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약해 오랜 기간 침소에만 누워 지내다 보니 스텝이 서툽니다.”오래 쉬어서 그런 설정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하려 애썼지만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 숨기진 못했다. 게다가 내 시선은 그의 얼굴이 아닌, 연회장 구석의 출구 좌표를 쫓고 있었다.카시안이 내 귀를 스치듯 위험하게 속삭이며 입을 열었다.“나와 춤을 추면서 눈을 굴리며 도망칠 궁리나 하다니. 그 가당치도 않은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이어서 그가 내 귓가를 잘게 물듯이 낮게 말했다.“그렇게 도망치고 싶나? 정말 처형당하고 싶어서 이러지?”“아, 아닙니다.”내 대답에 코웃음을 친 그가 음산하게 말했다.“연회가 끝나면 그 어설픈 껍데기를 내 손으로 직접 벗겨주마.”그의 목소리에는 살벌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이거야 원, 죽겠구만.’산뜻한 음악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고조될수록 내 수명도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내 어색한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 내 정체를 밝히고 있었다.그렇게 웅장했던 왈츠의 마지막 엔딩 음이 길게 끌리며 끝이 났다.‘1분 1초가 느리게 지나갔어.’짝짝-그때 귀족들의 가식적인 박수 소리가 대연회장에 울려 퍼졌다.하지만 카시안은 내 손목을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이리로.”“네, 네에?”그는 나를 붙잡은 채 연회장 뒤편의 어둡고 고요한 테라스로 이끌었다.차가운 달빛만이 내리죄는 조용하고 완전히 고립된 공간이었다.“도망쳐도 소용없어, 사방에 방음 마법이 걸려 있거든.”언제 해놨는지, 카시안의 말대로 연회장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됐다. 그 말은즉슨, 여기서 내가 끔찍하게 칼에 맞아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바로 본론부터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가 딴 소리를 했다.“그나저나 조용해서 좋군, 그렇지 않나?”그게 더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하나도 좋지 않은데, 일단 그렇게 말해야겠지.’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했다.“그, 그러게요.”속마음은 전혀 달랐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하자, 카시안은 나를 거칠게 대리석 벽으
Last Updated : 2026-07-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