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연락을 하든가 여섯 시가 넘었는데 한태겸은 오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안아, 저쪽 상자만 옮기면 오늘은 끝이야.” “네.” 미정 이모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기증받은 생필품 상자가 벽 한쪽에 쌓여 있었다. 세제, 휴지, 통조림, 즉석밥. 겉면에 적힌 품목을 확인해서 각 선반에 나누면 끝이었다. 나는 커터칼로 테이프를 갈랐다. 즉석밥 열두 개. 통조림 여덟 개. 세제 네 통. 손은 알아서 움직였다. 문제는 부속동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가 돌아간다는 거였다. 일곱 시 십 분. 택배 기사였다. 일곱 시 이십칠 분. 본당에 다니는 할머니 둘이 우산을 찾으러 왔다. 일곱 시 사십이 분. 아이 하나가 두고 간 물통을 가지러 뛰어 들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괜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더 세게 내려놓았다. “오늘 진짜 누구 기다려?” 뒤에서 미정 이모가 물었다. “아니라니까요.” “근데 왜 문 열릴 때마다 봐.” “사람 들어오니까 보죠.” “평소에는 안 보잖아.”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빈 상자를 접어 끈으로 묶었다. 한태겸이 온다고 한 적은 없었다. 어제도 분명 그랬다. 퇴근이 늦으면 못 올 수도 있다고. 내가 먼저 물었다. 내일도 올 거냐고.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기분이 더 나빠졌다. 욕을 아주 작게 뱉었는데 미정 이모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상자를 든 채 멈췄다. “뭐라고 했어?” “무겁다고요.”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잘못 들으셨어요.” 나는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까지 조금 접었다. 이 정도면 넘어간다. 몇 년 동안 몸에 밴 표정이었다. 미정 이모가 의심스럽게 쳐다보다가 결국 웃었다. “그래, 무거우면 나 불러. 혼자 들지 말고.” “네. 이것만 두고 올게요.” 상자를 들고 창고로 들어갔다. 문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