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꽃처럼 찬란한 날들: Bab 11 - Bab 20

23 Bab

제11화

강예원이 사라진 지 꼬박 한 달이 지나서야, 박지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처음에 그는 강예원이 그저 자신과 밀당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다. 시답잖은 수작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끝내 어떤 방법으로도 강예원과 연락이 닿지 않자, 그제야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강예원의 예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강예원을 최근에 보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었다.박지호는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고는 서재로 향했다.컴퓨터를 켜고, 강예원의 은행 계좌 내역을 조회했다.화면에는 박지호가 줬던 블랙카드의 사용 내역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강예원이 떠날 때 챙겨간 것은 오로지 자신이 모아 둔 저축뿐, 박씨 가문의 돈에는 단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흥, 겁도 없이...”박지호가 냉소를 흘리며 컴퓨터를 껐다.‘강예원, 결국 모두가 다시 너를 찾아 나서게 할 생각인 건가?’‘이런 유치한 수작은 이제 안 통해.’...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박유환과 박소연이 유치원 일로 재잘거리는 동안, 심은정은 상냥하게 아이들 그릇에 반찬을 집어 주며, 가끔 고개를 들어 박지호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이 광경은 겉보기엔 더없이 화목하고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도 박지호는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가 빠진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다음 주에 유치원에서 가족 운동회가 열리는데, 아빠랑 은정 이모가 같이 와줄 수 있어요?”박소연이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물론이지.”박지호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나서 잠시 머뭇거렸다.“예전에는 누가 너희랑 같이 참가했지? 엄마였나?”두 아이의 얼굴에 동시에 역겨운 표정이 스쳤다.“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엄마 오는 거 싫어요.”박유환이 입을 삐죽 내밀었고, 작은 얼굴에는 냉담한 표정이 역력했다.“맨날 집에만 틀어박혀 빨래하고 밥만 했잖아요. 밖에도 잘 안 나가고, 꾸밀 줄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오는 게 별로였어요.”“맞아요!”박소연도 맞장구쳤다.“은정 이모는 항상 예쁘게 하고 오니까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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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박지호는 주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차가운 대리석 조리대에 비친 박지호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황해선은 두 손을 모은 채 곁에 서서 감히 큰 숨조차 쉬지 못했다.“그러니까... 6년 동안 강예원은 이 모든 일을 자기가 했으면서도 한 번도 내게 말한 적이 없다는 건가?”박지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황해선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께서는 저희가 손대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대표님 위가 약하셔서 밖에서 파는 해장국은 자극적이라고... 꼭 직접 불 조절을 하셔야 한다고 하셨거든요.”박지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조리대를 가볍게 두드렸다.꼬박 6년 동안, 접대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아무리 늦어도 식탁 위에는 반드시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그것이 강예원이 가족을 위해 밤늦게 깨어 지켜온 결과라는 것을, 박지호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대표님, 제가 한번 해 볼까요?”김석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됐어.”박지호가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향했다.“모두 가서 쉬어.”안방 앞을 지나던 박지호는 방 안에서 심은정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것을 들었다.잠결에 심은정이 몸을 뒤척이자, 실크 이불이 스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박지호는 문 앞에 서서 어쩐 일인지 갑자기 강예원을 떠올렸다.결혼 초, 박지호는 이른바 정략결혼 상대라는 사람을 도무지 보고 싶지 않아서 번번이 무슨 핑계를 대며 밖으로 빠져나갔고, 아예 외박하는 일이 많았다.하지만 언제 집으로 돌아오든, 강예원은 거실에서 조용히 박지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예원은 언제나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깼다.때때로 박지호가 한밤중에 돌아오면 강예원은 소파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곤 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볼륨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줄어 있었다.그때는 강예원을 도무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그런 모습을 보아도 시선 한 번 더 주지 않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하지만 강예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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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날 이후, 박지호는 출장을 핑계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박지호가 자주 집을 비우자, 심은정은 더욱 자유로워져서 하루 종일 피부 관리실이 아니면 미용실에 있었다.박유환과 박소연의 등하원을 챙겨 줄 사람도 없어졌다.게다가 그동안 심은정이 아이들의 환심을 사겠다며 몰래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아 준 탓에, 두 아이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결국 아이들은 온종일 유치원에 가지 않고 밖에서 놀기만 했다.심은정은 그 사실을 알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사모님, 도련님과 아가씨께서 요즘 계속 무단결석하고 계십니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집으로 전화까지 했어요.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아이들을 좀 더 관리해 주시길 바란다고요.][애들이 저희 말은 듣지도 않고요. 집에 계실 때 한 번만 아이들 좀 타일러 주시면 안 될까요?]“알았어, 그 일은 이제 내가 알았으니까 알아서 처리할게.”심은정은 피부 관리실 침대에 느긋하게 누워 방금 곱게 손질한 손톱을 감상하며 말했다.“이 일은 박 대표한테까지 알릴 필요는 없어. 일도 바쁜 사람인데 괜히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거든.”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친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설마 진짜 그 애새끼들 뒷바라지까지 할 셈이야? 재벌 남자랑 결혼하는 건 좋은데 애까지 둘이나 딸려 있으면 귀찮잖아.”“누가 신경 쓴대?”심은정은 느른하게 하품하며 눈을 번뜩였다.“오히려 잘됐어. 저것들 완전히 망가뜨려서 나중에 내가 낳은 자식이랑 유산 싸움 못 하게 만들어야지.”그러면서 심은정은 박유환과 박소연의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선생님, 저희 아이들이 당분간 집안 사정 때문에 유치원에 못 갈 것 같아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집 사정 아시잖아요. 애들이 꼭 유치원에 매달릴 필요는 없거든요.”“그리고 아이들 아빠는 요즘 무척 바쁘니까 무슨 일이 있으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전화를 끊고 나서 심은정은 완전히 안심했고, 이내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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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날 이후, 심은정의 눈치만 보던 가사도우미들은 점점 두 아이를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사람도 없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 세 끼 식사조차 제대로 챙겨 주지 않았다.아이들은 그저 심은정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달랠 뿐이었다.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J시를 달구고, 박씨 가문 별장의 에어컨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박유환과 박소연은 놀이방 카펫 위에 엎드려 레고 블록을 맞추면서, 화장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심은정을 힐끗 바라봤다.“이모...”박소연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면 안 돼요? 지난번에 된다고 약속했잖아요...”지난주, 박지호가 심은정에게 새 보석을 사 주자, 기분이 좋아진 심은정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 심은정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짜증스럽게 말했다.“지금 바쁜 거 안 보여?”“하지만...”박유환이 용기를 내 말했다.“지난주에 데려가 준다고 했는데...”“시끄러워!”심은정이 갑자기 몸을 확 돌렸다.심은정의 입가에는 립스틱이 번져 섬찟한 붉은 자국이 그어져 있었다.“맨날 먹는 타령이야! 너희들 살찐 거 안 보여?”두 아이는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강예원이 떠난 이후, 아이들은 심은정에게서 그 어떤 따뜻함도 다시는 느낄 수 없었다.예전의 그 상냥하고 다정하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끝없는 짜증과 날카로운 호통뿐이었다.“당장 방으로 꺼져!”심은정이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너희만 보면 짜증 나.”박소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겁이 나서 감히 울음을 터뜨리지 못했다.지난번에 울었을 때, 심은정은 박소연의 허벅지를 꼬집었고, 박지호에게 일러바치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전부 버리겠다고 협박했다.그날은 드물게도 박지호가 집에 들어오겠다고 연락한 날이었다.저녁 무렵 박지호가 집에 도착했을 때, 두 아이는 이미 잠든 뒤였다.심은정은 실크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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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박지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집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도련님께서 열이 나십니다. 지금 39.5도예요. 혹시라도 큰일이 날까 봐 걱정돼서 연락드렸습니다.]박지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장 박사는 불렀어?”[불렀습니다만, 사모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파티에 나가셨습니다.]“뭐라고?”박지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목소리에도 놀라움이 묻어났다.“내가 지금 당장 돌아갈 테니, 먼저 장 박사부터 불러.”박지호가 빗속을 뚫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예상대로 박유환은 얼굴이 열에 새빨갛게 달아올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장규정 박사가 링거를 놓고 있었고, 표정은 무척 심각했다.“박사님, 왜 이렇게 심각한 거예요?”“대표님, 아드님의 고열이 벌써 4시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폐렴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의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원래 체질도 약한 아이인데, 진작 치료해야 했습니다.”박기호의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문득 기억이 떠올랐다.강예원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가장 먼저 눈치채곤 했다.체온계도 쓰지 않고 열이 얼마나 나는지 정확하게 알아맞힐 정도였다.“은정이는? 왜 아직 안 보이지?”집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는 그저 감기 기운일 뿐이라며, 이수철 회장님 사모님이신 장자숙 여사의 생신연에 가셨습니다.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라고 하셔서...”박지호는 휴대폰을 꺼내 심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연결됐다.수화기 너머로는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흘러나왔다.[지호?]약간 취한 듯한 심은정의 목소리는 한없이 들떠 있었다.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유환이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갔어. 지금 어디야?”[그래? 바로 갈게!]박지호가 처음으로 심은정에게 이렇게 퉁명스럽게 굴자, 심은정의 말투도 당황하고 억울한 듯 변했다.[정말 미안해. 그냥 감기인 줄 알았어. 지금 바로 돌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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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틀 뒤, 박유환은 완전히 회복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박씨 가문 저택의 거실에는 심은정의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심은정은 하이힐을 신은 채 박지호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정성스럽게 다듬은 손톱이 박지호의 살갗을 파고들 듯했다.“우리가 이렇게 끝나면 안 되잖아!”심은정의 목소리는 울먹였고, 눈에는 끝없는 후회가 가득했다.“우리 알고 지낸 세월이 20년이야. 겨우 이런 일 때문에...”“겨우 이런 일?”박지호가 팔을 확 뿌리치며,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내 아이들을 학대한 게 겨우 이런 일이야?”박지호는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화면 속에는 심은정이 박소연의 허벅지를 악독하게 꼬집고 있었고, 박소연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히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리고 이것도.”박지호는 다른 영상으로 넘겼다.그건 박소연이 아이들의 우유에 수면제를 타는 장면이었다.“아이들을 일찍 재워 놓고 파티에 가려고 약까지 먹였더군.”심은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날 감시한 거야? 진작부터 날 못 믿었던 거고?”“감시한 건... 네가 아니라 내 집이야.”박지호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다.바로 그때, 가사도우미 한 명이 갑자기 뛰쳐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그 가사도우미는 떨리는 손으로 심은정을 가리키며, 눈에 담긴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심은정 씨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사모님과 아이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어요!”“거짓말이야!”심은정이 날카롭게 소리쳤다.“아닙니다!”가사도우미는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사모님이 안 계실 때마다 아이들에게 과자랑 장난감을 사주면서 사모님에 대해 험담했습니다.”“제가 직접 심은정 씨가 도련님께 사모님이 사탕을 못 먹게 하는 건 도련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그리고 사모님을 쫓아내야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도련님과 아가씨를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도련님이 직접 사모님을 계단에서 밀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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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고용인들이 재빨리 움직여 심은정의 캐리어를 가져다가 하나씩 대문 밖으로 내던졌다.심은정의 명품 백, 비싼 주얼리, 고급 화장품이 바닥에 흩어져 마치 쓰레기 더미처럼 보였다.“너 오늘 이러는 거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심은정은 대문 앞에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강예원이 다시 너를 받아줄 것 같아? 그 여자는 진작 너한테 질렸다고!”대문이 심은정 앞에서 굳게 닫히며, 모든 욕설을 차단했다.거실에는 숨 막힐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박지호는 천천히 몸을 낮춰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이들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눈물이 박지호의 정장 위로 뚝뚝 떨어졌다.“아빠, 엄마가 정말 우리 버린 거예요?”박소연이 훌쩍이며 물었다. 그리고 목이 메었다.강예원이 집을 떠나던 날의 차가운 뒷모습과, 자신이 직접 서명했던 이혼 서류가 떠오르며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아려왔다.“아니야.”박지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말은 아이들보다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에 더 가까웠다.“엄마는 너희를 정말 많이 사랑했잖아. 절대 너희를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아마 잠시 바람 쐬러 간 거겠지.”“그럼 왜 안 돌아와요?”박유환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물었다. 잔뜩 겁에 질린 작은 얼굴이 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 같았다.“우리가 엄마를 계단에서 밀어서 그런 거예요?”박지호는 웃을 수 없었다.그저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며 힘겹게 말했다.“아빠가 엄마를 꼭 다시 찾아올게.”가사도우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간 후에야, 박지호는 비로소 소파에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박지호는 휴대폰을 꺼내 추상우에게 전화를 걸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예원의 행방을 당장 알아봐.”전화를 끊은 뒤, 박지호의 시선은 벽난로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 머물렀다.3년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강예원은 맨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그 미소는 너무 억지스러워 보였다.하지만 당시의 박지호는 강예원을 보지도 않았고, 강예원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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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박지호는 서재의 창가에 서서 붉은색 나무 책상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비서 추상우가 방금 가져온 사진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었고, 사진 한장 한장마다 칼날이 되어 박지호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확실해?”박지호의 목소리는 낮고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확실합니다.”추상우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사모님이 Y시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영업은 그저 그런 편이고요. 이건 지난주에 찍은 사진입니다.”사진 속 강예원은 ‘예원 서점’이라는 이름의 서점 앞에 서 있었다.플라타너스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강예원의 몸 위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강예원은 수수한 리넨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떠날 때보다 조금 짧아져 있었다.사진 속 강예원은 한 5살쯤 된 여자아이에게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그 눈빛에는 박지호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부드러움이 스며 있었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예원의 곁에 선 남자였다.키가 크고 날씬하며, 금테 안경 너머의 시선이 부드럽게 강예원에게 머물러 있었다.남자는 그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고, 세 사람이 함께 선 모습은 숨 막힐 정도로 조화롭고 아름다웠다.“예원이 곁에 있는 이 남자는 누구야?”박지호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세게 문지르며, 남자의 얼굴에 흐릿한 자국을 남겼다.“그분은 사모님의 대학교 선배라고 합니다. 이름은 고시우이고, 곁에 있는 여자아이는 돌아가신 누나의 아이예요. 둘은 대학 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Y시에서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하지만 사모님께서 그 아이를 꽤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고시우 씨도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박지호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처음 느끼는 씁쓸한 감정이 들끓었다.‘어떻게 감히... 어떻게 나를 보던 그 눈빛으로 이제는 다른 남자를 볼 수 있지?’그 다정함은 분명 자신만의 것이었는데.그때, 서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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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박지호의 전용기는 그날 바로 Y시의 공항에 착륙했다.눈부시게 뜨거운 햇살 아래, 박지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경호원에게 안겨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아빠, 오늘 정말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박소연이 작은 얼굴을 들어 물었다.눈빛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그럼.”박지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너희를 보면 엄마가 분명 기뻐하실 거야.”그때 추상우가 급히 다가와 서류 한 부를 건넸다.“대표님, 사모님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지금 동쪽에 있는 도예 공방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과 함께 있습니다.”서류에는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강예원이 어린 여자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묻은 진흙을 다정하게 닦아주고 있었다.그 곁에는 안경을 쓴 키 큰 남자가 서 있었고, 미소를 띤 채 강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세 사람 위로 쏟아졌고, 그 장면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화목해서 마치 한 가족처럼 보였다.박지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며 사진 가장자리를 구겨 넣었다.그 남자가 강예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박지호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그건 자신이 한 번도 강예원에게 주지 못했던 다정함이었다.“차 준비해.”박지호가 차갑게 말했다.“지금 바로 가자.”가는 내내 박유환과 박소연은 유난히 조용했다.두 아이는 차창에 기대어 낯선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고, 작은 손은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박지호는 아이들이 오늘 일부러 강예원이 작년에 사준 옷을 입고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옷은 이미 많이 작아져 있었다.“아빠.”박유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다.“엄마가 우리를 용서해 줄까요?”박지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CCTV 영상 속에서 강예원이 계단에서 밀려 넘어질 때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강예원이 떠나던 뒷모습을 떠올렸다.“용서해 주실 거야.”결국 박지호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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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강예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나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린 것도 너희였고, 내가 망고를 먹여서 너희를 아프게 했다고 거짓말한 것도 너희였지?”“엄마는 싫고 심은정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도 너희 입으로 직접 한 말이잖아.”“나는 내가 아주 훌륭한 엄마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래도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어. 너희를 사랑하려고, 잘 돌보려고 정말 노력했어.”“그런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어.”두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부끄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박유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애원했다.“그때는 우리가 너무 어렸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아요. 제발 우리 용서해 주면 안 돼요?”강예원이 대답할 틈도 없이, 민희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언니...” 민희는 작은 손으로 강예원의 옷자락을 꼭 붙잡으며, 커다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가는 거예요?”고시우가 몸을 굽혀 민희를 안아 올리며, 조용히 달랬다.“무서워하지 마. 언니는 널 버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언니가 어디를 가든 그건 언니가 선택하는 거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해.”“설령 여기 있지 않더라도 언니는 계속 널 만나러 올 거야.”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지호의 가슴에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저 남자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아내를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거지?’‘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안고 내 아내 곁에 서서, 마치 그 셋이 한 가족인 양 행동하는 거지?’박지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집 그만 부려.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해.”“엄마로서 네 친자식을 키우지 않고, 남의 집 애나 키우겠다는 거야?”“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하다고?”강예원이 몸을 일으키며, 눈에는 박지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호하고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아이들이 나를 계단에서 밀었을 때는?”“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말했을 때는?”“심은정을 엄마라고 불렀을 때는?”질문 하나하나가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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