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주들이 에러 났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35 Chapters

10. 도플갱어의 정체는?

무표정한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끼릭끼릭- 대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사람의 몸짓이라기보다는, 기계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듯 한 몸짓. “대답해.” 카이로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분노가 실렸다. 세실리아는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본 카이로스는 무뚝뚝하지만 자신을 조심스럽게만 대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자신보다 훨씬 오래 산, 많은 것을 견뎌온 사람의 얼굴. 무표정한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카이로스와 완전히 같았다. 하지만 억양이 없었다. 마치 녹음된 문장을 재생하는 것처럼. “원작 데이터 복구를 시도합니다.” “…뭐라고?” “비정규 변수 제거가 필요합니다.” 그 순간 남자의 시선이 세실리아를 향했다. 처음으로, 명확한 목적을 가진 시선이었다. “대상. 세실리아 에델하르트.” 세실리아는 숨이 턱 막혔다. ‘제거라니, 설마…’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건드리지 마.” 카이로스가 세실리아 앞을 완전히 가로막아 섰다. 오늘따라 그의 등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이번에는, 너한테 못 준다.” 무표정한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실리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공님, 저건…” “시스템의 잔해다.” 카이로스가 짧게 답했다. “원작을 강제로 복구하려는 힘. 삭제된 존재를 지우고, 어긋난 이야기를 되돌리려는.” “그러니까, 저게 저를……” “그래.” 카이로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널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즉 무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거다.” “그게 절 죽이려는 건가요?” “맞아.” 그 말에 세실리아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원작대로였다면, 어차피 자신은 죽는 캐릭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이 존재는, 세계가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보낸 오류 수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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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켜주지 못해 미안

쌓인 조각의 잔해들이 모인 위력은 굉장했다. 그것이 지금, 카이로스 자신을 향해 검은 손을 뻗고 있었다. “대공님!” 세실리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이미 그 손을 피할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 순간 검은 안개가 그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다. “커헉!” 카이로스가 무릎을 꿇었다. 세실리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 그래서인지 몸이 먼저 얼어붙었다. 검은 안개가 그의 가슴 한복판에 박힌 채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잉크가 물에 번지듯, 새하얀 셔츠 위로 검은 얼룩이 빠르게 물들었다. “대공님!” 세실리아는 정신없이 그에게 달려갔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것도 몰랐다. 카이로스의 몸을 붙잡자, 서늘하다 못해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졌다. “괜찮으세요? 대답 좀 해봐요.” 카이로스의 붉은 눈동자가 힘겹게 그녀를 향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괜찮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지금 이게…” “이 정도로는.” 카이로스가 낮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죽지 않아.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본 상처다.” 세실리아는 그 말에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많은 죽음과 실패를 반복해온 거야?’ 그때였다. 무표정한 남자, 아니 카이로스의 잔여 데이터라 불린 존재가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 안개가 그의 발밑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번에도 안 죽는군.” 그 로봇의 목소리에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몇 번을 반복해야, 너는 순순히 끝날 거지?” “내가 순순히 끝나면.” 카이로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세실리아를 등 뒤로 감쌌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다음엔 뭐가 남지? 네가 원하는 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맞아.” 로봇은 이제 감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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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원작과는 딴판

우우웅- 그리고 잠시 후,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 세실리아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도플갱어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검은 안개도, 부서졌던 벽의 균열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카이로스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대공님!” 세실리아가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가슴의 검은 얼룩은 사라졌지만,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방금 무언가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괜찮으세요?” 카이로스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삼스럽게. “…처음이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순간까지, 네가 살아 있는 걸 본 게.” 세실리아는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카이로스에게는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도달한 결과라는 것을. 그때, 눈앞에 다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알림: 비정규 존재가 소멸했습니다] [원작 붕괴율: 42% → 61%] [경고: 회귀 계열 힘이 감지됩니다] [해당 인물의 능력이 재분류됩니다] 세실리아는 그 문구를 읽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원작 붕괴율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 방금의 싸움으로 세계는 더 원작에서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세실리아가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모른다.” “왜, 왜요?” 카이로스가 솔직하게 답했다. “…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니까.” 그 말이 오히려 세실리아를 안심시켰다.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함께 모르는 것을 마주하는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대공님.” “…왜 자꾸 대공이라고 부르나.” 카이로스가 문득 물었다.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 “그건 좀……” “카이로스.” 그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세실리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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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도플갱어 또 등장?!

세실리아는 그들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게임 화면 속에서만 보던 존재들이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숨을 쉬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낯선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인물이었다. 성별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어떤 가문의 문장도 달지 않은 채였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숲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그 인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설마 전에 시스템창에서 봤던…?’ 시스템이 물음표로 표시했던 존재. “저 사람은…” 세실리아가 조심스럽게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누군지 아세요, 대공님?” 카이로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굳었다. “모른다.” 그가 낮게 대답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도 일치하지 않아.” “그럼 저 사람도 대공님처럼…” “그건 아니야.” 카이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 처음 보는 종류의 긴장이 서렸다. “나와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존재다.” 세실리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삭제된 남주, 그 남주의 잔여 데이터에 이어, 이제는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까지 등장했다. 원작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후드를 쓴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정확히 세실리아를 향해서. 세실리아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억…!” 후드 그림자 아래로 언뜻 보인 눈동자가 이상하게도 낯익었다.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아는 눈이었다. “왜 그러지?” “아뇨. 저 사람, 왠지…” 세실리아가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빠아앙- 나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며 사냥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숲을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후드를 쓴 인물도 조용히 몸을 돌려 숲 안으로 사라졌다. “가자.” 카이로스가 낮게 말하며 그녀의 말고삐를 잡아끌었다. “저 존재를 놓치면 안 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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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냥 대회가 열리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세실리아는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시스템 창에서 봤던 문구를 떠올렸다. 사냥 대회. 그리고 원작에는 없던 낯선 이름 하나. 그녀는 급히 시스템을 다시 불러왔다. [황실 사냥 대회] [일시: 3일 후] [장소: 아르카디아 왕실 사냥터] [주요 참가자: 황태자 리온 에르하르트, 기사단장 후계자 에드릭 아르벤, 마탑주 후계자 아셀 루미에르, 남부 대공 루시안 카르델] [추가 참가자: 북부 대공 카이로스 발테온] [비정규 참가자: ??? ] 마지막 항목이 유독 눈에 걸렸다. ‘이건 또 뭐야?‘ 이름조차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원작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새롭게 생겨난 변수라는 뜻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이 생기는 거야. 헷갈려 죽겠네, 진짜.” 세실리아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루 사이에 세계는 눈에 띄게 어긋나고 있었다. 삭제된 남주가 등장하고. 그 남주의 잔여 데이터가 스스로를 공격하고. 게다가 이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참가자까지 나타나다니. 원작 속 사냥 대회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이 자리에서 황태자 리온과 여주인공 리아나가 처음 만난다. 그렇게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호감을 품기 시작한다. 동시에 세실리아는 여기서 리아나를 견제하려다 첫 번째 실책을 저지른다. 그로 인해 몰락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니까 이번엔…” 세실리아는 결연하게 중얼거렸다. “…얌전히 구경만 하고 있어야지.” ’근데 저번에도 그렇게 다짐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계획대로 흘러갈 리가 없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사냥대회날이 점점 다가오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였다. 아버지, 에델하르트 공작은 오랜만에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냥 대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들었다.” “…네, 아버지.” “잘됐군. 황태자 전하와 가까워질 좋은 기회다.” 세실리아는 아버지의 말에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과 달리, 지금 자신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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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저게 나라고?

“…네?” 세실리아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방금 들린 목소리는 명백히 자기 자신의 목소리였다. 조금 전 숲속에서 걸어 나온 후드를 쓴 인물이 입을 열 때. 그 음성은 세실리아가 매일 거울을 보며 내뱉던 그 목소리와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수풀 사이로 늘어진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서서히 젖혀지는 후드 아래로 드러난 얼굴을 본 순간. 세실리아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기에 있는 것은, 또 다른 세실리아였다. "너……." 세실리아는 안장 위에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눈앞의 인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입고 있는 옷의 자수.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의 결. 심지어 왼쪽 눈 밑에 있는 작은 점의 위치까지.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가짜 세실리아의 눈빛이었다. 공포나 당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할 정도로 텅 빈 흑요석 같은 눈동자. "오랜만이네, 세실리아." 가짜 세실리아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오싹한 메아리가 겹쳐 들렸다. 카이로스는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세실리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이형의 존재를 향해 번뜩였다. "역시 네놈이었군." 카이로스가 짓씹듯 뱉어냈다. "시스템의 메인 프로세스이자, 이 세계가 만들어낸 최종 백업 파일." "백업 파일이라니, 너무 딱딱하게 부르지 마, 대공 전하." 가짜 세실리아가 사뿐히 걸어 나오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자잘한 데이터 파편들이 반딧불이처럼 흩어졌다. "나는 이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생성된 면역 세포야. 저 여자—" 가짜가 손가락으로 진짜 세실리아를 가리켰다. "저 이방인은 원작의 데이터를 갉아먹는 암덩어리라고. 왜 그것을 품으려고 해? 결국 너도 같이 소멸할 텐데." 세실리아는 머릿속이 하얗게 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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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빠져나갈 방법

메아리처럼 겹쳐 들리던 목소리가 툭 끊어졌다. 가짜 세실리아의 몸이 유리알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데이터 조각처럼, 그녀의 형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 있던 카이로스가 휘청였다. 세실리아는 급히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단단한 갑옷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마력의 과부하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괜찮으세요? 정신 차려봐요, 대공님!" "……카이로스." "네?"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을 텐데." 이 지독한 상황 속에서도 카이로스는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비틀며 낮게 웃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세실리아의 얼굴을 깊게 담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숲 전체를 뒤덮고 있던 에러 코드가 완전히 걷히고 왕실 사냥터의 평온한 풍경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시스템 창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WARNING] [원작 붕괴율: 85%] [메인 시스템의 경고가 누적됩니다] [지정된 엔딩 경로가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세실리아는 허탈하게 웃으며 주저앉았다. 엔딩 경로가 소실되었다니, 이제 이 세계는 완전히 통제 불능의 무법지대가 된 것이다. 카이로스는 그런 세실리아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일어나라." "……어디로 가게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곳으로." 카이로스의 눈빛이 단호했다. 그것은 시스템이 정해둔 길이 아니라, 오직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길을 의미하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차가운 온기 속에서 묘한 결의가 피어올랐다. 휘이잉- 숲의 서늘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사방의 나뭇가지를 거칠게 흔들었다. 가짜 세실리아가 소멸한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다만 공기 중에 흩어진 미세한 푸른빛의 노이즈만이 방금 전까지 벌어진 일의 잔재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여전히 카이로스의 손에 이끌려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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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원작 복구VS세계 파괴

세실리아의 목소리가 울컥 떨려 나왔다. 비록 이 세계에 강제로 떨려와 온갖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지키고 싶은 것은 원작의 결말도, 시스템의 규칙도 아니었다. 바로 곁에 서 있는 이 남자와, 함께 만들어낸 시간들이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카이로스가 고개를 돌려 세실리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진하게 빛났다. "네가 선택하면 된다." "선택이라니요?" "이 세계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나와 함께 이 데이터의 감옥을 부수는 것. 물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완전히 소멸할지도 모르지." 카이로스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찬란한 백색의 빛과, 세실리아가 가진 이방인의 힘이 묘하게 섞여들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창이 마지막 경고를 울려댔다. [WARNING] [세실리아 에델하르트의 자아 코드가 변질되었습니다] [이대로 진행 시 세계가 영구 소실됩니다] [선택하십시오. 혹은 ] 세실리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카이로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차갑던 그의 손끝에서 온기가 전해져 왔다. "복구 같은 소리 하네." 세실리아가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시스템의 푸른 빛과 카이로스의 붉은 눈이 동시에 담겼다. "내가 왜 원작대로 죽어줘야 돼? 애초에 남주들이 에러 난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녀가 카이로스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끝까지 가봐요, 우리. 원작도, 시스템도 다 부숴버리고!" 세실리아의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의 손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푸른빛의 에러 창들이 유리알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면이 흔들리고,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모든 것이 붕괴하고, 동시에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파공음과 함께 두 사람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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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다시 찾아온 평화

세실리아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이방인으로서 세계의 버그 취급을 받으며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시간들이 마치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허공에서 아주 작고 투명한 창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다. 과거의 경고창과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운 은빛의 알림이었다. [시스템 로그] [자유 의지 코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세실리아 에델하르트'와 캐릭터 '카이로스 발테온'의 루트가 확정되었습니다] [엔딩: 미지의 시작] 창은 그 문구를 끝으로 스스로 희미해지며 완전히 소멸했다. 다시 한번 세계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누구도 그들을 구속할 수 없었다. 세실리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묘한 해방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았다……." 중얼거리는 세실리아를 내려보며 카이로스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렸다. 그가 손을 뻗어 세실리아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넘겨 주었다. "고생했다, 세실리아." 그 다정한 손길에 세실리아는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앞으로는 뭘 하지?" 카이로스는 잠시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다가, 이내 세실리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오직 세실리아의 모습만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이 세계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세실리아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망설임 없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럼 일단……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요. 저 편의점 도시락 말고, 진짜 맛있는 걸로." 카이로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평원 위에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에러가 가득했던 세계는 끝났고, 비로소 진짜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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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어제 마을 시장에서 본 그 잡화점 말인데, 거기 구경 가기로 했잖아. 아기자기한 마도구들이 꽤 많던데." "그리고 오후에는 저기 초원 뒤편 호숫가에 피크닉이나 갈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집에만 있기 아까워."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카이로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수백 번의 회귀 동안 그가 알던 삶은 오직 죽음과 파멸,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지독한 집착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세실리아와 함께 맞이하는 평범하고도 찬란한 내일을. 멀리서 마을 교회의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세실리아는 잔을 내려놓고 문득 카이로스를 바라보았다. 원작의 남주도, 시스템의 버그도, 세상을 위협하던 비정규 존재도 이제는 없다. 오직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카이로스." "왜 그러지?" 세실리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름 부르는 거, 이제 안 부끄러워." 카이로스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깊게 흔들렸다. 그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단단히 마주 잡았다. "그래, 앞으로 평생 원 없이 불러도 좋다." 에러가 났던 세계의 끝에서 비로소 완성된, 그들만의 진짜 해피엔딩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 그런 줄 알았으나, 평화로운 아침의 여유를 즐기던 것도 잠시였다. 테라스 아래의 정원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여기가 정말 그 이방인 영애가 숨어 사는 곳인가?" 오만하면서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목소리가 조용한 주택가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세실리아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익숙하고도 낯익은 목소리. 원작 의 메인 공략 대상. 제국의 태양이라 불리는 황태자 리온 에르하르트였다.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온 거지?" 세실리아가 경악하며 테라스 아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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