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침몰하는 요트에서 나를 버린 약혼자: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11화. 내 손을 놓은 남자

복구 영상은 소리 없이 시작됐다.붉은 비상등 아래서 윤해원이 승객의 구명조끼 끈을 조여 주고 있었다.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지만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다친 선장을 부축했다. 노년의 여성을 먼저 뗏목에 태웠고, 바닥에 쓰러진 승무원을 일으켰다.차도혁의 기자회견과는 정반대였다.“음성은요?”해원이 물었다.포렌식팀장이 파형을 확대했다.“바람 소리가 너무 큽니다. 사람 목소리 대역만 분리하고 있습니다.”화면이 한 번 깨졌다가 돌아왔다.도혁이 마지막 구명조끼를 서린에게 입히고 있었다. 해원의 입술이 움직였다.―나도 다쳤어.희미한 음성이 살아났다.곧이어 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너는 수영 잘하잖아.해원은 무릎 위 담요를 움켜쥐었다. 기억 속에서만 반복되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김명준 실장은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강재욱은 팔짱을 푼 채 화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영상은 마지막 비상보트로 넘어갔다.해원이 요트에서 몸을 던졌다. 손이 고무 난간을 붙잡았다. 승무원이 다가가려 하자 도혁이 막았다.―다 같이 움직이면 뒤집혀요!정지 화면에는 탑승자 11명과 보트 앞쪽의 구조줄이 함께 잡혔다.“해양공학팀 재현 결과까지 붙여 주세요.”해원이 말했다.“도혁이 자리를 바꾼 경우와 구조줄을 사용한 경우를 각각 검토해요. 위험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요.”“이미 해양공학팀에 맡겼습니다.”재욱이 대답했다.영상 속 도혁이 몸을 숙였다.그의 손이 해원의 손목을 잡았다.처음에는 끌어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프레임이 이어지자 진실이 드러났다. 엄지가 해원의 검지를 누르고, 손가락을 하나씩 난간에서 떼어냈다.심박 모니터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해원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귀에서는 파도 소리가 다시 울렸다. 재욱이 곧장 재생을 멈췄다.“여기서 끝내겠습니다.”“다시 틀어요.”“의사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저 장면이 법정에서 몇 번이나 재생될지 모릅니다. 지금 못 보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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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약혼으로 연명한 회사

사고 12일째, 윤해원은 병원 외출 허가를 받아 세이프오션 본사 21층으로 향했다.의사는 회의가 끝나는 즉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녀는 옆구리 보호대 위에 재킷을 걸쳤다. 오래 서 있으면 식은땀이 났고 엘리베이터가 흔들릴 때마다 바닥이 기우는 듯했다. 그래도 병실에 누워 남이 정리해 주는 진실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회의실 화면에는 세이프오션캐피탈이 태성해운에 빌려준 돈과 담보 현황이 펼쳐져 있었다.“현재 대출 잔액은 500억 원입니다.”최민호 재무본부장이 화면을 넘겼다.“자동차운반선 ‘태성 프런티어’를 담보로 430억, 크루즈 사업 준비자금으로 70억이 추가 집행됐습니다. 첫 약정은 3년 전이고 만기 연장은 2번 있었습니다.”첫 번째 연장은 양가가 약혼을 발표한 직후였다. 두 번째는 결혼 날짜를 논의하기 시작한 달이었다.“태성해운 신용만으로 연장된 건 아니군요.”과거 여신심사 회의록에는 양사가 결혼 뒤 물류·구조 부문을 통합할 가능성이 예외 승인 사유로 적혀 있었다. 해원 개인이 보증을 선 적은 없었다. 다만 세이프오션이 결국 태성해운을 품을 것이라는 기대가 숫자 사이에 숨어 있었다.해원이 서명한 건 구조선 공동운영과 안전교육 협약뿐이었다. 만기 연장 심사에 자신의 혼담이 들어갔다는 보고는 받은 적도 없었다.도혁은 늘 사랑과 사업을 구분하라고 말했다. 정작 두 회사는 해원의 약혼을 사실상 추가 담보처럼 취급했다. 회의록에는 해원의 이름이 3번이나 등장했지만, 당사자에게는 한 번도 보고되지 않았다.회의실 뒤편에 앉아 있던 윤정호 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연장 승인, 내가 했다.”해원이 아버지를 돌아봤다.“네가 도혁이와 결혼하면 두 회사가 함께 갈 거라고 믿었다. 네 혼담을 회사 판단에 끌어들인 건 내 잘못이다.”윤 회장은 분노보다 부끄러움을 먼저 드러냈다. 사고 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태성 쪽이 숨긴 숫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네가 행복할 거라는 말로 내 판단까지 편하게 만들었어.”해원은 회의록 모서리를 손끝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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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출항하면 안 되는 배

정비보고서 원본을 들고 세이프오션을 찾아온 사람은 태성해운 기술관리팀 대리 이동규였다.그는 회의실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가방을 놓지 못했다. 손잡이를 쥔 손에 땀이 맺혀 있었다.“회사에서 제가 자료를 빼돌린 걸 알면 바로 해고될 겁니다.”윤해원이 물컵을 그의 앞에 밀어 놓았다.ㅁ“그래도 오신 이유가 있습니까?”“죽을 수도 있었으니까요.”이동규의 시선이 해원의 옆구리 보호대에 머물렀다.“그날 탄 사람들 전부요.”그는 가방에서 종이 서류와 외장메모리를 꺼냈다.사고 12일 전, ‘마리나’는 정기점검이 아닌 긴급 상태점검을 받았다. 우현 조타장치의 유압이 반복해서 떨어졌고, 선체 보강재 한 곳에서도 피로균열이 발견됐다.정비업체의 결론은 명확했다.[외해 운항 금지. 즉시 입고 후 수리 권고.]“파도가 잔잔한 항내 이동 정도만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외해에 나가면 조타 응답이 늦어질 수 있다고요.”“보고를 받은 사람은요?”“기술관리실장, 운항본부장, 그리고 차도혁 대표입니다.”화면에는 전자결재 이력이 남아 있었다. 도혁은 보고서를 읽은 지 7분 만에 ‘행사 종료 후 정비’라고 적어 승인했다.해원의 손이 멈췄다.사고 당시 첫 번째 큰 파도가 지나간 뒤, 선장은 분명 속도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요트는 예상보다 늦게 방향을 틀었고 그대로 암초 쪽으로 밀렸다.세이프오션 해양공학팀이 운항기록을 넣어 재현한 결과도 같았다. 조타장치가 정상이었다면 암초와 40m 이상 거리를 두고 통과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에는 명령을 내린 뒤 키가 실제로 꺾이기까지 약 7초가 늦었다. 그 사이 돌풍이 선미를 암초 쪽으로 밀었다.“균열이 침수를 키웠을 가능성도 큽니다.”전문가가 선체 도면을 가리켰다.“충돌 자체는 암초 때문이지만, 조타 결함이 충돌을 피할 마지막 기회를 없앴습니다. 출항 금지 의견이 나온 이유가 그대로 현실이 된 겁니다.”도혁은 위험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보고서를 읽고도 투자자 일정을 택했다.“선장에게도 이 내용이 전달됐습니까?”“요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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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삭제된 보고서

보험사에 제출된 ‘마리나’의 안전보고서는 3페이지였다.이동규가 보관한 원본은 11페이지였다.윤해원은 두 문서를 나란히 띄웠다. 원본의 붉은 경고문, 조타 유압 그래프, 선체 균열 사진이 제출본에서는 전부 사라져 있었다.[외해 운항 금지]는 [추후 정비 권고]로 바뀌었다.[긴급 수리 필요]는 [운항 후 점검 가능]이 됐다.문서는 받는 사람에 따라 3가지 버전으로 나뉘어 있었다. 선장에게 간 요약본에는 조타 이상만 축소됐고, 보험사 제출본에서는 선체 균열까지 빠졌다. 세이프오션캐피탈에 넘어온 투자자료에는 정비 이력 자체가 ‘정상’으로 표시됐다.준법감시팀 차장이 위험 문구 삭제에 반대했다는 내부 메일도 발견됐다. 그는 “사고 발생 시 대표이사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답장은 단 한 줄이었다.[인사팀과 협의할 것. 프로젝트에서 제외.]차장은 다음 날 지방 사무소로 발령 났고, 보고서는 전략기획실에서 다시 작성됐다. 삭제에 반대한 사람을 치운 뒤 문서까지 바꾼 조직적인 은폐였다.해원은 선장의 회항 요구를 무시하던 도혁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대 의견부터 없애는 방식은 바다에서도 똑같았다.“단순 요약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세이프오션캐피탈 준법감시인이 말했다.“위험도를 의도적으로 낮췄습니다. 더구나 같은 제출본이 저희에게도 전달됐습니다.”태성해운은 70억 추가대출을 신청하면서 신규 크루즈 사업의 안전 리스크가 통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수정된 보고서였다.“대출 실행일이 사고 9일 전입니다.”최민호 본부장이 낮게 말했다.“원본을 받았다면 집행하지 않았을 겁니다.”김명준 실장은 파일 수정 이력을 확대했다.수정자는 태성해운 전략기획실 공용 계정. 최종 저장 시각은 사고 10일 전 오후 10시 18분. 승인자는 차도혁 대표였다. 바로 다음 날 70억이 집행됐다.그러나 전자결재 이력만으로는 그가 내용을 직접 바꾸라고 지시했는지 다툼이 생길 수 있었다.그때 이동규가 추가로 제출한 휴대전화 백업에서 삭제 메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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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500억을 갚으세요

세이프오션캐피탈 독립 리스크위원회는 오전 9시에 시작됐다.윤해원은 이해관계자로 분류돼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신 첫 20분 동안 사고와 자료 위조 경위를 보고한 뒤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개인적인 파혼은 판단 요소에서 제외해 주십시오.”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태성해운이 계약을 지켰는지만 봐 주세요.”닫힌 문 너머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원본 보고서의 진위, 전자결재 기록, 보험사 제출본, 추가대출과의 인과관계. 외부 변호사와 해양안전 전문가가 각각 독립 의견을 냈다.해원은 복도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회의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났을 때 윤정호 회장에게 차성호 회장의 전화가 왔다. 차 회장은 두 집안이 예정대로 결혼을 추진하면 100억을 먼저 상환하고 나머지는 1년 안에 정리하겠다고 제안했다. 사고에 대한 공개 사과도 약속했다.“결국 결혼을 상환 유예 조건으로 내놓는군.”윤 회장이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해원은 휴대전화를 넘겨받지 않았다.“위원회에 전달하지 마세요.”“네가 싫다고만 하면 끝날 일이다.”“싫어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의결이 시작됐기 때문이에요. 지금 협상하면 저쪽이 나중에 개인 감정으로 조건을 바꿨다고 주장할 겁니다.”그녀는 아버지에게 통화기록만 보존해 달라고 했다. 차 회장의 제안은 태성해운이 혼담을 금융수단으로 여겼다는 사실만 확인해 줬다. 이미 시작된 심사와 맞바꿀 거래는 아니었다.회의실 안에서는 위원 한 명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파혼 직후에야 위험 심사가 시작됐느냐는 것이었다. 외부 변호사는 사고 저장장치 복구와 원본 보고서 접수 시각을 제시했다. 심사의 출발점은 파혼 날짜가 아니라 새로운 증거가 확인된 날짜였다.강재욱이 따뜻한 물을 건넸다.“긴장되십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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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회사와 우리는 별개잖아

차도혁은 조기상환 통보 다음 날 해원이 옮겨 온 재활병동까지 찾아왔다.이번에는 꽃도, 과일도 없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얼굴에는 밤샌 흔적이 선명했다.“사람들 내보내.”“안 됩니다.”김명준 실장이 먼저 막았지만 해원이 손을 들었다.“그대로 있어도 돼요. 이분들은 제 법률대리인과 회사 동료입니다.”도혁은 이를 악물었다.“우리 둘이 얘기할 문제야.”“500억이 우리 둘 문제였어?”그는 침대 앞까지 다가왔다.“회사와 우리는 별개잖아. 파혼은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왜 회사를 죽여?”그는 서류봉투를 침대 위로 던졌다. 안에는 양가 공동명의의 사과문 초안과 수정된 결혼 일정표가 들어 있었다.“공식적으로는 사고 충격 때문에 결혼을 잠시 미룬 걸로 하자. 네가 기자들 앞에서 우리 관계에 문제없다고 말하면 금융사들도 시간을 줄 거야. 500억 통보만 철회해.”해원은 문서를 한 장씩 넘겼다. 사과문에는 도혁이 자신의 손을 놓았다는 내용도, 안전보고서를 삭제했다는 내용도 없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악화’와 ‘불행한 오해’라는 말만 반복됐다.“이게 당신이 말한 사과야?”“회사를 살리고 나면 제대로 사과할게.”“항상 나중이네.”“지금 결혼하자는 게 싫으면 약혼 상태만 유지해도 돼. 서로 사생활 간섭하지 말고, 대외적으로만.”도혁은 그것을 큰 양보처럼 말했다. 해원은 대외용 약혼만 유지하자는 문장을 다시 읽고 봉투를 닫았다.“당신이 말하는 ‘우리’에는 처음부터 내가 없었어.”그녀는 일정표를 반으로 접어 봉투에 돌려 넣었다.해원은 봉투를 침대 끝으로 밀어냈다.“당신 회사가 운항 금지 보고서를 없앴고.”“그건 실무진 실수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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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첫 번째 배

상환 기한 14일 동안 태성해운은 가능한 모든 곳에 손을 벌렸다.주거래은행에는 만기 전 대출을 요청했고, 사모펀드에는 지분을 담보로 긴급자금을 제안했다. 차도혁은 해외 투자자에게 크루즈 사업 지분을 절반까지 넘기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사고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렵습니다.”태성해운이 안전위험을 숨긴 사실이 금융권에 퍼진 뒤였다. 세이프오션캐피탈의 500억만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금융기관도 대출 약정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주거래은행은 허위자료 제출이 사실로 확정되면 220억 단기대출을 즉ㅁ시 회수할 수 있다고 통지했다. 선박리스 회사는 2척의 용선료를 선납하라고 요구했고, 신용평가사는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한 계약의 위반이 확인되자 다른 채권자들도 동시에 움직였다.도혁은 세이프오션만 설득하면 연쇄 반응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미 문제는 두 회사 사이를 벗어났다. 금융기관들은 태성해운의 돈보다 보고서를 믿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서린은 매일 전화를 걸어 자신이 기사에 노출되지 않게 해 달라고 재촉했다. 도혁은 받지 않았다. 그녀를 지키겠다고 해원을 남겨 둔 남자는 회사가 흔들리자 가장 먼저 그 여자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상환 기한 마지막 날 오후 4시.태성해운이 마련한 현금은 173억뿐이었다.차성호 회장은 본사 18층 집무실에서 재무담당 임원의 보고서를 집어 던졌다.“선박 하나 팔면 되잖아!”“정상 가격으로 매각하려면 최소 3개월은 걸립니다. 지금 급매로 내놓으면 채권단이 담보가치 하락으로 추가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그럼 세이프오션에 무릎을 꿇어!”도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협상 요청을 3번 보냈습니다. 해원은 만나지도 않습니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데 만나 주길 바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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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윤해원의 복수극

태성 프런티어가 묶인 다음 날, 포털 첫 화면에 윤해원의 이름이 걸렸다.[파혼한 재벌 상속녀의 500억 복수][사랑이 끝나자 채권 회수…기업 사냥 논란][세이프오션, 태성해운 인수 노리나]기사에는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가 등장했다. 윤해원이 약혼 기간에는 부실을 묵인하다 파혼 직후 돌변했고, 사적인 감정으로 독립 리스크위원회를 움직였다는 내용이었다.태성해운이 흘린 자료였다.홍보대행사는 같은 문장을 조금씩 바꾼 게시물을 여러 커뮤니티에 뿌렸다. ‘약혼녀의 질투’, ‘첫사랑 때문에 벌어진 삼각관계’, ‘500억으로 남자를 응징한 상속녀’ 같은 자극적인 표현이 계약 조항과 안전보고서를 밀어냈다. 해원의 구조 경력까지 특혜로 포장됐고, 병원에서 찍힌 뒷모습 사진에는 ‘멀쩡히 걸어 다닌다’는 설명이 붙었다.사고 생존자 한 명이 해원을 두둔하는 글을 올리자 신원이 공개됐다. 태성해운과 돈을 받고 증언한다는 악성 댓글이 달렸고, 결국 그는 게시물을 삭제했다.해원은 그가 보낸 사과 문자를 읽었다.[상무님이 제 아내를 먼저 태워 주셨는데 끝까지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해원은 바로 답했다.[가족부터 지키세요. 증언은 수사기관에서만 하셔도 충분합니다.]해원은 생존자의 신원을 더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영상도 증언보다 봉인 기록과 감정 결과를 먼저 내놓을 생각이었다.과거 해원과 도혁이 주고받은 문자 일부도 공개됐다. 결혼식 일정과 가족 문제로 다툰 대화만 교묘하게 잘려 있었다.[내가 더는 당신 방식에 맞추지 않을 거야.]해원이 8개월 전 보낸 문장은 마치 오래전부터 회사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 증거처럼 사용됐다.세이프오션 고객센터에는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주가는 장중 6% 넘게 떨어졌고, 구조사업 입찰의 공정성까지 의심하는 기사도 나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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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살아남은 사람의 기자회견

기자회견장에는 예정 인원의 2배가 몰렸다.방송사 중계차가 본사 앞 도로를 채웠고, 생중계 대기자는 시작 전부터 10만 명을 넘었다.윤해원은 대기실 거울 앞에서 옆구리 보호대를 다시 조였다. 셔츠 아래로 감췄지만 움직일 때마다 재킷 한쪽이 미세하게 들렸다.법무팀은 영상 공개 범위를 두고 끝까지 갈렸다. 손을 떼는 장면은 수사 증거이고, 충격적이라 해원에게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반대로 앞부분만 공개하면 도혁이 ‘구조 과정의 불가피한 사고’라고 다시 왜곡할 가능성이 컸다.해원은 같은 보트의 생존자들에게 먼저 연락했다. 일반 승객의 얼굴과 동의받지 못한 음성은 가리기로 했다. 자신을 잡으려 했던 승무원은 짧게 답했다.[상무님이 괜찮으시다면 공개해 주세요. 그날 제가 끝까지 잡지 못한 걸 매일 후회합니다.]해원은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답을 쓰지 못했다. 보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도혁과 같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공포 속에서도 손을 뻗은 사람과, 그 손을 막은 사람은 분명히 구분돼야 했다.“장면 순서는 손대지 않습니다.”그녀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동의받지 못한 얼굴과 음성만 가리세요. 원본은 감정서와 함께 수사기관에 제출됐다고 명시하고요.”강재욱이 낮은 의자를 가져왔다.“앉아서 하셔도 됩니다.”“제가 쓰러지면 받아 주세요.”“그럴 생각으로 여기 있는 건 아닙니다.”무뚝뚝한 대답에 해원이 아주 작게 웃었다.오전 10시 정각, 그녀가 단상에 섰다.카메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졌다. 질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사적 감정으로 대출을 회수한 것 아닙니까?”“태성해운 인수를 추진합니까?”“사고 당시 안전 책임자였다는 주장은 사실입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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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너는 수영 잘하잖아

영상은 요트가 암초에 부딪힌 직후부터 시작됐다.화면 속 윤해원은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한 손으로 누른 채 승객들을 움직였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고, 구명조끼를 채우고, 마지막까지 인원을 셌다.기자회견장에 있던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온라인 생중계 댓글만 빠르게 올라갔다.[안전 책임 회피했다더니 구조 지휘한 사람 해원이잖아][자기 조끼도 안 입고 양보했네][태성해운 발표랑 완전히 다른데?]첫 번째 뗏목이 내려갔다. 화면 한쪽에 차도혁과 한서린이 나타났다. 도혁은 내내 서린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객석 뒤편에 앉은 노년의 투자자가 입을 틀어막았다. 영상 속 해원이 가장 먼저 구명조끼를 채워 준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옆에서 조용히 손을 잡았다.“저때 윤 상무가 자기 조끼를 저한테 줬습니다.”그가 주변 기자에게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화면에는 해원이 침수 구역에서 끌어낸 직원도 잡혔다. 그 직원은 목발을 짚고 기자회견장에 와 있었다. 태성해운 발표대로라면 ‘현장 통제에 실패한 안전 책임자’였지만, 실제 영상 속 해원은 다른 사람을 세느라 자기 몫을 계속 뒤로 미뤘다.도혁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장면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계산했다. 당시에는 해원이 알아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나 화면은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 변명임을 보여 줬다. 그는 피 묻은 셔츠도, 들리지 않는 왼팔도 봤다. 보고도 서린의 조끼를 조였다.영상은 그가 해원의 상처를 보고도 시선을 돌린 순간까지 남겼다.마지막 구명조끼를 든 승무원이 다가왔다.도혁이 그것을 받아 서린에게 입혔다.음성이 선명해졌다.―나도 다쳤어.화면 속 해원이 말했다.―알아.도혁이 대답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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