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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여섯 번의 기다림 끝에: Chapter 21 - Chapter 29

29 Chapters

제21화

임초이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세계 곳곳을 두루 여행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하지만 부모님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그 꿈을 19년 동안 가슴 속에 접어 두고 살았다.오히려 모든 걸 버리고 떠난 뒤에야 잊었던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떠난 첫 달, 임초이는 오래전부터 가장 가 보고 싶었던 낯선 도시에서 몸을 회복하며 쉬었다.그곳에서 대학 선배 이태준도 우연히 다시 만났다.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몸까지 약해진 임초이에게 이태준은 한 달 동안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임초이는 감정 변화에 민감했다. 이태준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단순한 선후배 이상의 의미를 담기 시작한 걸 깨닫자, 그 도시를 떠나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5년의 결혼 생활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임초이는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심예훈이 온라인에 매일 올리는 사과문은 일부러 보지 않아도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대화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날에도 옆 테이블의 두 여자가 또 심예훈 이야기를 꺼냈다.“심예훈이 이제 자기 잘못까지 들춰서 전부 온라인에 올리잖아. 사람들이 욕하든 말든 다 공개하고.”“외도는 당연히 잘못했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 못 할 일도 아닌 것 같아.”“아내가 첫 아이 잃은 건 심예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잖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가족들 압박도 심했다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아내한테 진짜 잘했대.”“결국 문제는 아내가 알게 됐다는 거 아니야? 몰랐으면 계속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난 결국 아내가 마음 약해져서 용서할 것 같아. 심예훈보다 더 잘해 줄 남자 찾기도 쉽지 않잖아.”“...”임초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먹던 면 요리의 마지막 한 가닥까지 다 꼭꼭 씹어 삼켰다.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마침 두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은 임초이를 알아본 듯 말을 꺼낼지 말지 망설였다.임초이가 먼저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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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비행기가 도착했다.사진 속 식당으로 가는 내내 심예훈의 기쁨은 점점 커졌다.하지만 막상 식당 입구에 서자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이미 3개월이 지났다.‘내가 매일 올린 사과와 약속도 봤겠지. 이제 화가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그동안 들어온 제보는 전부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뿐이었다. 임초이의 사진과 정확한 위치가 함께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날 용서할 마음이 생겨서 이런 기회를 준 거야.’‘분명 그럴 거야.’두 사람은 오랫동안 사랑했다. 임초이는 누구보다 마음이 약하니 심예훈을 완전히 버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심예훈은 임초이가 떠날 때 보였던 단호한 태도를 애써 외면하며 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그제야 멀리서부터 직접 가져온 새우만두 상자를 보물처럼 품에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사장에게 보여 줬다.임초이가 숙소에서 받은 식사권으로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심예훈은 돈을 주고 그 식사권 정보를 확인한 뒤 급히 해당 숙소로 향했다.그 숙소는 지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살린 작은 숙박 시설이었다.입구에는 손으로 만든 구슬을 꿴 발이 걸려 있었고, 나른한 오후 햇살이 구슬 사이를 통과해 바닥 위에 부드러운 빛무늬를 흔들어 놓았다.그제야 심예훈은 결혼 전 임초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여러 도시를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고 했었다.심예훈도 주말과 휴가 때마다 함께 여행하자고 약속했다.그 약속을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괜찮아. 내가 빚진 건 남은 평생 갚으면 돼.’숙소 안까지 들어갔던 심예훈은 다시 밖으로 나가 맞은편 꽃집에서 보랏빛 장미 한 다발을 골랐다.임초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그중 꼭 말하고 싶은 것 하나는 이제 다시는 임초이가 좋아하는 색을 틀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위층에 올라간 뒤에야 품에 안고 있던 새우만두 상자도 꺼냈다.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심예훈은 마음이 앞서 빠르게 다가갔다.“여보, 당신이 좋아하는 새우만두 가져왔어. 오는 길이 길어서 다 식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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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하지만 심예훈의 눈에 들어온 건 여행 가방을 끌고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의 뒷모습뿐이었다.심예훈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낯선 곳의 공항에서 체면도 잊은 채 몇 번이고 ‘임초이’를 크게 불렀다.거의 공항 전체를 뛰어다닌 뒤에야 한 사람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그분... 30분 전까지 여기 앉아 있었어요. 지금은 비행기도 이미 출발했을걸요.”“아까 들어올 때 그분이 쳐다보기도 했는데 정말 아는 사이예요? 그렇게 크게 이름을 불렀는데 왜 대답도 안 했을까?”심예훈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었다.겨우 30분 차이였다.조금만 빨랐으면 만날 수 있었는데 또 손끝에서 놓쳤다.심예훈의 온몸은 뛰어다닌 탓에 땀으로 젖었지만 마음은 얼음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임초이는 심예훈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직접 보고도 그 짧은 거리를 건너와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심예훈은 분명하게 깨달았다.사진 속 단서는 임초이가 준 기회가 아니었다.임초이는 다시 심예훈과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연인끼리 크게 싸운 거예요? 보니까 본인이 엄청 잘못했나 본데.”넋이 빠진 심예훈을 본 여행객은 안쓰러운 듯 한마디 더 건넸다.“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또 모르잖아요. 조금 더 노력하면 다시 마음이 풀릴 수도 있고요.”‘이제... 내가 사과한다고 해서 돌아올 사람이 아니야.’심예훈은 목 안쪽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고맙습니다. 제 아내예요. 꼭 다시 찾을 겁니다.”...다음 날.임초이는 비행기에서 내려 핸드폰을 켜자마자 또 심예훈 관련 인기 검색어를 보게 됐다.[심예훈, 전처 찾아갔지만 또 엇갈려]맨 위에 올라온 사진에는 임초이의 뒷모습과 조금 떨어진 곳의 심예훈이 함께 담겨 있었다.임초이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해당 주제를 다시 ‘관심 없음’으로 설정한 뒤 화면을 껐다.정말 지긋지긋했다.이미 관계를 끝냈다는 뜻을 충분히 보여줬는데도 심예훈은 계속 따라붙었다.임초이는 여행 가방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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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전화기 너머는 조용했다.심예훈은 더 조심스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당신을 속이면 안 됐어. 서은경과는 이제 아무 관계도 없어. 그 아이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어.”“여보,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나는 정말 당신 없이는 못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어떤 대가든 다 치를게.”끝까지 대답은 없었다.“여보, 제발 끊지...”심예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끊어졌다.당황해 곧바로 다시 걸었지만 이미 번호가 차단된 뒤였다.끝없는 절망이 심예훈을 짓눌러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마침 어머니 채영숙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어머니, 제발... 그 사람을 다시 찾아주실 수 있어요? 저 정말... 너무 보고 싶은데 그 사람이 제 전화를 안 받아요.”채영숙도 목이 메었다. 늘 자존심이 강했던 아들이었다. 정말 막다른 곳까지 몰리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이렇게까지 부탁할 사람이 아니었다.[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니? 엄마가 부탁할게. 이제 초이 찾는 걸 멈추고 돌아와서 네 삶을 살아. 지나간 일은 좀 내려놓자.]“못 놔요. 진짜 못 놔요.”한동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전화기 너머로 참지 못한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던 채영숙도 눈가가 붉어졌다.‘내가 처음부터 그런 짓만 하지 않았어도 얼마나 좋았을까?’그랬다면 심예훈과 임초이는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고, 첫 손주도 지금쯤이면 네 살이 됐을 것이다.[엄마가 계속 찾아볼게.]하지만 수많은 사람 속에서 한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임초이는 일부러 발견되지 않으려고 피했다....또 한 달이 흘렀다.심예훈은 번번이 임초이와 엇갈렸고 몸 상태까지 계속 나빠져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임초이는 심예훈 관련 소식이 뜰 때마다 몇 번이나 ‘관심 없음’으로 설정한 끝에 더는 핸드폰에서 그 이름을 볼 일이 없어졌다.여행에만 집중하며 이태준과 함께 두 곳의 먼 지역을 더 돌아봤다.어느 날 밤,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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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그쪽이 잊은 것 같은데, 난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줬어. 본인이 한 번도 제대로 잡지 못했을 뿐이야.”심예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보, 나 정말 잘못한 거 알아.]“그래서?”임초이가 짧게 웃었다. “우리 두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어? 서은경과 잤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고?”“내가 떠난 날부터 다시 돌아갈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나는 그쪽이... 역겨워.”임초이는 채영숙을 바라봤다.“5분 지났어요. 먼저 갈게요.”[안 돼... 그러지 마. 우리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긴데... 당신은 나한테...]임초이는 문을 나섰다. 울음이 섞인 심예훈의 애원은 방 안에 남겨졌다.채영숙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훈아, 초이가 나갔어.”그 한마디는 심예훈에게 사형선고처럼 들렸다.심예훈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팔에서 뽑혀 나온 링거 바늘 자리에 피가 튀었지만 아픈 줄도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이미 몸은 한계를 넘긴 상태였다. 몇 걸음도 못 가 바닥에 털썩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심예훈이 다시 깨어난 뒤에는 의료진의 권고도 무시하고 퇴원해 또 아기방에 자신을 가뒀다.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남은 물건들만 지켰다.밤이 되자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당장 나...”고개를 든 심예훈은 다음 말도 잊고 뛰어갔다. 잃었던 것을 되찾은 듯한 기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방으로 들어온 젊은 여자를 세게 끌어안았다.“여보, 나 용서해 주려고 온 거지? 나 당신을 정말 오래 찾았어. 매번 조금만 더 가면 만날 수 있었는데 계속 못 찾았어.”“새우만두도 샀어. 우리 같이 조금만 먹자.”여자는 새우만두 상자를 열어 하나를 심예훈의 입가로 가져갔다.심예훈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렸다. 여자는 두 번째 것도 내밀었다.“좀 더 먹어. 이렇게 마른 모습 보면 마음 아파.”심예훈은 넋을 잃고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정말 닮았어.’서은경보다도 임초이와 더 비슷했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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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싫어. 나는... 그쪽이 더러워.”심예훈은 숨을 크게 들이켜며 잠에서 깼다. 곧바로 욕실로 뛰어 들어가 몸을 몇 번이고 씻었다.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세게 문질렀다.눈에는 핏발이 가득했고 입에서는 같은 말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여보, 나 다 씻었어. 이제 안 더러워. 정말 깨끗해졌어.”“먹은 것도 다 토했어. 제발 나 싫어하지 마. 다시는 아무도 여기 못 오게 할게.”심예훈은 30분이 넘어서야 욕실 밖으로 나왔다.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심예훈이 막았다.“들어오지 마세요. 그 사람이 어머니 싫어해요. 제가 여기 남은 물건들 잘 지켜야 해요. 다시는 그 사람 마음 아프게 할 수 없어요.”채영숙은 절망했지만 억지로 들어가지는 않고 문 앞 바닥에 앉았다.“내가 널 못 막겠으면 여기서 같이 있을게. 네가 이러고 있는데 엄마도 편할 수는 없잖아.”“예훈아, 네가 이러는 게 차라리 엄마를 죽이는 것보다 더 괴롭다. 대체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겠니?”심예훈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어머니,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정말 저를 버렸다고 해도 직접 듣고 싶어요. 그 사람 입으로 듣지 않으면 저는 못 놔요.”채영숙은 목 안쪽이 꽉 막혔다.‘직접 만나면 정말 놓을 수 있을까?’“찾아볼게.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만나러 갈 수는 없어. 엄마가 아래에서 뭐라도 만들어 올 테니까 조금 먹자.”임초이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이 나오자 심예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네...”...바다 건너 먼 곳.“여기.”울퉁불퉁한 골목길 앞에서 이태준이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임초이는 2초쯤 망설이다가 그 손을 잡았다.이태준과 함께 여행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임초이가 미리 짜 둔 일정대로 움직였지만 나중에는 아예 이태준에게 길을 맡기게 됐다.임초이가 가려고 계획했던 곳들은 이태준이 이미 한 번쯤 다녀온 곳처럼 느껴졌다.실제로 갈 만한 곳이면 이태준이 직접 데려갔다.기대보다 별로인 곳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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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임초이는 입술을 가볍게 다물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먼저 몇 걸음 나간 이태준이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 있어?”임초이는 핸드폰을 넣고 이태준을 따라갔다.두 사람이 예약한 방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임초이는 자기 방문을 열고도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선배.”“잠깐 들어올래요?”임초이는 몸을 돌려 이태준을 바라봤다. “아니, 내 말은... 우리 한번 만나 볼래요?”이태준이 멍해진 사이 임초이의 뜨거워졌던 머리가 조금 식었다.임초이가 다시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이태준이 먼저 대답했다.“좋아.”이태준은 성큼 다가왔고 뒤에서 방문이 닫혔다.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태준이 임초이를 벽과 자기 몸 사이에 가두듯 가까이 섰다. 눈빛은 뜨겁게 흔들렸다.“계속해도 돼?”낮게 잠긴 목소리에 임초이의 귓불이 붉어졌다. 긴장으로 가슴이 빠르게 뛰었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네...”이태준이 낮게 웃으며 두 손으로 임초이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처음에는 가볍게 닿았던 입맞춤이 어느새 깊고 뜨겁게 변했다.그 뒤로는 둘 중 누구도 감정을 멈추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임초이는 이태준의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반쯤 잠든 채 전화받고 통화하던 이태준도 곧 정신을 완전히 차렸다.임초이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조금 들을 수 있었다.가족이 이태준에게 돌아와 맞선을 보라는 내용이었다.“누나, 전에 말했잖아. 나 맞선 안 봐.”이태준은 급히 전화를 끊고 불안한 얼굴로 임초이를 바라봤다.“가족들이 내 결혼을 많이 걱정해서 예전부터 소개 자리를 여러 번 잡았어. 첫 번째는 무슨 자리인지 모르고 갔던 거고, 그 뒤에는 한 번도 나간 적 없어. 오해하지 마.”하지만 임초이는 이미 완전히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이태준의 말을 믿었다.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마음도 믿었다.다만 임초이는 이번에는 조금 이기적으로 살고 싶었다. 두 번 다시 채영숙 같은 시어머니를 상대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삶에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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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임초이의 담담한 한마디에 심예훈의 눈이 또 붉어졌다.“우리 그렇게 오래 함께했잖아.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돼?”“그래. 용서해 줄게.”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심예훈은 잠깐 굳었다. 곧 눈에 환한 빛이 번졌다.“대신 앞으로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도 받아들여. 너랑 같이 있을 때 그 남자랑 메시지를 주고받고, SNS 게시물마다 ‘좋아요’도 누를 거야.”“네가 잠들면 몰래 나가서 그 남자와 밤을 보낼 수도 있어.”“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너한테 같이 키우자고 할 수도 있고.”임초이가 한마디를 덧붙일 때마다 심예훈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말로 듣는 것만으로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받아들일 수 있어?”심예훈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못 해...”“그러니까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용서하라고 해?”“내 사랑을 원했다면 너도 똑같은 믿음과 충실함으로 돌려줬어야지. 그러지 못한 때부터 넌 자격을 잃었어.”임초이는 울음을 삼키지 못하는 심예훈을 차갑게 바라봤다.“넌 좋은 남편도 못 됐고 좋은 아버지도 못 됐어. 지금 네가 되돌릴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적어도 좋은 아들로 살아.”“그것마저 못 하면 정말 널 사람으로 보지 않을 거야.”“이혼하면서 내가 가져간 건 법적으로 내가 받을 몫이야. 불만이 있으면 소송해. 그 외에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두 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임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나갔다.뒤에서 심예훈이 무너져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제는 임초이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임초이는 채영숙의 번호까지 차단한 뒤, 그 집안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일은 마침내 임초이의 삶에서 사라졌다.한때 모두가 부러워했던 연상연하 부부의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화제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임초이는 새 집을 마련해 필요한 짐만 들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한 달 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임초이의 집 문을 두드렸다.이태준의 누나 이태라였다.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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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은 아니겠지?’하지만 정말 그 뜻이었다.임초이는 평소 차분하고 다정한 이태준이 이렇게 많은 방법을 정리해 두고 자신이 다른 남자를 보게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는 사실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어이없어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던 임초이의 시선이 한 문장에서 멈췄다.[아니, 역시 하지 말자. 초이가 상처받을 거야.]임초이의 심장이 한 박자 놓친 듯 크게 뛰었다.“솔직히 저도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임초이 씨보다 더 놀랐어요.”이태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더니... 가족들은 얘가 좀 이상한 거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니까요...”임초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래도 하나는 확실해요. 태준이는 임초이 씨한테 제대로 빠졌어요. 벌써 12년이에요. 우리도 포기하게 해 보려고 별짓 다 했는데 절대 안 되더라고요.”“임초이 씨, 그날 아침 제가 전화한 건 정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줄 몰라서 그랬어요. 미안해요.”“이런 동생을 키워서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조금만 너그럽게 봐 주세요. 적어도 싫어하지만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임초이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이태준의 누나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이 노트 두 권,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이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초이는 두 권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가는 길에 이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내 만나자고 했다.집 근처 약국 앞을 지나던 임초이는 발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생리 주기는 늘 정확한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보름이나 늦어지고 있었다.집에 도착한 임초이는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3분 뒤 결과가 나왔다. 선명한 두 줄을 본 임초이는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졌다.마치 하늘도 임초이가 그동안 겪은 일을 알고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보내 준 것 같았다.초인종이 울렸다.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자 예상대로 이태준이 서 있었다.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땀으로 젖어 있었다.“초이야,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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