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ício / 달빛 아래 끝난 인연 / Capítulo 11 - Capítulo 20

Todos os capítulos de 달빛 아래 끝난 인연: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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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사흘 밤낮.하윤성은 단 한순간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채 경성 곳곳을 뒤졌다.그의 눈에는 핏발이 가득했고, 턱에는 어느새 거뭇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늘 흐트러짐 하나 없던 관복은 구겨진 채 몸에 붙어 있었고, 평소의 냉정하고 고고한 승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서하영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결국 나흘째 아침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승상부로 돌아온 하윤성은 말 한마디 없이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고, 누구도 들이지 못하게 했다.홀로 남은 서재 안에는 아직 서하영의 은은한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그는 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대고 앉아 화리서를 손에 꼭 쥐었다.서찰 위에 남은 마른 핏자국은 어느새 검붉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마치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그때 서재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고예진이 인삼탕이 담긴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초췌하기 짝이 없는 하윤성을 바라보며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다정한 얼굴로 다가갔다. “윤성 오라버니.”그녀는 탁자 위에 인삼탕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사흘이나 눈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라도 드시고 잠시 쉬십시오.”하지만 하윤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고예진은 그의 뒤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관자놀이를 눌러 주며 부드럽게 달랬다. “윤성 오라버니, 그러지 마십시오... 그녀가 떠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그녀는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께서 권세로 억지로 혼인을 밀어붙이지만 않았어도, 지금 오라버니 곁에는 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 그녀가 스스로 떠났으니 우리 사이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오라버니께서 바라시던 일이 아니었습니까? 이제야 비로소 평생 서로만을 바라보는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평생 서로만을 바라본다?하윤성은 멍하니 그 말을 되새겼다.‘그래. 이것이야말로 한때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이었어.’‘고예진과 혼인하고,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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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문을 열자, 방 안의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침상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화장대 위에는 그녀가 늘 사용하던 빗과 연지, 분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창가에 놓인 난초 화분은 며칠 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방 안에는 아직도 그녀가 남긴 은은하고 따뜻한 향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하윤성은 천천히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그곳에는 백옥 비녀 하나가 놓여 있었다.그것은 몇 년 전, 그가 무심코 그녀에게 내려 준 것이었다. 그리 값진 물건도 아니었지만, 서하영은 마치 보물처럼 아꼈다그리고 그것을 늘 머리에 꽂고 다녔다.비녀 아래에는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하윤성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종이 위에는 몇 년 전 그가 글씨 연습을 하다 무심코 적은 시 한 구절이 있었다.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 버렸던 것이었다.자신에게는 버려진 종이에 불과했지만, 서하영은 어느새 그것을 몰래 주워 와 반듯하게 펴고 곱게 눌러 두었다.그리고 마치 소중한 물건처럼 보관하고 있었다.종이 가장자리가 닳아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자주 꺼내 손으로 매만졌던 모양이었다.하윤성은 한참 동안 그 종이와 백옥 비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러자 가슴 한구석의 빈틈이 더욱 벌어지는 듯했다. 마치 뚫린 자리로 찬바람이 몰아쳐 들어오는 것처럼, 그 고통에 오장육부가 뒤틀렸다.그는 비녀와 종이를 세게 움켜쥐었다.차가운 옥과 종이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지금 가슴속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사흘 뒤, 취선루(醉仙樓)의 별실.하윤성은 벗인 정제윤에게 억지로 이끌려 나오다시피 했다.연일 술로 시름을 달랜 하윤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눈가는 움푹 들어갔고, 턱에는 정리하지 못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몸에는 아직도 술 냄새가 배어 있었다.평소 냉정하고 단정했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정제윤은 그런 하윤성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그의 잔에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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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네가 그 아이를 연모한다고?”정제윤은 헛웃음을 지었다.그리고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 차갑게 말을 이었다.“네 마음에는 고예진뿐이라 했느냐? 헌데 지난 5년 동안 네가 남몰래 그 아이와 만난 것은 고작 세 차례뿐이었다. 그것도 매번 반 시진을 넘기지 않았고, 만나서 나눈 이야기라곤 시문과 풍월에 관한 시답잖은 이야기뿐이었지. 허나 서하영이은 달랐다. 그녀는 매일 네 곁에 있었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드는 밤까지, 같은 처마 아래에서 너와 하루를 함께했다. 네가 병이 들었을 때는 밤낮으로 자리를 지키며 직접 탕약을 맛보았고, 네가 정적들에게 몰려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친정으로 돌아가 부친에게 무릎 꿇어 너를 도와 달라 청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즐겨 마시는 차가 무엇인지, 글을 쓸 때 어떤 먹을 쓰는지, 밤늦도록 책을 읽을 때 등불을 어디에 두어야 눈이 상하지 않는지...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도 그녀는 모두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네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말이다.”정제윤은 하윤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윤성아, 사람 마음은 결국 정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오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천팔백이 넘는 밤낮을 함께했으면, 하다못해 곁에 둔 짐승에게도 정이 생긴다. 하물며... 너를 향해 모든 것을 내어준 여인이 아니더냐? 자신의 마음도, 기다림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모두 너에게 바쳤다. 그런 여인을 두고 네가 정녕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정녕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하윤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굳었다.떨리는 입술 사이로 반박의 말이 나오려 했지만, 아무것도 내뱉지 못했다.순간 그동안 일부러 외면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손등에 데인 상처를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모습, 밤이 깊도록 향낭을 수놓던 진지한 옆모습, 자신을 몰래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붉어진 얼굴과 급히 피하던 눈길...그 모든 순간들이 마치 파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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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윤성은 비틀거리며 침상에서 내려와, 옆방에 있는 서하영의 침실로 달려갔다.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화장대 위에는 그녀가 늘 사용하던 청동 거울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하윤성은 비틀거리며 그 앞으로 다가가 거울을 집어 들었다.거울 속에는 비친 그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눈가는 깊게 꺼졌고, 턱에는 거칠게 자란 수염이 올라와 있었다.그곳에 비친 사람은 더 이상 평소의 단정하고 고고한 승상 대인이라 불리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하윤성은 문득 지난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그는 늘 서안 앞에 앉아 공문을 살폈다.그러다 가끔 고개를 들면, 화장대 위 동경에 비친 모습 너머로 창밖 회랑 아래에 서 있는 서하영이 보였다.그녀는 늘 그곳에 조용히 서서 몰래 자신을 훔쳐보고 있었다.그러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치 놀란 사슴처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새빨개진 귓가를 감추지도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피하곤 했다.그때의 그는 그저 귀찮다고만 생각했다.그녀가 예의를 모르고, 여인으로서 지켜야 할 몸가짐을 모른다고 여겼다.심지어 한 번은 그가 짜증이 나 공문을 내려놓고, 창밖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뭘 보고 있느냐?”그 말에 그녀는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그리고 놀란 얼굴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소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렇게 그녀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과 붉게 물든 눈가를 보며, 하윤성은 문득 마음 한구석에 아주 희미한 이질감을 느꼈다.“쨍그랑!”떨리는 손끝에서 거울이 그만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거울 표면에는 가느다란 금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갔다.깨진 틈 사이로 비친 하윤성의 얼굴은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후회와 고통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하윤성은 화장대를 붙잡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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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아직 처리해야 할 공문이 남아 있으니, 먼저 식사하거라.” 하윤성은 고예진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흐트러진 걸음으로 황급히 문밖으로 향했다.하윤성은 도망치듯 서재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가운 문에 등을 기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그는 서하영을 연모하지 않는다. 어찌 자신이 그녀를 연모할 수 있단 말인가?’‘그저...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매일 조정에서 돌아오면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벗어 둔 외투를 받아 주던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깊은 밤 서재에서, 그녀가 조용히 가져다주던 따뜻한 국 한 그릇이 없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을 몰래 지켜보다 눈이 마주치면 서둘러 숨어 버리던 작은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승상부 어디에서도 그녀의 향기와 목소리, 조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그래,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늘 쓰던 낡은 물건을 갑자기 잃어버리면 누구나 잠시 불편함을 느끼는 법이다.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익숙해질 것이다.’‘그는 천천히 그녀를 잊고, 다시 고예진과 예전처럼 서로 아끼며 백년해로할 것이다.’하윤성은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는 빈자리가 더는 퍼지지 않을 것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갉아먹는 후회와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해질 것처럼.그는 서안 앞에 앉아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공문 하나를 집어 들고 집중하려 애썼지만, 그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서안 한쪽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원래 서하영이 선물했던 청색의 필세(筆洗)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주 평범한 도자기였지만, 그녀는 그 색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그때 그는 무심히 한쪽에 놓아둔 뒤 여태 한 번도 쓰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필세가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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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하윤성은 숨을 죽인 채 밀봉된 밀서를 뜯어 열었다.첫 번째 서찰.[서하영은 변방 군영에 도착해 아버지 서영배와 재회했습니다.]두 번째 서찰.[서하영은 아직 중상이 다 낫지 않았음에도 군의처 일을 거들며 부상병들을 돌보고 돌보고 있습니다.또한 전장에 함께 온 서 의원 곁에서 의술을 익히고 있는데, 워낙 재능이 뛰어나 실력이 빠르게 늘어 이미 간단한 외상은 직접 처치할 수 있습니다.]이어서 세 번째 밀서에 시선이 닿자 하윤성의 손가락에 순간 힘이 들어갔고, 손에 들린 종이는 그대로 구겨져 버렸다.[박문수는 스물여섯 살로,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가문 출신입니다. 본래라면 집안의 덕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으나, 스스로 군에 들어가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부장군까지 올랐습니다.또한 아직 혼인하지 않았습니다.평소 군의처를 자주 오가며 부상병을 옮기고 약재를 정리하는 일을 거들고 있으며, 서하영을 극진히 보살피고 여러 차례 그녀를 감싸 주고 있습니다.]박문수!키가 크고 늠름하며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은 장수의 모습이 순식간에 하윤성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박문수라는 사내가 어떻게 서하영의 곁을 맴돌고, 어떻게 그녀를 살뜰히 챙기며, 자신이 한 번도 그녀에게 건넨 적 없는 다정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지...순간 가슴이 세차게 조여 왔다.마치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숨이 막혔다.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고, 그의 눈은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서하영은 아직 내 부인이야! 헌데 어찌 다른 사내와 가까이 지낸단 말인가?!’하지만 다음 순간,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윤성은 피로 얼룩진 그 화리서를 떠올렸다.철정형을 견뎌 낸 그녀는 법도상 이미 자유로운 몸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부인이 아니었다.“쨍그랑!”하윤성은 서안 위의 찻잔을 거칠게 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산산이 부서진 도자기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쏟아진 찻물이 바닥을 적신 채 그의 옷자락까지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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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서재 안에는 하윤성 혼자만 남았다.그는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차가운 서안에 등을 기대고 앉아, 바닥에 흩어진 도자기 조각과 찻자국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한참이 지나자, 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일어나 상자와 궤짝을 닥치는 대로 뒤지기 시작했다.그는 이 방에, 아니 이 승상부에 남겨진 서하영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찾아냈다.처음 손에 들어온 것은 흰 적삼 한 벌, 소매 끝에는 자그마한 푸른 죽순이 수놓아져 있었다.그녀가 막 시집왔을 때, 몰래 그에게 만들어 주려고 바느질을 배워 지은 것이었다. 서툰 솜씨 탓에 바느질은 삐뚤빼뚤했고, 그는 단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았다.그다음은 가지런히 묶인 필사 시집이었다.단정하고 고운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한때 자신이 우연히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고, 서하영이 몰래 시집 한 권을 모두 베껴 쓴 것이었다.하지만 하윤성은 그 책을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았다.이어서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나무 상자 하나였다.그 안에는 그가 글씨를 연습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렇게나 구겨 버렸던 종이뭉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언제 주워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구겨진 종이를 조심스럽게 펴서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그리고... 금이 간 청동 거울.하윤성은 떨리는 손으로 청동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거울을 뒤집었다.그곳에는 그녀의 단정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원컨대 나는 별이 되고 그대는 달이 되어, 밤마다 서로의 빛으로 찬란히 비추기를.”나는 별이 되고 그대는 달이 되어...밤마다 서로의 빛으로 찬란히 비추기를...하윤성은 손끝으로 그 글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차갑기만 해야 할 감촉이 이상할 만큼 뜨겁게 느껴져 손끝이 떨렸다.순간, 그는 문득 떠올렸다.지난해 칠석날.그날 궁중 연회가 있었다.그는 밤늦게 되어서야 승상부로 돌아왔다. 하지만 서하영은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자신이 돌아오자 그녀의 눈빛이 순간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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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고요한 어서방,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하윤성의 거친 숨소리와 억눌린 흐느낌뿐이었다.한참 뒤 황제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에는 기쁨도 노여움도 드러나지 않았다.“되었다. 최근 변방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적 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니, 네가 그토록 변방을 걱정한다면 짐이 한 번의 기회를 내려주겠다.”하윤성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꺼져 가던 그의 눈빛에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황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짐은 너를 흠차(欽差)로 임명하여 북쪽 변방을 순시하고, 군무의 실정을 점검하며 백성들의 형편 또한 살피도록 하라. 허나... 승상, 네가 사사로운 일로 공무를 그르치고 중요한 일을 지체한다면 짐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느냐?”하윤성의 눈에 순간 한 줄기 빛이 스쳤다. 그는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만큼은 분명했다.“신 하윤성,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의 성은에 망극하옵니다! 신은 반드시 폐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사옵니다. 또한... 반드시 부인을 찾아 데려오겠사옵니다!”한 달 후, 북쪽 변방의 수비군 군영.하윤성은 밤낮없이 길을 재촉한 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마침내 늦가을에 변방에 도착했다.변방의 바람은 이미 매서운 한기를 품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마치 칼날에 베이는 듯했다.흠차가 도착한다는 소식에 서영배는 휘하 장수들과 함께 군영 앞에 나와 맞이했다.몇 달 사이, 한때 변방을 호령하던 노장군의 귀밑머리에는 서리가 더욱 짙게 내려앉았고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등은 여전히 곧게 펴져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장창처럼 변함없이 굳건했다.말에서 내린 하윤성을 본 서영배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는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소장 서영배, 흠차 대인을 뵙습니다.”“장인어른...”하윤성이 급히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지만, 서영배는 곧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승상 대인, 함부로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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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하윤성은 비틀거리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서영배를 향해서, 그리고 군의처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머리를 거듭 바닥에 조아렸다. 거친 모래와 자갈이 이마를 짓눌렀고, 그의 목소리는 처참하게 갈라져 있었다.“서 장군...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전 짐승만도 못한 놈입니다... 부디, 부디 하영이를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겠습니다. 목숨으로라도 갚을 생각이니 제발 부탁드립니다...”서영배는 등을 돌린 채 더 이상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썩 물러가게. 내 딸은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네. 자네가 고예진을 택하고 내 딸을 버린 그 순간부터, 자네는 이미 내 딸의 마음속에서 죽은 사람이야.”하윤성의 가슴이 칼로 찢기는 듯,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면 자신이 저지른 죄의 만분의 일이라도 씻어낼 수 있을 것처럼.그때, 한 여인의 차분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갑고 맑은 음성이 얼어붙은 듯한 분위기를 단숨에 깨뜨렸다.“아버지, 들여보내십시오.”하윤성은 온몸을 흠칫 떨며 급히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서하영이 곁에 있던 군의관 천막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원래도 가녀린 체구였지만, 지금은 더욱 여위고 힘없이 보여 마치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았다.게다가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한 사람처럼 얼굴빛은 창백했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고, 눈빛은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었다.더는 예전처럼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속에 조심스러운 기대와 반짝이는 빛이 담겨 있지 않았다.그녀는 변방 여인들이 흔히 입는 거친 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여러 번 빨아 색이 조금 바랜 옷이었고, 소매는 걷어 올려져 있었으며, 손에는 약재를 찧다가 남은 푸른빛 풀즙이 묻어 있었다.긴 머리는 가장 평범한 나무 비녀 하나로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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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서하영이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하윤성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온몸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헌데 이제 와서...”서하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순간, 그녀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하지만 그것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미련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깨달은 뒤 찾아온 씁쓸함과, 너무 오랜 시간 버텨 온 끝에 남은 깊은 피로였다.“저를 연모한다고 하시는 겁니까?”그녀는 아주 옅게 웃었다. 그 미소는 너무 창백하고 허무해서, 금방이라도 바람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허나 제 사랑은 이미 당신이 몇 번이고 보여준 차가움과 의심, 버림과 상처 속에서 조금씩 닳아 없어졌습니다. 다 소진되었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이곳의 모든 것, 그리고 눈앞의 이 사내까지도 그녀에게는 그저 숨 막히는 존재와도 같았다.“하영아!”하윤성은 다급히 앞으로 달려 들어온 힘을 다해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마치 의지할 곳 없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가지 말거라! 한 번만 더 기회를 다오! 제발 한 번만! 맹세하마. 남은 생을 다 바쳐 너에게 잘하겠다. 네가 겪은 고통을 모두 갚아주겠다. 예전보다 천 배, 만 배 더 잘하겠다... 부탁이다, 하영아. 내가 부탁한다... 네가 없으면 나는 죽는다...”서하영은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붙잡은 채로 두었다.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아득한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했다. 목소리는 담담하기만 했지만, 그 안에는 단호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하윤성, 놓으십시오.”“싫다! 죽어도 놓지 않겠다!”하윤성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손을 놓는 순간, 그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그때였다.멀리서부터 한 사내의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영아, 네가 부탁한 상처약을 다 달여왔다. 서 의원께서 가져다드리라고 하셔서...”그러나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그의 목소리는 뚝 끊겼다.하윤성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핏발 선 눈이 날카로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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