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놈과 같이 살게 됐다

나를 괴롭히던 놈과 같이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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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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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를 괴롭히던 놈을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 유명했던 일진 서이안이 긴 머리에 검은 옷을 입고 성당에서 수녀처럼 살고 있었다. 학교는 그놈을 벌줬지만, 내가 잃은 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받아내려고 했다. 복수하려고 다정하게 접근했다. 나를 믿게 만들고, 내게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서이안은 정말 내게 익숙해졌다. 먼저 연락하고, 내 앞에서 잠들고, 결국 내 집까지 들어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가 원했던 게 복수인지, 이놈이 떠나지 않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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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001화. 수녀가 된 학폭 가해자

001화. 수녀가 된 학폭 가해자

성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날 내게 필요했던 건 비를 피할 지붕과 뜨거운 커피 한 잔 정도였다.

퇴근은 예정에서 두 시간이나 밀렸다.

내부 감사 보고서를 끝까지 붙들고 있던 탓에 회사 건물을 나왔을 때는 이미 거리가 젖어 있었다.

비는 우산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지나쳐 있었고, 택시는 십오 분 넘게 잡히지 않았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운 채 처마를 찾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벽돌 담 위로 십자가가 보인 건 그때였다.

정문 옆 작은 입간판에는 빗물이 맺혀 있었다.

무료 급식 봉사.

후원 물품 정리.

도움이 필요하시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마지막 문장에서 시선이 잠깐 멈췄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어깨부터 소매 끝까지 젖은 뒤였다.

택시 호출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결국 문을 밀었다.

안은 예상보다 생활 소리가 많았다.

본당 쪽에서 낮은 오르간 소리가 흘렀고, 부속동에서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아이들 웃음이 섞여 나왔다.

오래된 타일 위로 젖은 구두가 닿을 때마다 얇은 마찰음이 따라붙었다.

“저쪽에 수건 있어요. 비 많이 맞으셨죠?”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괜찮다고 할 틈도 없이 수건이 건너왔다.

“감사합니다.”

“차도 한 잔 하고 가세요. 오늘 급식은 끝났어요.”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부속동 안쪽에는 접이식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고, 벽 쪽에는 기증받은 옷과 통조림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아이 둘이 남은 빵을 봉지에 옮겨 담고 있었고, 노인 한 명이 구석 의자에 앉아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검은 작업복이 발목 가까이 떨어졌고, 머리 위에 두른 검은 천 아래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좁은 어깨와 가는 목이 옷 안에 잠겨 있어서 멀리서 보면 그렇게 착각할 만했다.

그 사람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거 한 봉지에 다 넣으면 터져요. 반씩 나눠 담아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젖은 머리를 닦던 손을 멈췄다.

여자치고 낮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남자 목소리였다.

아이가 봉지를 놓쳐 빵 몇 개가 바닥으로 굴렀다.

검은 옷의 남자는 나무라지 않고 먼저 손을 뻗었다.

바닥에 닿은 것은 따로 빼고, 멀쩡한 건 다시 봉지에 넣었다.

“여기 잡으면 안 떨어져요.”

그가 비닐 입구를 접어 아이 손에 쥐여 줬다.

길고 흰 손가락이 먼저 보였다.

손톱은 짧았다.

손등 피부는 세제를 오래 만진 사람처럼 군데군데 거칠었다.

별것 아닌 손이었다.

그런데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는 손일 리 없었다.

사람 손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남자가 오른손 엄지로 왼손 검지의 두 번째 마디를 눌렀다.

한 번.

그러고는 손을 뗐다가 다시 같은 곳을 눌렀다.

몸 안쪽 어딘가가 먼저 기억했다.

분필 가루가 눌어붙은 교실 창틀.

여름 우유 냄새.

내 책상 위를 타고 흐르던 흰 액체.

“야, 얘 또 아무 말도 안 한다.”

웃음소리가 겹쳤다.

교실 뒤쪽 책상에 걸터앉은 누군가가 손가락 마디를 누르고 있었다.

길고 흰 손.

나는 수건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기억은 거기서 끊겼지만, 손끝에 남은 감각은 끊기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옆에서 물었다.

“네.”

입 밖으로 대답이 나온 뒤에야 내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수건을 반듯하게 접었다.

반으로 한 번, 다시 한 번.

일할 때도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면 서류 모서리를 맞춘다.

사람이 무엇을 숨기는지 찾는 건 지금 내 일이었다.

회사 내부 감사팀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표정을 본다.

모른다고 하면서 이미 대답을 준비하는 사람.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질문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는 사람.

괜찮다고 웃는데 목부터 굳는 사람.

저 남자에게도 무언가 있었다.

나는 다시 그쪽을 봤다.

그는 큰 스테인리스 통을 씻어 물기를 털고 있었다.

아이가 의자를 끌다 휘청하면 등 뒤로 손을 받쳤고, 노인이 빈 컵을 내려놓기 전에 먼저 다가가 가져갔다.

“이안 씨, 그건 제가 할게요.”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이것만 마저 치울게요.”

얼굴이 보였다.

숨이 아주 조금 늦게 들어왔다.

검은 천 아래로 흑갈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젖은 뺨에 붙어 있었다.

희게 뜬 피부와 검은 옷의 경계가 유난히 선명했다.

눈매는 길었고 끝이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얌전하게 웃고 있는데도 그 눈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입술도.

턱선도.

기억보다 많이 가늘어진 얼굴도.

기억보다.

그 단어가 떠오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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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수녀가 된 학폭 가해자 성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날 내게 필요했던 건 비를 피할 지붕과 뜨거운 커피 한 잔 정도였다. 퇴근은 예정에서 두 시간이나 밀렸다. 내부 감사 보고서를 끝까지 붙들고 있던 탓에 회사 건물을 나왔을 때는 이미 거리가 젖어 있었다. 비는 우산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지나쳐 있었고, 택시는 십오 분 넘게 잡히지 않았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운 채 처마를 찾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벽돌 담 위로 십자가가 보인 건 그때였다. 정문 옆 작은 입간판에는 빗물이 맺혀 있었다. 무료 급식 봉사. 후원 물품 정리. 도움이 필요하시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마지막 문장에서 시선이 잠깐 멈췄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어깨부터 소매 끝까지 젖은 뒤였다. 택시 호출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결국 문을 밀었다. 안은 예상보다 생활 소리가 많았다. 본당 쪽에서 낮은 오르간 소리가 흘렀고, 부속동에서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아이들 웃음이 섞여 나왔다. 오래된 타일 위로 젖은 구두가 닿을 때마다 얇은 마찰음이 따라붙었다. “저쪽에 수건 있어요. 비 많이 맞으셨죠?”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괜찮다고 할 틈도 없이 수건이 건너왔다. “감사합니다.” “차도 한 잔 하고 가세요. 오늘 급식은 끝났어요.”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부속동 안쪽에는 접이식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고, 벽 쪽에는 기증받은 옷과 통조림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아이 둘이 남은 빵을 봉지에 옮겨 담고 있었고, 노인 한 명이 구석 의자에 앉아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검은 작업복이 발목 가까이 떨어졌고, 머리 위에 두른 검은 천 아래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좁은 어깨와 가는 목이 옷 안에 잠겨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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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화.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
009화.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 서이안은 내가 고른 식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성당에서 걸어서 오 분쯤 떨어진 국밥집 앞이었다. 간판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그대로 지나쳤다. “여기 아니야?” “비싸.” “국밥이?” “구천 원이잖아.” 나는 가게 유리에 붙은 메뉴판을 봤다. 구천 원. 요즘 기준으로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내가 산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싫다고 했잖아.” 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검은 작업복은 벗고 나왔다. 대신 얇은 검은 후드집업을 걸쳤고, 성당에서 늘 묶어두던 머리는 낮게 하나로 묶여 있었다. 걸을 때마다 머리끝이 등 가운데에서 작게 흔들렸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여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아니었다. 후드집업 안쪽으로 드러난 목선은 가늘었지만 어깨는 남자였고, 걸음도 생각보다 빨랐다. 예전부터 서이안은 무리를 따라다니는 쪽이 아니라 남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쪽이었다. 지금도 나보다 반 걸음 먼저 걷고 있었다. “어디 가는데.” “먹는다며.” “그래서 식당을 찾는 중이고.” “내가 아는 데 있어.” 이안이 골목 안으로 꺾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작은 분식집 하나가 나왔다. 떡볶이, 라면, 김밥. 가격표가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라면 사천오백 원. 김밥 삼천 원. 이안이 문을 열었다. “여기.” 나는 말없이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테이블이 네 개뿐이었다. 오래된 환풍기가 낮게 돌아가고 있었고, 끓는 육수 냄새와 튀김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안은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도 보지 않았다. “라면 하나.” “김밥은?” “안 먹어.” “아까 밥 먹자며.” “라면도 밥이야.”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주인이 물을 가져왔다. “둘이 뭐 드릴까?” “라면 하나랑 김밥 두 줄 주세요.” 이안이 바로 나를 봤다. “한 줄만.” “두 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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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화. 처음으로 다음이 생겼다
010화. 처음으로 다음이 생겼다 “왜 그러는데.” “나도 모르겠어.” “개소리.” “정말 몰라.” 이안의 입가가 비틀렸다.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안다며.” “응.” 단답을 내놓고 잠깐 멈췄다. 그 다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근데 싫다고 해서 매 순간 불행했으면 좋겠는 건 아니야.”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해서 길바닥에 있으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막상 보니까 아니더라.” “불쌍해?” “아니.” 이번에는 바로 잘라 말했다. 그건 확실했다. “그럼.” “궁금한 쪽에 가까워.” “뭐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이안이 웃었다. 좋은 의미의 웃음은 아니었다. “재밌냐?” “재미로 보는 건 아니고.” “다큐 찍어?” “그것도 아니고.” “그럼 그만 물어봐.”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안 물어볼게.” “오늘은?” “응.” 그 한마디 뒤에 이안의 시선이 오래 붙었다. 나는 일부러 덧붙이지 않았다. 내일은 묻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다만 오늘은 아니었다. 이안은 몇 초 더 나를 보다가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김밥 한 개를 집었다. 굳이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먹었다. 그 사실만 봤다. * * * 계산은 내가 했다. 이안은 계산대 옆에 서서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왜 네가 가져가.” “금액 보려고.” “아까 다 봤잖아.” “정확히.” 그는 영수증 아래쪽을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줄게.” “안 줘도 돼.” “줘.” “싫으면 안 받아도 되지?” 이안이 나를 노려봤다. “그 말 되게 잘 써먹는다.” “무슨 말.” “싫으면 하지 마.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문을 열며 그가 말했다. “좋은 사람인 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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