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다음 날 아침, 도진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계약서 다 보면 전화해.”“응.”“어려운 말은 표시해 둬. 내가 설명할게.”현관문이 닫힌 뒤 서윤은 작업실 서랍을 열었다. 전날 도진이 내민 계약서는 투명 파일 안에 그대로 있었다. 플랫폼에 들어간 사본과 달리 종이 원본에는 서윤의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서윤은 파일을 가방에 넣고 정미란의 사무실로 향했다.미란은 전날 서윤이 따로 발견한 제8조와 첨부표를 확인했다. 도진은 그 부분을 보여 주지도 않은 채 표시한 곳에만 서명하면 된다고 재촉했다. 서윤에게 유리가 어떤 사람인지 들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말을 믿고 서명했을 것이다.이어 계약서 각 장과 제본 상태를 촬영했다. 사본과 촬영 기록은 서윤과 날짜가 함께 나오도록 봉투에 넣어 봉인하고, 종이 원본은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채 서윤에게 돌려주었다. 도진에게 다시 보여 줄 가능성까지 고려한 조치였다.“남편 가방이나 휴대전화는 손대지 않으셨죠?”“안 건드렸어요.”“잘하셨습니다. 지금부터도 같습니다. 받은 자료, 본인이 참여한 대화, 주주와 사내이사로서 볼 권한이 있는 회사 자료만 씁니다.”“그걸로 부족하면요?”“법원과 수사기관이 받게 합니다. 몰래 남의 계정에 들어가서 좋은 증거를 나쁜 증거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옆자리에 앉은 오현우 회계사가 노트북을 돌렸다. 서윤이 전날 작성한 회계장부 열람 요청서에 따라 세무사무소가 넘긴 자료였다. 총계정원장과 세금계산서, 지급결의서, 법인카드 원본 내역이 연도별로 정리돼 있었다.세무사무소에서는 처음에 박 대표를 통해 달라고 했다. 미란이
Last Updated : 2026-08-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