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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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집 안 어디에도 심영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코끝을 맴돌던 익숙한 심영지의 체취마저 옅어져서, 이제는 오직 부석빈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몸을 돌려 심영지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뻗은 손은 늘 허공만 더듬었다. 흠칫 놀라면서 깨어난 부석빈은 텅 빈 옆자리를 보고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할 때도 습관처럼 내선 전화를 누르며 지시하곤 했다.“심영지, 들어와.”수화기 너머로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은 뒤에야 비로소 심영지가 이미 퇴사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신임 비서의 업무 능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커피를 내올 때면 늘 부석빈의 손이 가장 편하게 닿는 위치를 맞추지 못했다.마치 지금 망고 즙이 들어간 음식을 잘못 먹게 만들어서, 알레르기가 도져 피부가 가렵고 발진이 올라오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신임 비서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대, 대표님! 당장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덤덤하게 술잔을 내려놓은 부석빈이 비서를 따라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그때 연회장 입구에 나타난 익숙한 실루엣이 그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부석빈은 흠칫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심영지?”심영지 역시 자신이 이렇게 빨리 G시로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준호는 대학 시절 사업을 시작해 몇 번의 큰 기회를 잡았다. 이후 HS그룹은 빠르게 성장해서, 어느새 G시 재계의 신흥 강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게다가 HS그룹과 BH그룹은 놀랍게도 동종 업계였다.부석빈의 비서로 일하면서 심영지는 HS그룹과도 숱하게 부딪혔지만, 그 회사가 어릴 적 소꿉친구의 회사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향에서 한 달 가까이 쉬고 있을 무렵, 심영지의 경력을 높이 평가한 하준호가 먼저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하준호는 회사의 핵심 사업을 Z시로 이전할 계획이었다.그동안 심영지는 그를 따라 G시와 Z시를 오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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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부석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심영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비서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심영지는 그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준호를 따라 다시 사람들을 상대했다.병원에 도착한 부석빈은 곧바로 검사를 받고 약과 링거 처방을 받았다.제때 알레르기 약을 먹은 덕에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링거를 맞자 피부에 올라왔던 발진도 금세 가라앉았다.비서가 수납을 마치자, 부석빈은 곧바로 비서를 퇴근하게 했다.부석빈은 홀로 병실에 남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부석빈이 고개를 들자, 진미령이 허둥지둥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진미령은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석빈 씨, 알레르기 올라왔다며? 깜짝 놀랐잖아. 지금은 좀 어때?”부석빈은 그저 차가운 눈으로 진미령을 바라보았다. 그는 며칠째 진미령을 아예 상대하지도 않았다.지난 한 달 동안 진미령은 수시로 BH그룹에 드나들며 마치 안주인인 양 행동했다.비서실의 젊고 예쁜 여직원들은 어김없이 진미령의 표적이 됐다. 뒤에서 은근히 괴롭히고 협박하는 바람에, 결국 오래 근무한 여직원 두 명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일주일 전에는 몰래 부석빈을 미행하기까지 했다.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더니, 알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유혹하려 들었다.무엇보다 부석빈은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알아낸 상태였다.지금 눈앞에서 가식적으로 걱정하는 진미령을 보며, 부석빈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아파서 온 거야, 아니면 심영지가 돌아왔다는 소식 듣고 네 자리 뺏길까 봐 달려온 거야?”진미령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애써 억울하고 가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당연히 석빈 씨가 걱정돼서 왔지! 난 당신 약혼녀인데, 어떻게 내 진심을 의심할 수가 있어?”부석빈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심마저, 지난 한 달 동안 진미령이 벌인 온갖 일들 때문에 진작에 바닥난 지 오래였다.부석빈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진미령, 너도 잘 알다시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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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진미령은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가슴속에는 공포가 밀려왔다.전 남친과는 그저 가볍게 만나는 사이였을 뿐, 사실 그녀가 진심으로 좋아한 사람은 늘 부석빈이었다.하지만 부석빈은 예전부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부석빈의 곁에 있던 여자는 오직 심영지뿐이었기에, 그저 외로움을 달래려고 잠시 만났을 뿐이이라고 여겼다.그런데 하필 두 집안의 정략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덜컥 임신 사실을 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진미령은 몰래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우려고 했다.하지만 의사는 그녀가 특이 체질이라, 한 번 아이를 지우면 다시 임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다 출혈 위험도 크다고 경고했다.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석빈과 관계를 가진 뒤 아이를 그의 아이인 것처럼 꾸밀 생각이었다.하지만 부석빈은 진미령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이대로 시간만 끌다간 배가 점점 불러올 텐데...’초조해진 마음에 그만 부석빈이 자주 머무는 아파트로 몰래 숨어들었던 것이다.하지만 조급해진 진미령의 행동이 오히려 부석빈의 의심을 샀다.그 꼬투리를 잡은 부석빈이 그녀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낸 것이다.성큼성큼 멀어지는 부석빈의 뒷모습을 보며, 진미령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진미령은 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분노에 사무쳐서 소리쳤다.“부석빈, 나랑 파혼하고 다른 집안 아가씨랑 결혼하면, 그 여자는 깨끗할 줄 알아?”“아니면 심영지랑 결혼이라도 할 셈이야? 그런 볼품없는 집안의 여자를 당신네 부씨 가문에서 받아줄 것 같아?”“당신한테 어울리는 여자는 나 하나뿐이야!”하지만 부석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악을 쓰며 소리쳐도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주먹을 꽉 쥔 진미령은 이를 갈면서, 독기가 가득 서린 눈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심영지!”‘그 년이 돌아오자마자 일이 다 틀어졌어!’...심영지는 병원에서 벌어진 이 소동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온전히 하준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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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멍하니 하준호와 시선을 맞춘 심영지는 뒤늦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연회장은 두 사람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준호가 갑자기 웃으면서 물었다.“내려서 좀 걸을까?”심영지는 마침 술기운이 올라와서 답답하던 참이라,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준호는 곧바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차에서 내린 하준호는 심영지가 얇은 드레스만 입고 있는 것을 보자,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재킷에 감싸이자, 부석빈을 마주친 뒤 얼어붙었던 마음도 서서히 온기를 되찾았다.심영지가 먼저 입을 열고 설명했다.“부 대표는 알레르기 체질이라, 예전에 비서로 일할 때 가방에 항상 알레르기 약을 넣고 다니는 게 습관이었어.”“퇴사한 뒤 가방에서 약을 빼는 걸 깜빡했을 뿐이야, 일부러 그 사람 주려고 챙긴 건 아니야.”하준호는 손을 뻗어 심영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다 알아. HS그룹에 입사한 지 며칠 만에, 심 비서가 얼마나 유능하고 프로페셔널한 인물인지 새삼 느끼고 있는걸.” “부 대표가 사람을 놔준 덕분에 내가 횡재했지 뭐.”진짜 로또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너스레를 떠는 하준호를 보자, 심영지는 웃음을 터뜨렸다.하준호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면서 심영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크고 따뜻한 손이 감싸자 심영지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깍지를 끼고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절반쯤 걸었을 때, 하이힐을 신은 심영지의 뒤꿈치가 까져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하준호는 아예 그녀를 업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술기운이 오른 심영지는 자신도 모르게 부석빈과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하준호의 목에 팔을 감고 그의 넓고 단단한 등에 뺨을 기댄 채, 심영지는 씁쓸하게 과거를 털어놓았다.“부석빈 곁에 있던 몇 년 동안, 그 사람은 내게 많은 걸 보여줬고, 일도 많은 걸 가르쳐줬어.”“내 인생에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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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부석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심영지가 내뱉은 말을 곱씹듯 되뇌었다.“약혼자?”순간 울컥 치밀어 오른 분노에 헛웃음이 새어 나으면서, 그는 고개를 숙이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심영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손짓만 한 번 하면 다시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길고양이가, 성질까지 부리며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냈다.앙칼지게 덤벼들더니 기어이 상처까지 남겼다.부석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심영지를 바라보았다.“우리 사이의 일을 저기 저... 약혼자 앞에서 당당히 털어놓을 자신은 있어?”부석빈의 말투에는 묘한 장난기와 짙은 여운이 묻어났다. 늘 차갑던 얼굴에는 어느새 능글맞고 위험한 기색이 번졌다.심영지는 예전, 부석빈이 둘만 있을 때 얼마나 제멋대로였는지 떠올렸다.순간 등골을 스치는 위기감이 들었다.잠시 망설이던 심영지는 이내 미간을 짚으며 하준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먼저 들어가 있어.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게.”하준호가 부드럽게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심영지가 피식 웃었다.“걱정 마.”하준호는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부석빈을 힐끗 바라본 뒤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심영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준호는 그제야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오가는 믿음과 배려가 부석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하준호가 정말로 심영지의 약혼자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심영지를 향한 마음만큼은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저 멀리 서 있는 하준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부석빈은 이성을 잃은 채 독한 말을 내뱉었다.“그렇게 떨어지기 싫어? 이번엔 저 남자가 네 다음 목표라도 되는 건가?”“저놈은 네가 내 옆에서 7년이나 있었던 거, 내 아이를 가졌던 거, 지금의 네가 전부 내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고 있어?”“침대에서도 저 남자가 널 만족시켜 줄 수는 있고?”“그만해요!”심영지의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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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짝!적막을 깨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자, 순식간에 주위가 얼어붙었다.부석빈은 맞은 쪽 볼 안을 혀로 천천히 훑으며 고개를 들더니, 짙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심영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분노로 붉게 물든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들끓던 화는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부석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영지야, 난...”말을 채 꺼내기 전에 주먹 하나가 옆에서 날아들었다.퍽!주먹이 부석빈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멀리 가지 않았던 하준호가 부석빈이 심영지에게 억지로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자, 더는 참지 못한 채 달려온 것이었다.부석빈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틀거리며 물러섰고, 입가에는 금세 피가 배어 나왔다.하준호는 심영지를 감싸듯 자신의 뒤에 세우면서 물었다.“괜찮아?”심영지가 고개를 저었다.“응... 난 괜찮아.”심영지는 불안한 듯 하준호의 옷자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하준호는 언제나 침착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은 처음이었다.부석빈은 심영지 앞을 막아선 하준호를 노려보다가 차갑게 비웃었다.“죽고 싶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퍽-이번에는 하준호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준호 오빠!”심영지가 다급히 소리쳤다.하준호도 곧장 맞받아쳤다.두 사람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주먹을 주고받았다.주먹이 오갈 때마다 상처도 하나둘 늘어났다.심영지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두 사람을 말렸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결국 경비원들까지 달려오고 난 뒤에야 겨우 둘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언제나 빈틈없이 단정하던 부석빈의 얼굴 곳곳이 멍들고 부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늘 젠틀하고 단정하던 하준호 역시 넥타이가 비뚤어진 채,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심영지는 부석빈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하준호에게 달려갔다.주먹에 맞아 붉게 부어오른 하준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걱정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아플까 봐 차마 손을 대지도 못했다.“괜찮아?”하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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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부석빈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맞은 상처조차 잊고 있었다.그저 멍하니 심영지와 하준호가 맞잡은 손만 바라봤다.더 이상 애써 외면할 수도 없었다.심영지의 눈빛에는 흔들림 하나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7년이나 곁에서 지켜본 만큼, 그 눈빛이 진짜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심영지와 결혼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만큼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심영지는 더 이상 부석빈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준호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약 발라줄게.”두 사람은 옆집에 살고 있었다.하준호도 이제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심영지는 그를 소파에 앉힌 뒤 서둘러 구급상자를 찾아왔다.하준호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들자, 심영지는 조심스럽게 그의 상처에 약을 발랐다.잘생긴 얼굴 곳곳에 멍이 든 걸 보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준호 오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이거 다 가라앉으려면 며칠은 걸리겠네.”집에 들어온 뒤부터 말이 없던 하준호는 말없이 심영지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 약혼자가 다른 남자한테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걸 봤으니,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심영지가 멈칫하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하준호를 바라봤다.“미안해...”누구라도 그런 장면을 봤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심영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준호 오빠, 만약 오빠가 원한다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준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심영지는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앞으로 쏠렸다.두 손은 반사적으로 하준호의 가슴을 짚었고, 그대로 그의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순간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처음 만난 날부터 하준호는 언제나 다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항상 선을 지켰고, 단 한 번도 무리한 적이 없었다.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거침없이 다가오자, 심영지는 당황한 채 굳어 버렸다.하준호가 천천히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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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다음 날 아침.심영지는 하준호와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하준호는 어느새 두 사람 몫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심영지는 도시락을 받아 들면서도 괜히 그의 눈을 피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젯밤 마음을 확인하고 입을 맞춘 뒤부터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하준호는 그녀가 괜히 의식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그저 입가에 가볍게 미소만 머금었다.얼굴에는 아직도 멍 자국이 선명했지만 기분만큼은 한결 좋아 보였다.회사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업무에 집중했다.며칠 동안 부석빈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심영지도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얼마 뒤, 하준호를 따라 한 비즈니스 연회에 참석했을 때였다.행사장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미령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심영지는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진미령은 눈에 독기를 가득 품은 채 심영지에게 달려들었다.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번쩍 들더니 그대로 심영지의 얼굴을 향해 끼얹었다.“이 년이!”‘또 시작이네.’심영지는 진미령을 본 순간부터 혹시나 싶어 경계하고 있었다.술잔이 날아오는 걸 보자 곧바로 몸을 틀어 피하려고 했지만, 액체인 이상 아무리 피한다 해도 전부 피하기는 어려웠다.옷이 흠뻑 젖는 건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순간, 하준호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심영지를 자신의 뒤로 감싸 안듯 세우며 대신 막아섰다.촤악-와인이 그대로 하준호의 등에 쏟아지면서, 수제 맞춤 정장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심영지는 놀란 표정으로 하준호를 바라봤다.하준호는 가장 먼저 심영지부터 살폈다.“괜찮아?”심영지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순간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하준호는 혹시라도 와인이 묻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본 뒤에야 몸을 돌렸다.그리고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진미령을 노려봤다.“진미령 씨.”“제 약혼자와 저에게 이 일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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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부석빈의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살기까지 서려 있었다.진미령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었다.“석, 석빈 씨...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부석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말없이 옆에 놓인 와인잔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망설임 없이 다시 들이부었다.“꺄악!”진미령은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얼굴에 흐르는 와인을 닦아냈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석빈을 올려다봤다.부석빈은 싸늘한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어요?”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곁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부석빈이 차갑게 명령했다.“진미령 씨는 남한테 술 끼얹는 걸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본인도 한번 제대로 당해보셔야겠네요.”말을 마친 부석빈은 멀지 않은 곳에 쌓여 있는 샴페인 타워를 턱짓했다.“예.”경호원 두 명이 곧장 진미령을 붙잡아서 샴페인 타워 쪽으로 끌고 갔다.“석빈 씨! 안 돼!”“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러지 마!”연회장 안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이쪽으로 쏠렸다.진미령은 뒤끝이 유난히 심한 성격이었다.겉으로는 늘 상냥한 척 웃고 다녔지만, 뒤에서는 적을 워낙 많이 만들어 둔 탓에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덕분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진미령은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놔! 당장 놔!”“난 XP그룹 아가씨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하지만 경호원들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샴페인 타워 앞에 붙잡아 놓은 채 꼼짝 못 하게 막아섰다.발버둥 치던 진미령의 팔이 샴페인 잔을 건드리자, 잔 여러 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휘청거리던 진미령은 깨진 유리 위를 그대로 짚고 말았다.“아악!”손바닥이 순식간에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렸다.진미령은 고통에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지만 부석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바닥에는 와인과 피가 뒤섞여 흘러내렸다.극심한 통증을 버티지 못한 진미령은 결국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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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부석빈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심영지만 바라봤다.심영지는 놀란 듯 그를 올려다봤다.부석빈 같은 사람이 먼저 돌아와 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심영지는 망설이지도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싫어요.”부석빈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예전처럼 그런 관계가 아니라 이번엔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심영지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부석빈은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평생 누구에게도 숙여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간절했다.“안 될까?”심영지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미 늦었어요.”부석빈의 눈빛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영지야, 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잖아. 얼마나 날 사랑했는지 나도 알고 있어.”“날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어.”“내가 가진 돈이나 지위 때문인 사람도 있었고, 얼굴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지.”“인정해. 그땐 네 마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어.”“그런데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널 사랑하고 있었어.”“내가 필요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내 곁에 있었고,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네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도 이제야 깨달았어.”“함께한 시간이 익숙해진 것도, 우리가 너무 잘 맞았다는 것도...”잠시 말을 멈춘 부석빈이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난 이미 오래전부터 널 사랑하고 있었어.”“그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한 번의 기회도 줄 수 없는 거야?”부석빈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고 눈빛에는 혼란과 답답함까지 어려 있었다.분명 심영지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다.BH그룹에서 함께한 지난 7년 동안, 심영지는 어떻게든 그의 곁에 서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부석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누구보다 애썼고, 두 사람은 함께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경쟁사에서 부석빈을 노리고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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