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신의 능력을 가진 소녀 마리타가 갑작스레 살해된 자신의 아버지와, 반신이되 학살자가 되었던 어머니 부루, 사건을 해결하느라 실종된 엘레오노라 베버의 사건을 해결하고 이능력자 폐기시설인 렘즈를 지키기 위해 연맹과 맞서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입니다.
View More1화 잃어버린 사람.
첫 기억은 감옥에서 시작했다. 눈을 뜨자 아빠가 손을 잡고 우리 보물,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다시 나를 품에 안으며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두막으로 갔을 때도 펑펑 울고는 그날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아빠를 쫓아 일터에 가는 건 앞으로 자제해달라고만 해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마리타 마르샬라.
사무소에는 현장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시신들이나 폭발한 건물의 사진 따위. 그중에서 한 사진은 유난히 이질적이었다. 오래되어 사진의 모서리가 뭉툭하게 닳아버렸지만, 검은 연기 속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긴 창백한 어린 아이의 사진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 이제는 마리타 렘으로 불리는 게 더욱 친숙한 아이였다. 수사관은 그 아이의 거취를 주기적으로 신경써야 했다. 상관이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다녀오라고 임무를 줬다. 건네받은 파일에 함께 들어있는 쪽지는 모른 척 쓰레기통에 버렸다. 긴장한 상관의 표정으로 대충 사정은 이해했다. 자기야 어떻든 왔다갔다 그 시골짝에 가느라 하루를 통으로 쓰겠구나 싶어서 엘리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사건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연맹이 자기들 입맛대로 그냥 덮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크게 죽어서,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딘가 보호시설에 보내지도 못하고 사건을 놓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지체했다. 일반시설에 보내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살인자의 딸로 꼬리표가 달릴 것이 뻔하고 사건이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증거라고는 없는 이 상황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아니다, 증거는 있었다. 만들어졌을 뿐. 그래서 발견한 즉시 엘리가 묻어버렸을 뿐이다. 하늘은 파랗게 떠 있고, 빌어먹을 동생은 또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테오도르 베버, 이를 갈며 차를 몰아 길을 떠났다. 어쨌든 그녀도 오랜만에 아이와 동생이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원 문을 열고, 안에서 아이를 본다. 차분하게 검은 원피스를 갖춰 입은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엘리가 평소처럼 티셔츠를 입지 않고 단정한 차림새인걸로 평소와 다르게 굴어야하는 걸 안다. 볼수록 영리한 아이였다. 둘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이 떠오른 건 없는지, 이곳의 생활은 어떤지, 개인적으로는 이미 동생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작은 발을 동동거리는 게 탁자의 진동으로 느껴졌다. 벌써 가만히 앉아있기에 진저리가 났는지 흘끔거리기도 한다. 언제 끝날지 시간을 재는 폼이 아주 본격적이었다. 뒤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지만 않았어도 마리가 진작에 그에게 장난을 쳤으리라.
“이정도면 됐다, 오늘은 그만하자.”
뒤에서 테오가 녹화를 멈추고, 신호를 주면 그도 천장으로 손을 뻗어 길게 기지개를 폈다. 움직여도 된다는 엘리와 마리타만의 수신호였다. 음식 앞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강아지처럼 있던 아이가 마침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간 아이가 의자에서 펄쩍 뛰어내려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종알거렸다.
“자고 갈거죠? 저녁이 고기래요. 엘리는 특별히 소고기인데 다 먹으면 디저트도 있어요!”
테오가 어깨를 으쓱이건 말건 엘레오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다. 마리가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웃으며 공간을 나갔다.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순간임을 알고 먼저 비켜준것이다. 여러 차례 이 일을 반복하면서 아이도 능숙해졌다. 수용소의 바로 앞에서 발견된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게 말끔하고 천진했다.
사진 속에서는 혼자 정신을 잃은 채로 방치됐었다. 마리를 볼 때마다 속으로 당시의 기록을 정리하고는 했다. 쇤베르그 령 포르베 지방 원주민 전원 사망, 양친 사망, 용의자 추정 신원 불명 인물과 부녀관계. 공범 혐의 의심 중 입증과정 미정.
마지막 결론 때문에 그녀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의 거취는 사무실 안에서도 담당자인 그와 직속상사, 또 그 위에 높은 사람들을 빼면 기밀이었다. 보호차원에서도 격리차원에서도 가장 원만한 합의였다. 그에 관해 언론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잠잠해진 편이다. 일 년에 한 편정도 기사가 올라오고는 했다. 엘리는 이대로 마리가 완전히 잊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지폐 수를 헤아리는 척 손가락을 비볐다. 돈 빌려달라는 소리다. 저런 놈에게 아이를 맡겨도 되나싶어 순간 고민이 깊어졌다.
“여기서 지낼만해?”
그 애, 생략된 말도 알아들었다. 묻는 게 그의 안부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테오가 보기에 누나는 마리를 지나치게 신경 썼다. 사건을 담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꼭 어미새처럼 굴곤 했다. 자기 약혼자나 잘 챙겨줄 일이지 이 병원의 누구랑 비슷해서 낯익었다.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한손으로 풀어낸 테오가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
“그쪽에선 잘 숨길만한거고?”
그녀가 누구를 따라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테오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물을 걸 물어라. 테오도르.”
검은 머리카락에 잔뜩 재가 묻어 이 곳에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엘레오노라 베버와 테오도르 베버는 겉으로 여상한 척 굴고 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날의 풍경을 잊지 못했다는 건 서로 확인해볼 가치도 없었다.
“밤에 악몽을 꾸나봐, 약을 쓰고는 있는데 잠을 잘 못 자.”
아무렴 누가 잘 수 있을까. 제 아버지와 섬 사람들이 전부 죽어나간 사건에 어느 날 이런 답답한 시설에 갇혀 지내는 신세라면. 엘리는 종이컵을 대충 입에 물고 겉옷에 팔을 뀄다. 아이가 오래 기다렸을 것 같았고,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문가에 쭈그려 앉은 마리가 그녀를 올려다본다. 까만 눈동자가 기대로 반짝였지만 직감적으로 제 처지를 아는지 먼저 손을 내밀어줄 때까지 아이는 망설이곤 했다.
“방 구경 시켜줄래, 아가?”
반가운 미소에 마리가 방긋 웃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작은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손이 주는 감촉에 그제야 제 손이 놀랄만큼 서늘했다는 걸 안다.
“누구를 생각하시는지요, 미네르바.”율리아,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소년을 보기 좋게 꺾었던 여인이 다가왔다. 휠체어를 조용히 이끌어 어느새 옆에 자리 잡은 그녀가 미네르바와 시선을 같이했다. 마리가 있던 덩굴 담장을 바라봤다.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는 이미 모든 걸 알고서도 침묵해주는 것일까. 마리는 이런 사람과 매일 어떻게 놀 수 있다는 건지. 그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속을 털어놔야 함을 알았다. 어설프게 속이느니 열어버리는 것이 나을 상대였다. 그럼에도, 그래도. 이제와 모든 걸 포기하고 왔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미네르바는 마냥 소녀를 생경한 작품 보듯이 바라봤다.“봄 풍경이 어여쁘다 하여 들렀습니다.”“가을이 더 볼만하지요 이 곳은. 마리도 단풍을 더 좋아하고요.”화제를 마리로 바꿔버린 율리아가 슬쩍 미네르바에게 말꼬리를 돌렸다. 그는 굳은 표정을 겨우 풀고서 손 안에 있는 바구니를 들어보였다.“그래도 모처럼이라 곁들일 간식도 가져왔습니다.”그 애가 좋아한다던 간식의 종류도 다 눈앞의 사람에게 들어서 안 것이었다. 율리아는 미네르바가 가져온 간식을 보고 마리가 참 좋아하겠다며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테오 선생이나 헤게 선생, 제레미를 포함해도 역시 렘즈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 노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율리아의 부름에 마리는 금세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 누가 있건 전혀 개의치않는 것처럼 굴었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고갯짓으로 살짝 목례만 해오는 것이 더 그랬다.미네르바는 퍽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을 몰래 숨기려 했다. 그러다가 마리가 재빨리 바구니를 잡았고 둘이서 말없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율리아는 둘이 만났으니 됐다는 듯 금세 스카프를 마리에 목에 둘러주고는 낮잠을 자러 간다며 등을 돌렸다.“율,율리아!”마리가 그녀를 붙잡으려 남은 한손을 급하게 뻗었고, 한 손도 흔들리자 바구니는 균형이 깨져서 크게 흔들렸다. 미네르바는 천천히 쿠키와 티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느
제레미가 무심하게 말을 남기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이 곳에서 살라는 뜻이었고 마리가 가진 능력을 실감하지 않았느냐 하는 비웃음이었다. 마리는 두 눈 가득 눈물이 차서 엘리의 옷자락만 잡고 어깨를 들썩였다. 엘리는 아이를 두고 간다는 선택지가 이미 결정된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다.그러나 제레미가 저렇게 완고하게 정한 일을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레미를 거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마음처럼 따르기만 하지 않았나. 그리고 수사관의 양심이 외쳤다.직접 눈으로 본 저 애의 능력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면, 누구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머무른 지가 벌써, 오 년이다. 아이는 최근에서야 자기 뒤를 따르던 꼬리표를 벗었다.아이가 크는 속도는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다.꽃잎이 구름처럼 몰려서 가지에 달려있었다. 텔레비전은 다른 지역에서 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대 이불보를 대충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던 소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텔레비전 바로 앞에 달라붙었다.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이 이불같기도 했고 점점이 내리는 건 눈을 닮기도 했다. 마리가 사는 섬에는 저런 꽃이 없었고, 안타깝게도 렘즈에도 벚나무는 없었다.제레미가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지금이라면 알만했다.마리는 제레미가 잠든 방문을 잠시 바라봤다가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테오는 마리가 재판을 다녀온 후에 태도가 달라졌다.마냥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이유를 묻거나 대화를 먼저 시작하려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마리는 그의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태도 덕에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제법 만족스러웠다.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제레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였다.처음 등산을 함께했을 때 들려준 이야기보다 조금 먼저 생긴 일이라는데 생각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마리는 자기만의 일기에 작은 연표를 그려놓았다.연표는 굵직하게 마리, 제레
끝에 갈수록 말소리가 작아졌다. 마리도 그게 충분히 위험한 줄을 알아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그래, 들킬 것같지는 않더라, 내가 못느꼈으니까, 아무도 의심못했을거야. 그러면 결국 자이온에게 맡기고 기다리면 된다는 거야 지금은?”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제레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보다 더한 표정이다. 마리는 그에게 또 변명을 해야하나 하다가 그가 그냥 털썩 체어에 누워버리자 당황스러웠다.“쉬자 그럼. 일은 걔네가 하고, 우리는 쉬는거야.”“그래도 돼?”“응, 잘했어. 우리는 별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러자. 방에 창문도 없었다며.”사실은 그래서 불렀어. 오랜만에 좀 보라고. 덧붙인 말에 마리는 금세 걱정을 잊어버리고 같이 별을 구경했다.“대신 다음부터는 다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너를 내몰지는 말자. 마리타. 다들 걱정하느라 잠도 잘 못자고 그랬어.”“미안해,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야.”마리는 정말 이제는 괜찮을 것을 알았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도 어쩌면 훗날 알았을 때 생각보다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루가 그녀의 엄마라거나, 마리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곁에 있었고, 하늘에도 충분히 많았다. 섬에서 봤던 거리보다는 훨씬 가깝고, 따뜻하게. 앞으로는 몰라도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제레미는 천천히 그녀를 처음만난 날을 생각했다. 모포를 뒤집어쓴 아이가 엘리의 손에 이끌려 겨우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계단 턱을 넘을 때마다 한 번씩 머리나 몸이 기우뚱했다. 말랐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데 용케 눈을 뜨고 걸어 다닌다 싶었다. 아이는 엘 리가 쥐어주는 차를 꼭 쥐고서 마실 생각도 없이 인형처럼 앉아만 있었다. 인형, 정말로 인형 같았다. 어린 아이크기인 도자기인형처럼, 작고 표정도 없이 어린 아이라기보다는 모양만 본뜬 것같은. 그가 처음으로 아이에게서 받은 인상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테오는 누이가 데려온 아이를 내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당분간 식물은 괜찮다는 말에 마리도 그러냐고 웃었다. 둘만이 아는 일이었다. 둘은 꿈을 떠올리다가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 배달한 빵의 대부분이 오래된 밀가루로 빚었는데 괜찮냐는 물음에 마리도 싱긋 웃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둘 다 맑은 웃음이었다. 마침내 마리타는 제레미에게 불려갔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에서 보자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제레미는 예의 그 천장이 보이는 테라스에 먼저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마시는 잔이 아침에 먹었던 것까지 합해 몇 잔인지 마리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위험했어, 마리, 알지?”제레미는 슬쩍 자신의 계획을 짚고 넘어갔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시점에서 이미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잔소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레사한테는 조만간 사례할 생각이야.”‘그래.’하고 대답한 제레미는 마리의 사고에 아무런 문제를 못느끼는 것같았지만, 헤게였다면 물질로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일이 여러 번 있어서는 안된다고 짚어줬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감각이 없는 제레미였기에 둘은 또 다른 이야기만 했다.“힘을 크게 쓴 거 아니면.”“멋대로 미네르바에게 간 것부터 재판이랑 그 이후까지 전부.”“...”“그렇게 너를 함부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었어도 렘즈에 있는 식구들이 해결할 수 있었을 거야. 굳이 책을 헤게의 손으로 미네르바에게 넘길 필요도 없었어.”마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제레미도 대충 간파하고는 있었다.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와 그 ‘사람’의 관계를 알려면 그녀보다는 전문적인 조직이 움직이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평범한 삶에서 멀어질 수 없으니, 과거는 그들에게 맡겨서 진실만 알아낼 셈이다.“욕심도 많지, 어리면서.”마리타가 밉지 않게 제레미를 노려봤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당해준 건 제레미도 마찬가지 아닌가.“미네르바가 적임자였어. 제법 많이 알고 있기도 했고, 나보다 돈도 많잖아 걔는.”“어린 부자가 최고다?”“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헤게는 서류라는 말에 이번에도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그놈의 원칙을 벌써 어제 오늘 두 번째로 내세우게 되는 베버로서도 이 순간이 극도로 혐오스러웠지만 다시 입 밖으로 낼 수밖에 없었다.“코드 0 특별 제한대상 분류. 후천 발현, 포르베 수용소 수감자 및 거주자 내 사망실종자비율 ...99%.”입술을 꽉 깨물고 무언가를 참는 듯한 헤게의 모습에 테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능력자 관련 분야에 종사한다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사건이다.“마저 읊을까요? 아버지인 이아고 마르살라가 딸의 능력을 이용해 범죄
“나뭇가지로는 안될텐데에?”마리가 테오가 주는 돈을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빙그레 웃고는 그가 낮에 한말을 따라했다. “따라하지 마라. 연습한 거지 너?”“아닌데, 아닌데.”얄미운 인물에게 방금 당직으로 번 야근 수당을 전부 내주고 베버는 신입과 함께 당직실로 향했다. 현금을 양손으로 주물거리는 소녀에게서 눈을 못떼고 그가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신입, 헤게는 대체 저게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으쓱한 베버가 입을 다물 것처럼 굴자 금세 불만을 토해냈다.“방어 시스템이 마비됐나요? 어떻게 운석이 병원 상공에 들어
“멍청아! 나무보다 돌이 더 단단하지.”어린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는 흰 가운 위로 면접 때 보았던 명찰이 보였다. 테오도르 베버.“아니라니까! 나무가 더 단단하다고!”곱슬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긴 남자는 면접 때 보았던 차분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 환자복을 입은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의사에게서 보게될 줄은 몰랐던 헤게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소녀의 머리에서 치웠다.“뭐하시는 겁니까! 환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나름의 정색이 먹혀들었을까. 테오도르는 한마디를 더하려는 듯 입을
감옥의 풍경은 썩 아이에게 좋은 모습은 아니다. 뒤에서는 죽은 시신을 불태우느라 검은 연기가 타오르고 또 한 켠에서는 곧 태울 시신을 땅에 묻어두었다. 뒤로는 커다란 사원이자 오래된 유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남은 학자 몇몇이 그곳을 조사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감옥의 소장이나 간부들이 작은 아이의 출입을 막을 만큼 깐깐한 것은 아니라 우고는 자유롭게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오히려 작은 발로 이리저리 삭막한 풍경을 돌아다니는 모습에 간수들은 도리어 고향에 두고온 아이들을 떠올리고 지레 위로받으며 사기를 충전하고는 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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