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차씨 가문의 황태자 차도현,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수단으로 정평이 난 남자였다. 하지만 안유경만큼은 예외였다. 약혼자 민해준이 제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과 눈이 맞아 파혼을 감행했을 때, 안유경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내어주는 대가로 차도현과의 결혼을 선택했다. 세상은 이를 두고 차가운 거래라 비웃었다. 그러나 민해준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폭우 속에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할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차도현이었다. 그는 안유경을 등 뒤로 단단히 감싸 안으며 민해준의 앞에서 신장 기증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민해준.” 차도현은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지만 눈 밑에는 살벌한 한기가 감돌았다. “똑똑히 봐. 네가 놓친 유경이는 바로 내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보물 같은 존재야.”
Ver más통쾌한가? 아주 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보다는 소동이 잦아든 뒤의 정적, 그리고 옅은 피로감이 더 컸다.복수가 주는 쾌감은 늘 찰나에 불과했고 그 뒤에는 더 깊은 공허함이 남기 마련이었다.“그럭저럭.”안유경은 결국 그렇게만 대답했다.“일이 해결됐으면 된 거지.”“뭐야. 왜 이렇게 덤덤해?”안유경의 차분한 태도에 류설아가 화제를 돌렸다.“그나저나 지금 어디야? 주변이 되게 조용하네.”“그냥... 아는 사람 집.”안유경은 차씨 가문의 복잡한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마음이 없어 적당히 둘러댔다.“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며칠 더 머물 것 같아.”류설아는 더 캐묻지 않고 인터넷상의 재미있는 댓글들을 몇 개 더 읊어준 뒤 몸을 잘 챙기라는 당부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안유경이 휴대폰을 내려놓자마자 화면이 다시 켜졌다. 민해준에게서 온 새로운 메시지였다.화면 위에 손가락을 몇 초간 멈추고 있다가 끝내 읽지 않고 그대로 화면을 꺼버렸다.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으려고 먼저 드레스룸으로 향했다.화장대를 지나칠 때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가 한없이 맑았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나른함 외에 별다른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안유경이 거울을 보며 긴 머리를 천천히 빗어 넘겼다.창밖으로 본가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는 풍경이 꽤 근사했다.저녁 식사는 예상외로 평온했다.긴 식탁에 차도현과 안유경 두 사람뿐이었다. 정갈한 요리들이 차례로 올라왔고 분위기는 여유로웠다.안유경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침묵해도 되었고 차도현 역시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식사 내내 차지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에서 죽을 먹었다는 소리에 안유경은 내심 안도했다.하지만 그 안도가 너무 성급했다.밤이 깊어지자 본가 저택이 본래의 고요함을 되찾았다.씻고 나온 안유경이 침대 머리에 기대 책을 읽다가 불을 끄려던 그때 저택 반대편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쿵 하는 소리가 적막한 밤공기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악의적인 추측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안유경의 과거 정보를 캐내어 제멋대로 왜곡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송지연 측에서 고용한 댓글 부대와 선동된 네티즌들은 진실을 밝혀냈다는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드디어 때가 왔다.안유경이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SNS 계정에 접속해 차도현의 비서가 보내준 경미란의 심리 검사 진단서 위조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이미지 비교 증거들을 조목조목 정리해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작성을 마친 후 가짜 진단서를 처음 퍼뜨린 익명 계정과 가장 열심히 퍼뜨리던 계정 몇 개를 태그한 다음 게시 버튼을 눌렀다.그러고는 노트북을 덮고 욕실로 향했다.따스한 물줄기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렸다. 아직 환한 대낮이었지만 그래도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안유경이 넓고 폭신한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쌌다.이불에서 햇살에 잘 말린 듯한 포근한 향기와 은은한 향 내음이 났다. 예상외로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다.눈을 감기 전 낮에 보았던 차지환의 히스테릭한 모습과 차도현의 지친 뒷모습, 그리고 인터넷의 비난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안유경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멘탈이 좋아야 여자의 인생도 잘 풀리는 법이지.”비웃음이 섞인 말투였지만 한편으론 후련함도 담겨 있었다.안유경은 깊게 잠들지 못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작은 사모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문밖에서 도우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안유경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이 몸을 감쌌다.협탁 위에 두었던 무음 모드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켜짐과 동시에 쏟아지는 알림 메시지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좋아요, 댓글, 공유, 다이렉트 메시지... 붉은 숫자들이 쉴 새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부재중 전화도 두 통 와 있었다. 한 통은 민해준, 다른 한 통은 류설아였다.먼저
“안유경.”차도현이 안유경의 이름을 불렀다.“우리의 계약이 어떤 건지, 그리고 너한테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지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나한테 지환이가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어떤 대가든, 어떤 수단이든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어.”그가 단호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그러니 지환이가 아무리 거부하고 나를 증오하고 밀어낸다 해도 살아있기만 하면 돼.”안유경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늘 냉철하고 자제력을 잃지 않던 이 남자의 단단한 껍데기 아래에 숨겨진 균열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젊은 도우미가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차도현의 앞에 멈춰 섰다.“큰 도련님, 작은 도련님이 방에서 또 난동을 부리고 계세요. 그러면서...”“뭐라고 하던가요?”차도현이 돌아서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남쪽 끝에 있는 연심재의 꽈배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갓 튀겨서 겉면이 바삭한 상태여야 한다고...”도우미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고 고개도 푹 숙였다.“당장 사람을 보내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사 오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배달해 오면 식어버려서 그 맛이 안 난다고 하셨어요.”차도현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연심재에 연락해서 돈을 세 배, 아니 열 배로 줄 테니까 그 집에서 제일 잘하는 장인더러 재료와 도구까지 챙겨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와 이 집에서 직접 만들라고 하세요.”“모든 비용은 차씨 가문에서 부담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환이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고요.”“알겠습니다, 큰 도련님.”도우미는 대답한 뒤에도 바로 물러나지 않고 머뭇거렸다.“그리고... 방금 주 박사님이 그러시는데 작은 도련님이 요즘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정하고 신장 수치도 요동치고 있다고 합니다. 가급적 비위를 맞춰주시고 충돌은 피해달라고 하셨어요.”차도현이 이를 악물었다. 손을 휘저어 물러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도우미가 큰 짐이라도 덜어낸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안유경은 옆에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차지환.”차도현이 경고의 뉘앙스를 담아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꺼져. 네 사람 데리고 꺼지라고!”차지환이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두 눈에 오랜 투병과 불안정한 정서에 시달린 흔적인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차도현은 더 이상 그와 실랑이하지 않고 곧장 안유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이쪽은 안유경이야. 이 사람 신장이 너한테 적합해.”그 말이 폭탄이 되어 차지환을 완전히 폭발시켰다.“적합하다고?”그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옆에 있던 장식장의 꽃병을 덥석 잡고 그대로 바닥에 던졌다.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누가 신장 달래? 누가 그따위 가식적인 동정을 바란대? 꺼져. 다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지라고!”이성을 잃은 차지환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까지 집어 들어 두 사람 쪽으로 던졌다.상자가 매끄러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내용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격렬한 움직임이 본래 허약했던 그의 체력을 순식간에 앗아갔다.물건을 던진 후 차지환이 몸을 숙여 한 손으로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팍을 꽉 움켜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입술은 금세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작은 도련님!”곁에 있던 도우미들과 뒤에서 대기하던 간병인들이 황급히 달려들었다.차도현도 다가갔으나 차지환이 그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기에 직접 부축하지는 못하고 대신 도우미들에게 지시했다.“방으로 데려가서 쉬게 해요. 의료진 말대로 조치하고.”숙련된 간병인들이 비틀거리는 차지환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차지환이 여전히 발버둥 쳤지만 힘이 빠진 탓에 거친 숨소리와 욕설만 간간이 들려왔다.잠시 후 그 소리마저 복도 너머로 흩어졌다.거실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안유경이 제자리에 서서 바닥에 널브러진 파편들과 차도현의 뒷모습을 번갈아 봤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외부인이라 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한참의 정적 끝에 안유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예전부터 저렇게 예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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