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全部章節:第 31 章 - 第 40 章

100 章節

제31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는 건 세준이 바라던 그림은 아니었다.세준은 그저 은희가 남우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접기 바랐을 뿐이다.그러면 어쩌면 은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은희는 분명 영은보다 남우를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경영권을 빼앗는 데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세준이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형, 형수님이 지금 이 꼴로 맑음을 해칠 수 있었겠어? 내 생각엔 맑음이 깨어나서 이야기해 보면 다 알게 될 것 같은데.”세준의 말을 들은 남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맑음이 깨어나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하지만 세준의 집에 누워 있는 은희를 보고 있자니 이유를 알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네 형수는 나랑 나가야 해. 안 그러면 할머니한테 설명할 방법이 없어. 네 형수가 사라진 걸 할머니가 아시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실 거야.”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렇게 성급하게 굴어? 적당히 둘러대면 되잖아. 출장 갔다고 하면 되지. 할머니가 매일 형수님을 보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남우는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은희와 세준이 단둘이 한집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남우는 성큼성큼 침대 앞으로 가더니 다짜고짜 은희를 안아 들었다.“놔! 하남우, 이 미친놈아!”은희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남우의 가슴을 연신 두드렸지만, 기력이 빠진 몸으로 하는 저항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남우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희를 안고 밖으로 향했다.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은희는 고개를 숙여 남우의 팔을 세게 깨물었다.통증이 밀려왔지만 남우는 팔을 풀지 않았다. 미간만 깊이 찌푸린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이 미친놈아! 이거 놓으라고!”은희는 팔을 깨문 채 흐릿한 발음으로 소리쳤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남우는 아픔을 참아 내며 은희를 차 뒷좌석에 내려놓듯 밀어 넣고 차갑게 경고했다.“얌전히 있어! 괜히 움직이지 마.”은희는 뒷좌석에 엎드린 채 헝클어진 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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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은희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남우를 바라봤다. 곧이어 몸을 살짝 틀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하지만 남우는 거칠게 은희의 턱을 붙잡아 다시 자신을 보게 했다.“고은희, 나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어!”은희는 다시 마주친 남우의 눈은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멋대로에, 막무가내였다.“그렇게까지 내가 한 짓이라고 확신해? 하나 물을게. 맑음이 깨어나서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당신은 나한테 사과할 거야?”남우는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은희에게 한 가닥 기대조차 남겨 주지 않는 말이었다.“그럴 일 없어. 증거가 뻔히 있는데 어디서 발뺌하려고 해?!”은희는 허탈하게 웃었다. 더는 대꾸할 힘도 없었지만 억지로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내기하자. 맑음이 깨어나서 내가 억울한 게 밝혀지면 나한테 반드시 사과해. 정말 내가 한 짓이라면 어떤 벌이든 받을게. 어때, 할 수 있겠어?”‘나와 내기를 하자고?’‘자기가 질 게 뻔하잖아!’“좋아, 해. 대신 네가 지면 벌도 받고, 내 번호 차단한 것도 풀어.”‘차단을 풀라고?’은희는 뜻밖의 요구에 잠깐 멈칫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군가 자기 뜻을 거스르는 걸 못 견디는 남우의 자존심 때문인 듯했다.그녀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좋아. 내가 이기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사과해. 네가 나를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았다고 인정하면서.”남우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보기엔 모든 일의 원흉이 은희였다. 이 내기는 이미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남우는 그 사과 한마디가 은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지 못했다.내기를 정한 뒤, 남우는 무언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앞으로 세준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좋은 놈 아니야.”은희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세준 도련님이 아니었으면 난 벌써 너한테 끌려와서 치료도 못 받고 죽었을지도 몰라.”남우의 표정이 사납게 굳었다. “네 눈엔 내가 그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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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남우의 뺨에 선명한 손자국이 났다. 표정은 한층 더 험악하게 굳었다.뭔가 더 말하려던 남우는 온몸을 떨고 있는 은희를 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사실은 몸이 얼마나 회복됐는지 확인하려던 것뿐이라고 말하려 했다.은희가 보기에 자신은 장소도 상황도 가리지 않고 여자에게 달려드는 인간으로 보였나 보다.“다른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마.”남우는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상처가 얼마나 나았는지 보려던 것뿐이야. 네가 죽어 버리면 내 돈은 누가 갚는데?”그 말을 들은 은희는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추스르는 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은희는 침대 옆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우 앞으로 던졌다.“여기 1억 원 들어 있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고.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남우는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내려다봤다. 은희가 이렇게 바로 돈을 내놓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너무도 망설임 없이 돈을 내미는 모습에 남우는 차갑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카드를 주웠다.“이걸로는 한참 부족해.”은희는 지친 목소리로 힘없이 웃었다. “알아. 남은 돈도 약속한 날짜까지 갚을 거야. 나 지금 정말 너무 힘들어. 더는 너랑 아무것도 얽히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나가 줘. 나 혼자 있고 싶어.”남우는 눈앞의 은희를 가만히 바라봤다. 예전의 은희가 아닌 것 같았다.그 눈에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한 의지나 사랑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남우는 손안의 카드를 꽉 쥐고 비웃듯 말했다. “말한 대로만 해.”정체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남우는 더 머물 수 없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은희가 자신의 걱정 따위 필요 없다는데, 굳이 계속 챙겨 줄 이유도 없었다....청월힐스.남우는 효찬의 집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도 얼굴에는 화가 가시지 않은 채였다.“가서 은희 상태 좀 봐 줘.”차를 우리던 효찬의 손이 멈췄다.효찬이 보기엔 이제 은희가 맑음을 해친 사람이라는 사실이 거의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남우가 은희의 상처를 걱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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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효찬이 떠난 뒤 남우는 혼자 효찬의 집에 남았다.한동안 가만히 서 있던 남우는 효찬의 서재로 들어갔다. 서랍을 열어 예전에 찢어졌던 악보를 꺼냈다.악보는 정성스럽게 다시 붙여져 있었다. 찢어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곡 전체를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남우는 손끝으로 갈라진 자국을 천천히 쓸었다. 미간이 깊게 접혔다.악보를 무릎 위에 펼쳐 둔 채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남우는 조심스럽게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답답한 숨을 깊게 내쉰 뒤 효찬의 집을 나섰다.문을 나서자마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대표님, 따님이 깨어났습니다.]...며칠 전.남우와 효찬은 마주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의 찻잔에서는 아직 김이 오르고 있었다.“곡 하나만 다시 의뢰해 줘. 네 이름으로. 주제는 네가 적당히 정하고.”효찬은 찻잔을 내려놓고 남우를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체 왜 이래? 지난번 맑음이 축하 파티 때도 전에 의뢰했던 곡은 안 쓰고 비싼 돈 주고 다른 사람한테 새로 받았잖아.”“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그런데 또 나한테 곡을 의뢰해 달라고?”남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효찬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묻지 말고 맡아 줘.”효찬도 더 물어봐야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효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해 줄게. 대신 기한은 알려 줘야지. 언제까지 필요한데?”“한 달 안으로.”효찬은 더 묻지 않았다. ‘혹시 은희 씨 좋아하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삼켰다....그 무렵, 효찬은 보온통을 들고 남우의 다른 집에 도착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문손잡이를 돌려 보니 잠겨 있지 않았다. 효찬은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운 은희가 보였다. 뺨은 열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효찬은 놀라 곧장 침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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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은희 씨, 사실 남우가...”효찬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발신자는 남우였다.효찬은 은희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낸 뒤 전화를 받았다. “어, 남우야.”[맑음이 깨어났어. 은희 데리고 빨리 병원으로 와.]효찬은 잠깐 멈칫하며 기운 없이 앉아 있는 은희를 바라봤다.“은희 씨 지금 열이 나고 몸이 너무 안 좋아. 당장은 병원까지 가기 힘들 것 같은데...”남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럼 네가 잘 돌봐 줘. 좀 나아지면 그때 와.]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효찬은 한숨을 내쉬며 은희를 바라봤다.“남우한테 전화가 왔어요. 맑음이 깨어났답니다. 그래도 지금은 몸부터 회복하세요. 조금 나아지시면 저랑 같이 병원에 가죠.”맑음이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서야 은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병원에 꼭 가야 해요. 제 몸은 제가 알아요. 괜찮습니다.”‘하남우가 나를 못 오게 한다고?’‘찔리는 게 있으니까 내기에서 진 걸 순순히 인정하고 사과하기 싫은 거겠지.’은희는 이번에야말로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남우가 자신의 몸을 걱정해서 오지 말라고 했을 거라는 가능성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그 정도 분별력은 은희에게도 있었다.효찬은 고집을 꺾지 않는 은희를 보며 난감해졌다. 지금처럼 몸이 약해진 상태로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아직 열이 있잖아요. 병원에 갔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떡합니까? 몸이 조금 나은 뒤에 가도 늦지 않아요.”하지만 은희는 고개를 저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고 곧장 나가려 했다.“더 말리지 마세요. 효찬 씨가 안 데려다주시면 저 혼자라도 갈 거예요.”효찬은 은희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결국 한숨을 쉬었다.“알겠습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제가 부축할게요.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꼭 말씀하셔야 합니다.”은희는 효찬의 부축을 받아 방을 나와 차에 올랐다....병원.병실에 들어서자 남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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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은희는 맑음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맑음아, 잘 생각해 봐. 그때 누가 널 데려갔어?”맑음은 고개를 갸웃하며 작은 눈썹을 잔뜩 모았다. 한동안 기억을 더듬던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 처음에 이모가 나랑 숨바꼭질한다고 해서 내가 숨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모가 안 왔어. 그러다가 누가 나를 잡아갔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눈에 금세 눈물을 가득 담고 억울하다는 듯 울부짖었다.“은희 씨, 어떻게 우리 맑음이한테 이럴 수 있어요? 맑음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잖아요. 저한테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저한테 풀지 그랬어요...”영은은 손수건을 들어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가련하게 우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뭔가 잘못해서 은희 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봐요. 그러니까 저한테 화난 건 그만 풀고, 맑음이한테는 그러지 마세요...”‘정말 대단한 연기네.’은희는 차갑게 웃은 뒤 맑음에게는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맑음아, 이모가 하나만 더 물을게. 이모가 너랑 숨바꼭질할 거라고 누가 말해 줬어?”맑음은 촉촉한 눈으로 영은을 올려다보더니 작은 손을 들어 영은을 가리켰다.“엄마가... 엄마가 은희 이모랑 숨바꼭질할 거니까 내가 먼저 숨으라고 했어.”조금 전까지 억울한 표정을 짓던 영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가련한 척하던 모습도 완전히 사라졌다.평소에는 말 잘 듣던 맑음이 하필 이런 때 자신을 ‘배신하고’ 은희 편에 설 줄은 생각도 못 했다.“맑음아, 네가 잘못 기억한 거야. 전에 병원에서 은희 이모가 직접 말했잖아.”영은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고 손끝도 흔들리고 있었다.맑음은 어른들이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가득 머금었다. 작은 몸까지 덜덜 떨렸다.아이는 몹시 겁냈다.“그만해. 맑음이는 머리를 다쳐서 몸도 마음도 아직 많이 약해. 쉬어야 하니까 더 묻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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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은희는 차가운 눈으로 영은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오간 말을 떠올리자 의심은 더 짙어졌다.이번 일의 뒤에 영은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 은희에게 더 중요한 건 남우가 내기에서 진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었다.“이제 사실은 분명해졌어. 네가 내기에서 졌으니까 약속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은희야, 내가...”남우의 목소리가 조금 잠겼다. “내가 잘못했어. 몇 가지 단편적인 증거만 보고 네가 맑음이를 해쳤다고 단정했고, 심한 말까지 했어. 미안해.”남우가 사과하는 말을 들은 영은의 표정이 더 굳었다.은희는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감정을 억누른 은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네가 한 말, 쭉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말을 마친 은희는 몸을 돌려 병실 밖으로 나갔다.남우는 본능적으로 뒤따라가려 했다. 그때 옆에서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고개를 돌려 보니 영은이 눈을 감은 채 창백한 안색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남우는 몸을 숙여 영은을 부축하며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영은아! 소영은! 왜 그래?”영은은 힘겹게 눈을 조금 뜨고 남우를 바라봤다.이내 다시 눈을 감은 채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남우야... 나 너무 힘들어...”...은희는 병원 밖 한적한 구석까지 걸어갔다.점점 느려지던 걸음이 멈추고, 은희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아 쪼그려 앉았다.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자 참아 왔던 눈물이 쏟아졌다.그 한마디 사과를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제는 기대라는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잊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렸다.얼마 뒤, 익숙한 구두가 은희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은희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남우를 바라봤다.“왜 나왔어? 소영은 돌보러 가지 않고?”은희가 비꼬듯 웃었다.남우는 은희 곁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은희야, 너 아직 열 있잖아. 이러다 진짜 몸 망가져. 들어가서 수액 맞자.”은희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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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은희야, 내가 전에 너에게 잘못한 게 있다는 건 알아. 그래도 보미는 내 친딸이야. 아빠가 딸을 볼 권리까지 네가 막을 수는 없잖아.”남우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평소보다 한결 낮아져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은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눈을 번쩍 떴다.“이제 와서 보미가 네 딸이라고?”‘정말 우습다.’보미가 아팠을 때 은희는 남우에게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다.하지만 남우는 은희의 부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첫사랑의 딸 생일을 챙기고 있었다.맑음에게 약을 덜 먹고 주사를 덜 맞게 해 주겠다는 이유로 자신의 간 일부를 내주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보미에게 필요한 조혈모세포는 주려 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보미가 자기 딸이라고 말하는 남우를 보니, 은희는 그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원통하고 분해서 여전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나가!”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남우와는 한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남우는 혀끝으로 볼 안쪽을 누르며 분노를 삼켰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난 포기 안 해.”남우가 낮게 말했다. “네가 말해 줄 때까지 계속 기다릴 거야.”말을 마친 남우는 병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병실 안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은희가 띄엄띄엄 삼키는 울음만 들렸다.‘계속 기다려도 그런 날은 없어, 하남우.’‘우리 딸은 이미 죽었으니까...’...청월힐스.영은은 소파에 앉아 다음 계획을 궁리하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집어 들었다. 화면에 ‘하세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입꼬리가 저절로 내려갔다.잠시 망설이던 영은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여보세요?”[소영은 씨, 우리 사이에 한 약속 잊으면 안 되죠.]전화기 너머로 세준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업 기획안 말이에요. 이제 약속을 지키셔야죠. 남우 형 사무실에 있는 자료를 가져다주세요.]영은이 차갑게 웃었다. “전무님께서 저한테 약속을 운운할 자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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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하하, 소영은 씨. 말로만 그러지 마세요.]세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기획안을 가져다주시면 예전 일은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이번 일은 소영은 씨한테도 이득인데 굳이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요?]영은은 눈썹을 찌푸렸다. 도와주기 싫은 건 아니었다.다만... 자료를 훔친 일 때문에 남우가 회사 경영권을 완전히 잃게 된다면, 자신도 더는 누릴 게 없을 것이다.“자료는 가져다드릴 수 있어요. 대신 남우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남우가 돈과 권력을 잃으면 저도 손해잖아요.”[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손해 보게 만들 뿐이지 완전히 무너지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세준이 웃으며 덧붙였다. [일이 잘되면 우리 둘 다 얻는 게 있을 테니까요.]영은은 오래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알았어요. 대신 이 일은 고은희가 한 것처럼 꾸밀 거예요.”[상관없어요. 기획안만 가져오시면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든 소영은 씨 마음대로 하세요.]영은은 이번만큼은 세준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미리 경고부터 했다.“전무님, 이번에는 고은희가 불쌍하다고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이렇게 하면 전무님이 손해 보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또 계획을 망치면 저도 더는 전무님 편에 서지 않을 거예요.”그 정도 협박은 세준에게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았다.[걱정 마세요. 나도 은희 씨가 다시 오해받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요. 그때는 나한테 기대는 수밖에 없겠죠. 그러다 보면 나를 사랑하게 될 테고요.]“...”통화는 영은이 먼저 끊었다....병원.세준은 스스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미소를 입가에 걸고 화려하게 핀 장미꽃 한 다발을 든 채 은희가 수액을 맞고 있는 병실로 들어왔다.“역시 형수님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다 밝혀졌네요. 그동안 많이 억울했죠? 전 처음부터 형수님을 믿었어요.”세준은 진심인 척 말하며 장미 다발을 은희 앞으로 내밀었다.눈을 감고 쉬고 있던 은희는 눈꺼풀조차 들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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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은희와 남우가 하씨 집안 본가에 도착하자 민영순이 곧바로 두 사람을 맞으러 나왔다.민영순은 은희의 창백하고 병색이 짙은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우리 은희가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걱정이 가득한 민영순은 곧장 남우를 돌아봤다.“이 못난 녀석아, 대체 은희를 어떻게 챙긴 거야? 애가 왜 이렇게 병이 났어?”남우는 고개를 숙였다. 민영순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우는 은희와 관련된 소식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철저히 막아 두었고, 지금까지 민영순에게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다.남우가 입을 다물고 있자 민영순은 더 크게 화냈다.“네가 감춘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아? 분명 또 은희한테 잘못한 게 있을 테지. 얼른 제대로 사과해.”민영순은 매섭게 남우를 나무랐다.남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은희 앞으로 다가갔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네가 억울한 일 겪게 해서 미안해.”은희는 가볍게 대답하며 억지로 웃었다.“할머니, 이번 일은 남우 씨 때문이 아니에요. 저 좀 피곤해서 먼저 방에 들어가 잘게요.”말을 마친 은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에 등을 기대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남우는 은희의 방문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자?”대답이 없자 문손잡이를 돌려 봤지만 안에서 잠겨 있었다.남우는 미간을 좁히고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남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우리 얘기 좀 하자.”문 반대편에 기대선 은희는 남우의 노크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가슴속 슬픔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잠 좀 자게 내버려둬!”목소리 끝이 떨렸다. 말을 마친 은희는 문을 등진 채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팔로 무릎을 세게 끌어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그대로 한참 앉아있었다.남우는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남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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