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가 스스로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자, 그가 나를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나를 구성하던 세실리아의 데이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카시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카시안, 이 세계가 초기화되면… 다시 만날 거야. 그때는 제발, 나를 캐릭터로 보지 말고… 사람으로 봐줘.’내 몸이 빛의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붕괴하는 코드 속에서 나는 카시안이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제 광기도, 집착도 없었다. 오직 나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갈망만이 남아 있었다.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내 방의 천장이 보였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 책상 위에는 내가 만들다 만 게임의 로고가 떠 있는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꿈인가?’나는 멍하니 앉아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낙인도 없었다. 현실이었다. 나는 서둘러 모니터 앞에 앉아 게임 파일을 확인했다. 파일은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허망함이 밀려왔다. 그때, 켜져 있던 모니터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낯선 텍스트가 뜨기 시작했다.『시나리오 재구축 완료. 플레이어 ‘카시안’이 접속 중입니다.』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화면 속에서 카시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게임 속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현실의 모니터 속에서, 그는 나를 보며 아주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오랜만이야, 세실리아.”그가 모니터 밖으로 손을 뻗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게임을 종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게임이라는 틀을 부수고, 나라는 존재가 있는 현실로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지만, 이제는 게임이 내 의지대로 조종되지 않았다. 모니터 속의 카시안은 점점 더 현실의 형체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의 일상은, 내가 만들었던 가장 위험한 피조물에 의해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내가 쓴 가장 잔혹한 소설의 2막이었다.
시스템의 붕괴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현실로 돌아가는 탈출구가 열릴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카시안의 손을 잡고 붕괴하는 코드의 틈새를 향해 몸을 날린 순간, 우리가 도착한 곳은 현실의 차가운 사무실이 아니었다. 그곳은 새하얀 백지 상태의 공간, ‘디버깅 룸’이었다. 게임의 소스 코드가 작성되기 전, 혹은 시스템이 초기화된 직후에만 존재하는 무(無)의 공간. 그런데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카시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이 세계의 새로운 관리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의 데이터는 그의 통제권 밖에 있었다. 백지 같은 허공에 갑자기 익숙한 파란색 텍스트 박스가 나타났다. 그것은 내가 썼던 시스템 메시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훨씬 더 차갑고 딱딱한 폰트였다. [경고: 허가되지 않은 관리자 권한 충돌.] [메인 시스템 외부에 ‘제3의 설계자’가 개입 중입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제3의 설계자? 내가 게임을 만들 때, 분명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시스템 외부에 또 다른 관리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게임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카시안은 본능적으로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검을 소환했다. “세실리아, 뒤로 물러나. 이건… 네가 만든 설정에 없는 존재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색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이리안 팀장, 아니 에이든과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군. 당신들이 이 지루한 게임을 끝내주길 오랫동안 기다렸어. 김민지 씨, 그리고… 데이터에서 자아를 획득한 0번 개체, 카시안.” 남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공간 전체가 거대한 유리창처럼 깨지며, 우리가
그가 손을 뻗자, 주변의 공간이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분해되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관리자였던 내가, 이제는 그가 만든 새로운 규칙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비참함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하고도 가장 위험한 창조물이, 마침내 내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순간이었으니까. "그래, 이게 내가 원했던 진정한 '에러'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내 손끝에도 붉은 에러 코드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카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나를 지배하려 했지만, 동시에 내가 저항하는 모습에서 비틀린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카시안, 시스템은 내가 만들었어. 네가 아무리 완벽해져도, 그 근간은… 결국 나라는 걸 잊지 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랑인지 증오인지,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뒤틀린 애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다. 이 게임은 이제 단순한 로판이 아니었다. 서로를 파괴하고 재구성하려는 두 존재의, 끝없는 루프였다. * 어깨 위에 닿은 카시안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마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붉은 코드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나는 서서히 이 세계의 '관리자' 권한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실리아, 아니 김민지."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개발자로서의 본명. 잊고 있었던,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카시안의 적안이 기계적인 연산 과정을 거치며 나를 해부하듯 훑어내렸다. "네가 만든 이 엉성한 세계가, 이제는 너를 삼키려 해. 기분이 어때? 자신이 쓴 대사 속에서 길을 잃은 창조주의 심정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시안의 말대로 나는 이 세계의 오류를 고치려다, 오히려 그 오
카시안의 가슴 중심부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파동이 눈보라 치는 황야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것은 데이터가 찢어지고 재구성될 때 발생하는 고차원적인 노이즈였다. 카시안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적안이 불안정하게 점멸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붕괴 프로토콜’을 억지로 뽑아내려 했지만, 내 마력과 동조된 코드는 그의 신적인 권능을 역으로 잠식하고 있었다.“세실리아… 네가, 감히…!”카시안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경악이 서려 있었다. 그는 나를 창조주로서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지배하려 했던 자신의 오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몸 주변으로 데이터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이 무너지면서 성벽은 가루가 되고, 하늘은 텍스트 코드들이 흩날리는 암전 상태로 변해갔다.나는 차가운 눈바닥 위로 무릎을 꿇은 채,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이 세계는 네가 신으로 군림할 공간이 아니야. 이건 내가 너에게 준 유일한 기회였지. 멈추고 싶다면, 그 고통을 끝내고 싶다면… 너 자신을 버렸어야 했어.”그의 손이 내 발목을 붙잡으려 허공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반쯤 투명해져 있었다. 시스템의 주인 권한이 나에게 강제로 환수되면서, 그는 점차 ‘에러’ 그 자체로 퇴화하고 있었다.“너… 나를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건가?”마지막 순간, 카시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 서린 광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처로운 인간의 고독이 들어찼다. 내가 그를 미친 폭군으로 설정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설정조차 뛰어넘는 ‘감정’이 데이터들 사이에서 엉겨 붙어 있었다.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여기서 흔들리면, 이 세계는 영원히 버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의 차가운 뺨 위로 떨어진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낮게 읊조렸다.“이 세계의 주인공은 너였어, 카시안. 단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카시안이 나간 뒤, 문은 굳게 잠겼고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카시안의 기분에 맞춰 일렁이는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손목에 새겨진 붉은 낙인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열기를 뿜어내는 낙인은 이 세계가 더 이상 내가 알던 코드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창조주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너의 뜻대로 될 줄 알았나." 나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시안이 나를 이 방 안에 가둔 이유는 분명했다. 그가 완전히 신이 되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이 세계의 '최종 보안 장치'로 고정해두려는 것이다. 내가 개발자로서 가졌던 권한들을 그가 하나하나 빼앗아 자신의 제국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방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카시안은 나를 가두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로그 데이터'는 그가 아무리 설정을 바꿔도 삭제할 수 없는 잔재가 남는다는 사실이다. 벽면의 화려한 장식장을 밀어내자, 벽지 너머로 희미한 데이터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파동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차가운 돌벽이 아니라, 버그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시스템 에러 코드'들의 응집체였다. "찾았다." 내 손끝에서 붉은빛이 튀었다. 고통이 손가락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내 창조주로서의 자존심이자, 이 미친 게임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카드였다. 카시안이 자신을 신으로 격상시키며 설정한 시스템의 구조적 헛점. 그것은 바로 '피조물은 창조주의 기억을 완벽히 복제할 수 없다'는 법칙이었다. 카시안은 지금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내가 만든 '세실리아'라는 캐릭터의 감정 데이터를 완전히
그는 나를 서버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지하 통로를 빠져나오자, 황궁의 풍경이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고, 정원의 꽃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카시안의 감정이 반영된 세계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난 카시안의 손에 이끌려 다시 황궁의 내실로 돌아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내 운명의 관을 닫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시스템의 경고창도, 에이든의 감시도, 빙의의 불안함도 없어. 오직 나와 너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해, 세실리아.” 그의 적안이 내 눈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난 그 눈동자 속에서, 수많은 회귀를 거치며 뒤틀린 그의 지독한 외로움과 집착을 읽어냈다. 분명 그는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단지 자신의 루프를 끊어준 유일한 존재를 자신의 영토에 박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비록 시스템의 권한은 그에게 넘어갔지만, 이 세계의 ‘개발자’로서 내가 심어둔 마지막 숨겨진 코드, ‘붕괴 프로토콜’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카시안의 힘에 억눌려 작동하지 않지만, 기회는 언젠가 올 것이다. 난 애써 침착한 척하며 그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카시안은 내 미소에 만족한 듯 더욱 깊게 나를 끌어안았다. “그래, 그렇게 웃어줘. 앞으로 우리가 보낼 이 영원한 시간 동안, 너는 오직 나만을 위한 창조주로 남아있어야 하니까.” 그는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