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이혼하자 국가가 나를 보호하고,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บทที่ 21 - บทที่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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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아이는 혼자 만드나요

식탁 위 웃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박정희의 시선은 대놓고 서윤의 배에 머물러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이 넘었으면 남들은 애가 둘이야.”누군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강태준의 생일상이었지만 박정희는 개의치 않았다.“처음엔 기다렸지. 요즘 애들은 신혼도 즐겨야 한다니까. 그런데 3년이면 얘기가 다르잖니.”서윤은 말없이 물잔을 들었다.“어머니.”재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만하시죠.”“넌 가만있어.”박정희가 단번에 잘랐다.“내가 없는 애 내놓으랬니? 며느리한테 손주 보고 싶다는 말도 못 해?”그녀가 서윤을 위아래로 훑었다.“겉만 멀쩡하면 뭐 해. 제일 중요한 걸 못 하는데.”서윤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맞은편 유리가 얼른 끼어들었다.“어머니, 언니 속상하겠어요.”“넌 빠져.”“그래도 요즘은 병원 가면 금방 알 수 있다던데…….”말끝을 흐린 유리가 서윤을 슬쩍 바라봤다.“혹시 언니도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 있잖아요.”말리는 척하면서 불씨를 하나 더 던졌다.박정희가 바로 받아쳤다.“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유리가 입술을 깨물었다.“언니가 워낙 바쁘니까 몸 돌볼 틈도 없었을 것 같아서요.”재헌이 고개를 들었다.“차유리.”차가운 한마디였다.유리가 움찔했다.“왜…….”“거기까지 해.”유리의 입이 다물렸다.박정희가 기가 막힌 듯 웃었다.“왜 유리한테 그래?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재헌이 포크를 내려놓았다.“제 부부 일입니다.”“그래. 네 부부 일이지.”박정희가 서윤을 턱짓했다.“그러니까 네 마누라 데리고 병원부터 가.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야 약을 먹든 뭘 하든 할 거 아니야.”서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한약이든 주사든 좋다는 건 다 해봐. 돈이 없니, 병원이 없니?”“그만하시라고 했습니다.”“왜 네가 화를 내?”박정희가 코웃음을 쳤다.“멀쩡한 내 아들이 3년을 살았는데 애가 안 생기면 어디가 문제겠어?”그 순간 서윤이 물잔을 내려놓았다.달칵.처음으로 박정희를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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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숨기는 게 있어요?

저녁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뒤에서는 아직 웃음과 잔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용인들은 빈 접시와 와인병을 거둬들이고, 거실에서는 강태준을 둘러싼 친척들이 선물을 풀어보며 떠들고 있었다.서윤은 그 소란을 등지고 현관으로 향했다.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구두 소리가 뒤따라왔다.“한서윤.”재헌이었다.서윤은 멈추지 않았다.“어디 가.”“집에요.”“여기가 네 집이야.”그제야 서윤이 돌아봤다.“정말요?”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오늘 처음 알았네요.”재헌의 얼굴이 굳었다.식탁 맨 끝에 놓여 있던 이름표가 떠오른 모양이었다.“그건 어머니가 멋대로 한 거야.”“당신 집에서요.”재헌이 입을 다물었다.현관 밖에서는 기사들이 손님들의 차를 빼느라 분주했다. 열린 문 사이로 밤바람이 들어와 서윤의 드레스 자락을 흔들었다.서윤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자 재헌이 앞을 막았다.“아까 병원 얘기.”“왜요.”재헌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봤다.“가지 마.”서윤의 눈썹이 움직였다.“어디를요?”“병원.”“왜요?”“검사받을 필요 없어.”서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말 그대로야.”“어머니가 나더러 문제 있다면서 검사받으라 할 때는 가만있더니.”서윤이 한 걸음 다가섰다.“당신도 같이 가자니까 갑자기 받을 필요가 없어졌어요?”재헌의 턱이 굳었다.대답은 없었다.그 침묵이 이상했다.한약이 배달돼도, 병원 명함이 안방 탁자에 놓여도 그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먹었는지. 병원에는 갔는지. 혼자 무슨 검사를 받았는지.그런 남자가 이제 와서 가지 말란다.“당신.”서윤이 그의 얼굴을 살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없어.”대답은 빨랐다.그래서 더 수상했다.서윤이 비켜가려 하자 재헌의 팔이 뻗어 벽을 짚었다.어깨 바로 옆이었다.넓은 몸이 앞을 막았다. 손대지는 않았지만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그럼 이해되게 말을 해요.”서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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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남편 행세

통화가 끝나자 서윤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재헌의 눈이 그 손끝을 따라갔다.“이정우가 데리러 와?”서윤은 대답하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오늘은 안 돼.”재헌이 길을 막자 서윤이 그제야 올려다봤다.“뭐가요?”“그 자식 만나는 거.”“당신이 왜 정해요?”마침 식사를 마친 친척들이 거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본가 사용인들은 코트를 건네고, 현관 밖에서는 기사들이 손님들의 차를 차례로 대고 있었다.“재헌아, 우리 간다.”큰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재헌은 건성으로 고개만 숙였다. 눈은 여전히 서윤을 향해 있었다.큰아버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자 고모가 얼른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그냥 가요. 부부 사이에 괜히 끼지 말고.”사람들이 지나가자 재헌이 낮게 말했다.“이정우 만나지 마.”서윤이 헛웃음을 쳤다.“차유리 씨부터 내보내요.”“그거랑 이건 달라.”“당신한테만 다르겠죠.”서윤이 비켜가려 하자 재헌이 다시 앞을 막았다.“그 자식이 그렇게 좋아?”“좋아하면 어쩌려고요?”재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서윤이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왜요. 이제 와서 질투라도 나요?”“내 아내가 다른 남자 만나러 간다는데 좋아해야 돼?”서윤이 피식 웃었다.“아내.”그 한마디를 천천히 되뇌었다.“당신이 언제 나를 아내처럼 대했다고.”재헌이 입을 다물었다.“같이 밥 먹자고 하면 바빴고, 내가 아파도 몰랐어요. 어머니가 나 혼자 병원 보내도 모른 척했고.”차분한 목소리 아래 오래 묵은 서러움이 배어났다.“그런데 다른 남자가 나타나니까 갑자기 남편이에요?”“내가 네 남편인 건 안 변해.”“그 말 참 편하네요.”서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내 노릇 필요할 때만 아내고, 나머지는 없는 사람처럼 살았으면서.”재헌이 한 걸음 다가왔다.이번에는 서윤도 물러서지 않았다.술 향이 희미하게 섞인 숨결이 가까워졌다. 재헌의 시선이 검은 드레스 위로 드러난 목선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올라왔다.“내 아내 보는 것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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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혼자 받은 검사

결혼 2년째 봄이었다.일요일 점심, 박정희의 시선이 또 서윤의 배에 머물렀다.“이번 달도 소식 없니?”서윤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아직은요.”맞은편의 재헌은 휴대전화로 회사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박정희가 혀를 찼다.“재헌이 친구들은 벌써 둘째 얘기까지 나오더라. 나는 며느리까지 들여놓고 손주 얼굴 한번 못 보고.”서윤은 말없이 물잔을 들었다.“죄송해요, 어머니.”“죄송하면 애가 생기니?”박정희가 봉투 하나를 식탁 위로 밀었다.“화요일 오전 열 시. 비워둬.”유명 여성병원 예약증이었다.서윤이 봉투를 열어봤다.“제 검사예요?”“그래.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야 약을 먹든 주사를 맞든 하지.”서윤의 손끝이 예약증 가장자리를 눌렀다.잠시 망설이다 맞은편을 바라봤다.“재헌 씨도 같이 검사받는 건가요?”박정희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멀쩡한 내 아들을 왜?”“요즘은 부부가 같이 검사받기도 한다고 해서…….”“너부터 받아.”말이 잘렸다.“2년 동안 소식 없는 게 누군데 재헌이까지 병원에 끌고 가니?”서윤은 더 말하지 못했다.그제야 재헌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어머니, 그만하시죠.”서윤은 잠깐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돌아오는 차 안.빗방울이 차창을 타고 흘렀다. 재헌은 옆자리에서 태블릿으로 메일을 넘기고 있었다.서윤은 무릎 위의 병원 봉투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화요일에…… 시간 안 돼요?”“왜.”“병원요.”재헌의 손이 잠깐 멈췄다.“같이 가줬으면 해서요.”“몇 시인데.”서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열 시요. 오래 안 걸린대요.”재헌은 일정을 확인하더니 다시 태블릿을 들었다.“안 돼. 회의 있어.”“아…….”서윤은 병원 봉투를 내려다봤다.“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요.”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화요일 오전.서윤은 혼자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맞은편에는 젊은 부부가 머리를 맞댄 채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었다.“마지막 생리 날짜가 언제야?”“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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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너만 몰랐던 남편

늦은 오후, 저택 거실에는 박정희가 보내온 한약 상자가 놓여 있었다.유리는 검은 한약 봉지 하나를 꺼내 손끝으로 흔들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마시다 만 차와 과일 접시가 남아 있었고, 주방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는 사용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어머님도 참. 언니 몸 챙기는 데는 진심이시네.”계단을 내려오던 서윤이 상자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제 거예요?”“네. 몸 따뜻하게 해야 아기도 잘 들어선대요.”유리는 봉지를 상자 안에 도로 넣으며 웃었다.“언니는 좋겠다. 이렇게까지 챙겨주시고.”어제 식탁에서 손주 이야기를 꺼내던 박정희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서윤이 대꾸 없이 계단을 마저 내려오는데 현관문이 열렸다.재헌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들어왔고, 뒤따르던 오세진이 태블릿을 확인했다.“아홉 시 화상회의는 그대로입니다. 자료는 서재에 올려두겠습니다.”“그래.”재헌은 재킷을 사용인에게 건네다가 테이블 위 한약 상자를 발견했다.“저게 뭐야.”“어머님이 언니 먹으라고 보내셨어. 손주 보고 싶으신가 봐.”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헌이 상자를 집어 들었다.“먹지 마.”그는 주방 입구의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상자를 그대로 처박았다. 검은 한약 봉지들이 안에서 우르르 쏟아졌다.서윤이 그쪽으로 다가갔다.“왜 버려요?”“필요 없어.”“그래도 어머님이 보내신 건데.”“그러니까 더 먹지 마.”유리가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웃었다.“오빠는 옛날부터 이런 거 질색했지.”재헌의 시선이 곧장 돌아갔다.“차유리.”“왜? 틀린 말 했어?”유리는 아무렇지 않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그래도 오빠 애들은 진짜 좋아했잖아. 길에서 애만 보여도 한참 쳐다보고.”서윤이 유리를 바라봤다.“아들 하나,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고.”“그만해.”“좋은 얘기잖아.”유리는 찻잔을 내려놓고 서윤에게 생긋 웃었다.“언니는 몇 명 낳고 싶어요?”“아직 그런 얘기는…….”“왜요?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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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정관수술

서윤의 말에 재헌이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늦은 햇빛이 긴 창을 비스듬히 통과해 계단 난간과 거실 바닥에 길게 걸렸다. 저녁 준비를 하던 사용인들은 눈치를 보며 주방으로 자리를 피했고, 거실에는 쓰레기통 밖으로 반쯤 삐져나온 한약 상자와 식어가는 찻잔만 남아 있었다.서윤은 난간 너머 유리를 내려다봤다.“차유리 씨는 어떻게 알아요?”유리가 찻잔을 내려놓았다.“뭘요?”“정관수술.”찻잔이 받침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나는 몰랐는데, 차유리 씨는 알고 있네요.”유리의 눈이 재헌에게 향했다.재헌이 계단을 한 칸 올라왔다.“내가 설명해.”“언제 알려줬어요?”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해외에서.”재헌의 시선이 곧장 유리에게 꽂혔다.“차유리.”“왜? 언니가 물어보잖아.”서윤의 손이 난간을 움켜쥐었다.“나랑 결혼한 뒤예요?”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유리가 대신 웃었다.“응. 오빠가 나 찾으러 왔을 때.”“그때 수술 얘기를 했다고요?”유리는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팔짱을 꼈다.“수술한 것만 말한 줄 알아?”재헌의 얼굴이 굳었다.“누구랑은 죽어도 애 안 만들려고 수술까지 했는지, 누구 돌아오면 다시 풀 건지.”유리가 서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나한테는 다 말했어.”재헌이 거실로 내려와 유리 앞을 막았다.“입 다물어.”서윤도 계단을 내려왔다.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워 들고 두 사람 앞에 섰다.“비켜요.”“서윤아, 나랑 얘기해.”“당신한테 물어서 제대로 들은 게 뭐가 있는데요.”서윤은 유리를 향했다.“말해요. 왜 했어요?”유리가 재헌의 어깨 너머로 서윤을 바라봤다.“나 때문에.”재헌이 유리의 팔을 잡아챘다.“차유리!”그의 손등에 테이블이 밀리면서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진 조각 사이로 갈색 찻물이 번졌고, 주방 문틈으로 내다보던 사용인이 황급히 몸을 숨겼다.서윤의 시선이 재헌의 손에 닿았다.“놔요.”재헌이 손을 풀었다.유리는 붉어진 손목을 쓸어내리며 웃었다.“오빠가 나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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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아들한테 물어보세요

깨진 찻잔을 치우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박정희가 사용인 둘을 거느리고 거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의 손에는 과일 상자가, 다른 사람의 손에는 새로 지어온 한약 봉투가 들려 있었다.외투를 벗던 박정희는 쓰레기통 밖으로 삐져나온 익숙한 포장지를 발견했다. 며칠 전 자신이 보낸 한약이었다.구겨진 상자를 꺼내자마자 서윤을 노려봤다.“또 안 먹었니? 애 하나 못 가지면서 약까지 가릴 처지야? 3년째 소식이 없으면 좋다는 건 뭐든 삼켜서라도 애부터 가져야 할 거 아니야.”사용인이 새 한약 봉투를 내밀었다.서윤은 봉투를 받아 그대로 재헌의 가슴에 밀어 안겼다.“이제 그만 저한테 먹이세요. 3년 동안 약도 먹고 검사도 받을 만큼 받았어요. 그렇게 손주가 급하시면 오늘부터는 아드님 붙잡고 닦달하세요.”박정희의 얼굴이 굳었다.유리도 소파 곁에서 몸을 일으켰다. 재헌은 제 가슴에 얹힌 한약 봉투를 내려다보다 테이블 위에 던졌다.“제가 정관수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서윤한테 애 타령 그만하세요.”박정희 손에서 한약 상자가 떨어졌다. 검은 약봉지들이 대리석 위로 쏟아졌다.그녀는 아들을 한참 올려다보다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짝!재헌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유리가 놀라 다가가려 했지만 박정희가 먼저 아들의 셔츠깃을 움켜쥐었다.“강씨 집안 3대 독자가 제 손으로 씨를 막아? 그런데 너도 어지간하다. 얼마나 여자로서 매력이 없었으면 남편이 한 침대 쓰면서도 네 아이는 만들 생각조차 안 했겠니.”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박정희는 연구실에서는 잘난 박사인지 몰라도 집에서는 남편 하나 붙들 줄 모른다며 혀를 찼다. 재헌이 밤마다 밖으로 도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서윤은 천천히 소매를 걷었다.팔 안쪽에는 며칠 전 채혈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혼자 병원 대기실에서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렸고, 차가운 검사대에 누웠으며, 결과지를 들고 돌아와도 재헌은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약은 다시 왔지만 그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서윤이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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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며느리가 잘못한 일

서윤이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였다.박정희의 목소리가 등을 후려쳤다.“내 아들이 잘했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사내가 제 마누라한테 씨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면 너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밤에 남편 하나 붙들 재주도 없으면서 이제 와 누구 탓을 해?”예전 같았으면 바로 돌아서 사과부터 했을 것이다.하지만 서윤은 두 계단을 더 오른 뒤에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박정희는 바닥에 흩어진 한약 봉투 사이에 서 있었다. 뺨을 맞은 재헌은 굳은 얼굴로 넥타이를 풀어내고 있었고, 유리는 그의 곁에서 눈치만 살폈다.결국 또 자신이었다.남편이 정관수술을 해도 며느리 탓,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며느리 탓이었다.박정희는 서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혀를 찼다. 낮에는 연구실에 처박혀 살고, 밤에는 남편 하나 붙들 줄 모르니 재헌이 집에 정을 붙일 리 있겠느냐는 말이 이어졌다.서윤이 난간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그러니까 어머니 말씀은, 아드님이 다른 여자 때문에 해외를 들락거리고 저 몰래 수술까지 한 것도 제가 여자 구실을 못해서라는 거네요.”박정희가 코웃음을 쳤다.“남편이 밖으로 돌면 치마폭에라도 붙들어놨어야지. 제 남자 하나 못 붙잡아놓고 이제 와 다른 여자 탓하면 네 자존심은 좀 덜 상하니?”서윤의 입가가 차갑게 굳었다.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도 아내 탓이고, 아이가 생길 길을 막아놓아도 아내 탓이었다. 이 집에서는 강재헌이 무슨 짓을 하든 마지막에 죄인이 되는 사람은 늘 한서윤이었다.3년 동안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먼저 죄송하다고 했다. 재헌이 늦으면 자신이 잘 챙기지 못해서라고 했고, 임신 소식이 없으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그렇게 삼킨 사과가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그때 현관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쇼핑백을 든 강민아가 들어오다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재헌의 붉어진 뺨과 바닥의 한약 봉투를 훑던 시선이 유리에게 닿자 눈이 커졌다.“유리 언니?”민아는 쇼핑백까지 내려놓고 유리에게 달려가 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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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우리 집에 어울리는 여자

박정희가 마련한 모임은 호텔 회원제 라운지 안쪽의 프라이빗 별실에서 열렸다.둥근 대리석 테이블에는 찻잔과 디저트 접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통유리 너머로 늦은 오후의 도심이 내려다보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맞대는 재벌가 사모들의 정기 모임이었다.서윤이 들어서자 박정희는 하던 말을 멈추지도 않은 채 옆의 빈 의자를 가리켰다.“왔으면 앉아. 괜히 유난 떨면서 분위기 망치지 말고.”서윤은 가방을 의자 뒤에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잠시 후 별실 문이 열렸다.민아가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엄마, 유리 언니도 데려왔어. 사모님들도 다 아는 사이잖아.”박정희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잘 왔다. 여기 계신 분들 다 너 어릴 때부터 봤던 분들이야.”유리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최명숙이 찻잔을 내려놓았다.“어머나, 유리 아니니?”최명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세상에. 난 네가 진작 박 여사 며느리 된 줄 알았잖아.”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옆자리 사모도 안경을 살짝 내리며 유리를 바라봤다.“맞아. 재헌이하고 어릴 때부터 혼담 오갔던 그 집 딸이지? 둘이 하도 붙어 다녀서 우리는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잖아.”유리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아니에요. 다 옛날 일인데요, 뭐.”민아가 기다렸다는 듯 유리의 팔을 붙잡았다.“저도 유리 언니한테 새언니라고 부르게 될 줄 알았어요. 오빠 졸업식이며 가족여행이며 언니가 빠진 적이 없었으니까.”“민아야, 얘도 참. 서윤 언니도 있는데 그만해.”유리가 말리는 척 민아의 손등을 가볍게 쳤지만, 박정희는 오히려 찻잔을 들며 흐뭇하게 웃었다.“그러게요. 나도 그때는 당연히 유리가 우리 집 며느리 되는 줄 알았죠. 양가 어른들도 다 마음에 들어 했고. 그런데 사람 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만 되나요.”테이블에 놓인 포크 몇 개가 조용히 멈췄다.그제야 몇몇 사모의 시선이 서윤에게 향했다.서윤은 말없이 찻잔 손잡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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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며느리는 한서윤인데

서윤이 별실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잠깐만요.”코트를 걸치던 최은경이 서윤을 불러 세웠다.그녀는 서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코트를 다시 의자에 내려놓았다.“혹시 한서윤 박사님 아니세요?”서윤이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네, 맞습니다.”최은경의 얼굴이 환해졌다.“어머, 맞네. 지난번 국가전략기술 발표회에서 뵀어요. 우리 남편이 그날 한 박사님 발표 듣고 와서 얼마나 칭찬을 하던지.”코트를 챙기던 사모들이 하나둘 돌아봤다.“한서윤?”누군가 이름을 되뇌자 옆에 있던 사모가 서윤을 다시 살폈다. 다른 사람은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옆 사람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낮은 웅성거림이 별실 안으로 번졌다.“맞네. 이분이네.”“어머, 박 여사 며느리였어?”조금 전까지 유리의 과거 이야기에 웃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서윤을 중심으로 돌아섰다.최은경이 먼저 명함을 내밀었다.“최은경이에요. 박 여사 며느리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인사했죠.”“한서윤입니다.”서윤이 명함을 받자 옆에 있던 사모도 가방을 열었다.“우리 남편 회사도 요즘 이쪽 기술 때문에 난리예요. 연구진 이름까지 외우는 사람이 아닌데 한 박사님 이름은 몇 번 들었어요.”또 다른 사모도 명함을 내밀었다.“나는 얼굴은 몰랐는데 이름은 알았네.”서윤 앞에 명함이 하나둘 놓였다.조금 전까지 유리에게 가족여행이며 졸업식 이야기를 묻던 사람들은 이제 서윤에게 다음 발표 일정과 연구 분야를 물었다.서윤은 묻는 말에만 차분히 답했다.유리는 박정희 옆에 앉은 채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누구도 그녀에게 옛날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박정희가 결국 찻잔을 내려놓았다.“밖에서야 저렇게들 알아주죠. 집에서는 영 서툴러요. 연구밖에 모르고 살림도 제대로 못 하지, 어른 챙기는 것도 영 시원찮지.”최은경이 박정희를 돌아봤다.“박 여사, 그게 흉이에요?”“며느리가 집안일도 할 줄 알아야죠.”최은경이 피식 웃었다.“세상에, 한서윤 박사를 며느리로 앉혀놓고 살림 타령을 해요?”옆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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