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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여섯 번의 기다림 끝에: Chapter 11 - Chapter 20

29 Chapters

제11화

사진 한쪽에 임초이가 홀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심예훈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작은 희망도 산산조각 났다.임초이가 직접 봤다면 이제 어떤 거짓말로도 둘러댈 수 없었다.심예훈은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 서은경에게 마음을 준 적은 없었고, 처음 서은경을 받아들인 이유도 젊은 시절의 임초이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임초이의 모든 달라진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은경이 일을 본가에서 식사하던 날 알게 된 건가?’‘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알고 난 뒤 그 며칠을 어떻게 버틴 거지?’심예훈은 분명 임초이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평생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까지 했다.‘나라는 놈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진 거야?!’눈가가 뜨거워지고 시야가 흐려졌다.임초이와 심예훈의 첫 아이는 임신 7개월에 심장이 멈춰 유도분만으로 세상을 떠났다.심예훈은 사산의 원인이 어머니가 보낸 탕약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임초이는 처음부터 그 약을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임초이를 조금이라도 좋게 봐 주길 바란 심예훈이 직접 달래가며 먹였다.아이를 잃은 뒤 임초이는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했다.그런데 심예훈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임초이가 자신을 원망할까 두려웠다.그 뒤 4년 동안 임초이는 여섯 차례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임신 실패가 이어질 때마다 심예훈의 죄책감과 답답함도 커졌다.집 안 어딘가에 늘 배어 있던 약 냄새까지 견디기 어려워져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어머니가 매일같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사이, 언제부터였는지 심예훈의 머릿속에 비겁한 생각 하나가 자리 잡았다.‘아이만 하나 생기면 다 괜찮아질 거야.’그래서 어머니가 서은경을 데려왔을 때, 심예훈은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받아들였다.서은경에게서 젊었을 때의 임초이가 가진 생기와 밝은 에너지를 봤다. 그 곁에 있으면 잠깐이나마 죄책감을 잊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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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아니야.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럴 리 없어!”심예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마음이 그렇게 여린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이토록 단호할 수 있을까?’어제 오전 임초이가 아무 설명 없이 내밀어 서명하게 한 서류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심예훈은 끝까지 믿지 못한 채 임초이의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모르셨습니까? 아내분께서 어제 오전 혼자 오셔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으셨어요.”심예훈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쉰 목소리로 어렵게 물었다.“그럼 제 아내는... 뭐라고 한 말은 없었습니까?”“특별한 말씀은 없었어요. 수술 전에 아기가 아프냐고 한 번 물으셨습니다.”의사는 조금 망설이다 덧붙였다. “아내분께서 지난번 태아 심장이 멈춘 원인이 잘못 복용한 탕약 때문이라는 것도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심예훈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입안에 피 맛이 가득 퍼졌다.옆에 서 있던 채영숙도 표정이 심하게 굳었다.“너는 대체 어떻게 된 여자를 아내로 들인 거야? 그 아이는 우리 집 핏줄인데 감히 제멋대로 없애?”“심예훈, 잘 들어. 임초이가 아이를 버렸으니 이제 은경이는...”말을 끝내기도 전에 채영숙은 증오로 번뜩이는 아들의 눈과 마주쳤다.“너... 엄마를 원망하는 거니?”“제가 어머니를 원망하면 안 됩니까?”심예훈은 어머니를 원망했고, 서은경을 증오했으며,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끔찍했다.채영숙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붉혔다.“네가 엄마를 미워할 자격이 어디 있어! 너는 내가 낳아서 키운 아들이고, 은경이 일도 네가 동의했잖아. 은경이 뱃속 아이를 건드리고 싶으면 먼저 나부터 인연 끊어야 할 거다. 나를 네 엄마로 생각하지 마라!”그 말을 남기고 채영숙은 돌아서 나갔다.심예훈은 한참 넋을 잃고 있다가 병원에 연락해 CCTV 영상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영상이 도착한 뒤에도 몇 분 동안 파일을 열지 못했다.재생 버튼을 누른 심예훈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영상에는 임초이도 있었고, 심예훈 자신도 있었다.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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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심예훈은 비틀거리듯 달려가 여자를 끌어안았다.“나 버리지 마. 제발...”“오빠, 제가 어떻게 오빠를 버려요?”서은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심예훈의 머리 위로 얼음물이 끼얹은 듯 소름이 돋았다.“어머니가 오빠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는다고 해서 걱정돼서 왔... 아!”서은경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예훈의 손이 목을 움켜쥐었다. 살기 어린 눈빛은 서은경을 그대로 찢어 버릴 듯했다.“네가 여길 감히 와?”“내 와이프가 알게 된 거, 네가 무슨 말이라도 한 거야?”채영숙이 급히 뛰어들어 아들을 떼어 놓으려고 했다.“놔! 은경이는 아직 네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아무리 잡아당겨도 심예훈이 놓지 않자 어머니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은경을 죽인다고 임초이가 돌아오니?”그 말에 심예훈의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손이 떨어졌다.서은경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오빠, 믿어 줘요. 저는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요.”“오빠 마음에 언니밖에 없다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오빠의 아이를 낳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어요.”“핸드폰 내놔.”서은경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건넸다.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임초이의 번호를 지웠고, 주고받은 메시지도 전부 삭제해 둔 상태였다.“저는 언니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 적 없어요. 저는...”“나가!”채영숙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임초이는 제 발로 나간 거야. 너도 이만하면 충분히 미쳐 날뛰었어. 은경이가 임초이보다 못할 게 뭐가 있니?”“당분간은 내 집에서 지내게 할 테니까 나중에 정신 차리면 식이라도 다시 올려 줘. 네 아이를 혼외자로 만들 수는 없잖아.”“어머니도 당장 나가세요. 우리 집 더럽히지 마시고요...”채영숙은 화를 참지 못하며 서은경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서은경은 나가기 전 뒤를 돌아봤다. 심예훈은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아 초음파 결과지와 수납 상자를 지키듯 바라보고 있었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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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채영숙과 심예훈의 아버지 심국영은 어린 시절부터 만나 결혼했고, 주변에서 손꼽는 금실 좋은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하지만 핸드폰 화면 속 영상에서 언제나 아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던 심국영은 젊은 여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20살을 갓 넘긴 듯한 여자는 웃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채영숙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채영숙은 거실로 달려가 남편의 뺨을 세게 때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눈물을 흘렸다.“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말해 봐!”“당신한테 배운 거지. 은경이는 당신이 아들한테 붙여 준 여자잖아. 난 당신보다 양심적이야. 적어도 밖에서 아이까지 낳아서 당신한테 엄마라고 부르게 하진 않을 테니까.”심국영은 달려드는 아내를 성가시다는 듯 밀어내고 그대로 집을 나갔다.채영숙은 울면서 몸을 떨었다.“내가 네 아버지랑 43년을 살았어. 첫사랑으로 만나 평생 함께한 사이인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그럼 제 아내는요? 제 아내는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심예훈의 눈에는 위태로운 광기가 떠올랐다.칼날은 자기 몸에 닿아야 얼마나 아픈지 비로소 알게 된다.어머니 채영숙도 그랬다.심예훈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둘 다 편하게 살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채영숙은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가 마침내 서은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나가! 다 나가 버려!”손에 잡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너희는 다 똑같아. 다 나쁜 것들이야!”심예훈은 그대로 돌아서 집을 나왔다.집 밖으로 나오자 서은경이 울음을 터뜨리며 심예훈을 뒤쫓아 왔다.“오빠, 그럼 저랑 아기는 어떻게 해요? 저 너무 무서워요.”심예훈의 발이 멈췄다. 이 일에서 서은경에게 잘못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뱃속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었고, 심예훈 역시 8개월 넘게 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린 것은 사실이었다.“돈은 충분히 보내 줄게. 이제 아기랑 알아서 살아.”“싫어요, 그러지 마요.” 서은경이 심예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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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임산부 화보 사진을 보낸 사람은 서은경이었다.임초이를 로즈가든으로 불러낸 것도 서은경이었다.심예훈이 한밤중에 나가 서은경과 함께 있었던 사실도 임초이는 알고 있었다.임상민의 집에서 벌어진 일까지 임초이가 전부 보고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심예훈이 무시하고 지나친 모든 장면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임초이가 채영숙을 차단하기 불과 1분 전, 어머니는 서은경의 게시물 아래에서 임초이를 두고 아이도 낳지 못한다며 조롱했다.심예훈은 임초이가 그 댓글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제멋대로 믿었다. 괜히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러고는 바로 뒤에 임초이가 어머니를 차단했다며 오히려 탓했다.심예훈은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하나씩, 또 하나씩.입장을 바꿔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벌써 미쳐 버렸을 것이다.임초이가 그 모든 날을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무서웠다.그때 임초이는 심예훈의 아이까지 태중에 품고 있었다.‘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임초이가 겪은 모든 억울함과 상처는 결국 심예훈이 만든 것이었다.그때 임초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은경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심예훈의 눈이 분노로 벌겋게 변했다.‘아직도 내 와이프한테 전화를 걸어?’[심예훈이 이제 언니한테 질린 게 뻔한데 어떻게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해요?][첫째는 유도분만으로 잃고, 둘째는 임신중절로 떠나보냈잖아요. 두 아이 다 심예훈 때문에 죽었는데도 또 돌아오면 자존심도 없는 거예요.][남자 때문에 아이 하나 더 잃어야 진짜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을 건가요?][아, 그것도 어렵겠네요. 4년 만에 겨우 한 번 임신했는데 다음에는 더 힘들겠죠. 설마 제 아이 돌봐 주려고 돌아오는 거예요?][...]한마디 한마디가 임초이의 가장 아픈 곳을 겨냥한 칼날 같았다.심예훈의 숨이 거칠어졌다. 지금 전화받고 있는 사람이 임초이였다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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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심예훈의 몸이 크게 휘청였고 손에 힘이 풀렸다.선명한 피가 머리에서 흘러내려 얼굴 절반을 붉게 적셨다.서은경은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겁에 질렸지만 손발로 바닥을 짚으며 도망치려 했다.심예훈이 다시 붙잡아 끌어당겼다.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서은경은 오히려 악에 받쳐 소리쳤다.“오빠, 초이 언니의 아이 둘을 죽게 한 걸로도 부족해요? 이제 제가 임신한 세 번째 아이까지 죽일 거예요?”심예훈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서은경도 더는 버둥거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심예훈을 향해 웃었다.“왜요?”“언니가 오빠를 버리고 나니까 이제야 소중해졌어요?”“너무 늦었어요.”심예훈의 머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 위로 피가 번져 섬뜩해 보였다.심예훈은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눈으로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곧이어 문을 나서자 서은경은 곧장 달려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핸드폰 화면에 새 알림이 떴다.채영숙에게 쫓겨나는 자신의 사진과 임초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함께 인기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다.임초이가 돌아온 게 아니었다.서은경은 아랫배가 은근히 아파 오자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아이만 무사히 낳으면 다시 기회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심예훈의 집.돌아온 심예훈은 또다시 아기방에 자신을 가뒀다.이곳에 있어야만 임초이가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었고, 붙잡을 기억도 있었다.동시에 방 안의 모든 물건은 끊임없이 심예훈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도, 임초이의 사랑을 끝낸 사람도 자신이라고.머리에서 피가 테이블 위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심예훈은 놀라 옷으로 닦아 냈지만 피는 갈수록 많이 흘렀고, 아무리 닦아도 자국이 사라지지 않았다.그럴수록 더 불안해지고 손길은 다급해졌다.“여보, 제발.”“나 진짜 못 버티겠어. 이제 더는 못 하겠어.”“기회 한 번만 주면 안 돼? 딱 한 번만...”심예훈의 등이 힘없이 굽었다. 끝내 목이 메어 더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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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임상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나는... 다 누나를 위해서 그런 거야.”“누나는 4년 동안 시험관 시술을 받으면서 몸이 점점 망가졌어. 시어머니가 얼마나 압박했는지도 알잖아. 더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고.”“서은경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시댁도 더는 누나한테 뭐라고 못 할 거고, 누나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심예훈의 주먹이 임상민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뒤이어 발로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심예훈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주먹이 계속 임상민의 몸에 꽂혔고, 한참 뒤에야 멈췄다.“정말 네 누나를 위해서였어? 아니면 너 자신을 위해서였어?”“당연히 누나를 위해...”심예훈이 비웃었다.“내가 네 사업 도와주고 잘되기 시작하니까 욕심이 생긴 거잖아. 그래서 네 누나한테 숨기는 데 협조한 거고. 나한테 잘 보여서 더 많은 도움을 받으려고.”“임상민, 네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봐. 네 누나가 정말 네가 이런 식으로 도와주길 바랐을까?”가장 감추고 싶었던 속마음을 정확히 찔리자 임상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임초이가 원할 리 없었다.그걸 알고 있었기에 심예훈과 함께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 진실을 숨겼다.“네 누나... 임신했어. 그런데 임신중절수술을 받았고 이제 아이는 없어.”“첫 번째 아이가 7개월에 심장이 멈춘 것도 우리 어머니가 보낸 탕약 때문이었어.”임상민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굳었다. 입술만 움직일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지금 네 꼴 봐.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심예훈은 임상민에게 말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네 누나한테 버림받는 순간, 넌 갈 데 없는 떠돌이 개 신세나 다름없어.”“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우리 누나는...”“네 누나가 돌아온다고 해도 서은경이 낳을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리가 자기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릴 거야!”임상민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경호원들에게 끌려 밖으로 내쫓겼다.그리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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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임상민은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뽑고 병실을 빠져나와 산부인과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병동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은경을 발견했다.“은경 씨!”서은경은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임상민을 몇 초 동안 빤히 보고서야 알아봤다.배를 감싸며 두 걸음 물러났다.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매형 기분이 안 좋아서 나한테 화풀이 좀 했어. 은경 씨는? 이제 곧 아기 낳아?”임상민은 서은경의 배를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예훈이 형도 언젠가는 화 풀 거야. 이 아이는 심씨 집안의 유일한 아이잖아. 절대로 모르는 척할 수 없을걸.”“은경 씨랑 매형 일에 내가 도와준 것도 많잖아. 지금 우리 누나도 없고, 이제 매형 앞에서 내 편 좀 들어줄 사람도 은경 씨밖에 없어.”그제야 서은경의 표정이 풀리며 웃음이 번졌다.“상민 씨가 계속 눈치 있게 행동하면 그런 건 어렵지 않지. 나도 원래 받은 건 꼭 갚는 사람이잖아.”“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17층에 초음파 검사 받으러 가.”“한 층만 올라가면 되네?” 임상민은 엘리베이터를 한번 바라봤다. “아직 내려오려면 좀 걸리겠는데, 내가 계단으로 부축해 줄게. 내가 은경 씨 잘 챙겨 준 거 꼭 기억해.”서은경은 별다른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임상민은 서은경을 부축해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한 층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매형이 전에 그러더라. 아이만 낳으면 은경 씨는 멀리 보내고, 아이는 우리 누나한테 맡길 거라고. 누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라면 친자식이랑 다를 것도 없대.”“그런데 돈 받고 아이만 낳아 주기로 한 사람이 왜 감히 우리 누나 자리를 탐내?”임상민의 목소리는 갈수록 차갑게 변했다.서은경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뜻이야? 나 예훈 오빠 아이 임신한 사람이야. 나한테 무슨 짓 하면 그 집에서 가만 안 있을 거고.”“임상민, 아파! 팔 놔!”임상민이 너무 세게 움켜쥔 탓에 서은경의 팔이 부러질 듯 아팠다.“사람 살려... 아!”임상민이 팔을 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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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여보, 당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은 모두 대가를 치렀어. 돌아오기만 해. 당신이 나한테 어떤 벌을 주든 다 받을게. 제발 돌아와 줘.]심예훈의 글은 온라인에서 떠돌던 추측이 사실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일도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최진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준비해 왔던 위기 대응안 파일을 챙겨 들었다.마지막으로 심예훈을 바라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러지 말았어야지.’지금 심예훈에게 임초이 말고 다른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사람들은 심예훈을 거칠게 비난했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참하게 살라는 저주도 셀 수 없이 많았다.심예훈은 자신을 괴롭히듯 끔찍하게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을 하나씩 끝까지 읽었다. 그 안에서 혹시 임초이와 관련된 단서가 있을까 찾았다.아침부터 밤까지 몇 번이고 내려봤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절망만 더 깊어졌다.임상민 앞에서 서은경의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 고의였다.심예훈에게도 비겁한 기대가 조금 남아 있었다.임초이의 유일한 가족에게 큰일이 생기면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임초이는 오지 않았다.이제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임초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도저히 알지 못했다.심예훈은 SNS에 글을 몇 개 더 올렸다.[여보, 나중에 당신이 좋아하는 딸아이를 입양하자. 자기가 좋은 걸 가르쳐 주고 나는 마음껏 예뻐할게. 어때?][아이를 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남은 인생을 당신과 둘이 손잡고 늙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여보, 당신이 없는 하루하루가 나한테는 너무 괴로워.][...]작은 아기방은 심예훈을 가두는 감옥이 됐다.첫 글을 올린 뒤로 심예훈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렸다.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작은 가능성에 매달렸다.“잠깐만요, 서은경 씨!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밖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은경이 방으로 들이닥쳐 수납 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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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대표님?”심예훈은 봉투를 받아 들고도 한참 뒤에야 겨우 뜯었다.안에는 이혼신고 확정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심예훈은 임초이가 떠나던 날 아침 자신에게 서명하라고 내민 서류가 무엇이었는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외면해 온 현실이 결국 눈앞에 놓였고, 남아 있던 힘까지 무너뜨렸다.서은경은 이혼신고 확정 통지서를 보자 큰 소리로 웃었다.“임초이... 당신 버렸네. 다 당신 업보야! 앞으로 어떻게 망가지는지 두고 볼게!”심예훈은 서은경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통지서만 멍하니 바라봤다.서은경도 그 자리에 더 머물 이유가 없어 뒤돌아서 나갔다.심예훈과 만나게 해 준 그 얼굴은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저 사람이 서은경 아니야? 쫓겨난 것 같은데. 역시 불륜 상대는 끝이 좋을 수가 없네.”“아이도 잃었다던데. 다 자기가 한 일 돌려받은 거지.”“아기만 불쌍하지. 엄마를 잘못 만났어.”“...”그 말을 들은 서은경의 발이 멈췄다. 가슴 안쪽이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손이 저절로 배 위에 올라갔다. 아기는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서은경의 뱃속에 있었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올 기회조차 잃었다.서은경은 핸드폰을 꺼내 임초이와의 대화창을 열었다.대화 기록은 전부 지워 버렸지만 임초이에게 보냈던 메시지 하나하나가 다시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지난 1년은 깨지지 않는 악몽처럼 느껴졌다.그 악몽 속의 서은경은 모질고 악독했으며, 스스로 봐도 혐오스러운 사람이었다.서은경은 한 마디를 입력했다.[미안해요.]답은 오지 않았다.이제 와 잘못을 깨달아도 돌아갈 기회는 없었다.서은경은 길가에 쪼그려 앉아 참지 못하고 크게 울었다....아기방 안.심예훈은 이혼신고 수리 통지서를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서류 안에 임초이와 심예훈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 지금 두 사람 사이에서 남은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심예훈은 매일 공개 SNS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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