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온 뒤 첫 수요일,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네 개 쌓였다.새 작품의 견본책과 해외판 샘플, 회사에서 보낸 계약서였다. 서윤은 거실에서 내용물을 꺼내고 비닐과 종이를 나눴다. 납작하게 접은 상자를 끈으로 묶자 시계가 밤 열 시를 가리켰다.손이 멈춘 것은 시간이 먼저였는지, 현관에 놓인 묶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재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현지 시각은 한 시간 느렸고, 조금 전 보낸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서윤은 상자를 그대로 두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원고 파일을 열었지만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십 분 뒤 다시 나왔을 때도 상자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버리는 일은 내일 해도 됐다. 그런데 미루는 이유가 귀찮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서윤은 알고 있었다.수납장 아래에서 종이끈을 하나 더 찾다가 얇은 수첩이 떨어졌다. 오래전 마감 시간을 적던 수첩이었다. 사건 자료를 정리한 뒤 돌려받아 상자에 넣어 둔 것을 잊고 있었다.펼쳐진 장에는 짧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도진 분리수거 11:20]같은 문장이 사흘 연달아 적혀 있었다. 당시의 서윤은 시간을 써 놓고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 뒤에는 날짜와 계좌, 차량 번호를 빽빽하게 적었다. 믿지 못해서 모든 것을 기록하던 손의 흔적이었다.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제 끝났어. 전화해도 돼?서윤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재하야.”- 응. 무슨 일 있어?“오늘 수요일이야.”재하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내려가지 말라는 말부터 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해 주면 돼?서윤은 현관의 상자와 손에 든 수첩을 번갈아 봤다.“나 분리수거하고 올게.”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통화하면서 갈래?“아니.”- 그럼 끊을까?“응. 다녀와서 전화할게.”- 알았어.재하는 몇 분이면 오느냐고 묻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켜 두라고도 하지 않았다.서윤은 수첩을 식탁 위에 놓고 상자와 비닐 봉투를 들었다. 현관문을 열자 센서등이 켜졌다. 재하가 점등 시간을 늘려 둔 뒤 한 번
Last Updated : 2026-09-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