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원수의 딸과 바람난 남친: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안유경의 예상대로 송지연의 태도가 곧바로 흔들렸다.“지금 안유경한테 들러붙겠다 이거야? 감히 그 여자 돕기만 해봐. 넌 내 손에 아작날 줄 알아! 그까짓 돈, 주면 될 거 아냐. 계좌 불러. 대신 당장 서경시 떠나고 영원히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알았어.”남자가 계좌번호를 읊었다.통화가 끝나자 안유경은 다시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져갔다.“앞으로 며칠간 어디도 가지 마. 송지연이 돈 보낼 때까지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송지연은 지난 몇 년간 민해준 앞에서 ‘진정한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라는 완벽한 연인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오직 선물만 고집해 왔다. 단 한 번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돈을 건네받은 적이 없었다.하여 안유경은 그녀가 즉시 긁어모을 수 있는 현금이 많지 않으리라 판단했다.십억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송지연이 그 돈을 마련하려면 민해준이 선물했던 고가의 물건들을 팔 수밖에 없을 터였다.바로 그때 안유경이 구매자로 위장해 그 물건들을 사들일 계획이었다.그녀가 아는 송지연은 민해준의 사랑을 상징하는 그 물건들을 선뜻 팔아치울 리가 없다. 분명 진품들 사이에 교묘하게 조악한 짝퉁을 섞어 놓을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녀는 송지연을 위조품 판매 혐의로 신고할 작정이었다.일이 잘 풀리면 송지연은 구류될 것이고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민해준과 송지연 두 사람 모두에게 망신을 줄 수 있고 나아가 둘 사이에 불화를 조장할 수 있었다.모든 계획을 마친 안유경은 사람을 시켜 가짜 피해자 가족을 지하에 가두게 했다.남자가 끌려가고 텅 빈 거실에는 안유경과 차도현만이 남았다.차도현이 다가와 그녀에게도 커피 한 잔을 건넸다.“어제 뉴스는 봤어.”그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드물게도 약간의 감정이 묻어났다.“민해준을 위해 네가 그토록 많은 걸 희생했는데 그 자식은 되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너한테 오물을 뒤집어씌우더군. 심지어 기자들을 유도해 네 아버지의 죄명을 기정사실화 했지. 그때 기분이 어땠어, 유경아?”안유경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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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안유경은 이야기를 이어가다 목이 점점 잠겼다.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시절 민해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왔던 길을 평온한 마음으로 온전히 쏟아내긴 힘들었다.그것은 인생의 나락에서 서로에게 기댔던 시간이었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서로를 부축했던 순간들이었다.그녀는 민해준과 자신의 관계가 세상 그 어떤 연인들보다 단단하고 견고하다고 믿었었다.그들은 단순한 사랑 그 이상의 전우애였으니까.하지만 결국 민해준은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다.중도 하차,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함께 나아가던 도중에 안유경을 차에서 억지로 내치고 떠나버렸다.안유경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삼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해준이가 프러포즈할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아? 정말 정성을 다했더라고. 친구들에게 내 취향을 물어보고 몇 가지 버전으로 프러포즈 계획을 세운 거야. 장미꽃까지 직접 키워서 마련한 거 있지.”“난 그때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복수도 마쳤으니 드디어 둘만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믿었어.”“근데 결과는? 하필 그날 내가 식탐이 폭발했는지 한사코 에그타르트를 먹겠다고 고집을 피웠어. 마지못해 해준이가 디저트 가게 앞 도로변에 차를 세운 게 화근이었어. 10분, 정말 딱 10분이었어. 차에서 내린 해준이가 길가에서 맥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던 송지연을 보게 됐지.”안유경은 울상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 또한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났다.“송지연은 처참하게 살고 있었어. 맥주를 팔 때 손님에게 욕을 먹거나 구멍가게 주인에게 쫓겨나기도 했지. 해준이는 그런 지연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걔한테 했던 계략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약해지고 죄책감을 느낀 거야. 그 이후로 모든 게 변했어.”“민해준은 몰래 송지연을 돕기 시작했고 우리의 복수 방식이 너무 극단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했어. 그리고 결국 도현이 너도 아는 그 일로 이어졌지. 나한테 파혼을 통보하면서 이러더라.”“복수하는 과정에서 송지연을 사랑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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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 참, 지난번에 보니까 언니 남자친구 경비원 같던데. 설마 그 사람이 여기서 일하니까 몰래 들어온 건 아니지?”송지연이 방금 생각났다는 듯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어쩐지 오전에 단지 안에서 그 사람이랑 닮은 경비원을 봤다 했는데 정말이었네.”안유경이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찰나 송지연의 손목에서 번쩍이는 최고급 명품 팔찌가 시야에 들어왔다.전 세계에 딱 열 개뿐인 한정판 팔찌였다.지난달 안유경의 생일 때 차도현이 똑같은 제품을 선물했었다.당시 그녀는 너무 과한 선물이라며 거절하려 했지만 차도현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았었다.안유경의 시선을 알아챈 송지연이 손목을 들고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언니도 이 팔찌 마음에 들어? 해준 오빠가 선물해준 건데 엄청 귀한 거라고 들었어.”팔찌를 빤히 보던 안유경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일부러 비꼬았다.“알아. 민해준이 주는 건 늘 좋은 거지. 그래서 돈 급할 때 현금화하기 딱 좋아.”그 말에 송지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난 오빠가 준 소중한 선물을 돈이랑 바꾸는 그런 몰상식한 짓은 안 해.”곁에 있던 민해준도 나서서 송지연의 편을 들었다.“지연이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내 마음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안유경, 말을 꼭 그렇게 귀에 거슬리게 해야겠어?”“그래? 그럼 감시 잘해야겠네. 넌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널 돈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안유경은 그 말을 남긴 채 더 이상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고 조깅을 계속했다.송지연이 멀어지는 안유경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다음 날 급하게 돈을 마련해 돌아오던 송지연이 정말로 단지 안에서 진경찬과 마주쳤다.일상복 차림의 진경찬이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낮은 목소리로 뭐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지연이 코웃음을 쳤다. 진경찬이 이곳에서 일한다는 확신이 들자 안유경이 단지에 드나들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의 덕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집에 돌아온 뒤 송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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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진경찬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잠시 망설인 뒤 허리를 숙였다.그가 바닥의 물건을 줍는 사이 송지연이 슬쩍 다가갔다가 그가 몸을 일으키자 다급히 몇 걸음 물러섰다.진경찬이 떨어진 물건들을 송지연에게 건넸다.“고마워요. 이 가방 안에 아주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거든요...”송지연이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받아 들더니 가방 안쪽을 살짝 뒤적이다 말고 갑자기 얼굴색을 싹 바꾸었다.그러고는 다급한 척 근처에 있던 조경 관리원에게 소리쳤다.“저기요. 당장 관리사무소 팀장 좀 불러와요. 급한 일이라고 하고요.”진경찬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송지연을 쳐다봤다.이윽고 관리사무소 팀장이 달려오자 송지연이 그제야 진경찬을 힐끗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내 팔찌가 사라졌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방 안에 있었는데 그쪽이 슬쩍한 거 아니에요?”송지연이 진경찬을 위아래로 훑으며 가느다란 눈썹을 찡그렸다.“설마 물건 주우면서 못 봤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진경찬이 대답하기도 전에 관리사무소 팀장 설원근이 얼굴에 비굴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송지연 씨, 찾으셨습니까?”그녀가 턱을 살짝 쳐들고 진경찬을 가리켰다.“팀장님, 내 한정판 팔찌가 없어졌어요. 이 사람이 내 물건을 슬쩍한 것 같은데 몸수색 좀 해주세요.”“내가 안 가져갔습니다.”진경찬이 부인해도 송지연이 집요하게 몰아붙였다.“그쪽 아니면 누구겠어요? 내 물건에 손댄 건 그쪽밖에 없는데.”“저기요, 생사람 잡지 마세요. 좋은 마음으로 물건 줍는 걸 도와줬더니 사람을 모함합니까?”진경찬은 이런 모함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래 말주변이 없고 투박한 성격인 탓에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변변한 말 한마디를 못 했다.송지연이 진경찬의 그런 점을 딱 노린 것이었다.“모함인지 아닌지는 몸수색해 보면 알 거 아니에요? 못 하겠다는 건 정말로 나와서 걸릴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죠?”“아니 이봐요!”진경찬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좋습니다. 수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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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송지연은 민해준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흠칫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얼굴에 띠고 있던 분노의 기색을 지우고 다급히 민해준의 곁으로 다가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척하며 말했다.“오빠, 마침 잘 왔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송지연이 진경찬을 가리킨 뒤 자신의 가방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오빠가 선물해 준 한정판 팔찌가 사라졌어. 아까 내가 여기서 실수로 가방을 떨어뜨렸을 때 유경 언니 남자친구가 물건을 주워줬거든. 그런데 그 사람 공구 가방에서 팔찌가 나왔어...”그녀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민해준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어제 유경 언니가 이 팔찌 예쁘다고 칭찬하자마자 오늘 언니 남자친구가 내 팔찌를 훔쳤어. 오빠, 혹시 유경 언니가...”송지연이 말끝을 흐렸지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누가 봐도 뻔했다.그녀의 말에 민해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진경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차단 목록에 등록되어 있던, 오랫동안 누르지 않았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안유경, 10분 안에 퍼스트 강남으로 와. 10분 안에 안 오면 경찰서에서 네 남자친구 얼굴 보게 될 줄 알아.”그러고는 안유경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10분 후, 안유경이 다급하게 달려왔다.차도현과 민해준 사이에 무슨 시비라도 붙은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민해준과 송지연, 그리고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진경찬의 모습이었다.안유경이 걸음을 멈추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를 본 송지연이 억울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사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안유경은 어이가 없었다.“갑자기 또 뭔 미친 소리야?”송지연이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허전한 손목을 쓰다듬으며 토끼처럼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팔찌가 탐났으면 그냥 나한테 직접 달라고 말하지 그랬어. 굳이 남자친구까지 부추겨서 훔치게 할 필요는 없었잖아. 이건 엄연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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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안유경은 민해준이 왜 갑자기 화살을 이쪽으로 돌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되는 법이다.“대체 누구의 손이 더러운지 CCTV로 확인하면 되겠네.”안유경이 단호하게 말했다.“좋아. CCTV에서 증거 나오면 합의 같은 건 없어. 너랑 네 남자친구 둘 다 책임져야 할 거야.”끝까지 가려는 안유경의 모습에 민해준도 흔쾌히 수락했다.그때 켕기는 게 있었던 송지연이 뜨끔했다. 다급히 민해준의 소매를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그냥 여기서 그만하자. 어쨌든 유경 언니 남자친구잖아. 일이 커지면 언니한테도 안 좋을 텐데 내 체면을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줘.”민해준이 송지연의 손을 뿌리치고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안 돼. 쟤 벌써 널 여러 번 괴롭혔어. 게다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오늘은 현장에서 증거가 나왔는데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교육해야지. CCTV는 무조건 확인할 거고 원칙대로 처리할 거야.”“그렇게 해.”안유경도 지지 않고 민해준을 쏘아봤다.“조사 안 하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송지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처음엔 가짜 눈물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오빠, 제발 신고하지 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단 말이야.”“지연아, 지금 마음이 약해져선 안 돼.”민해준의 말투는 조금 부드러워졌으나 태도는 그대로였다.“네가 괴롭힘당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어.”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다.옆에 있던 설원근이 무전기를 꺼내 CCTV 영상을 가져오라고 지시하려던 그때 인파 밖에서 모든 소음을 잠재우는 여유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참 시끌벅적하군. 내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좀 봅시다.”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차도현이 반듯하게 재단된 짙은 색 슈트 차림으로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곧장 안유경에게로 향했다.상대를 알아본 민해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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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진경찬이 허리를 숙여 물건을 줍고 송지연이 다가갔다가 물러서는 순간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진경찬의 공구 가방 바깥쪽 주머니 속으로 재빠르게 넣는 모습이 CCTV에 선명하게 찍혔다.현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송지연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차도현이 그제야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은 민해준을 차분하게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민 대표, 이래도 CCTV를 확인하고 경찰을 부를 거야?”이어 차도현의 시선이 송지연에게로 향했다. 목소리에 무거운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송지연 씨, 이제 경찬이한테 사과하시죠.”움찔한 송지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오해인 것 같은데...”“오해?”차도현이 여유롭게 말했다.“CCTV에 의도적인 모함이라고 명확히 나와 있어요. 얼른 사과하세요.”민해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송지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차도현, 진실이 밝혀졌으니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내 체면을 봐서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지. 진경찬 씨도 실질적인 손해를 입지 않았고 지연이도 순간 너무 급해서 그랬던 거니까.”민해준은 이 사태를 단순한 오해와 순간 너무 급했던 것으로 포장해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그가 감싸주자 용기를 얻은 송지연이 진경찬을 보면서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맞아요. 평범한 월급쟁이라 오해 좀 받았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손해 본 것도 없는데 꼭 이렇게까지 따져야겠어요?”노골적인 비아냥에 진경찬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뒤에 차도현이 있어 무서울 게 없었던 그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송지연을 똑바로 응시했다.“송지연 씨, 내가 땀 흘려 일하며 정당하게 돈을 버는 월급쟁이인 건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송지연 씨가 날 마음대로 모함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이건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한낱 아랫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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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경찰차가 멈춰 서더니 경찰관 두 명이 다급히 걸어왔다. 앞장선 경찰관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또 당신들입니까?”경찰관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기색이 묻어났다.“민 대표님, 안유경 씨, 그리고 거기 송지연 씨 맞죠? 당신들 대체 무슨 사이입니까? 지난번 사건이 지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이러세요? 철천지원수라도 되세요? 대화로 풀 수 없는 일이 뭐가 있다고 자꾸 경찰을 부르는 거죠?”경찰관이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안유경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사건 경위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 뒤 차도현의 비서가 건넨 태블릿 PC에 찍힌 CCTV 영상까지 보여줬다.증거는 명백했다.영상을 확인한 경찰관이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는 현금과 송지연의 악에 받친 표정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그러고는 민해준을 보며 난감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 송지연 씨가 남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한 데다가 폭행까지 저지른 정황이 CCTV에 명확히 찍혔어요. 진경찬 씨가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하시고 증거도 확실하니 저희로서도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경찰관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송지연을 보며 덧붙였다.“송지연 씨, 경찰서로 함께 이동하셔서 조사받으셔야겠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면 며칠 구류 처분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구류요?”송지연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악하더니 민해준의 팔을 잡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오빠, 나 유치장에 못 가. 제발 나 좀 도와줘. 날 그런 곳에 보낼 수 있겠어?”민해준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진경찬은 차도현의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처벌이나 합의 없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었다.송지연이 그의 팔을 잡고 벌벌 떨고 있었고 경찰관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던 그때 안유경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합의해 줄 수는 있어. 대신 경찬 씨한테 정신적 피해 보상금으로 40억 원을 지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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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빗자루질할 때마다 송지연은 본인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민해준이 어두운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세워둔 차 옆에 서서 복잡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안유경도 역시나 현장에 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길 건너편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차도현의 비서가 재빨리 편안한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펼쳐준 뒤 과자와 시원한 커피를 안유경에게 건넸다.안유경이 다리를 꼰 채 편안하게 앉아 느긋하게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꾸 ‘실수로’ 과자 봉지를 발밑에 떨어뜨렸다.바람이 불 때마다 봉지가 송지연이 방금 막 깨끗하게 쓸어낸 구역으로 훨훨 날아갔다.송지연이 한 구역을 쓸고 나서 뒤를 돌아봤는데 안유경의 발밑에 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그녀가 손에 든 과자를 여유롭게 흔들어 보였다. 힘내라고 응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안유경!”화가 난 송지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빗자루를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등의 핏줄이 다 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이것만이 유치장에 갇히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민해준이 안유경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안유경, 적당히 해.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일부러 사람 골탕 먹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안유경이 과자를 내려놓고 맑은 눈동자로 민해준을 올려다보았다.“마음이 아파?”그러고는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롭게 말했다.“그럼 관둬. 합의 안 하면 되지, 뭐. 지금 당장 송지연을 유치장에 보내면 되겠네.”민해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송지연을 유치장에 보낼 수는 없었다.그가 아무 말이 없자 안유경은 다시 자리에 앉아 과자를 쥐고는 멍하니 서 있는 송지연에게 말했다.“송지연, 멈추지 말고 어서 서둘러. 아직...”안유경이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7시간 40분 남았어.”송지연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고개를 숙인 채 무거운 빗자루를 힘껏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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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민해준이 다시 안유경의 손목을 잡았다. 두 사람의 뼈를 한데 뭉쳐버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악력이었다.손목을 짓누르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안유경은 민해준을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두 사람이 대치하는 동안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바로 그때 민해준의 기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다급하게 소리쳤다.“대표님, 송지연 씨가... 송지연 씨가 쓰러졌습니다.”민해준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는 송지연과 차가운 눈빛의 안유경을 번갈아 봤다.목구멍에 무언가 턱 막힌 듯 머뭇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유경의 손을 뿌리치고는 송지연에게 달려갔다.멀어지는 민해준의 뒷모습을 보던 안유경은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졌다.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민해준은 늘 이런 식이었다. 매번 그녀를 버리고 가버렸다.안유경이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섰다.이번에 귀국한 목적은 그들이 편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다음 날, 안유경이 믿을 만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연락해 송씨 가문의 손때가 묻어 더러워진 아파트를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매물로 내놓았다.“깔끔하게 처리만 된다면 급매라도 상관없어요.”안유경이 중개인에게 요구한 조건은 그것 하나뿐이었다.이젠 그 집에 대한 어떤 따뜻한 추억도 남아있지 않았고 역겨움밖에 없었다. 저렴하게 팔아치우는 건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음과 동시에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기 위함이었다.어찌 된 일인지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안유경이 ‘그들의 거처’를 팔아치우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경미란과 송규진이 노발대발했다.안유경을 찾아가 난리를 피우지 못하니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로 유명한 언론 매체 몇 곳에 연락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토로했다.경미란이 카메라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우리 둘이 오래 산 집이라 당연히 우리 집이라 생각했죠.”옆에 있던 송규진 역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몹쓸 악당에게 짓밟힌 선량한 피해자 행세를 했다.“아무 말도 없이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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