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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장모의 침대: Chapter 1 - Chapter 10

78 Chapters

1화 싸다 만 캐리어

거실의 스탠드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커튼은 반뼘쯤 열려 있고, 맞은편 아파트의 희미한 사각빛이 밤공기와 함께 얇게 스며들었다. 벽은 두껍고 단단했기에 이 시간의 소리는 대개 숨까지 얇아진다.​그래서인지 건너방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이 없었다. 다른 방 사람들은 이제 잠들었을 것이다. 아파트의 새벽은 그런 확신을 조용히 허락한다.​소파 옆 테이블 위에는 여권과 항공권, 호텔 바우처가 겹겹이 놓여 있었고, 여권 표지는 스탠드 불빛을 받아 얇게 번들거렸다. 모서리에 얹은 손가락 하나가 그 광택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캐리어는 반쯤 채워진 채 소파 옆에 기대어 있었다. 접어 넣은 옷 사이로 남겨둔 칸이 눈에 띄었다. 그 빈칸은 돌아올 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것들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었다.​바닥 한쪽에는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누워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 까닭을 아이는 알까. 마치지 못한 놀이의 아쉬움을 말하듯 장난감은 아직 서랍에 들어가지 않았다.​아이가 내일 아침 이것을 본다면 또 엄마와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할 것만 같아 준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바쁜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잦았기에,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평소의 외출이라고 녀석은 생각하겠지. 분명 며칠 뒤면 아이는 엄마를 찾아댈 테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준호에게는 그것까지 대비할 여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애먼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만 매만지며 서 있었다.​아이가 엄마와 함께 이 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날이 언제일지 생각하다가, 준호는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온 욕실 문 여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아.​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호와 아내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소소한 투정과 화해로 이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였다. 그래서 더 조용히 마음이 아팠다.​내일이면 저 방은 한동안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 사실을 논쟁이나 원망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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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배웅

분주하고 들뜬 아침 공기가 겨우 내려앉은 듯하다. 오늘따라 부산한 일들이 반 박자씩 밀려 아이 손을 잡은 준호의 발걸음도 서두른다.​그렇게 서둘렀지만 늦었는지, 어린이집 앞은 한산하다. 그래도 늘 늦는 집은 있기 마련, 유모차를 미는 몇 명의 엄마들과 마주친다. 준호가 익숙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 감정 없는 미소와 짧은 목례가 연달아 되돌아온다.​그 사이 아이의 걸음은 모래에 잠기듯 둔해지고, 손바닥엔 땀이 맺힌다. 결국 두 팔이 그의 어깨를 더 깊게 감싼다. 처음 이 문턱을 넘던 날의 무게와 닮았지만, 지금은 그의 가슴께가 더 묵직하다.​문이 열리자 선생님이 먼저 다가왔다.​아이의 엄마가 오늘 새벽에 미국으로 떠났다는 연락을 미리 해 둔 터라, 말보다 손이 앞선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아 작은 장난감을 흔들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손바닥에 척 붙여주며 속삭인다.​“하윤이한테만 주는 거야. 선생님하고 비.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듯 두 사람은 눈을 맞춘다. 아이의 표정이 금세 풀리고, 작은 발뒤꿈치가 타일 위로 또박또박 멀어진다.​닫히는 문틈에 남는 뒷모습은 여전히 가늘다. 준호의 마음이 잠깐 저민다. 천천히 돌아나오며 휴대폰을 꺼낸다.​아내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보낸 뒤, 화면에 남은 마지막 인사 시각을 본다. 불과 몇십 분 전. 이제 비행기는 바다 위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그때, 몇 시간 전의 일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아이와 장모가 깊게 잠들기를 기다려 겨우 치른 짧은 이벤트, 그 뒤에야 간신히 닿은 잠, 스탠드 불빛 아래 협탁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정액을 닦은 티슈 몇 뭉치가 번쩍 떠오른다.​장모 혜정은 부지런하다. 먼지가 집에 내려앉는 걸 참지 못하는 데다, 사위 집에 몸을 기대고 사는 미안함이 손부터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다.​오늘 아침 아이 눈치를 보느라, 장모와 둘만 남은 공기를 더듬느라 치울 틈이 없었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알았다”고는 하지만, 설거지통에 먼저 손을 담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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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벽 너머

저녁상이 차려지면, 늘 그랬듯 아이의 숟가락은 금세 멈췄다. 반찬을 건너뛰고 물컵을 들여다보며, 젓가락으로 밥풀을 옮겨 심는 데만 열중했다.​집안 공기가 어제보다 더 얇아진 탓인지 투정이 유난했다. 준호의 손이 무심코 휴대폰을 더듬었다. 다희가 없을 때면 늘 꺼내 들던 마지막 수단—그녀는 못마땅해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넘어가던 방식.​그때 혜정의 손이 가볍게 그의 손등을 눌렀다.​“자꾸 그런 거 보여주고 그러면 안 좋대.”​유튜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난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빠짐없이 하는 경고. 전두엽 손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나도 약사라구요, 안 좋은 거 안다구요’ 준호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혜정의 눈빛이 먼저 움직였다.​혜정은 딱히 대안이 필요없는 손짓과 눈빛으로 아이의 투정을 제압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인상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아이는 그 기세에 눌렸다가, 할머니 특유의 미소가 지어지자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아이가 고개를 젖히며 기세를 올리는 순간마다, 혜정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먼저 올라갔다 내려가며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아이는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 고전은, 늘 통했다.​“내가 먹일 테니까, 자네나 얼른 먹어. 배고플 텐데.”​혜정의 밥그릇엔 공기가 반쯤 남아 있었다. 준호는 ‘됐어요’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그녀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밥풀을 한 알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아이 입술 가장자리까지 행주로 쓸듯 닦아내며 템포를 이어갔다.​숟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세 번 정도 더 났을 때, 아이의 접시는 반 이상 비워졌다. 준호는 뒤늦게 젓가락을 들어 한 술 삼켰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지나갈 때, 휴대폰은 식탁 끝에서 조용히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 공기는, 오래된 방식대로 천천히 평온 쪽으로 되돌아갔다.​​​***​​​분리수면을 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의 팔꿈치를 꼭 쥐어야만 잠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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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신음소리

​​“허억…”“하응…”“허윽…”​새벽 네 시. 귓바퀴 안을 파고드는 얇은 숨이 두어 번 더 밀려왔다. 준호는 머리맡의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 화면이 꺼지자 이불을 다시 끌어올렸다. 소리는 한 번 가라앉았다가 벽을 타고 또 올라왔다.​“흐윽…”​아침 욕실 문턱에서 스치던 물빛 실루엣—젖은 머리칼이 목선을 따라 붙었다 떨어지던 장면이 술기운에 녹아 되살아났다. ​“뭐지?” 입술 안쪽으로만 맴도는 소리.​뇌리에 어디서나 본 듯한 구도가 자동으로 겹쳤다. 일본의 성인물에서 나오는 흔한 설정.​욕망에 쩐 새엄마들은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계기에도 손가락이 다리 사이를 더듬고, 아들이나 사위가 들으라는 듯 흘리는 신음은 발정의 페로몬처럼 그들을 끌어들여 결국 이어지게 만든다는…​그때 문득 떠오른 건 오래전, 다희와 잠자리 뒤에 나눈 짧은 대화였다. 여자도 자위를 하냐는 질문 끝에 돌아온 말.​‘정말 잠이 안 올 때는 혼자 해본 적이 있어. 포르노처럼 손가락을 깊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살짝 문지르는 정도?’​그땐 농담처럼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귓속에서 현실처럼 울렸다.​‘뭔가 하려고 작정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그 문장이 둥글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벽 너머의 호흡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시트가 사락— 하고 한 번 더 당겨지고, 준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멈췄다.​“허윽…”​깊어지는 숨. 안경을 찾느라 다시 켠 휴대폰 불빛이 거실 바닥에 가는 선을 그었다.​​​​​***​​​​​준호는 거실을 살금살금 건넜다. 벽 너머 혜정의 방에서 울리던 얕은 숨을 이미 하나의 장면으로 결론지어 둔 채, 까치발로 몸을 세웠다.​맨발이 마룻바닥에 쩍— 달라붙었다 떼어낼 때마다 숨이 길게 눌렸다. 문 앞에 닿자 소리는 “딱” 끊겼다.​문손잡이 위에서 손가락이 원을 그리다 멈췄다.​‘한 뼘만 열어볼까’금속의 냉기가 손바닥에 얇게 번졌다. 그 짧은 망설임 사이, 머릿속에선 문이 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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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자위의 밤

“후우…”​방으로 돌아온 준호는 알콜이 섞인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웠다.​장모, 혜정이 차려준 안주 앞에서 소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다. 술기운이 얼굴을 달구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져 있었다.​잔을 부딪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날 밤, 그녀의 방에서 새어 나왔던 소리. 낮고 가늘게, 숨이 섞인 듯한—잠결에 들은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혼자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냈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장모는 손자를 둔 나이였지만 동안의 얼굴과 탄력을 잃지 않은 몸매는 여전히 성욕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적어도 준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모두 잠든 새벽,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그렇지만…​아무리 그래도 사위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밤에.​자위를? 신음소리를 참지도 않고?​그것도 정말로, 사위와 단 둘이 사는 이 집에서?​준호는 술이 올라온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다 스스로 얼굴을 찌푸렸다.​혹시 일본 야동에서나 나오는 장면처럼, 자신이 과감하게 문을 열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망측한 상상만 꼬리를 물었다.​그러나 오늘 저녁, 자신을 대하는 혜정의 복장이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 자연스러운 말투, 가끔 건네는 잔소리까지.​그녀의 말대로 그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이겠지. 준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그런데도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가슴골이 자꾸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나던 하얀 살결, 잔을 기울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그 곡선.​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전날 밤의 소리 탓인지, 시선은 자꾸만 그곳으로 미끄러졌었다.​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혹시나 또 그 방에서 그 소리가 날지, 촉각을 곤두세워 보았다.​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술이 한 잔 더 필요해…'​소주를 더 꺼내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어두웠고, 건너편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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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찢어진 치마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주말은 늘 고민거리였다. 특히 다희가 있을 때는 주말의 대부분을 그녀가 아이와 함께 보냈다.​평일엔 회사에 묶여 있던 그녀는, 주말만큼은 아이에게 시간을 온전히 쏟았다. 좋은 아내는 아니었을지언정, 나쁜 엄마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다.​하지만 이제, 주말의 돌봄은 고스란히 준호의 몫이 되었다.​준호는 처음엔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보려 했다. 하지만 혜정은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아이 엄마의 빈자리를 그녀는 알았고, 그 자리를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혜정은 아이에게 줄 간단한 도시락을 싸고, 외출에 필요한 옷과 물건들을 차근차근 챙겼다. 큰소리나 부산함 한번 내색하지 않고 준비하는 그녀의 손길을 준호는 조용히 바라보았다.​능숙한 동작, 익숙한 리듬. 그 안에 스며든 수십 년 삶의 무늬. 그리고—어젯밤 떠올린 상상이 불현듯 가슴 한켠을 찔러왔다.​‘미안해요, 장모님...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에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마음이 얹혀 있었다.​낮의 햇살은 이마를 눌렀고, 저녁의 바람은 팔을 스치며 끌어당겼다. 덥고도 쌀쌀한, 익숙한 일상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계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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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수면제

“지혜정님, 들어오세요.”​진료실 문이 반쯤 열리고 간호사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혜정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구도심의 낡은 건물에 자리한 내과치고는 깔끔했다. 환기창 틈마다 햇살이 들어왔고, 직원들의 유니폼은 반듯했다. 말끝에 묻어나는 응대는 정돈된 친절이 배어 있었다. 사위의 후배라는 사람은 꽤나 괜찮은 사람임에 분명했다.​직원들에게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친절한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라 혜정은 생각했다. 한 번 더 주변을 훑은 뒤, 그녀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 문을 넘었다.​“어서오세요.”​낯선, 그러나 단정한 여성의 목소리. 혜정은 걸음을 멈췄다.​“…아…”​사위의 후배라고 들었을 땐 당연히 남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하얀 가운을 입고 앉은 이는 또렷한 눈매를 가진 젊은 여의사였다. 단정한 말투, 짧게 묶은 머리, 그리고 조용한 미소.​“안녕하세요. 준호 선배 장모님이시죠?”‘오빠’라는 호칭이 나올까 긴장했던 마음이 ‘선배’라는 단어에 약간 풀렸다. 그래도 혜정은 마음 한켠이 찝찝했다. 같은 학교 선후배, 지방의 같은 건물에서 하는 약국과 병원이라니. 모든 게 너무 ‘우연치고는 심상찮은’ 느낌이었다.“아… 네. 사위가… 칭찬 많이 하더군요…”​의사는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문진표를 들여다봤다. 그녀의 가운 위로 보이는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강현주]​‘현주… 현주라…’​그 이름이 어디서 들었던 이름일까. 같은 건물에 후배가 있다는 말은 왜 하지 않은 걸까. 의사가 무언가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혜정은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어머님, 약을 드시면 낮에도 피곤하다고 하셨죠? 아마 이 약도 그럴 거예요. 용량을 줄여드릴까요? 아니면 복용 시간을 앞당겨 보실래요?”​의사는 예의바르게 선택지를 건넸다. 혜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일찍 먹어볼게요.”​기왕 수면제를 택한 이상, 오늘만큼은 꼭 잠들고 싶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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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위의 흔적

망설이던 손끝이 결국 문고리를 감쌌다. 그는 조용히, 아주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장모님…?”​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 너머에서 들려온 건 잠꼬대 같기도 한 얇은 한숨뿐이었다.​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술기운이 어딘가에서 작은 용기를 부풀리고 있는 듯했다.​“장모님, 괜찮으세요…?”​다시 한 번 묻는다. 하지만 수면제의 기운에 잠식된 방 안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준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찰카닥—​작은 마찰음과 함께 어두운 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한 구조. 아이의 놀이방으로 쓰려 했던 그 방. 책장 대신 들어온 수납장, 그리고 비워진 컴퓨터 책상의 자리를 채운 그녀의 침대.​창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밤공기가 살짝 들이쳤고, 그 틈으로 바람이 들락거렸다.​“아…”​준호는 문득 아내 다희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두통은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거야… 약 먹고 잘 때는 꼭 창문을 좀 열어줘.’​그 말이 지금 이 공간을 설명하는 듯했다.​그리고, 이불 아래서 몸이 뒤척였다.​“흐으음…”​혜정의 낮은 신음. 고통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듯 찡그려졌다가 다시 풀어지는 얼굴이었다. 몸은 잔잔히 움직였고, 그에 따라 허리춤에 걸린 이불이 들썩였다.​그녀의 잠옷은 배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하얀 피부 위로, 밤공기에 곤두선 솜털이 어슴푸레 돋아 있었다.​준호는 한 걸음 다가섰다. 이불을 덮어줘야 했다. 셔츠를 내려줘야 했다. 그랬다. 분명 그것이 옳았다.​하지만, 그 앞에서 그는 멈췄다.​손이 닿기 직전, 머릿속을 스친 욕실 앞에 섰던 이 몸의 속살. 그리고 모니터 속에서 봤던 이 몸과 겹쳐지던 장면. 이불과 셔츠 아래 비치는 살결의 곡선, 육덕진 실루엣은 준호의 환상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손끝이, 망설였다.​​​​​—​​​​​“뭔 생각을 그렇게 해.”​툭—​조제실에서 나온 지환이 팔뚝을 툭 치는 바람에 준호는 손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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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허락받지 않은 터치

‘이게… 진짜 그건가…’ 혜정은 티슈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딸만 둘을 키우며 살아왔기에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들의 그것에 대해 그녀는 잘 알지 못했다. 아들을 둔 엄마들은 침대 맡에서 티슈를 주워 담기 바쁘다던, 예전 친구의 우스갯소리 같은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사위가 사춘기는 아니지만, 남자는 남자. 그 나이면, 어쩌면 가장 활발한 시기일지도 몰랐다.​그는 누가 봐도 건강했다. 군살이 없고, 허리와 어깨선이 또렷한 단단한 체형. 거기에 깔끔한 인상, 여유 있게 웃는 얼굴. 분명 예전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았을 거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처음 딸아이와 함께 찾아왔을 때, 혜정은 그가 ‘괜찮은 남자’라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 자존감 있는 남자. 가정을 계산하지 않고 꾸릴 수 있는 좋은 남자. 무심하게 살가운 남자.​그런 사람에게 성욕이 없을 리 없다.​혜정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남편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남편은 대화도, 전희도 없이 그냥 들어와 허둥지둥 밀어붙이던 남자였다. 결코 섹스를 잘하진 못했지만, 늘 욕망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그녀에게 부지런하게 쏟아냈다.​혜정이 그 행위가 주는 감각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남편은 이미 힘을 거의 잃어버린 뒤였다. 남편과 자신은 늘 엇갈리듯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서로 편했고, 그래서 사이가 더 좋았다.​그리고 지금 손에 쥔 이 굳어버린 티슈 뭉치.​혜정은 그걸 버려야 할지, 덮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이게 무엇인지… 그냥 몰랐다고 생각하면 된다.​그녀는 손에 쥔 티슈를 더 꼭 움켜쥐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 질감에서 묘하게 바스락대는 마찰음이 어젯밤, 자신의 피부 위를 스치던 그 부드러운 감촉을 떠올리게 했다.​그 순간 피부가 살짝, 소름처럼 밀려올랐다. 그것이 추위 때문인지, 자신을 보고 선 사위에 대한 상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준호는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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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안겨보니 좋네

아까 그 대범한 만용이 어디서 나왔는지, 준호는 아직도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훑고 손끝은 뻣뻣해질 정도로 얼어 있었다.​이럴 때면 지환은 어김없이 냄새를 맡았다.​“얌마. 뭔데? 무슨 죄지었어?”“죄는 무슨…”​준호는 이죽거리며 다가오는 지환을 밀어냈다. 하지만 지환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아니긴 뭐가 아냐. 이마에 써 있어, 그냥. ‘나 죄지었어요’라고.”​준호는 한숨을 쉬었다.​“하… 씨. 아니라고. 하윤이 걱정돼서 그렇지. 소변을 잘 가리던 애가 요즘…”​지환은 킥 하고 웃었다.​“야. 아빠가 20살에 선배 등에 토하는 놈인데 뭘. 4살짜리가 실수 좀 할 수도 있지.”“...”“하윤이면 진짜 잘 큰 거야. 내 친구 애는 초등학생인데도 아직 실례한다더라.”​그때, 폰이 울렸다.​[장모님]​심장이 꽉, 조여들었다.​‘설마… 설마, 깨어 계셨던 건가?’​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열었다.​[장모님] 하윤이 내가 하원시킬게. 친구랑 편하게 좀 놀다와도 되. 애는 내가 재울테니까.​“……휴우.”​심장이 겨우, 한 박자 느리게 떨어졌다.​“뭔데?”​지환이 어깨너머로 힐끔 폰을 들여다봤다.​“요즘 장모님하고 소통이 잦네?”“하! 씨—!!! 절루 가, 진짜!!! 좀!!!”​지환은 낄낄거리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잘됐다. 한 잔 하자.”​생각해보면, 지환과 마지막으로 술잔을 기울인 것도 꽤 오래 전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평소같은 얼굴로 장모님을 다시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준호는 혜정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네, 감사합니다.]​단 한 문장.​그것도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한 것이었다. 낮의 일이 떠올라 도저히 살가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러고는 지환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콜.”​지환의 눈빛이 예의 그 장난기 어린 미소로 반짝였다.​​​​​—​​​​​“하… 씨…”​준호는 속으로 욕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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