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야, 적어도 내가 데려다줄게.”“그냥 보내 주세요.”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빗속에서 들려왔다.노레드가 검은 우산을 들고 다가왔다. 은희 곁에 서서 우산을 은희 쪽으로 기울이자 자신의 한쪽 어깨가 금세 빗물에 젖었다.“노레드 박사님.” 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노레드는 침착하게 남우를 바라봤다. “은희 씨가 가겠다고 했습니다.”남우는 손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빗물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은희를 바라보는 눈에는 미련이 가득했다.“그럼 내가 두 분 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남우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노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차는 바로 저쪽에 있습니다.”은희는 이미 노레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우를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노레드는 은희의 뒤를 따라갔고 두 사람은 곧 빗속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됐다.남우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빗물을 맞았다.효찬은 이미 수사 인력에게 이송되고 있었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가 비 내리는 밤을 가르며 울렸다.“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비서가 우산을 들고 달려와 조심스럽게 말했다.남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빗물이 시야를 가렸고 눈가의 물기까지 감춰 줬다.이번에도 잘못했다. 은희에게 미리 알려 줬다면 은희가 저런 위험에 빠질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두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남우는 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은희를 상처 입혔다.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예전에는 은희가 뱃속 아이 때문에 자신과 이혼하려 한다고 믿었다.그때는 은희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조금만 달랐다면 은희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한편, 노레드의 차 안은 따뜻한 바람으로 가득했다.은희는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아 여전히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다.옷도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 평소보다 훨씬 약해 보였다.노레드가 마른 수건을 건넸다. “하남우에게 사실을 말해도 됩니다.”은희는 수건을 받아 기계적으로 머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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