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Bab 1 - Bab 10

30 Bab

제1화

“다리를 조금 더 벌리십시오.”“허리도 더 낮추시고요.”“이렇게 해야 근육이 충분히 늘어나서 큰도련님과 합방하실 때 덜 아프십니다.”허리와 다리가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기는 통증에 송청아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천천히 눈을 뜨자, 너무도 낯익은 방 안의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자신이 있는 곳은 소용장군부 큰도련님의 처소에 딸린 안채였다.은은한 향내가 감도는 방 안에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안 어멈이 송청아의 허리를 힘껏 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치를 배윤호와의 합방에 대비해, 굳은 골반과 근육을 미리 풀어 주는 중이었다.그제야 송청아는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6년 전, 전쟁에서 승리한 배윤호가 도성으로 돌아오고 시어머니가 두 사람의 합방을 마련했던 바로 그날로 돌아온 것이다.전생의 이날, 송청아는 배윤호와 하룻밤을 보냈다.그러나 이튿날 아침, 잠에서 미처 깨어나기도 전에 배윤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를 이불 속에서 끌어내 차디찬 마당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며 느닷없이 누명을 씌웠다.자신이 출정해 있던 지난 2년 동안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부정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이었다.배윤호는 출정하기 전까지 송청아와 단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몸을 웅크린 송청아는 차가운 바닥에 옆으로 쓰러진 채 억울하다며 울부짖었다.지난밤 분명 배윤호가 자신의 처음을 가져갔는데, 어째서 날이 밝자마자 이토록 끔찍한 누명을 씌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3월의 새벽바람은 살을 에듯 매서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벽돌 바닥에 쓰러진 송청아의 가냘픈 몸은 추위에 벌겋게 얼어붙었고, 맞부딪치는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올 만큼 쉴 새 없이 떨렸다.그런데도 배윤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장군부의 수많은 하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송청아의 아랫배를 몇 번이고 걷어차 자궁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일이 양가 부모에게까지 알려졌지만, 그들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배윤호의 말만 믿었다. 도리어 송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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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송청아는 잠옷을 단정히 여며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화미에게 머리를 빗게 했다.그러고는 두 눈을 살며시 감은 채 오늘 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헤아렸다.전생의 이맘때, 송청아는 이미 화리서(和離書: 옛날 이혼 합의서)를 써 두었다. 스스로 정실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얼마간 모아 둔 사비를 챙겨 도성을 떠나 한적한 고을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생각이었다.하지만 배윤호와 이야기를 나눌 틈조차 얻지 못한 채 그들의 계략에 빠지고 말았다.오늘 밤 계획대로 일이 풀린다면, 기회를 보아 배윤호의 인장을 얻어 낼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을 미리 작성해 둔 화리서에 찍기만 하면 된다.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화리하고 배씨 가문을 떠날 생각이었다.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등 뒤에서 화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큰도련님을 뵙습니다.”송청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배윤호였다.2년간 전장을 누빈 배윤호의 몸은 전보다 한층 크고 단단해져 있었다. 본래도 훤칠했던 소년은 어느새 침착하고 강인한 사내가 되어 있었고, 온몸에서 풍기는 기세도 더욱 냉엄하고 오만해졌다.그러나 지금, 반듯하게 뻗은 눈썹 아래 자리한 깊고 형형한 두 눈에는 평소와 다른 부드러운 빛이 아른거렸다.“내가 놀라게 했느냐?”배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며 송청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화장기 하나 없는 송청아의 작은 얼굴은 맑고 깨끗했다. 놀란 사슴처럼 커다랗게 뜬 검고 투명한 눈망울은 절로 가엾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새벽녘의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한 송이 백합처럼 청아하고 순결했다.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얼굴 위에 번진 옅은 홍조는 그녀에게 화사한 아름다움과 은근한 요염함까지 더해 주었다.배윤호는 송청아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의 부모는 송씨 가문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으면 장군부의 살림이 넉넉해지고 체면도 살릴 수 있다며 혼인을 권했다. 하지만 송청아가 이토록 아름답지 않았다면, 그가 돈 냄새 밴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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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봉 어멈은 송청아가 화리를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송청아가 안쓰럽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송청아가 고요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봉 어멈도 보지 않았나. 서방님의 마음속에서는 송채리가 나보다 훨씬 중요하네.”“헌데 두 분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지 않습니까. 큰부인께서 큰도련님을 얼마나 마음에 두셨는지 소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봉 어멈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큰도련님께서 직접 송씨 가문으로 청혼하러 오셨던 날, 나리와 마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생에는 오직 송씨 가문의 여식만을 부인으로 맞아 평생 아끼겠다고 맹세하셨지요. 그 말씀을 소인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그날의 일을 떠올린 봉 어멈의 눈빛에 희미한 기대가 어렸다.“큰도련님의 마음속에도 분명 큰부인이 계실 겁니다. 그저 잠시 그 아가씨에게 눈이 먼 것뿐이지요. 그러니 때를 보아 큰도련님과 마주 앉아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분명 마음을 돌리실 겁니다.”마음을 돌린다고?송청아의 입가에 자조 어린 웃음이 스쳤다.그럴 리가.그에게 천 번, 만 번의 기회를 더 준다 한들 배윤호는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송청아가 배윤호를 처음 만난 것은 열세 살 때였다.배윤호는 말수가 적고 성정도 냉정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빈틈없이 반듯했다. 적어도 그녀의 체면을 헤아려 주었고, 다른 이들 앞에서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열네 살 무렵, 송청아는 어느 후작 부인이 주최한 봄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화창한 봄볕 아래 화원의 꽃향기가 짙게 번지던 날이었다. 그러나 명문가의 귀녀들과 관가의 규수들이 내뱉는 말은 봄바람과 달리 매섭고 차가웠다.그들은 상인 집안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감히 고관대작의 연회에 얼굴을 내밀었다며 송청아를 조롱했다. 귀한 공자에게 빌붙어 신분을 높여 보려는 모양인데 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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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 말을 들은 송청아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고씨는 겉으로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시어머니인 양 행세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송청아에게 분수를 지키라며 경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그녀의 속을 긁어 놓으려는 것인지도 몰랐다.그토록 너그러운 척할 거라면, 어째서 자신부터 본보기를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시아버지가 자기 여동생을 돌보겠다며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도, 과연 지금처럼 태연하게 양보할 수 있을까?송청아는 마음속의 냉소를 숨긴 채 얌전히 대답했다.“어머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채리의 목숨은 서방님께서 구해 주셨으니, 채리가 서방님께 의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온순하고 차분했다.“게다가 이제 막 도성으로 돌아왔으니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일도 많을 겁니다. 그러니 서방님께서 곁에서 더 살펴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도 모두 이해하고 있습니다.”어느 한구석 트집 잡을 데 없는 대답이었다. 송청아가 이토록 현숙하고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며느리처럼 나오자, 내내 마음 한편이 불안했던 고씨도 마침내 안도했다.“그래, 그러면 됐다. 역시 네가 가장 사리를 잘 아는구나. 합방 문제는 나중에 다시 기회를 보아 내가 마련해 주마.”이로써 전날의 일은 대강 덮어 두기로 한 듯했다. 고씨는 곧 다른 화제를 꺼냈다.“엿새 뒤면 우리 장군부에서 개선연을 열지 않느냐. 새로 만든 향의 견본은 받아 보았느냐?”배윤호 부자는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다. 도성에는 배윤호가 정사품 효기장군에 봉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이에 고씨는 두 사람을 위한 개선연을 성대하게 마련하고 있었다.하지만 개선을 축하한다는 것은 명목에 불과했다.실상은 연회를 빌미로 도성의 고관대작과 명문가 사람들에게 연줄을 대고, 그 집안의 부인과 귀녀들 앞에서 새로 만든 향을 선보이려는 것이었다.물론 고씨가 그 과정에서 적잖은 돈을 제 주머니로 빼돌리려는 속셈도 있었다*전생에 송청아가 소용장군부를 위해 벌어들인 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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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밖의 신경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조급해하는 배윤호와 달리 송청아는 지극히 침착했다. 저 뻔뻔한 남녀와 실랑이를 벌일 마음 따위는 없었다. 이들과는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조차 입 아픈 일이었다.“저는 향을 사러 왔으니, 두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말을 마친 송청아는 주 사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감송 두 돈, 정향 다섯 돈, 소합향 네 돈, 용연향 세 돈을 꺼내 주시겠어요?”송청아가 아예 자신을 무시하자 배윤호는 체면을 구긴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말했다.“향을 사러 나왔으니 은자는 넉넉히 챙겨 왔겠지. 네 몫까지 내가 치르지는 않겠다. 채리야, 갖고 싶은 향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내가 사 주마.”송채리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나 겉으로는 수줍은 기색을 지으며 물었다.“정말요? 고마워요, 형부! 아버지와 어머니께 들었는데, 용연향은 고래의 뱃속에서 얻는 데다 가공 과정까지 몹시 복잡해서 아주 귀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용연향을 한번 구경해 봐도 될까요, 형부?”배윤호가 호기롭게 대답했다.“안 될 게 뭐 있느냐. 주인장, 용연향 한 근을 싸 주시오.”그 말을 들은 주 사장의 낯빛이 묘하게 굳었다. 곁에 있던 송청아도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이를 눈치챈 배윤호가 재촉했다.“뭘 멍하니 있는 것이오? 어서 가서 가져오시오.”주 사장은 난처한 얼굴로 두 손을 비볐다.“그게…… 배 소장군, 정말 한 근을 원하시는 겁니까?”“무슨 문제라도 있소?”“저…… 용연향은 시세가 워낙 높습니다. 한 냥에 은자 오백 냥이고, 한 근이면 오천 냥이지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다른 이들은 향약을 살 때 한 돈씩 달아 사는데, 누가 배추라도 사듯 한 근씩 달라고 한단 말인가.배윤호와 송채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어붙었다.한 냥에 은자 오백 냥이라니. 용연향이 이토록 값비싼 물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배윤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번지자 송채리가 황급히 그의 체면을 세워 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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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러면서 주 사장은 재빠르게 송청아가 요구한 향약들을 포장해 그녀의 손에 건넸다.상황이 워낙 순식간에 뒤바뀐 탓에 배윤호와 송채리는 물론이고, 송청아마저 얼떨떨할 정도였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배윤호가 곧장 따져 물었다.“주 사장, 이게 무슨 뜻이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품 고관, 황족과 고위 귀족에게만 판다고 하지 않았소?”주 사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맞습니다. 이 종이에 귀인의 인장이 찍혀 있으니까요.”“귀인이라니? 그게 누구요?”주 사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귀인은 지금 별실에 있으면서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시켜 종이만 보내왔다. 분명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저도 잘 모릅니다. 헌데 이것이 귀인의 인장인 것만은 분명합니다.”“이건 틀림없이 가짜요!”배윤호가 앞으로 나서 종이를 빼앗으려 했으나, 주 사장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허공만 움켜쥐었다.“제가 이 장사를 한 세월이 얼만데 잘못 알아보겠습니까. 더구나 제 목숨을 걸고 장난을 칠 만큼 간이 크지도 않습니다.”배윤호는 여전히 믿지 못했다.“말도 안 돼! 저 여자가 어떻게 귀인의 인장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송청아가 화미에게 물었다.“누가 준 것이냐?”화미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큰부인, 저도 모릅니다. 아까 마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창막 아래로 이 종이를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어떤 사내가 큰부인께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헌데 제가 창막을 걷고 내다보았을 때는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송청아 역시 기이하게 여겼지만, 지금으로서는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당장 그 내막까지 캐물을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구입한 향료를 든 채 눈을 내리깔고 두 사람을 업신여기듯 바라보았다.“용연향은 결국 제 손에 들어왔네요. 보아하니 소용장군부를 떠나더라도, 제가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겠어요.”배윤호는 분노로 얼굴이 잿빛이 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송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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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책상 앞에 서 있던 송청아는 진작 배윤호가 온 것을 알아차렸다.그가 별채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다가오자, 송청아는 고개를 숙인 채 향 반죽을 주무르며 차분하게 말했다.“서방님께서는 장군부를 떠나 계신 이 년 동안 기본적인 예법마저 잊으셨습니까? 방에 들어오실 때 사람을 시켜 미리 알리거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도 모르십니까?”배윤호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뒤로 다가가 한동안 조용히 지켜보다가, 슬며시 손을 잡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송청아에게 들키고 말았다.아무래도 조금 전 내력을 거두지 않은 탓에 기척을 들킨 모양이었다.하지만…….“너와 나는 엄연한 부부다. 내가 제 부인의 방에 들 때도 미리 알리고 문까지 두드려야 하느냐?”그사이 송청아는 몸을 돌려 배윤호를 바라보았다. 싸늘하게 굳은 단정한 얼굴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 담담한 목소리에도 온기라곤 없었다.“서방님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배윤호는 순식간에 흥이 식었다. 그녀의 냉담한 말투와 추궁하듯 바라보는 눈빛에 심기가 거슬린 탓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딱딱해졌다.“볼일이 없으면 오지도 못하느냐?”배윤호는 말을 마치고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송청아가 조금 전 빚어 놓은 향환 하나를 집어 손끝에서 굴리더니, 무심코 내뱉었다.“너는 고작 이런 여자들이나 만드는 쓸모없는 물건밖에 만들 줄 모르는구나.”그 한마디로 송청아의 솜씨와 노고를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깎아내렸다.배윤호가 보기에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일이었고,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것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장인이 집을 짓는 것 역시 백성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가치 있는 일이었다.그러나 장사치들은 오직 이익을 좇아 살아가며, 그들이 파는 물건은 하나같이 사람을 유흥에 빠뜨리고 나태하게 만드는 사악한 물건일 뿐이었다.송씨 가문이 하는 제향업도 그의 눈에는 여자들이 치장하고 즐기는 데 쓰는 물건을 만드는 장사에 지나지 않았다.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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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송청아의 싸늘한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 그녀는 제 손목을 움켜쥔 배윤호의 손이 그대로 굳는 것을 느꼈다.별채 안은 삽시간에 숨 막히도록 고요해졌다. 어둠 속에서 조금 흐트러진 두 사람의 숨소리만 번갈아 들려왔다.송청아는 이미 화리서를 손에 넣었으므로 배윤호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가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알려 줄 필요는 있었다.무엇보다 송청아는 배윤호를 잘 알았다.자존심이 강한 배윤호는 여인에게 대놓고 거절당하면 억지로 관계를 강요하지 않았다.대신 철저히 냉대하고 외면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건성으로 넘기거나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은 채, 끝내 미쳐 버릴 지경까지 몰아붙였다.전생에 송청아가 별채로 쫓겨난 뒤, 배윤호가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려 했지만, 송청아는 몸을 피하며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그날 이후 배윤호는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장군부 안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했다.송청아가 심신을 모두 소진해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배윤호는 다시 별채에 발을 들여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러니 지금 미리 거절 의사를 밝혀 둔다면, 어쩌면 배윤호가 그녀에게 흥미를 잃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더는 가슴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될 터였다.눈앞의 배윤호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깊은 눈동자 안에 송청아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서서히 피워 올렸다.“뭐라고 했느냐?”낮고 쉰 목소리가 어두운 밤을 맴도는 차가운 안개처럼 내려앉았다.송청아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더없이 담담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배씨 가문과 송씨 가문 모두 제가 송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송씨 가문의 진짜 딸이 돌아왔으니, 서방님께서는 그 아이와 혼인하셔야지요. 저는 제가 서방님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 좋게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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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러나 배윤호가 단호하게 내뱉었던 말이 떠오르자 송청아는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다.‘나는 절대로 너와 화리하지 않을 테니까.’부디 화리기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전생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서재로 돌아온 배윤호는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병서를 펼쳐 놓고 있었지만, 단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조금 전 화리를 말하던 송청아의 무심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녀가 화가 나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생각할수록 마음이 어지러워진 배윤호는 결국 병서를 덮었다. 검을 들고 뜰로 나간 그는 달빛 아래에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소국의 무과 장원인 배윤호의 검술은 또래 무장들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힐 만큼 뛰어났다.그러나 오늘 밤만큼은 검의 초식이 어지러웠고, 발놀림과 몸놀림도 평소처럼 안정적이지 못했다.마음이 흐트러졌으니 검도 흐트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정작 배윤호 자신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몇 시진이나 검을 휘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배윤호는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몸을 돌리는 순간 발을 잘못 디뎠다. 중심을 잃은 몸이 빙글 돌며 바닥을 굴렀고, 손에 들려 있던 검도 멀리 날아가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바닥에 나뒹군 배윤호는 곧바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몸속에 들끓던 답답함을 모조리 쏟아 내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개운해졌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송청아가 화난 이유는 고작 두약 몇 포기 때문일 테니, 다시 화분 몇 개를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다.시간이 흘러 화가 풀리면 그녀는 틀림없이 예전처럼 기뻐하며 다가와, 진심에서 우러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것이다.*“주군, 그 여인의 신분을 모두 알아냈습니다. 성은 송, 이름은 청아입니다. 본래 향약으로 이름난 송씨 가문의 규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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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 뒤로 송청아는 하루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사흘째 되는 날 아침, 송청아가 일어나 단장을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자 화미가 부엌에서 마련한 아침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큰부인, 오늘 부엌에서 보내온 아침상은 종류가 참 많습니다. 식재료도 예전보다 훨씬 귀한 것들이에요. 소인이 보기에는 전부 음기를 보하고 비위를 튼튼하게 하며 기혈을 북돋는 음식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봉 어멈도 흥미를 보이며 송청아를 이끌고 식탁 앞으로 다가갔다.제비집 팥죽 한 그릇에 아교와 마를 넣은 떡 세 조각, 오골계탕 한 그릇까지 놓여 있었다. 과연 하나같이 몸을 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음식들이었다.봉 어멈이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정말 그렇구나! 오늘 부엌이 어쩐 일이래? 혹시 누가 따로 지시라도 내린 것이냐?”화미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송청아를 흘끗 바라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그게 누구겠어요? 당연히 큰도련님이지요.”“정말이냐?”봉 어멈은 몹시 기뻐했다.“큰도련님께서 드디어 우리 큰부인을 아끼실 줄 알게 되셨구나. 큰부인, 어서 드십시오.”하지만 정갈하고 귀한 음식이 가득 놓인 상을 바라보는 송청아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떠오르지 않았다.“화미야, 이대로 부엌에 돌려보내거라. 내 풍한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성질이 뜨거운 보양식은 먹을 수 없다고 전해.”그 말을 들은 화미와 봉 어멈은 동시에 멈칫했다.화미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머뭇거렸다.“그게…… 큰부인께서는 멀쩡하시지 않습니까? 헌데 왜…….”봉 어멈은 이미 송청아의 뜻을 알아차렸다.“큰부인께서 그리 말하라 하셨으면 그대로 전하면 된다.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거라. 그리고 큰부인께서 풍한에 걸리지 않으셨다는 사실도 말실수로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고.”화미는 다시 한번 송청아의 안색을 살폈다. 결국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아침상을 들고 나갔다.부엌으로 향하는 동안 화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화미는 송청아가 장군부에 시집온 뒤 그녀의 처소에 배정된 시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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