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손에 들린 가죽 서류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것은 단순한 서류들이 아니었다. 그의 지난 세월이 낱낱이 기록된 기록물이었고, 그의 ‘범죄 기록’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정리된 증거 자료집이었다.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우진은 언제나 자신이 감정을 철저하게 분리해 관리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믿어 왔다. 진심으로, 자신은 나와 지아 사이의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의 눈에 나는 전통적이고 덕망 있는 아내였고, 자신의 삶을 떠받치는 기반이자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었다그는 내가 자신과 아이들을 필요로 한다고 믿었다. 마치 행성이 태양 없이 존재할 수 없듯, 내가 그와 가족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하지만 지아는 달랐다.그녀는 밋밋한 일상에 뿌려진 향신료 같은 존재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회색빛 기업 전쟁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잠시 즐길 수 있는 화려한 색채였고, 권태로운 삶을 자극해 주는 오락거리였다.그는 순진할 정도로 오만했다.통장으로 돈만 꼬박꼬박 보내고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 내게 ‘심우진 대표의 부인’이라는 호칭만 안겨주면, 내가 영원히 그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침묵했던 모든 순간들.하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 삼켜 버렸던 모든 순간들.아이들이 나를 조롱할 때마다 내 눈에 스쳐 지나갔던 외로운 순간들.그리고 그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지아의 편을 들었을 때, 내가 아무 말없이 등을 돌려 걸어 나갔던 모든 순간들.그것들은 타협의 순간이 아닌, 그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던 순간들이었을 뿐이었다.나는 굴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빼내고 있었던 것이다.그를 향한 사랑을 한 겹씩 벗겨 내고, 또 한 겹씩 떼어 내며, 마지막 남은 조각마저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조금씩 걷어 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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