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는 더 말하지 않고 몸을 살짝 틀었다. 시선은 접수대 쪽으로 향했다.그때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안쪽에서 빠르게 걸어 나왔다. 경찰서 부서장급 간부, 그러니까 서장의 바로 아래쯤 되는 인물이었다.부서장은 이재 앞에 서자 허리를 낮췄다. 말투는 지나칠 만큼 공손했다.“회장님, 직접 오셨습니까? 이런 일은 전화 한 통이면 되는데요.”이재는 담담하게 받았다.“집안의 아이라서 보러 왔습니다.”부서장의 눈이 곧장 지범에게 향하더니 눈빛이 환해졌다.“아, 하씨 집안 막내도련님이셨군요. 오해입니다, 오해였어요!”지범의 입꼬리가 떨렸다.‘하씨 집안 막내도련님?’‘난 ‘원’ 씨인데?’‘아니, 잠깐... ‘하’ 씨?’지범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렸다.이제야 저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떠올랐다.경제지 표지에 자주 나오던 얼굴. 가끔 연예지 첫머리에도 오르내리던 이름. 기사는 죄다 근거 없는 소문에 가까웠지만, 사진 속 얼굴만큼은 지범의 기억에 또렷했다.너무 눈에 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연예계에 들어가도 최상급이라 할 얼굴인데, 하필 하씨 집안에서 태어나 엄청난 권력까지 손에 쥔 사람.하씨 집안 둘째 아들, 하이재.‘내 예비 큰매형이잖아.’‘그런데...’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고개를 홱 돌려 슬비를 바라보던 지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상한데?’‘하이재와 정략결혼하는 사람이 큰누나 아니었어?’‘왜 작은누나하고 같이 나를 데리러 경찰서에 왔지?’당직 데스크 쪽에선 슬비가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슬비의 옆얼굴은 거의 투명할 정도로 하얗게 보였다.부서장이 직접 나선 덕분에 일 처리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랐다.10분도 되지 않아 모든 절차가 끝났다.“가도 된대.” 벤치 쪽으로 돌아온 슬비가 접수증을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지범은 곧장 임시 조사실에서 나왔다.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다가 슬비 옆에 바짝 붙어서 목소리를 낮췄다.“누나, 저 사람 하씨 집안 그 사람 아니야? 누나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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