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그곳에 두거라. 그리고 서방님께 말씀 좀 전해 다오. 이제 두약을 약재로 쓰지 않으니, 더는 사람을 시켜 보내지 않으셔도 된다고.”영안은 속으로 의아하게 여겼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대답만 올린 뒤 하인들을 데리고 녹음재를 떠났다.송청아는 봉 어멈에게 사람을 시켜 두약 화분들을 뒤뜰로 옮겨 놓으라고 분부했다.이제 그녀에게 두약은 다른 화초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식물에 불과했다. 뒤뜰에 내버려 두고 저절로 자라든 시들어 죽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송청아는 뜰에 앉아 차를 마시며 송씨 가문에서 곧 소식이 올 때가 되었다고 짐작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미가 다급히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큰부인, 큰일 났습니다! 송씨 가문에서 사람이 왔는데, 채리 아씨의 얼굴에 갑자기 발진이 돋았다고 합니다. 큰부인께서 당장 와 보셔야 한답니다!”송청아가 송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이 이미 발칵 뒤집힌 뒤였다.송청아가 왔다는 말을 들은 여씨는 안채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가 갑자기 흐느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곧이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송청아에게 달려들었다.“우리 송씨 가문이 십수 년 동안 너를 부족함 없이 키웠거늘, 대체 어째서 내 딸을 해친 것이냐!”송청아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봉 어멈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 여씨를 막았고, 여씨를 모시는 두 어멈도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어멈들이 여씨를 다시 의자에 앉히자, 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듯 통곡하기 시작했다.“어머니, 언니를 나무라지 마세요. 어쩌면 언니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뒤쪽에서 송채리의 여리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음기가 섞여 더욱 애처롭게 들렸다.송채리는 안채의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얼굴은 면사로 가렸지만 양 뺨에 번진 짙고 붉은 반점은 얇은 천 너머로도 선명하게 보였다. 반점은 뺨뿐 아니라 이마와 목덜미, 심지어 손등에까지 빼곡히 돋아 있었다.송청아의 마음속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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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분명 당신이 꾸민 짓이잖아요! 채리 언니가 돌아오면 당신 자리를 빼앗길까 봐, 채리 언니를 해치려고 이토록 치밀하게 일을 꾸민 거잖아요!”날 선 목소리가 방 안의 고요를 찢었다. 말을 내뱉은 이는 송채리 곁에 앉아 있던, 아직 앳된 티가 남은 동그란 얼굴의 소녀였다.“여린아, 이제 그만하거라…….”송채리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송여린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러나 말리는 손길과 달리, 눈가에는 그녀의 행동을 묵인하는 여유와 은근한 득의가 배어 있었다.송여린은 그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송청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잔뜩 치켜뜬 두 눈에는 노골적인 적의가 이글거렸다.“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저 여자는 애초에 우리 송씨 집안사람도 아니잖아요. 변방에서 굴러들어 온 천한 핏줄이니, 심보가 사악한 것도 당연하지요!”독기 어린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던 가느다란 연기마저 잠시 멎은 듯, 주위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토록 모진 말을 듣고도 송청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선 채, 실망과 냉담함이 뒤섞인 눈으로 송여린을 바라보았다.문득 전생의 어린 시절이 아득한 향기처럼 기억 속에서 피어올랐다.그때의 동생은 늘 조그마한 강아지처럼 송청아를 따라다녔다. 송청아와 송세안이 어디를 가든 종종걸음으로 뒤를 쫓았고, 잠시라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금세 울먹이며 두 사람을 찾아 헤맸다.조금 자란 뒤에는 향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며 틈만 나면 송청아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송청아도 귀찮아하는 법 없이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향료를 고르는 법부터 하나하나 차근히 가르쳐 주었다.그러나 아직 손놀림이 서툴렀던 송여린은 걸핏하면 갓 조향한 향액을 제 몸에 엎지르곤 했다. 은은한 향기가 옷깃에 짙게 번질 때마다 놀라서 목 놓아 울었고, 송청아는 그런 동생을 따뜻하게 품에 안아 다독였다. 가느다란 등을 쓸어 주며 몇 번이고 달랜 끝에, 눈물 젖은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나고서야 안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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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러니 원인은 두약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쉽게 탈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꽃일 것이다. 요즘 피는 꽃들을 헤아려 보면 복사꽃이 아니면 목련일 가능성이 크겠지.”마지막 두 꽃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송관산의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그는 송청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빛이나 입술의 떨림 같은 미세한 변화 하나라도 잡아내려 했다.그러나 송청아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무고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맑은 눈동자에는 당혹감만 잔잔히 어려 있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잠시 침묵하던 송관산이 마침내 가장 중요한 말을 꺼냈다.“채리에게도 근래 복사꽃이나 목련을 가까이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네가 향료점에서 채리와 마주쳤던 날, 네 몸에서 목련 향기가 났다고 하더구나.”담담한 말투였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송청아의 퇴로를 막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송청아는 속으로 흠칫했다.역시 송관산은 만만히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단서 몇 가지만으로 이토록 빠르게 목련까지 짚어 내다니, 과연 송씨 가문의 가주다웠다.다행히 송청아는 이미 이런 상황까지 예상해 대비해 둔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계책을 꾸밀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제가 말입니까? 아닙니다…….”송청아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송관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그의 말뜻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아버지께서는 제가 일부러 목련 향을 써서 채리에게 탈이 나게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뺨을 타고 흘러내릴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송청아는 짙은 억울함과 실망을 담아 천천히 송채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채리야, 어째서 나를 모함하는 것이냐?”뜻밖의 반문에 송채리는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허를 찔렸다.자신이 송청아에게서 목련 향을 맡았다고 밝히기만 하면, 송씨 집안사람들이 당연히 제 편을 들어 억울함을 풀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송청아가 순순히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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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긴 몽둥이 끝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저것으로 단 한 대만 맞아도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살갗이 터져 피투성이가 될 게 분명했다.송청아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송씨 가문에서 이제껏 이 가법을 실제로 집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랫동안 사당에 보관되어 있던 탓에 몽둥이 끝의 가시들은 닳기는커녕 갓 벼린 쇠붙이처럼 날카로운 빛을 뿜고 있었다.그리고 그 가법이 처음으로 향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니.그 흉측한 몽둥이를 본 여씨는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곁에 있던 어멈의 팔을 붙들고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송청아를 가리켰다.“십팔 년 전, 우리가 너를 변방에서 도성으로 데리고 왔다. 친딸과 다름없이 길렀는데 대체 무엇이 그리도 불만이더냐?”여씨의 목소리는 분노와 원망으로 사납게 떨렸다.“내 채리는 이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네 자리를 빼앗길까 봐 이토록 치밀하게 계략을 꾸며 내 아이를 해치다니! 네 심보가 어찌 그리도 악독하단 말이냐!”그 말을 들은 송청아의 마음속에 싸늘한 냉소가 번졌다.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송관산과 여씨가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 준 것은 사실이었다. 친딸처럼 품에 안아 주었고, 다정한 말과 따뜻한 손길도 아끼지 않았다.하지만 송청아가 자라면서 이목구비가 또렷해지고, 얼굴 어디에서도 송씨 집안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워지자 두 사람의 태도도 차츰 식어 갔다.십 대에 접어들어 누가 보아도 송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뒤에는 대하는 방식이 더욱 노골적으로 달라졌다. 두 사람은 하인을 부리듯 툭하면 송청아를 불러 이리저리 일을 시켰고, 의복과 음식에 드는 비용마저 줄였다.송청아에게 뛰어난 조향 재능이 없었다면, 또한 송씨 가문과 배씨 가문의 혼인을 잇는 패로 이용할 가치가 없었다면 진작 문밖으로 내쫓았을지도 몰랐다.그러나 전생의 송청아는 어린 시절 두 사람에게 받았던 그 짧은 온기와 얼마 되지 않는 애정에 매번 마음이 약해졌다. 그 기억을 차마 저버리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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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송청아의 말은 마치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듯 안채를 뒤흔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송씨 집안사람들은 하나같이 흠칫하며 굳어 버렸다.송청아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한번 시집간 딸은 더 이상 친정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설령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어떻게 처벌할지는 시댁에서 결정할 일이었다.그런 송청아에게 송씨 가문이 억지로 가법을 집행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소용장군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더구나 송세안은 곧 무과를 치러야 했다. 앞으로 출세하려면 배윤호의 아버지인 배진성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중요한 때에 배씨 가문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었다.가법을 집행하라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안채에는 무거운 침묵만 내려앉았다.송청아를 붙잡고 있던 어멈들도 주인들이 모두 굳은 채 아무런 명도 내리지 않자 머뭇거리며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그 틈을 놓칠 송청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즉시 두 팔을 비틀어 속박에서 벗어났다. 봉 어멈이 다급히 달려와 부축하자, 송청아는 아픈 무릎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 모습을 본 송여린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아버지, 큰오라버니! 두 분 다 왜 그러세요? 어서 벌을 내리셔야죠! 설마 저 여자를 이대로 순순히 보내 주실 셈이에요?”여씨도 다급히 송관산의 소매를 붙들고 부추겼다.“나리, 대체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어서 세안에게 집행하라 명하십시오! 세안아, 네가 무엇이 두려워 그러느냐? 어서 저 아이에게 가법을 집행하거라!”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송관산과 송세안 부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할 뿐이었다. 배씨 가문을 건드렸을 때 돌아올 후환을 생각하면, 누구도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그 반응만으로도 송청아는 알 수 있었다.오늘의 싸움 역시 자신의 승리였다.송청아는 흐트러진 숨을 가다듬으며 구겨진 치맛자락을 천천히 털어 냈다. 어멈들의 거친 손길에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차분히 정돈한 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송채리를 바라보았다.“송채리, 오늘 네가 나를 모함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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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배윤호가 또 온다고?그 말을 듣는 순간, 송청아의 마음속에서 지긋지긋한 혐오가 서서히 치밀어 올랐다.오늘 밤에는 내일 열릴 귀환 연회를 위해 준비할 것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배윤호는 어째서 자꾸만 그녀를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녀와 달리 봉 어멈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큰도련님이 먼저 찾아와 함께 저녁을 먹겠다고 했으니 두 사람의 사이가 풀리는 징조라 여긴 모양이었다. 봉 어멈은 당장이라도 송청아를 데려가 새로 머리를 빗기고 곱게 단장시키려 했다.송청아는 황급히 손을 저어 거절했다. 가치도 없는 사람을 위해 꾸밀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얼마 뒤 송청아는 술상 맞은편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방문을 바라보았다. 배윤호가 언제 들이닥치든 곧바로 상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채였다.그러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어졌다.신시에 시작된 기다림은 어느덧 유시까지 이어졌다. 창밖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서산 너머로 완전히 저물고, 희고 둥근 달이 버들가지 끝에 걸릴 때까지도 배윤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온기를 머금고 김을 피우던 음식은 진작 싸늘하게 식었다. 봉 어멈과 화미의 눈에 가득했던 기쁨과 기대도 시간이 흐를수록 지친 기색과 실망으로 변해 갔다.반면 송청아의 기분은 조금씩 나아졌다.역시 배윤호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혼례를 올린 날 밤에도 그랬다.그날 송청아는 두껍고 뻣뻣한 혼례복을 입고, 목을 짓누를 만큼 무거운 머리 장식을 한 채 신방의 침상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두 시진이 넘도록 하염없이 신랑을 기다렸다.그러다 밤이 깊어서야 영안이 찾아왔다. 큰도련님이 술에 취해 이미 잠자리에 들었으니 더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던 탓에 허리 아래로는 감각마저 사라져 있었다. 무거운 머리 장식을 버티느라 목덜미는 수없이 바늘로 찌르는 듯 저리고 아팠다.그러나 그날 가장 고통스러웠던 곳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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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배윤호의 기세로 보아 조금 전 송씨 가문에 다녀온 것이 분명했다. 그곳 사람들이 사실에 온갖 말을 덧붙여 고자질하자 곧이곧대로 믿고, 장군부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찾아와 추궁하는 모양이었다.송청아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오늘 송씨 가문은 끝내 그녀에게 가법을 집행하지 못했다. 그러니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배윤호에게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리라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송청아는 진작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 두었다. 그녀는 옷깃을 움켜쥔 배윤호를 향해 고개를 들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끝까지 발뺌할 셈이냐?”배윤호의 손아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채리는 마음이 순수한 아이다. 너처럼 속으로 온갖 계략을 꾸밀 줄도 몰라. 더구나 여인에게 얼굴이 얼마나 중요한데, 너 하나를 모함하자고 제 얼굴이 망가질 짓을 하겠느냐?”송청아는 끝내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아, 배윤호는 자신과 송채리를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어리석어도 어찌 이리 어리석을 수 있을까.“서방님께서 그렇게 믿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믿으십시오.”송청아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어리석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들 믿어 줄 리 없었다.그러나 송청아가 이렇듯 태연하게 나오자, 배윤호는 힘껏 내지른 주먹이 푹신한 솜에 파묻힌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어디에도 풀어낼 수 없는 답답함이 치밀면서, 가라앉지 않은 짜증이 다시금 속을 헤집었다.예전의 송청아는 그가 조금만 나무라도 금세 겁에 질려 다급히 해명하곤 했다. 자신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 화내지 말아 달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며 한참 동안 매달렸다.자신이 잘못했으니 반드시 고치겠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하기도 했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이처럼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추궁하는데도 송청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변명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마치 배윤호가 자신을 오해하든 말든, 싫어하게 되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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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화신 향 일습을 가져오자, 고씨는 시종들에게 명해 정원 한가운데 놓인 흰 대리석 탁자 위에 가지런히 진열하게 했다.햇살이 내려앉은 새하얀 탁자 위에는 정교하게 만든 화장품 용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씨는 옷자락을 우아하게 끌며 여유로운 걸음으로 여인들 앞에 나아갔다. 그러고는 송청아에게 들었던 화신 향 일습의 향기와 특징을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소용장군부에서 운영하는 향료점은 도성의 귀족 사회에서 손꼽힐 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이 년간 독특한 운치가 돋보이는 향과 화장품을 여러 차례 선보인 덕분에 제법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그 가운데 한 가지가 심설화의 눈에 들어, 지난해 도성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장군부의 향료점은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물건도 날이 갈수록 잘 팔렸다.그런 까닭에 고씨가 새로 만든 향을 소개하자, 여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탁자 위에 진열된 일고여덟 가지 화장품으로 쏠렸다.분가루와 향유, 연지와 향수 등으로 이루어진 화신 향 일습은 겉모습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자마다 장식이 정교하면서도 화려했고, 고귀한 기품과 단아한 멋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햇빛이 닿을 때마다 금빛 문양과 보석 장식 위로 눈부신 광채가 잔잔히 흘렀다.소개를 마친 고씨는 귀부인과 귀족 규수들에게 가까이 와서 직접 살펴보라 권했다.그러자 여인들은 더 이상 점잔을 빼지 않았다. 저마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탁자 주위로 몰려들었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화장품을 하나씩 집어 코끝에 대고 향을 맡아 보기도 하고, 손등이나 뺨에 살짝 발라 보기도 했다.그러나 심설화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몰린 데다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있었기에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제 탁자 뒤에 앉아 아이와 놀아 주었다.이를 알아차린 고씨는 곧바로 시종에게 새 화신 향 일습을 하나 더 가져오라 명했다. 그런 뒤 직접 받아 들고 심설화의 탁자까지 가져다주었다.심설화는 어려서부터 먹고 입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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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런가?”심설화도 송씨 가문과 장군부가 혼인으로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군부에서 판매하는 향이 모두 송씨 가문의 따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짐작건대 그 송 아가씨는 자신보다도 몇 살 어릴 터였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이토록 독특한 향을 만들 수 있다니, 실로 타고난 재능이 놀라웠다.심설화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과연 어떤 영특하고 기묘한 여인인지 직접 만나 보고 싶었다.“마침 송 아가씨가 오늘 이 자리에 와 있다니, 한번 불러 보게.”고씨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송청아를 데려오라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이 면사를 쓴 여인 한 명을 데리고 꽃이 만발한 정원길을 따라 이쪽으로 다가왔다.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뜻밖에도 송채리였다.송청아는 아무래도 송채리와 송씨 가문을 너무 얕보았던 모양이었다.아직 몸에 맞지 않는 무언가에 반응해 발진이 남아 있는데도, 송채리는 면사까지 쓰고 연회에 참석했다.송관산이 어떤 약을 써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오늘은 얼굴을 뒤덮었던 붉은 자국이 상당히 옅어진 상태였다. 뺨과 이마에 연분홍빛 흔적 몇 군데만 남아 있어 면사로 가리자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게다가 오늘은 작정하고 치장한 듯, 눈썹과 눈매를 가늘고 매혹적으로 그려 놓았다. 면사 밖으로 아름답게 단장한 두 눈만 드러나니 오히려 평소보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졌다.송채리와 여씨는 심설화 앞에 이르러 공손히 예를 올렸다.그런 뒤 송채리가 미안한 기색을 띠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소녀가 요 며칠 몸에 맞지 않는 것을 접해 얼굴에 발진이 돋았습니다. 귀한 손님들께 흉한 모습을 보일까 염려되어 부득이하게 면사를 썼으니, 합의현주와 여러 귀빈께서는 너그러이 헤아려 주십시오.”심설화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 없이 품위 있는 미소를 지었다.“송 아가씨,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초봄에는 온갖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니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도 흔하다네. 괘념치 말고 이쪽에 앉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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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고씨는 전에 화신 향 일습을 직접 사용해 보았지만, 그때는 피부에 아무런 이상도 생기지 않았다.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손님들에게 발진이 돋은 것일까?더욱 이상한 것은 화장품을 사용한 모든 사람에게 증상이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발진이 돋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잠시 충격에 빠져 있던 심설화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곁에 앉아 있던 송채리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호통쳤다.“대체 어떤 향을 만든 겐가! 무엇을 넣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보게!”심설화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다.“이 발진 때문에 내 얼굴에 흉이라도 진다면, 송씨 가문과 장군부의 향료점을 내일 당장 모조리 문 닫게 할 것이네!”발진이 돋은 다른 여인들도 조향사가 심설화 곁에 앉아 있던 면사 쓴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성난 기세로 몰려와 고씨와 송채리를 에워싸고 손가락질하며 따져 물었다.“당신이 이 향을 만들었다는 조향사입니까? 대체 화장품에 무엇을 섞었기에 이 많은 사람에게 발진이 돋은 것입니까?”“오늘 이 자리에서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당장 사람을 보내 당신 향료점 간판부터 박살 낼 겁니다!”순식간에 쏟아지는 거센 질책에 고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달랬다.“현주, 그리고 여러 부인과 아가씨께서는 부디 진정하십시오. 이건…… 어쩌면 저희 화장품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이 와중에도 발뺌하려 드는 겁니까!”한 귀족 규수가 목소리를 높여 고씨의 말을 가로막았다.“발진이 돋은 곳이 하나같이 조금 전 화장품을 바른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뻔히 눈을 뜨고 거짓말을 하다니요! 명색이 장군부라는 곳이 이처럼 억지나 부리는 곳입니까?”고씨가 쩔쩔매는 사이, 송채리는 다시금 무고하고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늘 그랬듯 불쌍한 척하면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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