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왕비 자리, 이제 관심 없어요: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태자전하, 폐하께서도 이 일을 알고 계신가요?”강소연이 물었다.“물론이지. 폐하께서 오늘 내게 왕비의 의향을 물어보라고 하셨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태자전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 일은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내일 직접 궁에 들어가 폐하께 여쭙고 난 뒤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자리에서 일어난 태자가 그녀를 조롱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나도 따로 볼 일이 있으니, 왕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겠네. 이만 물러가겠네.”“태자전하, 편히 가시옵소서.”태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강소연도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침상에 누웠다.긴장감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다시 밀려왔고, 쉬이 잠에 들 수 없었다.“정말 네 아버지의 딸이냐?”유승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직접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수련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소연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제야 방 안의 하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유승헌만이 침상 가까이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아버지에게 서녀가 있을 리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몰려오는 피로감에 그녀는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래.”유승헌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강소연이 흐릿한 의식 속으로 빠져들려는 찰나, 그가 또 한마디 건넸다.“태자가 좋은 뜻으로 한 일 같지는 않지만, 만약 수련이 정말 강씨 가문의 딸이라면, 오히려 좋은 일이기도 하겠군.”그 말에 밀려오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그녀는 침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는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아버지에게 출처도 알 수 없는 서녀가 있다는 게, 어째서 좋은 일이란 말입니까?”유승헌이 말했다.“수련에게 내놓을 만한 신분이 생긴 것이니, 훗날 혼인을 논할 때도 편할 것이고, 계속 이렇게…”“왕야, 그만하세요!”강소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수련을 측비로 맞이하든 정비로 맞이하든,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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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강씨 가문의 서녀 일로 온 것이냐?”황제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묻어있지 않았다. 강소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폐하, 만약 제 아버지에게 정말 다른 자식이 있다면 장녀로서 본가로 돌아오는 것을 막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을 마치기도 전에 이 일을 서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깁니다. 폐하께서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옵소서.”황제가 강씨 가문에 서녀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의문점이 많은 일이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또한 태자와 수련의 관계도, 그들이 무엇을 꾀하는지도 알아내야 했다.“그래.”황제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도 일리가 있다. 고인이 먼저니, 강 부인의 상이 끝난 뒤에 다시 논의하겠다.”강소연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두 손을 모아 이마 위로 올리며 절했다.“성은이 망극합니다.”“참, 잠시 잊고 있었구나.”황제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태후께서 너를 자주 그리워하셨다. 잠시 수강궁에 들러 태후를 뵙거라.”“예.”강소연이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궁에서 지내는 동안 태후는 그녀를 손녀처럼 아꼈다. 그러나 혼인 후에는 자주 뵙지 못했다. 이참에 문안을 드리는 것이 좋을 듯했다.어서실을 나와 어원을 지나칠 무렵, 어디선가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선율이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어딘가 익숙한 곡조에 그녀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다가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가을의 어원에는 금계향이 짙게 퍼져 있었다. 돌길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바위산 옆 정자에는 흰옷을 입은 남자가 등을 돌리고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그녀는 정자 밖에 서서 한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남자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고, 순간 그의 눈에 반가움이 번졌다.“누님?”강소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태경아, 오랜만이구나.”강소연이 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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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강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거야.”세상에 영원한 만남은 없는 법이다. 어린 시절의 따뜻했던 동행도 언젠가는 끝을 맺게 마련이었다. 하태경은 자신의 넓은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녀는 기뻐해야 마땅했다.“누님은요?”하태경이 물었다.강소연은 차마 답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앞으로가 보이지 않았다.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것은 외로움과 암담한 나날 뿐이었다.그녀는 멍하니 하태경을 바라보았다.“태후께 문안도 드리지 않고, 이곳에서 사내와 정을 나누다니.”유승헌의 냉랭한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어 놓았다.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보고 싶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보고 싶지 않을 때면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구나.’“유승헌, 말을 가려서 하시오.”하태경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그녀 앞을 막았다.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던 유승헌이 불안정한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강소연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하태경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았다.“볼모 주제에, 감히 내 이름을 입에 올려? 위아래도 없는 것이냐?”얼굴이 굳은 강소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쳐 냈다.“그만하시지요. 수강궁에 문안을 드려야 합니다.”유승헌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방금 저 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문안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가, 이제 와서 생각이 났나 보구나.”“왕야…”그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강소연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그녀의 허리를 감싼 유승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덕분에 그녀의 등에 난 상처가 다시 욱신거렸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놓으시오! 아파서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도 안 보이오?”하태경이 급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내가 내 왕비를 안겠다는데, 너 따위가 무슨 참견이냐?”유승헌은 어두워진 얼굴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 곁에 있던 궁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왕야, 왕비마마… 태후마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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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수강궁에 들어서자, 마침 태후가 평상에 기대어 궁녀의 손에서 약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전각 안에는 향을 피웠음에도 약 냄새를 완전히 가리지 못했다. 오랜 세월 약을 달여온 흔적이었다.인사를 올린 강소연은 궁녀의 손에서 약그릇을 건네받아 한 숟가락 떠서 태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태후는 그녀가 건넨 약을 두 모금 마시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연아.”다정한 부름에 강소연은 순간 멍해졌다.가족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를 ‘아가씨’라 불렀고, 유승헌과 혼인한 뒤로는 호칭이 왕비로 바뀌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그녀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는 이는 태후뿐이었다.약그릇을 궁녀에게 건넨 강소연은 손수건으로 태후의 입가를 닦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나이가 지긋한 태후는 수년간 병마에 시달리면서 많이 허약해져 말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요즘 둘 사이가 좋지 않다지?”강소연은 태후에게 문안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화리 얘기를 꺼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병든 태후를 보니,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오래전 태후에게 유승헌과의 혼인을 청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 혼인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태후에게 걱정만 끼치는 것이었다.“태후마마께서 심려하지 마십시오.”강소연이 몸을 굽혀 절하며 말했다.“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사소한 일들입니다. 안심하시고 몸조리 잘하십시오.”태후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릴 적부터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려 하더니 아직도 그러는구나.”강소연은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한차례 거친 기침을 한 태후는 한참 진정한 후에야 다시 말을 이을 수 있었다.“난 아픈 것일 뿐, 아직 눈을 감지는 않았다. 너를 괴롭히는 이가 있거든, 내가 대신 나서 주마.”그 말은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유승헌을 향한 것이었다.그가 일어나 답하려는 순간, 강소연이 먼저 나섰다.“태후마마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부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습니다. 태후마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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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복 상궁의 가르침, 명심하겠소.”유승헌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온 강소연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태후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다가 마침내 강소연에게 머물렀다.“소연아, 이 혼인은 네가 내게 청한 것이다. 이제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만약 이 혼인을 후회한다면, 너희의 화리를 허락하겠다.”‘화리?’강소연은 멍해졌다. 머릿속이 갑자기 하얗게 비었다.며칠 내내 화리만 생각했건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니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저는 화리하고 싶지 않습니다.”유승헌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평상 앞으로 가 머리를 숙였다. 그의 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강소연은 멍하니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이 복잡하게 얽혔다.“소연아, 네 뜻은 어떠하냐?”태후가 물었다.“네가 좋다고 쫓아다녀 놓고, 이제 와서 놓아달라니?” 고개를 든 유승헌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저는…”한참을 망설이던 강소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처음에 제가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삼 년이나 허비했지요. 이제라도 그만두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을 듯합니다.”유승헌이 코웃음을 쳤다.“그만둔다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바로잡다니요?”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어떻게요?”“계속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강소연은 짜증이 났다.그녀는 태후를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태후마마, 화리를 원합니다.”‘화리’라는 말이 완전히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몸을 일으킨 유승헌이 그녀를 품에 안더니 입술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돌발 행동에 멍하니 있던 강소연이 정신이 차리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한참 만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그녀의 뺨이 붉게 타올랐고,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분노에 차서 입술을 닦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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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협박하려고 화리를 요구한 게 아니에요. 더 이상 왕야를 사랑하지 않아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이 유승헌에게 붙잡혔다. 이어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더니, 등이 마차 바닥에 세게 부딪혔고, 고통에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를 몸 아래에 가둔 유승헌의 얼굴이 무섭게 어두워졌다.“내게 시집오겠다고 어떻게 졸랐는지 잊은 거냐? 이제 와서 사랑하지 않으니 화리하겠다고?”마차가 넓긴 했지만, 그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팔에 막혀 강소연은 꼼짝할 수 없었다.숨을 깊게 들이쉰 강소연은 유승헌을 노려보았다.“예전에 눈이 멀었었죠.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거예요.”유승헌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석 달 뒤에도 제가 원한다면, 화리 성지를 내려주시겠다고 태후마마께서 이미 말씀하셨어요.”그가 고개를 숙여 비웃음을 터뜨렸다. 사악하고 냉혹한 그 미소는, 마치 덫에 걸린 먹잇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와 같았다. “내가 만만해 보이느냐? 화리하면 끝날 줄 알았느냐?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너를 가둘 수 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유승헌의 눈에서 광기와 욕망이 흘러넘쳤다. 그는 곧바로 몸을 숙여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고, 입안에 피 맛이 감돌았다.그는 혀끝으로 피를 핥아 내고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거칠게 그녀를 파고들었다.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해지려던 찰나, 유승헌이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왕비 노릇을 할지 말지 네가 선택해라.”“왕야, 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놓아주지 않는 거예요?”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유승헌의 심장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그녀가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의 습관을 어찌 쉽게 놓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이미 그의 삶에 들어왔고, 그녀의 흔적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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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태의가 병풍 뒤에서 나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강소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화야, 태의를 배웅해라.”“왕비마마, 안색이 창백하신데, 진맥을 드려도 될까요?”강소연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이만 돌아가세요.”태의가 나가자마자 수련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왕야! 왕야께서 괜찮으세요?”수련이 울먹이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강소연을 밀쳐 내며 침상으로 다가갔다.이화가 강소연을 부축하며 화가 나서 말했다.“감히 왕비마마를 밀치다니!”“그만해.”강소연이 이화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나도 피곤하다. 돌아가자.”“하지만 아가씨…”이화가 억울한 듯 말을 꺼냈다.강소연은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불경죄로 수련을 처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유승헌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해가 저물어 가고 나서야 강소연은 별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식사도 거른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식욕이 나지 않아 죽을 몇 모금 떠먹고 말았다.이화가 목욕 시중들며 등에 어혈을 풀어주는 약을 조심스럽게 발라 주었다.“왕비마마, 왕야께서 깨어나셨습니다.”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시녀가 들어와 보고했다.“알았다. 물러가라.”강소연이 손을 저으며 옆으로 누웠다. 등 뒤의 상처가 욱신거려 좀처럼 잠에 들 수 없었다.잠시 후, 그 시녀가 다시 들어왔다.“왕비마마, 왕야께서 왕비마마를 찾으십니다.”강소연이 눈썹을 찌푸렸다.“이미 잠자리에 들었다고 전해라.”‘이 깊은 밤에 수련이 곁에 있을 텐데, 왜 나를 찾아?’몸을 돌린 그녀는 벽을 마주보며 눈을 감았다.흐릿한 의식 속에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잠자리에 들었다고 하지 않았더냐? 더 이상 오지 마라!”발걸음이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그녀의 침상 앞에 멈추었다.이어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고, 그녀는 뜨거운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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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다가왔고, 강소연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뺨에 닿았다.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고도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승헌이 몸을 일으켜 다음 행동을 취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시녀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왕야, 수련 낭자가 갑자기 병환이 도져 기절하셨습니다!”유승헌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제 아래에 깔린 강소연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 말 없이 옷을 걸친 그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강소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는 한치의 변함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강소연은 자기 곁에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팔꿈치로 그를 찔렀다.“왕야, 왜 여기에 계세요?”유승헌은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이곳은 내 왕부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다.”“조회는 안 가세요?”강소연이 몸을 일으켜 그의 허리를 걷어차자, 유승헌은 손을 뻗어 그녀의 발목을 붙잡으며 눈을 떴다.“몸이 좋지 않아 며칠 병가를 냈다.”간신히 그의 손에서 발목을 빼낸 강소연은 싸늘한 표정으로 침상에서 내려왔다.“보아하니 병세가 꽤 깊으셨나 봅니다.”몸을 옆으로 돌린 유승헌이 도망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유승헌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젯밤 수련을 보고 온 후로, 머릿속엔 부끄러움과 분노로 붉어진 강소연의 얼굴만 맴돌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그리웠다.수련이 약을 먹고 잠에 들자, 그는 망설임 없이 별당으로 돌아왔다. 강소연과 미처 나누지 못했던 온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평온하게 잠든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그는 어쩔 줄 몰랐다.그녀를 품에 안고 싶으면서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침상에 올라 그녀의 곁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미친 것 같았다.유승헌은 그녀의 잔향을 탐닉하듯 몇 번 숨을 들이마신 후에야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습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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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소연은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큰언니라 부르지 마라. 아직 확실한 것도 없는데, 거리를 두는 편이 좋을 듯하구나.”수련이 말했다.“예, 제 신분이 미천한 줄 압니다. 큰언니의 눈에 들지 않겠지만, 전 정말 아버지의 딸입니다. 부디 향 한 번만 올리게 허락해 주십시오. 끝나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절대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수련의 창백한 얼굴과 애처로운 모습에, 사람들의 분노가 일었다.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왕비마마, 저렇게 간절히 비는데, 모른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다른 이들도 바로 동조했다.“그렇지요. 친딸이 제 아버지께 향 한 번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영원후께서도 저승에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실 겁니다.”강소연은 구경꾼들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자가 제 아버지의 딸을 자처하며 향을 올린다면, 그분께서 과연 저승에서 편안하실까요?”“아버지의 패와 친필이 있습니다. 큰언니가 아버지의 글씨를 못 알아보지는 않겠지요?”수련이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강소연은 아버지의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인품을 더 믿었다.하지만 그런 말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 터였다.“그렇다면 그 증표를 왜 진작 내놓지 않고, 이제 와서 꺼내는 거지?”강소연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그녀는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자칫 한순간이라도 빈틈을 보였다가는 누군가가 파 놓은 덫에 걸려들고, 그 여파가 강씨 가문 전체에 예상치 못한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아버지께서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부인이 상심하실까 봐 두려워하셨지요.”수련의 대답은 빈틈이 없었다.“이제 부인도 돌아가셨으니, 아버지께 향을 올리는 것이 도리인 듯하여 이리 왔습니다.”수련의 간절한 청에 구경꾼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강소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련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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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강소연은 점점 유승헌의 속을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몸도 성치 않으면서, 어찌 자꾸 밖으로 나가느냐?”유승헌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강소연이 턱으로 수련을 가리켰다.“수련에게 물어보세요.”몸을 일으킨 수련은 유승헌의 팔 한쪽을 붙잡고 매달렸다.“왕야께서도 아시겠지만, 이 몸으로 석 달이나 버틸 수 없어요.”강소연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던 손이 살짝 풀리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유승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 병은 내가 어떻게든 치료할 방도를 찾아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수련은 가슴을 움켜쥔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였다. 병든 꽃처럼 가냘프고 애처로운 모습이었다.그녀는 눈물 어린 눈으로 유승헌을 올려다보았다.“왕야께서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전 회복이 어려울 듯합니다. 그저 죽기 전에 아버지를 한 번만 뵙고 싶은 것뿐인데, 왕비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강소연은 분노에 차서 소매에 감춰진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유승헌이 수련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강소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강소연을 바라보며 말했다.“향을 올리게 해 줄 수 없겠느냐?”그 말을 들은 강소연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수련을 위해 온 것이구나.’신분이 높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유승헌은 평소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수련을 위해 그 고집을 꺾었다. 그녀의 부군이, 다른 여인을 위해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간청하고 있었다. 강소연은 기가 막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짓씹듯 힘주어 물었다.“지금 무슨 자격으로 그 말씀을 하신 거예요? 제 부군으로서 입니까, 아니면 수련의 정인으로서 입니까?”유승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음산하고 무섭게 변했다.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몇 번을 말했느냐? 수련은 내 생명의 은인이다.”강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생명의 은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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