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요트에서 나를 버린 약혼자

침몰하는 요트에서 나를 버린 약혼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By:  6jay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goodnovel12goodnovel
Not enough ratings
18Chapters
27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폭풍 속 침몰하는 요트에서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해난구조 전문가 윤해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걱정이 아닌 사고 책임을 뒤집어쓴 누명이었다. 복구된 영상과 감춰진 안전 비리를 손에 넣은 해원은 자신을 버린 약혼자와 그의 회사를 향해 냉정한 반격을 시작한다.

View More

Chapter 1

01화. 폭풍 경보

“파고가 2.5미터를 넘었습니다.”

윤해원이 태블릿 화면을 돌려 보였다. 붉은 경고선이 거제 외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태성해운의 VIP 요트 ‘마리나’는 출항한 지 40분 만에 예정 항로의 절반도 가지 못했다. 창밖으로는 잿빛 물결이 난간 높이까지 치솟았다. 샴페인 잔을 든 투자자들이 애써 웃고 있었지만,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흔들릴 때마다 대화가 짧게 끊겼다.

오민석 선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압이 예상보다 빨리 떨어집니다. 회항하는 게 맞습니다.”

차도혁은 대답 대신 손목시계를 봤다. 태성해운 대표이자 해원의 약혼자. 오늘 행사는 그가 밀어붙인 신규 크루즈 사업의 첫 공개 무대였다.

“싱가포르 쪽 투자자가 이 일정 하나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섬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가죠.”

“대표님, 앞쪽 해역에 돌풍 예보가 있습니다.”

“예보잖아요.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도혁은 선장을 지나 해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직업병이 너무 심해.”

세이프오션 해난안전본부 상무인 해원은 그의 웃음에 따라 웃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사고가 난 뒤에 판단하면 늦어.”

“우리 회사 배야. 선장도 있고, 장비도 다 갖췄어.”

“구명조끼 점검표는?”

“오늘도 일하러 왔어?”

해원이 오늘 요트에 오른 건 약혼자 자격만은 아니었다. 태성해운은 세이프오션과의 협업 가능성을 투자자에게 보여 주겠다며 행사 소개자료에 두 회사 로고를 나란히 넣었다. 정작 해원에게 안전 검토를 맡긴 적은 없었다. 도혁에게 필요한 건 세이프오션의 이름뿐이었다.

출항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원은 선미의 비상집결 표지 앞을 꽃 장식과 홍보벽이 가로막은 것을 보고 치워 달라고 했다. 행사팀 직원은 대표실 지시라며 난감해했다.

“사진 찍고 바로 치우면 돼.”

도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고는 사진 다 찍고 나서만 나는 게 아니야.”

“또 시작이네.”

6년을 만나면서 도혁은 해원의 신중함을 믿는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대표 자리에 오른 뒤부터 자신을 멈춰 세우는 말은 모두 겁이나 간섭으로 치부했다.

그때 한서린이 도혁의 팔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태성해운의 외부 홍보 디렉터. 도혁과 대학 시절 한때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해원은 약혼 후에야 알았다. 도혁은 오래전에 끝난 일이라고 했다.

“해원 언니 말대로 돌아가도 괜찮지 않아? 파도가 좀 무섭긴 하네.”

말과 달리 서린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도혁은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

“금방 잔잔해질 거야.”

해원은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 선장에게 다가갔다.

“회항 판단은 선장 권한입니다. 투자자 일정 때문에 미루지 마세요.”

오 선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조타실로 돌아간 지 1분도 되지 않아 도혁의 비서가 뒤따라 들어갔다.

해원은 유리창 너머 항로표시기를 봤다. 회항점에 닿았는데도 선수는 외해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회항해. 선장 판단을 막지 마.]

읽음 표시는 떴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조타실 안에서 비서가 도혁의 지시를 선장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요트가 크게 들썩였다.

벽면 장식장이 열리며 유리잔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비명이 터졌다. 해원은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노년의 투자자를 붙잡아 테이블 아래로 몸을 낮췄다.

“창가에서 떨어지세요! 모두 중앙으로!”

두 번째 파도는 첫 번째보다 컸다.

선체가 오른쪽으로 깊게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엔진음이 한 차례 끊겼고, 실내 조명이 깜빡였다.

해원은 곧장 조타실 쪽을 봤다.

“속도 줄였습니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금속이 갈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요트 밑바닥에서 길게 치솟았다.

쾅!

바닥이 위로 튀어 올랐다. 사람과 의자가 한꺼번에 밀려났다. 해원의 옆구리에 깨진 장식장 모서리가 깊게 부딪혔다.

숨이 막혔다.

몇 초 뒤, 비상등이 붉게 켜졌다. 조타실 문이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항해사가 비틀거리며 나왔다.

“암초에 부딪혔습니다!”

Expand
Next Chapter
Download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18 Chapters
02화. 침수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 정적은 없었다.비명과 경보음, 깨진 유리 위를 밟는 발소리가 한꺼번에 뒤엉켰다. 요트 바닥은 이미 눈에 띄게 기울고 있었다.윤해원은 왼쪽 옆구리를 눌렀다. 손바닥에 피가 묻었지만 깊이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오 선장님, 조난 신호부터 보내세요. 엔진 차단하고 방수문 닫으세요.”“기관실 쪽 전원이 나갔습니다.”“비상 전원은요?”“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침수가 빠릅니다.”기관장이 계단 아래에서 소리쳤다.“우현 선저가 찢어졌습니다! 펌프로 못 따라갑니다!”해원은 벽에 붙은 승선 명부를 뜯어 들었다. 행사 인원과 승무원 명단에 손가락을 대며 갑판으로 올라간 사람을 하나씩 체크했다. 아래 라운지에 1명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자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젊은 직원이 넘어져 있었다. 의자 다리에 발목이 끼인 상태였다. 해원은 깨진 유리 사이로 손을 넣어 금속 걸쇠를 풀었다. 그 순간 선체가 또 기울며 몸이 벽에 부딪혔다. 왼쪽 옆구리에서 뜨거운 것이 다시 흘렀다.“저 두고 가세요.”직원이 울먹였다.“그 말은 구조하는 사람이 결정해요.”해원은 그의 팔을 어깨에 걸고 계단까지 끌어냈다. 마지막 방수문이 닫히자 아래쪽에서 무거운 충격음이 연달아 울렸다. 30초만 늦었어도 둘 다 빠져나오기 어려웠다.갑판에 도착한 해원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명부를 처음부터 다시 훑었다. 한 사람이라도 빠뜨리면 그 이름이 그대로 실종자가 된다.승객 몇 명이 출입문으로 몰렸다. 해원은 테이블 위에 올라 손뼉을 세게 쳤다.“지금 뛰면 넘어집니다! 직원 안내에 따라 한 줄로 움직이세요. 구명조끼부터 입습니다!”공포에 질린 눈들이 그녀에게 모였다.해원은 가장 가까운 승무원에게 손가락으로 사람을 나눠 지시했다.“걷기 어려운 분과 머리 다친 분부터 왼쪽 라운지. 움직일 수 있는 분은 갑판으로. 인원 세면서 올려 보내요.”서로 밀치던 사람들이 부상자를 중심으로 갈라섰다.해원은 쓰러진 투자자의 이마를 압박 지혈한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3화. 마지막 구명조끼
마지막 구명조끼는 윤해원의 손에 오지 않았다.차도혁이 승무원에게서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해원은 그가 당연히 가장 가까운 부상자에게 건넬 줄 알았다.도혁은 곧장 한서린에게 다가갔다.“팔 들어.”“도혁아, 해원 언니는?”서린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두 팔을 순순히 들었다. 도혁은 노란 조끼를 그녀의 몸에 감고 허리끈을 두 번 당겨 조였다.해원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흰 셔츠 왼쪽이 피로 젖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다친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다. 조금 전부터 도혁은 여러 번 그녀 쪽을 봤다.“나도 다쳤어.”도혁의 손이 잠깐 멈췄다.“알아.”해원은 잠시 말을 잃었다. 상처를 못 본 게 아니었다. 피를 확인하고도 서린에게 조끼를 입힌 것이었다.“그런데 왜 서린 씨한테 줘?”“서린이는 수영을 못 해.”“나는 피가 나.”말을 증명하듯 셔츠 아래에서 붉은 물이 빗물에 번졌다. 해원은 왼팔을 들어 보려 했지만 어깨 높이에서 통증 때문에 멈췄다. 평소라면 1km 넘게 헤엄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몸으로는 파도 한 번을 넘기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옆에서 상황을 보던 노년의 투자자가 자신의 조끼 버클에 손을 댔다.“윤 상무가 이걸 입어요. 나는 뗏목에만 올라가면 되니까.”해원이 곧장 그의 손을 막았다.“안 됩니다. 심장 약 드신다고 하셨죠. 선생님은 물에 빠지면 바로 위험해요.”“그럼 자네는?”“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도혁은 그 장면을 보고도 시선을 돌렸다. 오히려 해원이 스스로 양보한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처럼 붙잡았다.“봐. 너도 누가 먼저 조끼를 입어야 하는지 알잖아.”“그래서 묻는 거야.”해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당신은 지금 누구를 살리는 게 아니라, 누구를 버려도 되는지 정하고 있어.”“구조대가 곧 올 거야.”해원은 빗물을 닦지 않은 채 그를 바라봤다.“조난 신호가 제대로 나갔는지도 확인 안 됐어.”“너는 수영 잘하잖아.”해원이 구조사 자격을 딴 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4화. 그럼 네가 남아
비상보트는 거의 정원을 채웠다.보트 안의 기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줄을 풀어야 합니다! 선체가 넘어오면 같이 말려듭니다!”요트는 오른쪽으로 20도 이상 기울어 있었다. 갑판 위를 흐르는 빗물이 발목을 덮고 지나갔다.윤해원은 난간을 붙잡고 차도혁을 내려다봤다.그는 한서린을 품에 안은 채 보트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젖은 사람들을 진정시키던 승무원조차 해원의 시선을 피했다.“남은 자리에 제가 타면 안 됩니까?”해원이 물었다.기관장이 다친 팔을 들어 보였다.“마지막 자리는 조종 자격자가 타야 합니다. 저는 이 팔로 조타가 어렵습니다.”도혁이 말을 잘랐다.“더 지체하면 선체에 깔려. 조종할 사람부터 태워.”해원은 보트 안을 훑었다. 마지막 1자리는 조종 자격자가 타야 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보트에 탄 모두가 표류할 수 있었다.갑판에 남아 있던 젊은 갑판원이 구명줄을 허리에 감으며 말했다.“제가 남겠습니다. 기관장님이 조종하고 상무님이 타세요.”해원은 고개를 저었다.“다친 팔로 이 파도 속 조종은 못 해요. 당신이 타야 합니다.”“하지만 상무님은…….”“엔진이 멈추면 저 사람들 전부 표류해요.”갑판원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빈자리로 내려갔다.보트에서 내려도 운항에 지장이 없는 사람은 도혁뿐이었다. 해원은 보트 앞쪽에 말린 구조줄과 원형 구명환을 봤다. 선체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줄을 던지면, 정원을 넘기지 않고도 자신을 견인할 수 있었다.“먼저 선체에서 빠져나가. 속도 줄이고 구조줄 던져. 내가 잡을게.”승무원이 움직이려 하자 도혁이 다시 막았다.“선체가 넘어오는데 엔진을 멈출 수 없어. 안 돼.”그는 자신이 자리를 내주지 않는 모든 선택지를 위험하다는 말로 지웠다.“내가 수영을 잘해서 괜찮다면.”그녀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옆구리 통증이 목소리까지 파고들었다.“그럼 네가 남아.”도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뭐?”“서린 씨는 조끼를 입었고, 구조 훈련을 받은 승무원도 타고 있어. 당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5화. 놓아
차도혁의 손이 윤해원의 손목을 감쌌다.따뜻하지 않았다.그는 끌어올리려는 힘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보트 난간을 붙잡은 해원의 손을 아래로 누르고 있었다.“도혁아.”해원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지금 뭐 하는 거야?”“해원아, 놓아.”파도가 얼굴을 덮쳤다. 짠물이 목으로 들어왔다. 해원은 기침을 삼키며 더 세게 난간을 움켜쥐었다.“나 올라갈 수 있어.”“보트가 기울고 있잖아.”“당신이 내리면 정원은 그대로야.”“지금 계산할 때가 아니야!”그가 소리쳤다.해원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그의 얼굴을 봤다. 공포에 질린 눈. 그러나 그 공포가 향한 곳은 해원이 아니었다. 자신이 다시 바다에 남게 될 가능성뿐이었다.승무원 한 명이 손을 뻗었다.“제가 잡겠습니다!”도혁이 그의 팔을 막았다.“다 같이 움직이면 뒤집혀요! 자리 지켜요!”다른 승객이 울먹이며 말했다.“그래도 저분을…….”“구조대가 오고 있습니다. 해원은 버틸 수 있어요.”거짓말이었다.보트 앞쪽에는 주황색 구조줄이 말려 있었다. 팔을 한 번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해원은 도혁의 어깨 너머로 그것을 보며 말했다.“선체에서 조금만 더 빠져나가. 속도 줄이고 구조줄 던져.”승무원이 다시 몸을 움직이자 도혁은 발로 구조줄 가방을 눌렀다.“멈추면 선체에 같이 깔려요.”“그럼 줄부터 던지고 바로 빠져.”“선체가 넘어오고 있잖아!”보트 안의 한 여성이 울면서 도혁에게 소리쳤다.“아까 저분이 제 남편을 먼저 태워 줬어요. 잡아 줘야죠!”도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이의 눈을 가리던 어머니도 고개를 돌렸다. 누구도 그의 판단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파도와 공포 속에서 그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서린은 양손으로 자신의 구명조끼를 붙잡고 있었다. 해원이 잠깐 그녀를 바라보자, 서린은 마치 조끼를 빼앗길까 두려운 사람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 순간 해원은 알았다. 도혁이 손을 놓기 전부터, 두 사람은 이미 자신을 보트 밖 사람으로 분류해 놓았다.무전기는 침수 직전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6화. 체온 32도
윤해원은 세 번 가라앉고 네 번째에 수면으로 올라왔다.폐가 타는 것처럼 아팠다. 왼팔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가 안쪽을 찔렀다.‘당황하면 죽어.’구조 훈련 때 수없이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해원은 입을 다물고 코로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도가 지나갈 때는 몸에 힘을 빼고, 잔잔해지는 순간에만 팔을 움직였다.멀지 않은 곳에 흰색 물체가 떠 있었다. 요트 의자에서 떨어져 나온 부력 쿠션이었다.해원은 5m를 가는 데 온 힘을 다 썼다. 마지막에는 손가락으로 끈을 걸어 끌어당겼다. 쿠션 위로 상체를 올리자 비로소 입이 물 밖에 머물렀다.비는 잦아들지 않았다.해원은 쿠션의 끈을 손목에 2번 감았다. 의식을 잃더라도 몸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파도가 올 때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지나간 뒤 입안의 물을 뱉었다. 물속에서 젖은 옷을 벗느라 힘을 쓰는 편이 더 위험했다.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배어 나왔지만 손으로 누를 수 없었다. 한 손은 쿠션을 잡아야 했고 다른 팔은 갈비뼈 통증 때문에 힘을 쓰지 못했다. 해원은 쿠션에 가슴을 붙이고 무릎을 당겼다. 훈련용 수조에서 배운 저체온 생존 자세였다.머릿속에는 자꾸 따뜻한 곳이 떠올랐다. 어릴 때 아버지와 갔던 실내수영장, 사무실의 커피 냄새, 햇빛이 든 침실. 그 장면으로 따라가면 잠들 것 같아 일부러 차가운 현실을 확인했다.“나는 바다에 있다.”입술이 굳을 때마다 소리 냈다.“아직 구조되지 않았다.”지금은 다음 숨을 놓치지 않는 게 먼저였다.보트의 불빛도, 다른 뗏목의 경광등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는 침몰한 요트의 잔해만 떠다녔다.멀리서 엔진음이 들린 듯해 고개를 들었지만 파도뿐이었다. 해원은 다시 1부터 숫자를 셌다. 가만히 기다리면 그대로 잠들 것 같았다.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처음에는 이가 부딪혔다. 그다음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추위가 사라진 듯 편안해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해원은 알고 있었다.“잠들면 안 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7화. 살아 있었네
윤해원이 의식을 온전히 되찾은 것은 사고 나흘째 되는 아침이었다. 응급실에서 잠깐 눈을 떴다는 말은 나중에야 들었다.천장은 희었고, 코끝에는 소독약 냄새가 맴돌았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왼쪽 옆구리가 타들어 갔다. 목에서 낮은 신음이 새자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강재욱이 곧장 일어났다.“움직이지 마십시오. 갈비뼈 2개가 부러졌고, 옆구리는 12바늘 꿰맸습니다.”그는 사고 때 해원을 끌어 올린 세이프오션 구조본부장이었다. 평소에도 표정이 적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눈 밑이 푹 꺼져 있었다.해원은 산소줄 너머로 물었다.“생존자는요?”“승객과 승무원 전원 확인됐습니다. 중상 3명, 나머지는 경상입니다.”“사망자는.”“없습니다.”해원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까지 세던 이름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재욱은 물컵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해원은 한 모금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구조 신호는 어떻게 잡았죠?”“비상 위치발신기 신호가 2번 들어왔습니다. 상무님이 켜신 겁니까?”해원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잘하셨습니다.”재욱은 그 말을 한 뒤에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의료진이 들어와 상태를 확인하고 나간 뒤, 해원은 침대 옆 탁자를 봤다. 휴대전화가 없었다.“제 폰은요?”재욱이 잠시 망설였다.“지금은 안 보시는 게 좋습니다.”“회사에 문제가 생겼어요?”“상무님 개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아버지는 중환자실 앞을 3일 동안 지키다 새벽에야 회사로 돌아갔다고 했다. 태성해운 측이 언론 발표를 시작하면서 세이프오션 이사회까지 긴급 소집됐기 때문이다. 재욱은 그 사실을 말하며 병실 문 쪽을 한 번 봤다.“차도혁 대표는 왔습니까?”해원이 묻자 아주 짧은 침묵이 생겼다.“오지 않았습니다.”“연락은요?”“비서실에서 응급처치 결과와 의식 회복 여부를 4번 확인했습니다. 본인 연락은 없었습니다.”해원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찾아오지 않은 것보다, 살아날 가능성만 계속 확인했다는 사실이 더 정확한 답처럼 느껴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8화. 안전 책임자 윤해원
차도혁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론은 빠르게 방향을 잡았다.세이프오션은 국내 최대 민간 해난구조 기업이었다. 그 후계자가 탄 배가 침몰했고, 하필 그 여자가 현장 안전 자문을 맡았다는 설명은 기사 제목으로 쓰기 좋았다.[전문가의 오판이 부른 참사][재벌가 행사에 안전은 없었다][윤해원 상무, 구조 지휘 아닌 책임 회피?]ㅁ병원 대표전화에는 해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전화가 쏟아졌고, 병동 앞에는 기자가 대기했다. 누군가는 환자복 차림의 사진을 찍으려고 간호사 전용 통로까지 따라 들어왔다. 세이프오션 구조대원들의 개인 계정에는 ‘후계자 대신 거짓말해 주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사고 당시 승객 2명이 해원이 자신을 구조했다고 인터뷰하려 했지만, 태성해운 법무팀은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서약서를 들이밀었다. 치료비와 귀가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는 조건에 ‘회사 승인 없는 언론 접촉 금지’ 조항까지 붙어 있었다.해원은 그 서류를 보자마자 피해자 전원에게 별도 법률지원 창구를 열라고 지시했다.“우리 편 증언을 만들지 마세요. 기억나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게만 보호해요.”해원이 승객을 뗏목에 태웠다는 증언은 짧게 다뤄졌다. 대신 공식 직함도 아닌 ‘현장 안전 책임자’라는 표현이 기사마다 반복됐다.해원은 병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행사 문서를 하나씩 열었다. 수술 부위가 당길 때마다 화면을 내렸다가, 통증이 잦아들면 다시 문서를 띄웠다. 해원이 의식을 잃은 나흘 동안 태성해운의 설명은 이미 기사와 자막으로 퍼져 있었다.초청장 속 자신의 참석 자격은 ‘세이프오션 전략 파트너 및 VIP’였다. 안전 자문 계약도, 검토 요청서도 없었다. 그런데 태성해운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는 해원의 이름 아래 ‘운항 안전 총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원본에는 없던 항목입니다.”세이프오션 법무실장 김명준이 수정 이력을 확인했다.“사고 당일 밤 11시 42분에 수정됐습니다. 태성해운 홍보실 계정입니다.”“제가 바다에 떠 있을 때네요.”병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09화. 파혼
차도혁은 파혼 통지서보다 반나절 늦게 병실에 나타났다.흰 장미 다발과 고급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병문안이라기보다 기자에게 보여 주기 좋은 소품 같았다.“밖에 사람들 좀 내보내 줘.”그가 자연스럽게 말했지만 강재욱은 움직이지 않았다.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재욱과 간호사가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도혁은 꽃을 내려놓고 침대 가까이 의자를 당겼다.“몸은 어때?”“살아 있어.”“그건 봐서 알아.”그는 억지로 웃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기억나는 거 있어?”걱정하는 사람의 첫 질문이 아니었다.해원은 그가 무슨 확인을 하러 왔는지 알아챘다. 자신이 깨어나기 전에 만들어 둔 이야기가 통할지 보려는 것이었다.“어디부터?”“마지막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웠잖아. 네가 배에 남겠다고 했던 것까지는 기억나?”“내가 남겠다고 했어?”“장비 확인해야 한다고 그랬지. 구조대가 가까이 있다고도 했고.”도혁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사람은 극심한 쇼크를 받으면 기억이 뒤섞일 수 있어. 네가 이상한 장면을 떠올려도 그게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어.”“예를 들면?”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해원의 오른손으로 내려갔다.“내가 네 손을 놓았다고 생각한다든가.”해원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보트가 출발한 뒤 구조 신고는 언제 했어?”“바로 했지.”“당신 휴대전화 통화기록은 사고 11분 뒤야.”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해원은 그가 병실에 오기 전부터 해경 기록을 확인해 두었다. 보트가 요트에서 멀어진 뒤 도혁이 처음 건 전화는 구조기관이 아니라 태성해운 홍보실장이었다.“통신이 안 잡혔어.”“홍보실 통화는 잡혔고?”“회사에 사고를 알려야 했으니까.”“바다에 남은 약혼녀보다 보도자료가 먼저였네.”도혁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해원은 충분한 답을 얻었다.해원은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약 봉투 속 반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작은 금속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우리 결혼 안 해.”도혁은 반지를 보다가 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10화. 바닷속에 남은 눈
침몰 6일째, 세이프오션 조사선이 ‘마리나’가 가라앉은 해역에 도착했다.선체는 수심 38m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있었다. 조류가 강해 잠수 가능한 시간은 1회당 18분뿐이었다.윤해원은 병실 모니터로 수색 영상을 지켜봤다. 의사는 업무를 금지했지만, 침대에 누워 기억나는 선체 구조를 직접 그렸다.마리나의 카메라 배치는 해원이 출항 한 달 전 확인했다. 도혁이 투자자용 비상대응 영상을 찍겠다며 장비만 물었고, 해원은 운항 자문과 별개라고 선을 그은 뒤 독립 배터리와 백업 장치를 권했다. 도혁은 비용을 아까워했지만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는 승인했다.홍보를 위해 달아 둔 카메라가 사고 뒤에는 가장 불편한 증거가 됐다.해원은 카메라 위치와 저장함이 조류에 밀렸을 방향까지 수색도에 표시했다.“선교 뒤 통신실 하단에 네트워크 저장장치가 있어요. 검은 방수함이고, 홍보 촬영용 360도 카메라 백업도 같은 선로에 연결돼 있습니다.”화면 속 강재욱이 잠수 마스크 너머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확인했습니다. 태성해운 쪽 인양업체도 현장에 왔습니다.”“증거보전 결정문 전달됐죠?”“해경이 먼저 막았습니다. 저쪽은 선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고요.”태성해운 인양업체는 보험 조사와 선박 관리에 필요하다며 저장장치 우선 회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사고 뒤 행사자료가 수정된 정황이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 해원은 소유권보다 증거의 연속성이 먼저라고 못 박았다.“인양 순간부터 봉인번호, 촬영 시각, 인계자 이름을 전부 남기세요. 우리 팀도 원본을 직접 만지지 않습니다.”“태성 쪽에서 복구 과정이 편파적이라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해경이 봉인한 복제본만 받는 겁니다. 나중에 장비가 바뀌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요.”재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잠수 영상은 해경 조사관과 양측 변호인에게 동시에 전송됐다.병실 스피커 너머로 다른 배의 고성이 섞여 들어왔다. 태성해운 측 관계자가 자사 장비를 먼저 회수하겠다며 항의하고 있었다.해원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