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이혼하자 국가가 나를 보호하고,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บทที่ 11 - บทที่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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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제 발로 돌아오겠지

서윤이 집을 나간 뒤에도 재헌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오빠.”유리의 나른한 목소리에 재헌이 고개를 들었다.유리는 거실의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대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모두가 죽었다고 단정했던 여자였다.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만 미친 듯이 살아 있다고 믿었던 여자.그 차유리가 지금 눈앞에 앉아 있었다.“사고 뒤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유리의 시선이 찻잔으로 내려갔다.“응.”“단 하나도?”시계 초침 소리만 거실을 채웠다.“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대.”사고 이후 어디에서 발견됐는지도 몰랐고, 몸이 회복된 뒤에도 머릿속에는 까만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그동안 여러 곳을 옮겨 다녔어. 기억도 없었고…… 내가 누군지 말해줄 사람도 없었거든.”재헌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어졌다.“왜 진작 연락을 안 했어.”유리가 씁쓸하게 웃었다.“누구한테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기억상실.그렇다면 몇 년 동안 자신이 유리를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도 설명됐다.“얼마 전부터 조금씩 생각나기 시작했어. 어릴 때 살던 집도, 학교도.”유리가 거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그리고 여기도…… 기억났어.”긴 속눈썹이 떨리며 눈가가 붉어졌다.“아버님도.”잠시 말을 멈춘 유리가 재헌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오빠도.”유리의 손이 천천히 뻗어왔다.“어젯밤 나를 안아주던 오빠의 체온도.”손끝이 재헌의 소매를 스치고 허벅지 위에 내려앉았다.“제일…… 보고 싶었어, 오빠.”그 한마디에 지난 몇 년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유리와 닮았다는 여자들을 확인하러 밤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던 수많은 새벽.재헌은 유리의 손을 내려다봤다.떼어내지 않았다.“오빠는…… 내가 정말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재헌은 망설이지 않았다.“단 한 번도 죽었다고 생각한 적 없어.”그의 시선이 유리에게 박혔다.“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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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오빠 카드로 사

강성백화점 명품관 VIP룸.소파에는 벌써 쇼핑백이 여러 개 쌓여 있었다.“언니, 이것도 입어봐.”강민주가 크림색 원피스를 유리의 몸에 대보았다.유리는 가격표를 확인하고 난처한 듯 손을 저었다.“민주야, 이제 그만 사도 돼. 나 지금 돈도 없는데…….”“누가 언니보고 돈 내래?”민주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오빠 카드 쓰면 되지.”유리는 망설이는 척했지만 시선은 진열대 한가운데 놓인 신상품 가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민주가 곧바로 재헌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유리 언니 가방 하나 사도 되지? 이거 꽤 비싼데.”수화기 너머로 회의 중인 듯 낮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가격 보지 말고 필요한 거 다 사줘.유리의 손끝이 가방 손잡이를 천천히 쓸었다.“오빠, 난 정말 괜찮은데…….”― 마음에 들면 사.“고마워, 오빠.”통화가 끝나자 유리는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집었다.“이걸로 할게요.”직원이 재헌의 카드를 받아 들며 웃었다.“사모님께 정말 잘하시네요.”유리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정정할 시간은 충분했다.하지만 하지 않았다.오히려 가방을 받아 들며 희미하게 웃었다.잠시 후 두 사람이 VIP룸을 나왔다.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던 민주의 발이 우뚝 멈췄다.“어? 새언니다.”아래층 휴대전화 매장 앞에 서윤이 서 있었다.집을 나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검은 슬랙스에 밝은 블라우스와 재킷을 걸쳤고, 긴 머리도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초라할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아니었다.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유리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두 사람이 다가가자 서윤도 그들을 발견했다.유리는 재헌이 사준 가방을 슬며시 앞으로 옮겼다. 금박 로고가 정확히 서윤 쪽을 향했다.“언니, 이거 오해하지 마요. 난 안 사도 된다고 했는데 오빠가 필요한 건 다 사라고 해서…….”서윤의 시선이 가방을 스쳤다.그뿐이었다.직원이 결제 단말기를 내밀었다.서윤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삑.[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민주의 얼굴에서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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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내가 이혼해 줄 것 같아?

회의 테이블 위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재헌은 보고서를 넘기다 화면을 확인했다.민주였다.[오빠, 새언니 다른 남자랑 있어.]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낯선 남자가 서윤의 쇼핑백을 든 채 그녀에게 몸을 숙이고 있었다. 사진만 보면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듯 가까웠다.재헌의 손이 멈췄다.[지금 백화점 8층 라운지로 올라갔어.]곧바로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긴 연결음이 이어졌다.받지 않았다.다시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재헌이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회의 여기까지.”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대표님, 아직 다음 안건이—”“미뤄.”재헌은 재킷을 집어 들고 그대로 회의실을 나갔다.얼마 뒤, 강성백화점 8층 프리미엄 라운지.딸랑.문이 열리자 직원이 인사를 건네려다 멈칫했다.검은 정장 차림의 재헌이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빠른 걸음과 서늘하게 굳은 얼굴에 근처 손님들의 시선이 하나둘 따라붙었다.재헌은 단번에 서윤을 찾아냈다.창가 테이블.사진 속 남자와 마주 앉은 서윤 앞에는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한서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재헌은 테이블 앞까지 다가와 남자를 훑었다.“전화는 왜 안 받아.”시선이 다시 남자에게 박혔다.“그리고 이 새끼는 누구야.”남자가 만년필을 내려놓았다.“말씀이 지나치시군요.”그가 명함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한서윤 씨의 법률 대리인 이정우 변호사입니다.”“법률 대리인?”재헌의 시선이 서류로 떨어졌다.[이혼 소송 청구 및 재산분할 신청서]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집 나간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이런 걸 준비해?”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재헌이 손을 뻗었다.“일어나. 집에 가서 얘기해.”손목을 잡히기 직전이었다.서윤이 테이블 위 얼음물 잔을 집었다.촤악―.차가운 물이 재헌의 얼굴을 정면으로 덮쳤다.얼음 몇 조각이 대리석 바닥을 튕겼다.잔을 들던 손님도, 주문을 받던 직원도 그대로 굳었다.젖은 머리칼 아래 재헌의 눈매가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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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기다리는 아내

손아귀 안에서 이혼 서류가 사정없이 구겨졌다.조금 전까지 서윤이 앉아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다른 남자를 옆에 두고 자신에게 이혼 서류를 내민 아내.한서윤은 원래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늘 기다리는 여자였다.결혼한 지 넉 달쯤 되었을 때도 그랬다.그날 저녁에는 서윤과 약속이 있었다.먼저 저녁을 먹자고 한 사람도 재헌이었다.오후 다섯 시 무렵.강성그룹 본사 임원회의가 끝나갈 때 오세진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대표님.”화면에는 해외의 어느 거리에서 찍힌 여자 사진이 떠 있었다.선글라스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긴 머리와 턱선이 차유리를 닮아 있었다.재헌이 사진을 확대했다.“어디야.”“프라하입니다. 현지 탐정이 오늘 보내왔습니다.”“확실해?”“그랬으면 제가 벌써 비행기부터 잡았죠.”재헌의 시선은 사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잡아.”“뭘요?”“비행기.”세진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선배.”재헌이 눈을 들었다.“오늘 사모님 만나기로 했잖아요.”“그래서?”“먼저 약속 잡은 것도 선배고.”재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오세진.”“알았어요. 잡으면 되잖아.”세진이 휴대전화를 꺼내다가 다시 멈췄다.“사모님한테는요?”“뭘.”“못 간다고 연락해야죠.”재헌은 이미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네가 해.”세진의 손이 멈췄다.“그걸 왜 제가 합니까?”“바빠.”세진이 어이없다는 듯 재헌을 바라봤다.“차유리 씨 닮은 사람 확인하러 갈 시간은 있고, 기다리는 와이프한테 전화 한 통 할 시간은 없고?”재헌의 시선이 차갑게 꽂혔다.세진이 곧바로 두 손을 들었다.“알았어요. 여기까지.”재헌은 대꾸도 없이 회의실을 나갔다.“가장 빠른 비행기로 잡아.”그날 저녁.서윤은 약속 장소에 혼자 앉아 있었다.한 시간이 지나고,두 시간이 지나고,세 시간이 지났다.직원은 이미 두 번이나 물을 갈아주었다. 테이블 위 촛불도 거의 끝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다.직원이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혹시…… 일행분께 연락해보시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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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다른 여자의 이름

그날은 재헌의 첫 생일이었다.서윤은 남편이 프라하행 비행기에 오른 줄도 모르고 저녁상을 차렸다.된장찌개와 갈비찜, 몇 번이나 연습한 잡채. 재헌이 좋아한다는 음식은 집안사람들에게 하나씩 물어가며 배웠다. 작은 케이크도 직접 만들었다.밤 열 시.갈비찜은 두 번이나 데웠고 잡채는 이미 불어 있었다.“사모님, 이제 치울까요?”김준호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조금만 더 둘게요. 내일 오면 같이 먹으면 되니까요.”하지만 재헌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사흘째 새벽.현관문 소리에 소파에서 잠들었던 서윤이 눈을 떴다.“안 잤어?”“……기다렸어요.”재헌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기다리지 말랬잖아.”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었다.“출장은 잘 끝났어요?”“응.”“어디 다녀왔어요?”재헌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일 때문에.”그게 전부였다.냉장고에는 먹지 못한 생일 케이크가 남았지만 서윤은 꺼내지 않았다.그날 밤.뜻밖에도 재헌이 안방으로 들어왔다.같은 침대에 누워도 서로의 몸이 닿지 않는 날이 더 많았던 부부였다.서윤이 등을 돌리려는 순간 재헌의 팔이 허리를 휘감았다.“재헌 씨……?”몸이 단단한 가슴팍으로 끌려갔다.“가만있어.”머리카락을 걷어낸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읏…… 재헌 씨.”“왜.”“갑자기 이러면…….”재헌이 그녀를 돌려 눕혔다.“싫어?”서윤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싫지 않아요.”재헌의 눈빛이 짙어졌다.“그럼 나 봐.”입술이 맞닿았다.허리를 끌어당기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잠깐…… 재헌 씨…….”“왜.”“너무…… 읏.”뜨거운 숨 사이로 목소리가 끊겼다.서윤의 손이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재헌 씨…….”이름을 부를 때마다 재헌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평소 자신에게 좀처럼 욕망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였다.그래서 그날만큼은 믿고 싶었다.이 남자가 자신을 원한다고.“나 좀 봐요…….”재헌이 고개를 들었다.“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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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며느리 자리

“내가 이혼해 줄 것 같아?”구겨진 이혼 서류를 내려다보던 재헌의 눈앞에 서윤의 얼굴이 겹쳐졌다.늘 자신을 기다리던 여자.그런 여자가 다른 남자를 변호사로 데려와 이혼을 요구했다.재헌은 곧바로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받지 않았다.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조금 전 이정우와 나란히 라운지를 나가던 모습이 떠올랐다.자신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말라던 여자가 다른 남자 옆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재헌이 오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정우라는 변호사 알아봐.”― 사모님 이혼 변호사요?“한서윤 옆에 있던 놈이야.”― 서류까지 받으셨다면서요.재헌의 눈매가 차갑게 좁아졌다.“누가 이혼한대.”통화를 끊고 저택으로 돌아오자 거실에 박정희와 유리가 앉아 있었다.“재헌아!”유리가 먼저 일어났다.“오빠, 얼굴이 왜 그래?”그녀의 손이 젖은 셔츠에 닿으려는 순간 재헌이 손목을 붙잡았다.“아무것도 아니야.”손을 떼어내자 유리의 표정이 굳었다.박정희가 혀를 찼다.“서윤이 집 나갔다며. 백화점에서는 웬 남자랑 붙어 다니고.”“변호사입니다.”“무슨 변호사?”재헌이 대답하지 않자 박정희의 얼굴이 굳었다.“설마 이혼?”유리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감히 먼저 이혼을 요구해?”“어머니.”“내가 처음부터 그 애는 우리 집 며느릿감 아니라고 했지.”유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언니도 많이 속상해서 그런 걸 거예요.”박정희가 재헌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당장 데려와.”“싫다고 하면요?”“뭐?”“제가 알아서 합니다.”“강씨 집안 며느리가 제멋대로 집을 나가는데 뭘 알아서 해?”재헌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제 아내입니다.”그 말에 유리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잠시 후 유리가 재헌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오빠.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줄게.”몇 년 동안 찾아 헤맸던 여자였다.그런데 재헌의 머릿속에는 서윤의 말만 떠올랐다.‘다른 여자 끌어안던 손으로 나 만지지 마요.’재헌이 유리의 손을 떼어냈다.“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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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가족사진 속 여자

다음 날 아침.거실 테이블 위에 오래된 앨범들이 펼쳐져 있었다.“언니, 이것 봐.”민주가 사진 한 장을 유리에게 내밀었다.“제주도 갔을 때 기억나?”사진 속 유리는 어린 재헌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기억나지. 오빠가 나 바다에 빠뜨렸잖아.”“그러고 감기 걸릴까 봐 밤새 옆에 붙어 있었잖아.”“민주야.”유리가 슬쩍 눈치를 줬다.“그런 얘기는 하지 마.”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진은 내려놓지 않았다.박정희가 웃었다.“뭘 못 해. 다 옛날 일인데.”민주가 다음 사진을 꺼냈다.이번에는 가족 식사 자리였다. 재헌 옆에는 또 유리가 앉아 있었다.“언니는 옛날에도 꼭 오빠 옆이네.”유리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었다.“그러게. 항상 저기 앉았던 것 같아.”“그 자리가 원래 언니 자리였잖아.”재헌의 시선이 민주에게 향했다.“강민주.”“왜? 옛날 얘기잖아.”민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그때 재헌의 시선이 거실 벽에 멈췄다.결혼사진이 사라져 있었다.“사진 어디 갔어.”박정희가 찻잔을 들었다.“무슨 사진?”“결혼사진.”“아, 그거?”민주가 먼저 웃었다.“옛날 사진들 꺼내다 보니까 좀 안 어울려서 잠깐 치웠어.”유리가 얼른 손을 저었다.“오빠, 난 괜찮아. 언니 사진 다시 걸어도 돼.”마치 그 자리를 자신이 양보하는 듯한 말투였다.재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원래 있던 자리에 놔.”유리의 웃음이 잠깐 굳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오세진이었다.재헌은 서재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이정우 변호사 알아봤습니다. 사모님 대학 때부터 알던 사이랍니다.“대학 때부터?”― 네. 이번 이혼 건도 맡았고요.재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얼마나 가까워.”― 대표님, 변호사 조사 맞습니까?“어제 이후에도 같이 있었는지 확인해.”― 선배, 그건 거의—“오세진.”― 알겠습니다.통화를 끊자 서재 문이 열렸다.“오빠.”유리가 들어와 재헌의 팔에 손을 얹었다.“나 때문에 언니랑 더 싸우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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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며느리의 의무

“밤새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는 안 묻겠다.”박정희가 서윤을 위아래로 훑었다.“대신 시집왔으면 밥값은 해야지. 며느리 자리가 공짜인 줄 아니?”서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박정희가 소파 맞은편을 턱짓했다.“앉아.”“서서 들을게요.”“그래. 잘난 박사님은 바쁘시겠지.”박정희가 입술을 비틀었다.“이번 주 토요일 회장님 생신이야. 친척들 다 모이니까 금요일부터 들어와서 준비해.”“제가요?”“그럼 내가 하니?”박정희가 코웃음을 쳤다.“며느리 하나 들여놨더니 시어머니가 며느리 노릇까지 하게 생겼네.”유리가 얼른 끼어들었다.“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예전에도 이런 행사 많이 해봤잖아요.”“넌 됐어. 손님이 무슨 일을 해.”“그래도 아버님 좋아하시는 음식은 제가 좀 알잖아요.”민주가 피식 웃었다.“그건 맞아. 유리 언니가 새언니보다 우리 집 식성은 더 잘 알걸?”“그러겠죠.”서윤이 담담하게 받았다.“저보다 오래 드나드셨으니까.”민주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유리가 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언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내가 알려줄게.”“뭘요?”“아버님 음식이랑 친척들 자리 배치 같은 거.”서윤이 유리를 바라봤다.“그렇게 잘 아시면 직접 하세요.”“언니…….”“며느리보다 잘 아신다면서요.”탁.박정희가 찻잔을 내려놓았다.“말끝마다 꼬박꼬박 말대꾸는.”그때 재헌이 끼어들었다.“토요일 몇 시예요.”“여섯 시.”“서윤은 저랑 갑니다.”서윤이 바로 받아쳤다.“누구 마음대로요?”재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박혔다.“가야 해.”“왜요?”“내 아내니까.”서윤이 헛웃음을 흘렸다.“아내라는 말, 참 필요할 때만 잘 나오네요.”“한서윤.”서윤이 테이블 위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재헌의 팔에는 유리가 매달려 있었다.“사진에는 이 여자.”사진을 내려놓았다.“집에도 이 여자.”서윤이 재헌을 똑바로 바라봤다.“일 시킬 때만 나?”박정희의 얼굴이 벌게졌다.“유리하고 네가 같니?”“다르죠.”서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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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며느리는 따로 있었다

금요일 오후.강태준 회장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저택은 종일 분주했다.현관에는 선물 상자가 줄지어 들어왔고, 사용인들은 꽃바구니와 와인 상자를 쉴 새 없이 옮겼다. 거실에서는 은식기와 잔을 맞춰 놓는 소리가 달그락거렸고, 주방에서는 기름 튀는 소리와 칼질 소리가 뒤섞였다.서윤이 들어서자 박정희가 기다렸다는 듯 앞치마부터 내밀었다.“잘 왔다. 갈아입고 내려와. 손님상에 올릴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주방에는 갈비와 전, 잡채 재료가 조리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이걸 제가 다 해요?”박정희가 코웃음을 쳤다.“시집와서 이런 날 밥값도 안 하면 언제 하려고?”서윤은 말없이 앞치마를 받아 들었다.한 시간 뒤.커다란 냄비에서는 갈비가 끓고, 한쪽에서는 전이 쉴 새 없이 부쳐졌다. 쟁반을 든 사용인들이 연신 드나드는 사이 서윤은 잡채를 버무리다 다시 갈비 냄비 앞으로 붙었다.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손끝에는 양념 냄새가 짙게 배었다.반면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유리는 민주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꽃 장식을 고르다 과일을 집어 먹었다. 그러면서 주방 쪽으로 한마디씩 던졌다.“언니, 아버님 잡채에는 버섯 많이 넣으면 안 돼.”잠시 뒤 또 목소리가 날아왔다.“재헌 오빠는 갈비 단 거 싫어해. 설탕 많이 넣지 마.”서윤이 고개를 들었다.“그렇게 잘 아시면 직접 하시죠.”박정희가 바로 받아쳤다.“유리가 왜 해? 손님한테 부엌일 시키게?”서윤이 헛웃음을 흘렸다.“입맛 챙길 때는 식구고, 일할 때는 손님이네요.”유리의 웃음이 슬쩍 굳었다.그때 뒤에서 접시가 와르르 흔들렸다.사용인이 쏟아질 뻔한 접시를 가까스로 받아내는 사이, 갈비 냄비가 부글거리며 끓어 넘쳤다.서윤이 급히 손잡이를 잡았다.뜨거운 김이 손등을 덮쳤다.“읏.”화끈한 통증에 손을 빼냈다.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부풀었다.곁에서 전을 부치던 가사도우미가 놀라 불을 줄였다.“사모님, 손부터 찬물에 대세요.”“갈비부터 내려놔.”박정희가 냄비를 턱짓했다.“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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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아내의 자리

토요일 저녁.강태준 회장의 생일을 맞은 저택은 평소보다 몇 배는 화려했다.현관 앞에는 검은 세단이 줄지어 섰고, 대형 화환과 선물 상자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샹들리에 아래에서는 정장을 차려입은 친척들과 계열사 임원들이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거실 한쪽에는 사람 키만 한 꽃장식과 생일 케이크까지 놓여 있었다.2층에서 서윤이 내려오자 몇몇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검은 드레스가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길게 떨어졌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매끈하게 드러난 목선과 어깨가 오히려 눈에 띄었다.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재헌의 시선도 멈췄다.잔을 든 채 서윤을 천천히 훑었다. 목선을 타고 내려간 눈길이 잘록한 허리께에서 잠시 머물렀다.“오빠.”유리가 그의 팔에 손을 끼웠다.“나 어때?”“괜찮아.”대답은 건성에 가까웠다.재헌의 시선은 다시 서윤에게 돌아갔다.유리의 웃음이 미세하게 굳었다.서윤은 모른 척 강태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생신 축하드려요, 아버님.”“그래. 고맙구나.”곧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말과 함께 식당의 양문이 열렸다.긴 식탁 위에는 은식기와 크리스털 잔이 반짝였고, 가운데에는 꽃과 촛대가 길게 이어졌다. 사용인들이 의자를 빼주자 사람들이 이름표를 확인하며 자리를 찾았다.서윤도 자신의 이름을 찾다가 걸음을 멈췄다.강재헌 옆에는 차유리.한서윤은 식탁 맨 끝이었다.어제 손을 데어가며 준비한 갈비와 전, 잡채는 가장 좋은 그릇에 담겨 상 한가운데 올라와 있었다.정작 며느리인 자신은 끝자리였다.박정희가 아무렇지 않게 턱짓했다.“뭐 해? 네 자리 저기잖아.”서윤은 아무 말 없이 끝자리로 걸어갔다.그때 뒤늦게 들어온 재헌이 멈춰 섰다.제 옆의 이름표를 본 순간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유리는 이미 의자를 빼고 있었다.“오빠, 여기 앉아.”재헌이 유리의 이름표를 집었다.“넌 저쪽.”맞은편 빈자리로 옮겨버렸다.“재헌아.”박정희가 목소리를 낮췄다.“손님들 다 보는데 뭐 하는 거니?”재헌은 식탁 끝에 놓인 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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