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를 괴롭히던 놈과 같이 살게 됐다: Capítulo 31 - Capítul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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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화. 우리 이제 옛날 얘기 좀 하자

031화. 우리 이제 옛날 얘기 좀 하자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잠깐 어디인지 몰랐다.성당 방 천장은 오래돼서 군데군데 색이 달랐고, 빗소리가 심한 날이면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여긴 아니었다.깨끗한 흰 천장.얇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문밖에서 아주 작게 들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그리고,한태겸에 집.그제야 기억이 돌아왔다.나는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문은 잠그지 않았다.밤중에 몇 번 깼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문손잡이를 확인하지 않았다.그게 제일 이상했다.휴대폰을 봤다.일곱 시 십이 분.메시지는 없었다.같은 집에 있으니까 당연했다.그 당연한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대충 묶었다.문을 열었다.거실은 조용했다.태겸은 주방에 있었다.셔츠 차림이 아니라 검은 반팔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회사 밖에서 보는 모습이 아직 낯설었다.등이 넓었다.프라이팬을 들 때 팔이 움직이고, 티셔츠 소매가 조금 당겼다.딱 거기까지만 보고 시선을 돌렸다.“일어났어?”“응.”“잘 잤어?”“그럭저럭.”태겸이 접시를 하나 내밀었다.계란이랑 토스트.“먹어.”“네가 했어?”“응.”“요리하네.”“이 정도는.”나는 식탁에 앉았다.접시를 봤다.별거 없었다.그런데 성당에서는 아침을 이렇게 앉아서 먹는 날이 많지 않았다.대충 빵 하나.커피.남은 음식.누가 먼저 챙겨주지 않으면 그냥 넘기는 날도 있었다.“너는?”“같이 먹으려고.”태겸이 맞은편에 앉았다.“회사 안 가?”“오늘 반차.”나는 포크를 멈췄다.“왜.”“오전에 집에 있을 일이 있어서.”“뭔 일.”“택배.”“구라.”태겸이 웃었다.“나 때문에?”“조금.”나는 바로 얼굴을 굳혔다.“하지 마.”“뭘.”“나 때문에 회사 일정 바꾸는 거.”“내 연차 내가 쓰는 건데.”“그래도.”“그럼 다음부터는 말하고 쓸게.”“그게 문제가 아니잖아.”태겸이 토스트를 한 입 먹었다.“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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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화. 여기가 편해

032화. 여기가 편해누가 뭘 크게 해줘서가 아니라,다음 끼니를 같이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그게 더 이상했다.* * *오후 다섯 시쯤 공사 담당자가 나를 불렀다.“이안 씨.”“네.”“잠깐 여기 보실래요?”내 방 앞이었다.비닐이 걷혀 있었다.천장 일부가 뜯겨 있었다.안쪽 목재가 검게 젖어 있었다.“생각보다 심하네요.”담당자가 말했다.“원래 일주일 정도라고 했죠?”“네. 근데 이건 좀 더 봐야겠습니다.”“얼마나요.”“열흘?”나는 가만히 있었다.“길면 이 주까지 갈 수도 있어요.”이 주.내가 생각한 것보다 길었다.“그렇게 오래요?”“건조가 제일 문제라서요.”담당자는 미안한 얼굴이었다.“숙소 괜찮으세요?”나는 바로 대답했다.“네.”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그게 이상했다.며칠 전에는 같은 질문에 입부터 거짓말이 나왔는데.지금은 아니었다.“괜찮아요.”말하고 나니 정말 조금 괜찮아졌다.* * *저녁 일곱 시 반.태겸 집으로 돌아왔다.비밀번호를 눌렀다.삐삐삐.잠금이 풀렸다.문을 열었다.집 안은 어두웠다.“한태겸?”대답이 없었다.아직 안 왔나.나는 신발을 벗었다.문을 닫았다.자동으로 잠겼다.이번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주방으로 갔다.냉장고를 열었다.물.계란.김치.맥주.생수.별거 없었다.저녁은 뭐 먹지.생각하다가 내가 왜 고민하는지 멈칫했다.태겸 오면 같이 먹기로 했다.나는 냉장고를 닫았다.소파에 앉았다.휴대폰을 확인했다.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회의 좀 길어져.][아홉 시 전에는 갈게.]나는 답장을 썼다.[밥은.]보내고 나서 웃음이 났다.또 이러고 있다.바로 답이 왔다.[같이 먹자며.]나는 화면을 봤다.[그러니까 굶지 말라고.][알겠어.][먹지 마.]쓰다가 멈췄다.먹지 마?굶지 말라고 해놓고.문장을 지웠다.[늦으면 먼저 뭐라도 먹어.]보냈다.잠깐 뒤.[너도.]나는 휴대폰을 내려놨다.거실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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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화. 처음에는 이용하려고 했어

035화. 처음에는 이용하려고 했어처음으로.“처음에는.”그가 말했다.나는 웃었다.“미친 새끼.”“맞아.”“처음에는?”“네가 먼저 오게 만들고 싶었어.”손끝이 차가워졌다.“왜.”“네가 선택해서.”태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내 앞에 오는 게 어떤 건지 느끼게 하고 싶었으니까.”“그래서 친절한 척했어?”“척만 한 건 아니야.”“뭐?”그 말이 더 화났다.“둘 다였어.”태겸이 말했다.“처음엔 일부러였고.”그의 움직임이 줄었다.“중간부터는 나도 잘 모르겠어.”나는 웃었다.이번에는 진짜로.기분 나쁜 웃음이었다.“개새끼네.”“응.”그 짧은 대답 뒤로 태겸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말하는 거야. 네가 여기 있는 동안 숨기고 싶진 않아서.”“존나 친절하네.”“친절한 척만은 아니라고 했잖아.”“닥쳐.”나는 현관 쪽으로 걸었다.두 걸음.세 걸음.태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그게 더 화났다.“진짜 안 잡네.”내가 돌아봤다.“잡아달라고 했어?”“아니.”“그럼 안 잡아.”나는 현관까지 가지 못했다.거실 중간에 멈춰 섰다.왜 멈췄는지 나도 몰랐다.태겸이 천천히 일어났다.이번에는 움직임이 달랐다.성당에서 늘 거리를 남기던 걸음이 아니었다.한 걸음.또 한 걸음.나는 뒤로 물러났다.테이블 모서리를 지나고.소파 옆을 지나고.벽까지 가진 않았다.현관 쪽은 비어 있었다.옆으로 빠지면 됐다.그런데 발이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태겸은 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서이안.”“왜.”“지금도 내가 만만해 보여?”숨이 멎었다.열두 해 전의 한태겸이 겹쳤다.복도 끝에 서 있던 애.시선부터 피하던 애.내가 길을 막으면 벽 쪽으로 붙던 애.지금은 아니었다.내 앞에 선 남자는 훨씬 컸고,시선을 피하지 않았고,다가오고도 손을 대지 않았다.나는 고개를 들었다.“아니.”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태겸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이제는?”“안 만만해.”“다행이네.”그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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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화. 다신 하지 마

036화. 다신 하지 마문을 닫고 나서도 한동안 손을 문고리에서 떼지 못했다.잠금장치는 누르지 않았다.그건 어제랑 같았다.다른 건 내 입술이었다.혀끝이 닿을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감각이 남았다.아픈 것도 아니고, 붓지도 않았다.그런데 자꾸 입술을 의식했다.한태겸이 키스해서가 아니었다.내가 잡아당겼다.그 사실이 제일 짜증났다.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세게 문질렀다.그래도 없어지는 건 없었다.“미치겠네.”작게 욕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밖은 조용했다.태겸은 따라오지 않았다.문 앞에 서지도 않았고, 뭐라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끝내고 싶으면 내가 말하겠다고 했다.그 인간은 그걸 그대로 들었다.그러니까 지금 이 문 하나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마 일부러가 아니었다.적어도 이제는.그 생각이 들자 더 열받았다.처음에는 일부러였다고 했다.내가 먼저 다가오게 만들고 싶었다고.내가 자기 눈치를 보고, 자기 앞에서 예전 같은 얼굴을 못 하는 걸 보고 싶었다고.그럼 어디까지였는데.밥 사준 거.내 번호 받아간 거.손 치료한 거.내가 잠들었을 때 옆에 있었던 거.우리 집으로 오라고 한 거.아니.한태겸 집.나는 얼굴을 찌푸렸다.벌써 머릿속에서 ‘우리’ 같은 걸 붙이려 했다.휴대폰을 들었다.새벽 한 시가 넘었다.태겸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위에 남아 있었다.[기다릴게.]예전에는 그냥 기다린다는 말이었다.지금 보니 그것도 다르게 읽혔다.내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내가 선택할 때까지.그렇게 기다렸다가 결국 자기가 원한 곳까지 데려온 것처럼.“개새끼.”이번에는 조금 크게 말했다.밖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 침묵 때문에 결국 내가 먼저 문을 열었다.* *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태겸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아까 꺼냈던 학교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서류봉투도 치운 모양이었다.대신 물컵 하나만 있었다.내가 나오자 고개를 들었다.“왜 안 자.”내가 먼저 물었다.“너도 안 자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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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화. 진짜 안 할 거야?

037화. 진짜 안 할 거야?태겸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왔다가 다시 내 얼굴로 올라왔다.“좋은 거 먹으면 입부터 조금 풀리고.”“그만.”“그리고.”“그만하라고.”태겸은 멈췄다.진짜로.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그게 더 이상했다.내가 그 인간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그런데 키스하고 나니 그게 더 선명해졌다.나는 시선을 피했다.태겸이 기다렸다.“키스.”단어가 입 안에서 이상하게 굴렀다.“다신 하지 마.”태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눈을 들었다.“왜 대답 안 해.”“생각했어.”“뭘.”“네가 지금 진짜 싫다고 말하는 건지.”순간 화가 확 올랐다.“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아니.”태겸이 바로 잘랐다.“믿어.”“그럼.”“안 할게.”말은 간단했다.그는 손을 들지도 않았다.다가오지도 않았다.“먼저 해도?”내가 비꼬듯 물었다.태겸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그건 네가 물어보면 그때 대답할게.”“미친놈.”“지금은 안 해.”나는 입술을 깨물 뻔하다가 멈췄다.그걸 보였을 것 같아 더 짜증났다.“오늘은 내 방 오지 마.”“알겠어.”“아침에도 깨우지 말고.”“안 깨울게.”“밥도 챙기지 마.”이번에는 태겸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건.”“왜.”“굶는 건 싫어.”“내가 알아서 먹어.”태겸은 한동안 나를 봤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네가 알아서 먹어.”한 번에 다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내가 밀린 기분이었다.나는 등을 돌렸다.방으로 가다가 멈췄다.“한태겸.”“응.”“내가 나가면.”말이 목에서 한번 걸렸다.“진짜로 끝낼 거야?”태겸의 얼굴이 굳었다.“뭘.”“이거.”손으로 우리 사이를 대충 가리켰다.이거.이름도 없는 것.복수인지.관계인지.뭔지 모르는 것.“아니.”태겸이 말했다.“집에서 나가는 거랑 이건 별개야.”“그럼 계속 찾아와?”“네가 보지 말라고 하면 안 가.”“그러면 끝이잖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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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화. 하지 말라고 한 걸 후회했다

038화. 하지 말라고 한 걸 후회했다태겸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오늘 늦어.“그래서.”- 네가 저녁 알아서 먹는다고 했는데.나는 입술을 눌렀다.- 그래도 늦는 건 말해두려고.“몇 시.”- 열한 시쯤.“많이 늦네.”- 먼저 자.“내가 알아서 해.”- 알겠어.그 말이 끝이었다.전화를 끊으려는 기척이 느껴졌다.“야.”- 응.“밥은.”말하고 바로 눈을 감았다.또.내가 또 물었다.태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먹었어.“뭐 먹었어.”- 김밥.“그게 밥이냐.”- 네가 챙기지 말랬잖아.“내 밥 말한 거지 네 밥 말했냐?”말하고 나서 서로 조용해졌다.전화기 너머로 아주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태겸이 웃었을지도 모른다.“웃지 마.”- 안 웃어.“거짓말.”- 조금.“끊어.”- 서이안.“왜.”- 오늘 돌아올 거야?가슴이 아주 살짝 내려앉았다.나는 성당 현관 밖을 봤다.공사 중인 부속동.내 방은 아직 비닐에 싸여 있었다.“갈 데 없는데 어디 가.”- 그 말 하지 말라니까.“그럼.”태겸이 잠깐 침묵했다.- 오고 싶으면 와.목소리가 아주 차분했다.- 안 오고 싶으면 오늘은 다른 데 있어도 되고.짜증났다.선택권.또 그놈의 선택권.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화가 덜 났다.“갈 거야.”내가 말했다.- 알겠어.“네가 오라고 해서 가는 거 아니야.”- 알아.“그 말도 하지 마.”- 그럼 기다릴게.통화가 끝났다.나는 한참 화면을 봤다.이번에는 그 말이 이전과 또 다르게 들렸다.* * *밤 열 시 반쯤 집에 도착했다.태겸은 아직 안 왔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불을 켰다.냉장고를 열었다.한참 고민하다가 계란을 꺼냈다.밥도 있었다.내가 알아서 먹으라고 했으니까.정말 알아서 먹었다.그리고 한 사람 분량을 더 했다.열한 시 십칠 분.현관문이 열렸다.태겸이 들어왔다.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나를 보더니 잠깐 멈췄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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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화. 네가 선택해

039화. 네가 선택해아침부터 한태겸은 약속을 지켰다.정확하게.짜증날 정도로.내가 부엌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가까이 오지 않았고, 냉장고 앞에서 마주쳤을 때는 내가 지나갈 수 있게 한 걸음 옆으로 비켰다.팔 하나 스칠 거리도 남기지 않았다.어젯밤 내가 말했다.다신 하지 마.태겸은 안 하겠다고 했다.그 결과가 이거였다.“너 일부러 그러냐?”내가 물었다.태겸이 물병 뚜껑을 닫다가 나를 봤다.“뭘.”“거리.”그는 자기와 나 사이를 잠깐 내려다봤다.식탁 하나가 비스듬히 끼어 있었다.“네가 싫다며.”“키스하지 말라고 했지 사람 피해 다니라고 했냐?”태겸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그럼 가까이 있어도 돼?”말문이 막혔다.저 인간은 꼭 이렇게 물었다.내가 고르게.그게 싫어서 쏘아붙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적당히 해.”“어느 정도가 적당한데.”“그걸 왜 나한테 물어.”“네가 정하는 게 맞으니까.”또.나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그놈의 선택.”태겸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를 지나 식탁에 앉았다.오늘은 내가 먼저 빵을 꺼냈다.태겸이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런데 잠시 뒤 내 앞에 컵은 놓이지 않았다.내가 밥도, 뭐도 챙기지 말라고 했던 말이 아직 유효한 모양이었다.“내 건?”묻고 나서 멈췄다.태겸이 고개를 돌렸다.“커피?”“됐어.”“마실래?”“아니.”“알겠어.”그대로 자기 컵만 들고 앉았다.나는 빵을 한 입 씹었다.맛이 없었다.“줘. 커피.”태겸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났다.내 취향을 묻지도 않았다.이미 안다.설탕 조금.우유는 안 넣는 거.잠시 뒤 컵이 내 앞에 놓였다.손끝은 닿지 않았다.나는 그 컵을 들었다.“이건 내가 시킨 거다.”“알아.”“네가 챙긴 거 아니야.”“그래.”왜인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다.그렇다고 다른 말을 시킬 수도 없었다.태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평소처럼 보였다.그런데 이제 나는 안다.저 인간은 평소처럼 있을수록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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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화. 싫다고 하면 정말 멈춘다

040화. 싫다고 하면 정말 멈춘다나는 바로 말을 고쳤다.“아니.”손가락이 봉지에서 떨어졌다.“네가 내 말 듣는지 보려고.”처음으로 정확하게 말했다.“내가 시키면 어디까지 하는지.”태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됐어?”“응.”그 짧은 대답 뒤로 시선이 조금 내려갔다.테이블 위 내 손.아까부터 구겼던 빵 봉지.“그날 이후로.”태겸이 말했다.“네가 뭘 시키면 이유부터 생각했어.”나는 손을 멈췄다.“왜 시키는지.”“……”“안 하면 또 뭘 할지.”공기가 무거워졌다.태겸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그래서 더 선명했다.“그게 오래 갔어.”나는 시선을 피했다.사과가 목까지 올라왔다.미안해.그런데 그 말 하나로 끝내면 안 될 것 같았다.그래서 대신 물었다.“오늘 나한테 뭘 시키려고.”태겸의 눈이 들렸다.“왜 그렇게 생각해.”“이 얘기 꺼냈잖아.”“시킬 생각 없었어.”“거짓말.”태겸이 잠깐 침묵했다.“하나 있긴 해.”나는 헛웃음을 냈다.“봐.”“근데 안 해도 돼.”“또 선택?”“응.”짜증나게 침착했다.“뭔데.”태겸은 잠시 생각하다가 식탁 한쪽에 놓인 작은 봉투를 가리켰다.회사 서류는 아니었다.편의점 종이봉투.“출근할 때 아래 경비실에 맡길 게 있어.”“그래서.”“내가 오전에 회의가 빨라서.”“나보고 내려다 주라고?”“부탁하려고 했어.”너무 사소해서 어이가 없었다.나는 그를 노려봤다.“지금 이 얘기 해놓고 심부름 시키는 거냐?”“그래서 안 해도 된다고 한 거야.”“너 진짜 이상해.”“알아.”“일부러 골랐지.”태겸은 이번에는 부정하지 않았다.“조금.”나는 웃음이 나왔다.기가 막혀서.“난 네 노예가 아니야.”“알아.”“근데 왜 시켜.”“안 시켰어.”태겸은 봉투에 손도 대지 않았다.“부탁했지.”“말장난하냐.”“차이는 있어.”“뭔데.”“예전에는 네가 내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시켰잖아.”그 말에 입이 다물어졌다.“지금은 네가 거절해도 아무 일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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