분이 좋으셨지만 아닐 때가 많아 제 몸에 손을 대신 적이 많았고, 섬에는 마땅히 저를 받아줄 어른이 안계셨던 관계로 아버지는 고모로부터 저를 떼어내기 위해 감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간수인 아버지의 곁에 있으면 안전했으니까요.”마리는 고개를 다시 천천히 들며 말했다. 조곤조곤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한 글자도 잘못 전달되어서는 안됐다.“마리타 양이 그런 상황이었다는 건 이미 증거로 입증됐습니다.”판사가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나 마리는 그 말을 들을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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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허수아비

레사는, 마리를 꽤 좋아했다. 별로 사교적이지도 않지만 그녀가 만든 크로아상 말고 다른 걸 못 먹는 점이 귀엽기도 했고 어찌됐든 그녀와 아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마리였다. 죽을 뻔했던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사람의 영역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능력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리가 레사가 생각하는 신과는 가장 맞닿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꿈에 나왔던 건 그 유명한 포르베 사건의 재판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마리가 평범하지는 않으니 레사도 당황하지는 않았다.“왔어?”단조로운 반응에 소녀가 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무언가 할말이 있는 건 분명했는데 애꿎은 발만 움직이고 시선을 바닥에만 두다가 말했다. 결심이 서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노엘은 아직 어리고, 또 그 애한테 비밀을 얹고 싶지는 않았어.”마리는 자기 정체가 알려진 순간부터 단둘일 때는 서로 말을 놨다.“응, 고마워. 네 그런 점에 감사해.”갑작스러운 인사에 마리가 그런 건 칭찬이 아니라고 했다. 레사는 물론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신은 나뭇잎에서도 지켜본댔지, 레사.”레사가 일전에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었다. 자기를 구해줘서 고맙다며, 신이 있긴 한 모양이라던 말간 웃음이 생각났다. 아들의 손을 잡은 엄마의 미소는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마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렘즈에서도 이 미소를 대신할 무엇을 얻을 뿐,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을 알았다. 마리의 신은 그런 걸 지켜보고 싶었나보다 나뭇잎에서. 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하나로 묶은 갈색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간다. 마리는 애써 시선을 떼고 자기 할 말에 집중했다.“근데 내 신은 나뭇잎이 아니라 광장에 있어줘야 해. 그러니까 레사가 했던 말이 틀린 거니까 책임 져.”어리광같았으나 저가 어린 애가 아니면 뭔가 싶어 마리는 일부러 어깨를 세우고 당당하게 굴려고 했다. 물론 어려워서 금세 포기했지만. 레사는 그걸 보는 것도 재밌어서 일부러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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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당분간 식물은 괜찮아

당분간 식물은 괜찮다는 말에 마리도 그러냐고 웃었다. 둘만이 아는 일이었다. 둘은 꿈을 떠올리다가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 배달한 빵의 대부분이 오래된 밀가루로 빚었는데 괜찮냐는 물음에 마리도 싱긋 웃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둘 다 맑은 웃음이었다. 마침내 마리타는 제레미에게 불려갔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에서 보자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제레미는 예의 그 천장이 보이는 테라스에 먼저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마시는 잔이 아침에 먹었던 것까지 합해 몇 잔인지 마리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위험했어, 마리, 알지?”제레미는 슬쩍 자신의 계획을 짚고 넘어갔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시점에서 이미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잔소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레사한테는 조만간 사례할 생각이야.”‘그래.’하고 대답한 제레미는 마리의 사고에 아무런 문제를 못느끼는 것같았지만, 헤게였다면 물질로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일이 여러 번 있어서는 안된다고 짚어줬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감각이 없는 제레미였기에 둘은 또 다른 이야기만 했다.“힘을 크게 쓴 거 아니면.”“멋대로 미네르바에게 간 것부터 재판이랑 그 이후까지 전부.”“...”“그렇게 너를 함부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었어도 렘즈에 있는 식구들이 해결할 수 있었을 거야. 굳이 책을 헤게의 손으로 미네르바에게 넘길 필요도 없었어.”마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제레미도 대충 간파하고는 있었다.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와 그 ‘사람’의 관계를 알려면 그녀보다는 전문적인 조직이 움직이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평범한 삶에서 멀어질 수 없으니, 과거는 그들에게 맡겨서 진실만 알아낼 셈이다.“욕심도 많지, 어리면서.”마리타가 밉지 않게 제레미를 노려봤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당해준 건 제레미도 마찬가지 아닌가.“미네르바가 적임자였어. 제법 많이 알고 있기도 했고, 나보다 돈도 많잖아 걔는.”“어린 부자가 최고다?”“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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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제레마이야 렘

끝에 갈수록 말소리가 작아졌다. 마리도 그게 충분히 위험한 줄을 알아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그래, 들킬 것같지는 않더라, 내가 못느꼈으니까, 아무도 의심못했을거야. 그러면 결국 자이온에게 맡기고 기다리면 된다는 거야 지금은?”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제레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보다 더한 표정이다. 마리는 그에게 또 변명을 해야하나 하다가 그가 그냥 털썩 체어에 누워버리자 당황스러웠다.“쉬자 그럼. 일은 걔네가 하고, 우리는 쉬는거야.”“그래도 돼?”“응, 잘했어. 우리는 별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러자. 방에 창문도 없었다며.”사실은 그래서 불렀어. 오랜만에 좀 보라고. 덧붙인 말에 마리는 금세 걱정을 잊어버리고 같이 별을 구경했다.“대신 다음부터는 다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너를 내몰지는 말자. 마리타. 다들 걱정하느라 잠도 잘 못자고 그랬어.”“미안해,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야.”마리는 정말 이제는 괜찮을 것을 알았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도 어쩌면 훗날 알았을 때 생각보다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루가 그녀의 엄마라거나, 마리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곁에 있었고, 하늘에도 충분히 많았다. 섬에서 봤던 거리보다는 훨씬 가깝고, 따뜻하게. 앞으로는 몰라도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제레미는 천천히 그녀를 처음만난 날을 생각했다. 모포를 뒤집어쓴 아이가 엘리의 손에 이끌려 겨우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계단 턱을 넘을 때마다 한 번씩 머리나 몸이 기우뚱했다. 말랐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데 용케 눈을 뜨고 걸어 다닌다 싶었다. 아이는 엘 리가 쥐어주는 차를 꼭 쥐고서 마실 생각도 없이 인형처럼 앉아만 있었다. 인형, 정말로 인형 같았다. 어린 아이크기인 도자기인형처럼, 작고 표정도 없이 어린 아이라기보다는 모양만 본뜬 것같은. 그가 처음으로 아이에게서 받은 인상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테오는 누이가 데려온 아이를 내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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