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강예원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27살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고, 남편은 세계 최고의 재벌이자 글로벌 그룹의 대표, 박지호였다. 수년째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 최정상을 지켜 온 남자. 잡지가 선정한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 1위’이자, 영국 왕실마저 공주와의 혼인을 바랐다는 완벽한 남자. 모두가 강예원을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여자라 말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온 강예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온 협의이혼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 “나 이혼하려고요. 그러니까... 박지호는 심은정 씨 가져요. 두 아이도... 심은정 씨에게 줄게요.”
더 보기강예원은 테라스에 서서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민희를 바라보았다.민희는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요를 흥얼거리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정말 행복해 보였다.“무슨 생각해?”따뜻한 두 팔이 뒤에서 강예원을 감쌌다. 고시우의 턱이 강예원의 어깨에 살짝 닿았다.고시우에게서는 아직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났다. 병원에서 막 퇴근한 모양이었다.“생각하고 있었어요.”강예원은 뒤돌아보기도 전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민희 데리고 그림책 사러 왔던 모습이요.”고시우가 낮게 웃었다.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다정함으로 가득했다.“그때 나는 이 후배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예쁠까 하고 생각했지.”“정말 농담도 능청스럽게 잘하네요.”강예원이 고시우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의 웃음소리에 민희가 고개를 들었다.민희는 물뿌리개를 내던지고 2층으로 달려 올라왔다.“외삼촌, 언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고시우가 몸을 굽혀 민희를 안아 올리며, 흙 묻은 볼에 입을 맞추었다.“언니한테 우리랑 평생 함께 살아 줄 거냐고 물어보고 있었어.”민희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였다. 작은 손이 강예원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정말요? 우리랑 계속 같이 사는 거예요?”강예원의 마음은 따뜻한 물에 담근 듯 몽글몽글 부드러워졌다.강예원은 민희를 안아 올리며, 두 사람의 기대 가득한 시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민희가 원한다면.”“좋아요! 엄청 좋아요!”민희가 환호하며 강예원의 목을 껴안고, 다시 고시우를 바라보았다.“외삼촌, 빨리 언니한테 반지 끼워 줘요! TV에서 그런 것처럼!”고시우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고시우는 주머니에서 빨간 벨벳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예원아.”고시우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나랑 결혼...”“네, 우리 결혼해요.”고시우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예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최근 Y시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그래서 ‘예원 서점’의 고객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하지만 며칠째 계속해서 서점 앞에 마이바흐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끈질기게 그 자리를 지키며,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언니, 제가 그린 그림 좀 보세요!”민희가 크레파스 그림을 들고 깡충깡충 뛰어오다가, 강예원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멈췄다.민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또 속상해요?”강예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민희의 그림을 받아 들었다.“정말 잘 그렸네. 이거 토끼야?”“네!”민희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작은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저 나쁜 아저씨와 친구들이 또 와서 언니가 슬픈 거죠?”그때 고시우가 책장 뒤에서 걸어 나왔다.손에는 따뜻한 허브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고시우는 아무 말 없이 창문 앞을 가로막아, 거리 건너편의 시선을 차단했다.“경찰에 신고할까?”고시우가 조용히 물으며, 일주일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급 차량을 바라보았다.쏟아지는 빗줄기 너머로, 두 아이가 차창에 얼굴을 붙인 채 서점 쪽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강예원은 고개를 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언젠간 포기하겠죠.”빗줄기가 더 거세지더니, 차 문이 갑자기 열렸다.박소연이 자기 몸보다 큰 검은 우산을 들고 비틀거리며 서점으로 달려왔다.빗물이 치맛자락과 구두를 적셨지만, 박소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굳게 닫힌 가게 문을 억지로 두드렸다.“엄마! 제발 문 열어 주세요!”어린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안에 있는 거 알아요!”“우리 봤잖아요! 왜 나랑 오빠를 모르는 척해요? 정말 우리 버린 거예요?”강예원은 커튼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고시우가 말없이 강예원 곁으로 다가왔다.그리고 따뜻한 손으로 강예원의 떨리는 손을 덮었다.“오늘이 마지막이에요.”강예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선은 점점 확고해졌다.“이번엔 정말 끝내야겠어요.”그렇게 말하며, 강예원은 휴대폰을 꺼내
도예 공방 안은 마침내 평온을 되찾았다.강예원은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쥔 흙을 주무르고 있었다.너무 힘을 준 탓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옆에 앉은 민희는 말없이 강예원을 바라보다가, 몇 번이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언니...”결국 참지 못한 민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많이 속상해요? 표정이 너무 안 좋아요.”강예원은 손을 멈추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민희가 만들던 그릇 계속 만들자.”그때 고시우가 말없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강예원 곁에 내려놓았다.“잠깐 쉬는 게 어때?”강예원은 고개를 저었다.시선은 자신이 반쯤 빚은 도자기 그릇에 머물렀다.삐뚤빼뚤한 모양이 꼭 지금 강예원의 마음 같았다.조금 전, 눈을 붉힌 채 울던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조여왔다.“애들 살이 빠진 것 같아.”작게 내뱉은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까웠다.고시우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강예원 곁을 지켰다.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작업대 위에 쏟아졌고, 민희가 빚은 작은 그릇은 은은한 빛을 띠었다.한참 생각하던 민희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외삼촌, 우리 예원 언니한테 선물 만들어 줘요!”고시우가 부드럽게 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래, 민희는 뭘 만들고 싶어?”“집!”민희가 신나서 외쳤다.“그러면 예원 언니한테 새집이 생기잖아요!”민희의 천진한 말에 강예원의 코끝이 시큰해졌다.강예원은 진지하게 진흙을 빚고 있는 여자아이와, 집중해서 아이를 지도하는 고시우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언제부턴가 이 두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강예원이 부드럽게 물었다.“왜 언니한테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거야?”민희가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 큰 눈은 맑고 깊었다.“언니가 슬퍼 보여서요. 외삼촌이 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강예원의 눈시울이
강예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나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린 것도 너희였고, 내가 망고를 먹여서 너희를 아프게 했다고 거짓말한 것도 너희였지?”“엄마는 싫고 심은정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도 너희 입으로 직접 한 말이잖아.”“나는 내가 아주 훌륭한 엄마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래도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어. 너희를 사랑하려고, 잘 돌보려고 정말 노력했어.”“그런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어.”두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부끄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박유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애원했다.“그때는 우리가 너무 어렸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아요. 제발 우리 용서해 주면 안 돼요?”강예원이 대답할 틈도 없이, 민희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언니...” 민희는 작은 손으로 강예원의 옷자락을 꼭 붙잡으며, 커다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가는 거예요?”고시우가 몸을 굽혀 민희를 안아 올리며, 조용히 달랬다.“무서워하지 마. 언니는 널 버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언니가 어디를 가든 그건 언니가 선택하는 거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해.”“설령 여기 있지 않더라도 언니는 계속 널 만나러 올 거야.”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지호의 가슴에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저 남자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아내를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거지?’‘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안고 내 아내 곁에 서서, 마치 그 셋이 한 가족인 양 행동하는 거지?’박지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집 그만 부려.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해.”“엄마로서 네 친자식을 키우지 않고, 남의 집 애나 키우겠다는 거야?”“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하다고?”강예원이 몸을 일으키며, 눈에는 박지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호하고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아이들이 나를 계단에서 밀었을 때는?”“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싫어한다고 말했을 때는?”“심은정을 엄마라고 불렀을 때는?”질문 하나하나가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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