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를 괴롭히던 놈과 같이 살게 됐다: Capítulo 21 - Capítulo 30

35 Capítulos

021화. 내 저녁까지 챙기고 있었다

021화. 내 저녁까지 챙기고 있었다배가 고팠던 건지 음식이 괜찮았던 건지 모르겠다.몇 분 동안 말없이 먹었다.그러다 태겸이 물었다.“요즘 성당 일 말고는 다른 건 안 해?”숟가락이 멈췄다.처음으로 내 현재를 직접 물었다.“그게 왜 궁금해.”“그냥.”“취조냐.”“싫으면 안 말해도 돼.”또 그 말.나는 몇 초 그를 보다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없어.”“일도?”“여기서 하는 게 일이야.”“급여 받아?”“조금.”태겸은 바로 계산하는 표정을 하지 않았다.안됐다거나 적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조금 더 말했다.“숙소 대신 이것저것 돕는 것도 있고.”“그렇구나.”“뭐.”“아무것도.”“표정이 왜 그런데.”“그냥 듣는 중이야.”“불쌍해하지 마.”태겸의 움직임이 멈췄다.“안 해.”대답이 짧았다.이번에는 그 말 뒤에 바로 설명이 붙었다.“네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거랑 불쌍하게 보는 건 달라.”나는 숟가락을 내려놨다.“왜 궁금한데.”태겸은 금방 답하지 않았다.그가 감정을 정리할 때는 움직임이 줄어든다는 걸 이제 안다.숟가락도 내려놓고,시선도 잘 안 피한다.“네 과거는 알아.”목소리가 낮았다.“내가 겪었으니까.”내 손끝이 조금 굳었다.“근데 지금은 모르잖아.”말이 이어졌다.“그래서.”태겸은 내 앞에 놓인 빈 물컵을 채워줬다.“알아보는 중이야.”그 말은 이상했다.심문 같기도 하고.관심 같기도 하고.둘 다 같기도 했다.“뭘 알아보는데.”“지금의 서이안.”대답이 너무 곧았다.나는 시선을 피했다.“그걸 알아서 뭐 하게.”이번에는 태겸이 웃지 않았다.“아직 모르겠어.”그 말이 더 싫었다.확실한 목적이 있으면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복수.비웃음.확인.뭐든.그런데 모른다고 한다.계속 와놓고.계속 밥을 먹고.내가 자는 걸 지켜놓고.내 손을 치료하고.내 현재를 묻고.“너 원래 이렇게 애매하냐.”“내가?”“응.”“미안.”“사과하지 말라고.”“그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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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화. 네가 안 오는 날

022화. 네가 안 오는 날한태겸은 정말 사진을 보냈다.저녁 여덟 시 십칠 분.[먹었다.]사진에는 회사 근처 식당으로 보이는 곳의 제육볶음 정식이 찍혀 있었다.밥.국.반찬 다섯 개.내가 어제 편의점 삼각김밥은 먹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로 제대로 된 걸 먹은 모양이었다.나는 사진을 확대했다.왜 확대했는지는 모르겠다.밥공기가 거의 비어 있었다.국도 반 이상 먹었다.확인하고 나서야 화면을 줄였다.[잘했네.]쓰다가 지웠다.미친 것도 아니고.누가 누구한테 잘했다고 해.[그래.]그것도 이상했다.결국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대신 사진은 한 번 더 봤다.그날 한태겸은 성당에 오지 않았다.* * *이상하게 일이 빨리 끝났다.평소라면 반가워야 했다.기증품도 적었고, 저녁 배식 정리도 일찍 끝났다.여덟 시가 되기 전에 할 일이 없어졌다.“오늘은 좀 쉬어.”미정 이모가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할 거 더 없어요?”“없어. 네가 다 해놨잖아.”“창고는요?”“어제 했고.”“수건은.”“아까 내가 개었어.”나는 괜히 창고 문을 열어봤다.정말 할 게 없었다.바닥도 깨끗했고 상자도 정리돼 있었다.며칠 전부터 한태겸이 와서 같이 손을 댄 탓도 있었다.상자가 쌓이면 그놈이 먼저 접었다.무거운 게 있으면 반대편을 들었다.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정말 안 했다가, 나중에 시키면 또 말없이 했다.그게 며칠이었다고.사람 하나 없는 게 이렇게 티가 날 줄은 몰랐다.“이안아.”“네.”“커피 마실래?”“제가 탈게요.”나는 부속실로 갔다.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종이컵을 두 개 꺼냈다.그리고 멈췄다.왜 두 개를 꺼냈지.한 개를 다시 넣으려다가 컵 가장자리가 구겨졌다.작게 욕하고 그냥 두 컵 다 탔다.하나는 미정 이모 것.하나는 내 것.원래 그럴 생각이었다.커피를 타서 나갔다.미정 이모가 한 잔을 받더니 내 손에 남은 컵을 봤다.“너 커피 잘 안 마시잖아.”“오늘은 마시려고요.”“그래?”나는 대답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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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023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이걸 누가 기억 못 해.”“설탕 안 넣는 거.”“맨날 그렇게 먹잖아.”“맨날?”입이 닫혔다.태겸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몇 번 봤다고.”“그 몇 번이면 충분하거든.”나는 내 컵을 들었다.이번엔 덜 썼다.“웃지 마.”“안 웃었어.”“웃고 있잖아.”“조금.”“진짜 패버린다.”태겸이 웃음을 삼키면서 커피를 마셨다.나는 맞은편 벽에 기대 섰다.부속실 창문에 빗물이 흘렀다.밖에서는 대야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툭.툭.태겸도 들었는지 천장을 봤다.“비 새?”“조금.”“어디서.”“복도.”“방은?”“내 방은 괜찮아.”대답하고 나서 괜히 덧붙였다.“아직은.”태겸의 시선이 돌아왔다.“아직?”“내일 점검한대. 오래된 건물이라.”“공사해?”“모른다니까.”“그러면 너는?”질문이 너무 빨랐다.나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눌렀다.“왜 네가 먼저 걱정해.”“네가 여기 사니까.”“공사한다고 당장 쫓겨나는 것도 아니야.”“그래도.”“한태겸.”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아직 문제 없어.”잠깐 침묵이 생겼다.태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더 묻지 않았다.집이 있냐.갈 데가 있냐.돈은 있냐.그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나는 컵을 내려다봤다.“진짜 공사하면.”말이 먼저 나갔다.태겸은 기다렸다.“며칠 정도는 뭐, 다른 데 있겠지.”“어디.”“몰라.”“미정 이모네?”“아마.”“그렇구나.”그게 끝이었다.집으로 오라고도 하지 않았다.도와주겠다고 먼저 나서지도 않았다.조금 전까지 내가 왜 먼저 걱정하냐고 했으니, 그 선에서 멈춘 거였다.그런데 이상하게 서운했다.미친 것 같았다.내가 하지 말라고 해놓고.안 하니까 또 기분이 나빴다.“너는.”“응.”“진짜 말 잘 듣는다.”태겸이 컵을 내려놓았다.“싫어?”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며칠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그때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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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화. 집 갔냐

024화. 집 갔냐밤 열한 시 십칠 분.회의실에 남은 사람은 셋뿐이었다.나는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휴대폰 진동에 시선을 옮겼다.업무 메신저가 아니었다.이안.묹자가 화면 위에 떠 있었다.[집 갔냐.]손이 멈췄다.메시지를 한 번 읽고,다시 읽었다.별말 아니었다.네 글자.그런데 서이안이 먼저 보낸 메시지는 처음이었다.내가 오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시간을 알려준 것도 아니고.그가 갚아야 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냥,내가 집에 갔는지 물었다.“한 대리?”재희 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네.”“이거 숫자 다시 봐줄래?”“잠시만요.”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답장을 바로 하고 싶지 않았다.정확히는,너무 빨리 하고 싶지 않았다.그게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파일을 다시 열었다.숫자는 눈에 들어오는데 머리에 남지 않았다.십 분쯤 지나서야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아직 회사야.]보내고 잠깐 고민했다.[조금 늦을 것 같아.]두 번째 문장을 붙였다.읽음은 바로 떴다.답은 없었다.그 정도면 됐다.원래 서이안은 그런 사람이었다.먼저 물어놓고도 대답을 받으면 더 말하지 않는.그런데 오 분 뒤 또 진동이 왔다.[밥은.]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이번에는 숨기지 못했다.“또 웃네.”재희 씨가 말했다.나는 화면을 끄지 않은 채 물었다.“제가요?”“요즘 진짜 이상하다니까.”“일 보세요.”“업무 중에 누가 그렇게 재밌는 걸 보내는데.”“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런 얼굴이 아닌데.”나는 대답 대신 메시지를 썼다.[아직.]보내자 바로 답이 왔다.[먹고 해.]짧고 거칠었다.그런데 이상하게 다정하게 읽혔다.서이안답지 않은 다정함이 아니라,서이안다운 다정함이었다.나는 한참 화면을 봤다.[알겠어.]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잠깐 편의점 다녀오겠습니다.”재희 씨가 웃었다.“왜 누가 밥 먹으래?”“배고파서요.”“그래, 그렇다고 하자.”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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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화. 이번에는 내가 기다릴게

025화. 이번에는 내가 기다릴게[알겠어.]이번에는 정말 택시를 잡았다.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 뒷좌석에 기대었다.차가 출발했다.창문 밖으로 젖은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나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생각했다.서이안은 내가 시키는 걸 잘 듣는다고 했다.사실은 반대였다.요 며칠 사이,나도 그가 하는 말을 꽤 많이 듣고 있었다.* * *다음 날 오후.성당에 도착했을 때 이안은 마당 한쪽에서 종이상자를 묶고 있었다.나를 보자 고개만 들었다.“왔냐.”“응.”“택시 탔어?”“탔어.”“진짜?”“영수증 보여줘?”이안이 코웃음을 쳤다.“됐어.”나는 가까이 갔다.“어제 고마웠어.”손이 멈췄다.“뭐가.”“연락한 거.”이안의 눈이 바로 가늘어졌다.“밥 먹으라고 한 거 말하는 거면 그냥 네가 쓰러지면 귀찮아서—”“그거 말고.”나는 웃지 않았다.“먼저 연락한 거.”이안의 손이 종이끈 위에서 멈췄다.얼굴이 굳었다.“그게 뭐.”“그냥.”“뭐가 그냥인데.”“좋았다고.”말이 떨어지자 이안이 나를 봤다.정확히는 쏘아봤다.그런데 욕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별걸 다 좋아하네.”“그러게.”“다음부터 안 하면 되겠네.”“그건 네 마음대로.”나는 상자 반대편을 잡았다.이안이 손을 빼지 않았다.둘이 같이 들었다.“근데.”내가 말했다.“하고 싶으면 해.”“뭘.”“연락.”이안이 발걸음을 멈췄다.나는 따라서 멈췄다.“이유 없어도 돼.”그 말에 이안의 표정이 아주 잠깐 달라졌다.경계하는 얼굴도 아니고,짜증난 얼굴도 아니었다.뭔가 들킨 사람 같은 표정.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상자를 다시 들었다.이안도 몇 초 뒤 따라왔다.창고 안에 내려놓자 그가 말했다.“누가 이유 찾았냐.”“안 찾았어.”“근데 왜 그런 말을 해.”“네가 찾는 것 같아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맞았다.그래서 더 건드리지 않았다.* * *그날은 성당 일이 별로 없었다.우리는 부속실에서 커피를 마셨다.이번에는 이안이 내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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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화. 며칠만 나가 있어야 한대

026화. 며칠만 나가 있어야 한대점검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아침 아홉 시에 온다는 사람이 열 시가 넘어서야 도착했고, 혼자 올 줄 알았는데 관리 담당자까지 셋이 왔다.천장을 보고.벽을 두드리고.창틀을 열었다 닫고.내 방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여기도 봐야 합니다.”사다리를 든 사람이 말했다.나는 문고리를 잡고 잠깐 멈췄다.“방 안도요?”“네. 위쪽 배관이 이 라인으로 지나가서요.”“얼마나 걸리는데요.”“십 분 정도요.”십 분.별거 아니었다.나는 문을 열었다.사람 셋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그 순간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내가 허락했는데도 그랬다.침대.낮은 책상.전기포트.컵 하나.플라스틱 수납함.내가 몇 년 동안 큰돈 없이, 큰 소리 없이, 누구 눈치도 덜 보고 살아온 모든 게 갑자기 검사 대상이 된 기분이었다.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작업자가 천장을 두드렸다.“여기도 습기 먹었네요.”관리 담당자가 위를 봤다.“이쪽까지?”“네. 겉으로는 아직 티가 덜 나는데 안쪽이 젖었습니다.”“그러면 방수만 해서 안 되겠는데.”말이 이어졌다.나는 손가락 마디를 눌렀다.한 번.두 번.세 번째는 멈췄다.요즘 그 버릇을 한태겸이 자꾸 보는 바람에, 혼자 있을 때도 의식하게 됐다.“얼마나 걸려요?”내가 물었다.작업자가 내려왔다.“뜯어봐야 정확한데, 이 방 라인이 제일 문제네요.”“그래서 며칠.”“최소 사흘. 길면 일주일?”관리 담당자가 바로 말했다.“그동안은 방 비워주셔야 해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말이 어렵지 않았다.방 비워주세요.그냥 며칠.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먼저 들어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다른 방은요?”“성당 쪽은 행사 준비 때문에 다 차 있어요.”“창고 옆 작은방은.”“거긴 물건 빼야 해서 못 씁니다.”관리 담당자는 서류를 넘겼다.“혹시 잠깐 지낼 데 있으세요?”나는 바로 대답했다.“있어요.”입에서 너무 빨리 나왔다.상대는 의심하지 않았다.“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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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화. 우리 집 와

027화. 우리 집 와“방 때문이지?”“그것도 아니고.”이모는 웃었다.“너는 속상하면 더 말 잘 듣는다.”“무슨 소리예요.”“평소에는 네가 싫으면 싫다고 바로 하잖아.”나는 마른 수건을 접었다.“그게 좋은 거죠.”“그럼.”이모가 물기를 털었다.“근데 가끔은 싫다고 말해놓고, 진짜 싫은 게 아닐 때도 있더라.”손이 또 멈췄다.“저 그런 거 없어요.”“그래?”“네.”“그럼 됐고.”아까랑 똑같은 말이었다.나는 더 짜증이 났다.* * *밤 아홉 시 반.정리를 끝내고 부속동으로 돌아왔다.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한태겸이었다.검은 셔츠 소매를 걷은 채 벽에 기대 있었다.내가 가까이 가자 고개를 들었다.“뭐야.”태겸이 벽에서 등을 뗐다.“왔어.”“그건 보면 알아.”“응.”“오늘 온다고 안 했잖아.”“안 했지.”“근데 왜 왔는데.”태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음식 봉투도.우산도.커피도.그냥 왔다.그게 더 이상했다.“너가 알아서 한다고 해서.”“그래서.”“알아서 하는지 보러.”나는 헛웃음이 나왔다.“그게 뭔 개소리야.”“말 그대로.”“내가 싫다고 했지.”“네가 어디 있는지 말하기 싫다고 했지.”태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내가 와보는 것도 싫다고는 안 했어.”말문이 막혔다.교묘했다.회사에서 사람 말꼬리 잡는 인간답게.“진짜 재수 없어.”“갈까?”태겸이 물었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기다렸다.이제 저 기다리는 얼굴을 너무 잘 안다.억지로 안 들어오고.먼저 잡지 않고.말을 대신하지 않는 얼굴.싫으면 가라고 하면 정말 갈 사람.그래서 더 짜증났다.나는 방문을 열었다.“들어와.”태겸이 잠깐 멈췄다.“괜찮아?”“들어오라니까.”그제야 움직였다.* * *방 안에는 벌써 짐이 조금 나와 있었다.옷 두 벌을 접어 침대 위에 올려놨고,세면도구는 작은 가방에 넣었다.태겸은 방을 둘러보다가 책상 위 빈 봉투를 봤다.“짐 싸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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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화. 갈 데가 없어졌다

028화. 갈 데가 없어졌다아침부터 공사 소리가 났다.내 방 천장은 아직 뜯지 않았는데, 복도 쪽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모양이었다.드릴 소리.철제 사다리 끌리는 소리.비닐이 바닥을 긁는 소리.나는 침대 위에 앉아 가방 지퍼를 닫았다.어제보다 짐이 늘었다.옷 세 벌.속옷.세면도구.충전기.지갑.휴대폰.머리끈 몇 개.작은 약통.몇 년을 산 방에서 며칠 나가는데 가져갈 건 생각보다 적었다.그게 이상했다.나는 가방을 내려다봤다.이 정도면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사람 같았다.언제든 떠날 수 있게 살아온 사람.문밖에서 노크가 났다.“이안아.”미정 이모였다.“네.”문을 열자 이모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이거 가져가.”“뭔데요.”“과일이랑 빵 좀 넣었어.”“필요 없어요.”“필요 없어도 가져가.”“짐 많아요.”“가방 하나잖아.”말문이 막혔다.이모가 방 안을 한번 봤다.침대 위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진짜 오늘 나가?”“네.”“그 아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걸로 충분했는지 이모가 웃었다.“그래.”“뭘 그래요.”“아무것도.”“이모도 요즘 왜 이렇게 사람 약 올려요.”“누구한테 배웠나 보지.”나는 봉지를 받아 들었다.“며칠이면 돼요.”“알아.”“진짜 별거 아니에요.”“그것도 알아.”이모는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그러고는 내 팔을 한번 쓸었다.“그래도 갈 데 생겨서 다행이다.”그 말이 이상하게 박혔다.갈 데.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 *한태겸한테는 아직 확답하지 않았다.채팅창을 열어놓고 한참 있었다.[오늘 갈게.]너무 쉬웠다.그래서 못 보냈다.[몇 시에 가면 돼.]그건 더 이상했다.진짜 가기로 한 사람 같았다.결국 휴대폰을 껐다.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는 건 맞았다.오라고 한 건 태겸이지만,갈지 말지는 내 선택이었다.그런데 선택지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결정하는 게 더 어려웠다.차라리 누가 정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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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화. 오늘 갈게

029화. 오늘 갈게가격은 내가 굳이 볼 필요 없었다.닫았다.채팅창을 열었다.[가는 중.]보냈다.[응.][몇 정거장 남았어?][여섯.][알겠어.]그게 끝이었다.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예전 같았으면 한태겸이 이렇게 차분한 게 더 불편했을 것이다.지금은 아니었다.오히려 그게 편했다.다가오지 않는 거리.내가 가는 동안 기다리는 사람.그게 이상하게 안정적이었다.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나는 손잡이를 잡았다.열두 해 전에는 한태겸이 나를 보면 피했다.복도에서도.교실에서도.계단에서도.이제는 반대였다.내가 그 사람 집으로 가고 있었다.그 생각에 입 안이 썼다.복수하겠다는 말도 안 했고.용서했다는 말도 안 했고.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다.그런데 나는 가고 있었다.이게 제일 이해가 안 됐다.* * *역에서 내려 주소를 따라 걸었다.비는 오지 않았다.공기가 조금 축축했다.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정문 앞이야?]나는 주변을 봤다.[응.][거기 있어.][왜.]답은 없었다.몇 분 뒤,한태겸이 뛰지는 않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회사에서 막 온 모양이었다.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고,넥타이는 없었다.평소보다 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나를 보자 걸음이 느려졌다.“왔네.”“주소 보내놓고 왜 놀라.”“안 놀랐어.”“표정이 그런데.”태겸은 내 가방을 봤다.“그게 다야?”“응.”“진짜?”“왜. 거지 같아?”“아니.”그가 바로 대답했다.“가볍겠네.”손을 뻗으려다 멈췄다.“들어줄까?”나는 가방 손잡이를 내려다봤다.“됐어.”“알겠어.”태겸은 손을 내렸다.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나는 몇 걸음 걷다가 가방을 그쪽으로 밀었다.“아니.”태겸이 나를 봤다.“들어.”“괜찮아?”“무거워서가 아니라.”“그럼?”“그냥 들고 싶다며.”태겸은 잠깐 웃었다.“응.”이번에는 내가 손을 놓자 그가 가방을 받았다.가방 하나.그게 전부였다.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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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화. 문 닫아

030화. 문 닫아“닫아.”그가 잠깐 멈췄다.“괜찮아?”“응.”태겸은 천천히 문을 닫았다.이번에는 잠금 소리가 나도 몸이 굳지 않았다.이상했다.문은 똑같이 잠겼는데.이번에는 내가 닫으라고 했다.* * *태겸은 바로 방을 보여줬다.작은 방이었다.침대.책상.옷장.새 침구.정말 빨아놓은 모양이었다.“여기 써.”“네가 원래 쓰던 방 아니야?”“손님방.”“손님이 와?”“거의 안 와.”“그럼 왜 있어.”“집에 방이 두 개니까.”나는 침대를 손으로 눌러봤다.깨끗했다.“화장실은 저쪽.”태겸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수건은 안쪽장.”“응.”“냉장고는 아무거나 먹어.”“내가 알아서 먹을게.”“그럼 그래.”“세탁기는?”“베란다.”“쓰는 법은.”“똑같아.”“비번은.”“와이파이?”“응.”태겸이 알려줬다.나는 휴대폰에 입력했다.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했다.며칠 전만 해도 성당 복도에서 밥 먹자고 하던 사이였다.지금은 그의 집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넣고 있었다.“그리고.”태겸이 말했다.나는 고개를 들었다.“내 방은 저기.”거실 건너편 문.“문 닫혀 있으면 노크해.”“당연하지.”“너도 닫아도 돼.”“알아.”“잠가도 되고.”“그 말 몇 번 하냐.”태겸이 입을 다물었다.나는 가방을 침대 옆에 놓았다.“한태겸.”“응.”“나 진짜 며칠만 있을 거야.”“알아.”“그리고 돈은.”“안 받아.”“그건 싫어.”“왜.”“신세 지는 거 싫어.”“그럼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나는 경계했다.“뭘.”태겸은 잠깐 생각했다.“밥 같이 먹기.”“그게 뭔 대가야.”“내가 혼자 먹는 거 싫어해서.”거짓말 같았다.그런데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리고?”“없어.”“진짜?”“응.”“청소라도 할게.”“하지 마.”“왜.”“손님한테 청소시키기 싫어.”“나 손님 아니잖아.”말이 먼저 나왔다.태겸이 멈췄다.나도 멈췄다.방 안이 조용해졌다.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그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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