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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분리수거하고 올게: Chapter 11 - Chapter 20

46 Chapters

제11화. 혼자 숨긴 비밀이 아니었다

결혼기념일 다음 날 아침, 도진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계약서 다 보면 전화해.”“응.”“어려운 말은 표시해 둬. 내가 설명할게.”현관문이 닫힌 뒤 서윤은 작업실 서랍을 열었다. 전날 도진이 내민 계약서는 투명 파일 안에 그대로 있었다. 플랫폼에 들어간 사본과 달리 종이 원본에는 서윤의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서윤은 파일을 가방에 넣고 정미란의 사무실로 향했다.미란은 전날 서윤이 따로 발견한 제8조와 첨부표를 확인했다. 도진은 그 부분을 보여 주지도 않은 채 표시한 곳에만 서명하면 된다고 재촉했다. 서윤에게 유리가 어떤 사람인지 들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말을 믿고 서명했을 것이다.이어 계약서 각 장과 제본 상태를 촬영했다. 사본과 촬영 기록은 서윤과 날짜가 함께 나오도록 봉투에 넣어 봉인하고, 종이 원본은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채 서윤에게 돌려주었다. 도진에게 다시 보여 줄 가능성까지 고려한 조치였다.“남편 가방이나 휴대전화는 손대지 않으셨죠?”“안 건드렸어요.”“잘하셨습니다. 지금부터도 같습니다. 받은 자료, 본인이 참여한 대화, 주주와 사내이사로서 볼 권한이 있는 회사 자료만 씁니다.”“그걸로 부족하면요?”“법원과 수사기관이 받게 합니다. 몰래 남의 계정에 들어가서 좋은 증거를 나쁜 증거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옆자리에 앉은 오현우 회계사가 노트북을 돌렸다. 서윤이 전날 작성한 회계장부 열람 요청서에 따라 세무사무소가 넘긴 자료였다. 총계정원장과 세금계산서, 지급결의서, 법인카드 원본 내역이 연도별로 정리돼 있었다.세무사무소에서는 처음에 박 대표를 통해 달라고 했다. 미란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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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사인 받을 때까지만

강명숙은 갈비탕 두 팩을 들고 왔다.“기념일인데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들어오세요, 어머니.”서윤이 먼저 전화해 반찬을 부탁한 참이었다. 명숙은 아들이 없는 시간에 혼자 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도진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부탁에도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걔는 알면 내가 너 귀찮게 한다고 싫어해.”명숙은 익숙하게 냄비를 꺼냈다. 서윤은 식탁 위 휴대전화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뒤집었다. 자신이 참여하는 대화였다.“어머니, 회사에서 예전에 어머니한테 보낸 돈이 있더라고요.”냄비 뚜껑을 열던 손이 멈췄다.“나한테?”“5년 전이요. 산후조리원 잔금.”명숙은 국자를 내려놓았다. 금속이 냄비 가장자리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도진이가 뭐래?”“아직 안 물었어요. 어머니한테 먼저 물어보려고요.”“회사 일은 내가 잘 모르지.”“민우가 누구예요?”명숙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침묵은 길지 않았다. 명숙은 의자를 당겨 앉더니 한숨부터 쉬었다.“네가 벌써 봤구나.”“언제부터 아셨어요?”“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언제부터요.”“애 태어날 때쯤.”서윤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눌렀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제가 유산했을 때도 알고 계셨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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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내를 미치게 만드는 법

스토리온 회의실 벽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밖에서는 안이 훤히 보였고, 출입 기록도 남았다. 재하는 서윤과 단둘이 밀폐된 장소에서 만나지 않았다. 미란이 옆자리에 앉은 뒤에야 문을 닫았다.“제출 기록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재하는 화면에 계약 흐름을 띄웠다.한서윤 개인에서 해윤콘텐츠로, 해윤콘텐츠에서 스토리온으로. 지금까지의 계약은 작품별로 제목과 이용 범위가 적혀 있었다. 도진이 새로 제출한 것만 달랐다. 과거 열두 작품과 신작, 앞으로 쓸 작품까지 한 문장으로 묶여 페이지온에 넘어가 있었다.“이 계약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님 확인이 없다는 사실도 시스템에 기록해 뒀습니다.”“기존 계약은 괜찮아요?”“현재 연재와 정산은 유지됩니다. 권리 귀속에 다툼이 생겼다는 이유로 기존 작품까지 내리면 작가님 손해가 더 커집니다. 양도 요청과 신규 사업만 보류하겠습니다.”“페이지온에는 뭐라고 알렸어요?”“권리자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고만 통지했습니다. 작가님이 부인했다는 사실은 전달하지 않았습니다.”서윤은 미란이 준비한 새 권리 관리 확인서를 펼쳤다.저작권자는 한서윤 개인. 해윤콘텐츠는 지정된 작품의 정산과 계약 실무만 대행한다. 영상화, 번역, 오디오북 같은 2차 이용은 건별로 저작자의 별도 승인을 받는다. 미래 작품과 포괄적인 대체 집필 조항은 넣지 않았다.작품 제목은 별지에 하나씩 적었다. 열두 작품 아래에는 빈칸도 두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이 생기면 새 별지를 만들고, 서윤의 개인 계정에서 인증한 뒤 효력이 생기도록 했다.“이대로 바꾸면 회사 대표가 누가 되더라도 혼자 넘길 수 없는 거죠?”“네. 계약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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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대출 실행일

도진은 저녁을 먹다 말고 서윤을 살폈다.현관을 열었을 때 도진은 미역국을 데우고 있었다. 손목이 아프다는 말을 기억해 국그릇을 식탁까지 가져다주었다. 다정함과 범행이 한 사람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붙어 있었다.“오늘 어디 갔다 왔어?”“병원.”“무슨 병원?”“손목 아파서.”서윤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작업실에서 나온 뒤부터 휴대전화 녹음이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나누는 대화였다.“계약서 읽어 봤어.”도진의 시선이 서윤의 얼굴에 붙었다.“어때? 당신한테 불리한 건 없어.”“내가 아프면 유리 씨가 내 원고를 완성한다는 조항은 뭐야?”“보험 같은 거지. 연재 중에 또 쓰러지면 독자랑 플랫폼 손해가 크잖아.”“내가 언제 쓰러졌는데?”“기억 안 나? 재작년에 마감하다 응급실 갔잖아.”과호흡으로 두 시간 수액을 맞은 일을 도진은 ‘집필 불능’으로 바꿨다.“유산 기록까지 플랫폼에 낼 필요가 있어?”도진의 젓가락이 멈췄다.“그걸 어떻게 알았어?”“검토 자료에 있다며. 유리 씨가 확인할 게 있다고 연락했어.”서윤이 만든 말이었다. 도진은 의심하기보다 휴대전화를 들었다.“지금 오라고 할게. 어차피 셋이 정리해야 돼.”삼십 분 뒤 유리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도진은 유리에게 물도 묻지 않고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 건넸다. 서윤은 그 익숙함을 모르는 척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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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이번에는 내가 버릴 차례

오현우의 중간보고서는 서른두 장이었다.첫 장에는 숫자 세 개가 적혀 있었다.페이지온 누적 지급액 4억 7천6백만 원.그중 1704호로 확인된 임차보증금 2억 8천만 원.신규 대출 예정액 3억 원.“이 대출까지 실행되면 페이지온으로 다시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현우가 자금 흐름표를 넘겼다.“담보로 낸 미래 매출 추정서에 신작과 해외 판권 수익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페이지온에 넘어가지 않은 권리입니다.”서윤은 계약서에 넣지 않은 자신의 결말이 숫자로 환산된 표를 보았다. 도진은 쓰이지도 않은 문장에서 수익을 당겨 쓰려 했다.미란은 탁자 위에 서류를 세 묶음으로 나눴다.“섞어서 생각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회사 자금은 해윤콘텐츠가 돌려받고, 저작권은 한서윤 씨 개인이 지킵니다. 이혼과 위자료는 가사 사건에서 따로 다룹니다.”“회사 돈도 결국 제가 번 건데요.”“감정적으로는 맞습니다. 법적으로는 회사 돈이에요. 박도진 씨에게 빼앗아 개인 통장에 넣으면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서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회사로 전부 돌려놓을게요.”첫 번째 묶음은 단독 주주 결정서였다. 해윤콘텐츠의 주식은 서윤이 전부 가지고 있었다. 도진을 사내이사와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외부 전문경영인을 임시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이었다. 서윤은 단독 주주로서 주요 의사결정과 결재 내역을 직접 받기로 했다.“결의하면 그때부터 효력이 생깁니다. 변경등기와 은행 권한 정리는 바로 이어 가고요. 아직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으니 실행 전까지는 초안입니다.”“대표이사라는 사람이 회사 주인인 건 아니네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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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당신이 만든 무대

페이지온의 보도자료는 오전 아홉 시 정각에 배포됐다.신예 작가 최유리의 데뷔작 공개. 해윤콘텐츠의 제작 노하우와 인기 작가 ‘서해’의 창작팀 경험을 결합한 첫 프로젝트.그 아래에는 이틀 뒤 열릴 권리 확인 및 론칭 행사의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기획·제작 박도진, 작가 최유리. 한서윤의 이름은 ‘창작 멘토’라는 작은 글씨로 들어가 있었다.서윤은 소개문을 끝까지 읽었다.공개된 미리보기에는 자신이 대표 검토 폴더에 넣어 둔 시험 장면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호텔 라루체 31층에서 8초간 정전이 일어나고, 여주인공이 흰 동백 브로치 안에 녹음 장치를 숨기는 장면. 원래 신작에는 없던 대목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32층이 표시창에 나타나는 설정까지 같았다.유출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장면이 이제 유리의 대표 문장으로 홍보되고 있었다.작가 소개에는 유리가 ‘서해의 장기 연재를 함께 완성한 숨은 창작자’라고 적혀 있었다. 1년 반 동안 오탈자를 잡고 자료를 정리한 일이 작품을 함께 쓴 경력으로 바뀌어 있었다.유리의 사진 뒤에 흐릿하게 들어간 책장도 낯익었다. 해윤콘텐츠 회의실에 있던 책장이었다. 서윤의 작품 열두 권이 꽂혀 있었지만 책등의 ‘서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도록 초점이 지워져 있었다.페이지온이 배포한 질의응답 예상안도 내려받았다. 서윤이 건강 문제로 장기 휴재를 결정했고, 유리가 창작팀을 이끌며 독자와의 약속을 대신 지킨다는 문장이 반복됐다. 서윤에게 확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들은 원고만 가져가는 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서윤이 스스로 펜을 놓았다는 이야기까지 완성해 두었다.노트북 옆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진이었다.“자료 봤어?”“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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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아내의 말을 믿지 못하게

행사를 이틀 앞둔 오후, 해윤콘텐츠의 일정 계정에서 회의 초대가 왔다.스토리온과 행사 전 권리 범위를 조율하는 자리였다. 장소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호텔 라운지, 참석자는 서윤과 재하, 양쪽 법무 담당자로 적혀 있었다. 도진은 외부 투자자와 약속이 있어 빠진다고 했다. 계약 일정을 잡을 때 늘 쓰던 회사 계정이라 주소만으로는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다만 첨부 메모에는 법무 담당자들이 도착하기 전 두 사람이 먼저 만나 쟁점을 정리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미란은 원문을 전달받고 자신이 십 분쯤 늦을 수 있으니, 공개된 자리에서 기다리되 어떤 문서에도 서명하지 말라고 했다.저녁 식사 때 도진은 무심한 얼굴로 옷차림까지 물었다.“오늘 호텔 가지?”“회사 메일 봤으면 알잖아.”“기자들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편하게 입지는 마.”“권리 미팅에 기자가 왜 있어?”“호텔이면 행사 준비하는 사람들 마주칠 수 있다는 말이지.”도진은 국을 뜨며 시선을 피했다. 서윤은 그가 권한 남색 원피스 대신 평소 입던 검은 셔츠를 골랐다.서윤은 미란과 실시간 위치를 공유한 뒤 약속 장소로 나갔다.재하는 창가에서 가장 먼 자리, 빈 의자 두 개가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작가님이 먼저 만나자고 하셔서 뜻밖이었습니다.”“이사님이 요청한 것 아니었어요?”둘은 동시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전체 회의 초대는 같았지만 첨부된 메모가 달랐다. 재하가 받은 것에는 서윤이 먼저 단둘이 확인할 내용이 있다고 적혀 있었고, 서윤의 것에는 재하가 비공식 대화를 요청했다고 되어 있었다.재하가 스토리온 법무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는 회의 자체를 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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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이 작품을 쓴 최유리입니다

행사 전날 리허설은 페이지온 사무실에서 열렸다.입구에 놓인 소파와 촬영용 조명은 해윤콘텐츠 장부에서 본 제품이었다. 번역 선급금으로 처리된 날 결제된 물건들이었다. 벽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신작의 인물 관계도가 붙어 있었다. 서윤이 공용 폴더에 올린 메모를 색깔만 바꿔 다시 인쇄한 것이었다.유리의 책상에는 ‘대표 최유리’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책상과 컴퓨터는 갖췄지만 회사 통장은 도진이 관리했고, 계약서는 그의 승인 없이는 한 장도 나가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자리를 유리에게 주고 손잡이는 자신이 쥔 구조였다.직원 셋이 행사 순서를 맞췄고, 도진은 스크린에 띄울 자료를 직접 넘겼다. 유리는 무대용 원고를 들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서윤은 축하 인사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뒤쪽에 앉아 있었다.“서해 작가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집필 활동을 줄이고…….”유리가 읽던 문장을 멈췄다.“이 부분까지 제가 말해야 해?”“해야 흐름이 이어져.”도진은 화면도 보지 않고 답했다.“기자들이 왜 갑자기 네가 나왔냐고 물을 거잖아. 서윤이가 못 쓰게 돼서 네가 이어받았다는 설명이 필요해.”“못 쓰게 된 건 아니잖아.”유리의 시선이 잠깐 서윤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도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여기까지 와서 겁먹지 마. 내일 지나면 다 정리돼.”직원이 유리에게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행사장 비용과 단기 대출에 관한 확인서였다. 페이지온 대표자로 등록된 유리가 마지막 장에 서명해야 했다.유리는 빠르게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내가 연대보증인이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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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누구 회사 대표인데?

행사장 앞에는 ‘페이지온 신작 및 권리 파트너십 발표’라고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서윤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변호사가 정리한 한 장짜리 순서를 다시 읽었다. 최초 창작 기록, 시험본 전송 기록, 포괄 양도 미승인 확인. 그 밖의 질문에는 현재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만 답하기로 했다.휴대전화에는 호텔 사진에 관한 추가 문의가 두 건 와 있었다. 서윤은 답하지 않고 전원을 무음으로 바꿨다. 오늘 무대에서 사진을 해명하기 시작하면 도진이 만든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기자와 플랫폼 관계자, 투자사 직원들이 둥근 테이블을 채웠다. 서윤이 들어서자 카메라 몇 대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도진은 그녀의 팔을 잡아 앞줄로 안내하려 했다.“표정 좀 풀어. 사진 남아.”“놔.”서윤이 낮게 말하자 그의 손이 떨어졌다.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됐다. 도진은 페이지온의 총괄 기획자처럼 무대에 올라 유리를 소개했다. 서윤은 건강 문제로 작업량을 줄일 예정이며, 오랫동안 창작을 보조한 유리가 그 경험을 이어받아 새 작품을 썼다는 설명도 덧붙였다.유리가 마이크를 잡았다.“선배 작가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제 이름으로 제 이야기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스크린에 신작 첫 장면이 떴다. 유리는 서윤의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쉼표 앞에서 숨을 고르는 습관까지 서윤이 녹음해 준 낭독 파일을 따라 했다.낭독이 끝나자 진행자가 질문을 받았다.서윤이 손을 들었다.“저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도진이 진행자에게 눈짓했지만 이미 카메라가 서윤을 비추고 있었다.“최유리 씨. 세 번째 쪽 마지막에 엘리베이터 표시창이 32층을 가리켜요. 호텔은 31층까지인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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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공평이라는 이름의 제보

행사가 중단되자 도진은 서윤을 빈 대기실로 끌고 가려 했다. 변호사가 두 사람 사이를 막았다.“박도진 씨, 여기서 말씀하십시오.”“부부가 얘기한다는데 빠지세요.”“한서윤 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동석하겠습니다.”도진은 서윤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집에서 말하면 됐잖아.”“집에서 당신이 한 말은 다 들었어. 내가 예민하다, 기억을 못 한다, 쉬어야 한다.”“그건 사실이잖아.”“그러니까 이제 서류로 얘기해.”변호사가 첫 번째 봉투를 내밀었다. 해윤콘텐츠 단독 주주인 서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결한 대표이사 해임 통지와 변경등기 접수증이었다. 도진은 첫 장을 읽고 봉투를 구겼다.“네가 회사 운영을 알아?”“몰랐지. 그래서 확인했고, 이제 알아.”“나 없으면 한 달도 못 버텨.”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윤콘텐츠 주거래 은행이었다. 대표자 변경 접수가 확인돼 기업뱅킹 권한과 보안매체 사용이 중지됐다는 안내가 이어졌다.도진은 전화를 끊자마자 앱을 열었다. 출금 버튼을 여러 번 눌렀지만 승인 권한이 없다는 문구만 떴다. 행사 직후 실행하려던 대출도 보류돼 있었다.도진은 은행에 자신이 아직 대표라고 우겼다. 담당자는 변경등기와 단독 주주의 의결서가 확인됐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지된 보안매체의 접속 시도도 기록됐다.“취소해. 지금 당장 해임 취소하라고.”“이미 끝난 절차야.”“네가 도장 찍었다고 회사가 하루아침에 네 것이 돼?”“처음부터 내 회사였어. 지분도 돈도.”“은행에 무슨 말을 한 거야?”“내 회사 계좌를 내가 지킨 거야.”“내가 키운 회사야.”“내 원고료로.”도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입을 다물었다. 유리는 행사장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가 손짓했지만 다가오지 않았다.도진은 복도로 나가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까운 곳에서 진동이 울렸지만 유리는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전화가 오자 전원을 껐다. 도진은 유리에게 달려가려다가 기자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멈췄다.그날 오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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