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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스탠드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커튼은 반뼘쯤 열려 있고, 맞은편 아파트의 희미한 사각빛이 밤공기와 함께 얇게 스며들었다. 벽은 두껍고 단단했기에 이 시간의 소리는 대개 숨까지 얇아진다.
그래서인지 건너방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이 없었다. 다른 방 사람들은 이제 잠들었을 것이다. 아파트의 새벽은 그런 확신을 조용히 허락한다.
소파 옆 테이블 위에는 여권과 항공권, 호텔 바우처가 겹겹이 놓여 있었고, 여권 표지는 스탠드 불빛을 받아 얇게 번들거렸다. 모서리에 얹은 손가락 하나가 그 광택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캐리어는 반쯤 채워진 채 소파 옆에 기대어 있었다. 접어 넣은 옷 사이로 남겨둔 칸이 눈에 띄었다. 그 빈칸은 돌아올 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것들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닥 한쪽에는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누워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 까닭을 아이는 알까. 마치지 못한 놀이의 아쉬움을 말하듯 장난감은 아직 서랍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가 내일 아침 이것을 본다면 또 엄마와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할 것만 같아 준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바쁜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잦았기에,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평소의 외출이라고 녀석은 생각하겠지. 분명 며칠 뒤면 아이는 엄마를 찾아댈 테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준호에게는 그것까지 대비할 여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애먼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만 매만지며 서 있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이 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날이 언제일지 생각하다가, 준호는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온 욕실 문 여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 하아.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호와 아내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소소한 투정과 화해로 이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였다. 그래서 더 조용히 마음이 아팠다.
내일이면 저 방은 한동안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 사실을 논쟁이나 원망이 아니라 짧은 숨으로 확인해야 하는 밤이었다.
— 하.
다시금 터져 나오려던 한숨이 안방을 넘어 욕실의 아내에게까지 들릴까, 준호는 또 한 번 그것을 삼켰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나. 마음이라도 편하게 보내주자. 어떻게든 되겠지.
준호는 마음먹었다.
—
준호의 아내 다희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새벽의 적막을 깨는 것이 두려워 머리를 말리지 못해서인지 머리카락은 짙고 길게 늘어져 한쪽으로 넘겨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넘어간 목덜미는 아쉬운 빛을 띠며 희게 빛났고, 그 아래로 얇고 검은 천 조각이 아슬하게 얹혀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유부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모두 가리기엔 부족해, 덮었다기보다 발기한 젖꼭지에 아슬하게 걸려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아 보였다. 준호는 처음 보는 아내의 도발적인 모습이 낯설어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내 다희에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익숙하지 않은 매무새에 그녀의 손끝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턱을 넘어온 준호의 눈길을 잠깐 받아낸 뒤 짧게 말했다.
“웃지 마. 오빠.”
말은 단호했지만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목끝에 걸린 숨이 가볍게 흘렀다. 하.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목젖이 한 번 천천히 오르내렸다. 옅은 습기가 그의 광대뼈 위로 번지며 그는 애처롭게 앉은 다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두 걸음쯤에서 멈춰 그녀의 뺨에 손바닥을 얹었다.
따뜻하면서도 착잡한 살결의 온기가 손금 사이로 번졌다. 손끝이 턱선을 따라 어깨로 미끄러지자, 얇은 천 사이로 전해지는 체온이 숨보다 먼저 서로에게 닿았다.
“후.”
준호의 숨이 낮게 흘렀다.
다희는 자신을 만지는 그의 손등을 감았다. 엄지로 손등 뼈마디의 단단한 윤곽을 천천히 그리며 눌렀다 뗐다. 가볍게, 그러나 결심이 있는 압력으로. 그 작은 리듬에 맞춰 그의 손가락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며 그녀의 살결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시선을 떨궜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그녀의 동공 속 자신의 모습과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얇게 흔들렸다. 그 서로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준호는 아내의 얼굴을 가볍게 안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아.”
준호는 참았던 한숨을 터뜨렸다. 그녀에게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던 그의 결심은 어쩔 수 없이 맞은 이 마지막 순간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오빠 미안해.”
준호의 셔츠에 얼굴을 묻은 아내 다희는 작게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 그녀의 목소리는 목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준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슬픔과 상황에 대한 애석함이 느껴져 그는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괜찮아. 1년이잖아. 금방 지나갈 거야.”
준호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던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꺼냈지만 순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날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동업자에게 받아야 할 자신의 지분,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두려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처분. 아니, 어쩌면 장모님을 이 집의 주인으로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하나? 더 생각하다가는 오히려 홀가분하게 떠나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질 것만 같아, 준호는 애써 그 생각을 지우려는 듯 그녀를 더 깊게 끌어안았다.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
한참 말없는 포옹이 이어져 숨소리가 잦아들 즈음, 다희는 조용히 그의 품을 두 팔로 밀어내고 몸을 돌려 침대 가장자리로 올라앉았다. 무릎이 시트를 눌러 작은 주름을 만들었고, 손바닥이 시트에 닿으며 사각, 건조한 숨 같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네 발로 엎드렸다가 반쯤 몸을 틀어 그를 돌아봤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등선을 스치며 부드럽게 떨어졌다.
“오늘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입술 끝을 간신히 열었다.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줘.”
부부였지만, 그 일을 하기엔 방의 조명이 여전히 밝았다. 결혼 후 늘 잠자리를 가질 때면 불을 끄자던 그녀였다. 그러나 마지막 밤의 아쉬움 때문인지, 그녀는 부끄러움까지 강하게 각인시켜 앞으로 남편의 외로움을 달래 주려는 듯했다.
검은 레이스에 가슴을 기대고 엎드린 다희는 베개 모서리에 턱을 얹었다. 손가락으로 시트의 주름을 한 번 쓸고,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전등빛에 반사된 그녀의 손등이 하얘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슬하게 허리에 걸린 검은 레이스 가장자리가 빛을 받아 작은 비늘처럼 반짝였고, 그녀의 다리 사이를 덮은 얇은 천은 그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녀의 숨소리와 같은 리듬으로 꿈틀거렸다. 그녀는 숨을 얇게 고르며, 미소 섞인 눈매로 짧게 말했다.
“늘 이렇게 하고 싶어하던 거 맞지?”
준호는 대답 대신 목젖을 한 번 삼켰다. 셔츠와 바지를 그대로 입은 채 다가와, 뒤에서 그녀를 천천히 감쌌다. 천 너머의 온기가 먼저 부딪히고, 그다음이 숨이었다.
그의 가슴께가 등판에 조용히 닿는 순간, 들숨이 짧게 걸렸다. 하. 다희는 반쯤 돌아보았다가 곧 다시 시선을 낮췄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동공을 스치며 얇게 떨렸다.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앉았다.
— 후.
그의 팔이 그녀의 복부 아래를 감싸며 느슨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조여들었다. 손바닥이 직물과 피부의 경계를 더듬다 멈추고, 다시 천천히 흘렀다. 준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가볍게 붙였다가 입술을 옮겨 짧은 입김을 내려앉혔다.
“흐읍—”
베개솜이 그녀의 작은 소리를 삼켰다. 다희는 곧장 베개를 더 깊게 물었다. 건너방을 의식한 듯, 숨이 가늘어졌다. 그는 목덜미에서 어깨, 쇄골을 타고 손끝을 내려보냈다.
골을 따라 흐르는 빛선 위로 손가락이 잠깐 머물고, 다시 허리선으로 내려왔다. 엄지와 검지가 레이스 가장자리에서 짧은 망설임을 세웠다. 그 망설임 자체가 하나의 터치처럼 느리게 흘렀다.
“하윽…”
“쉬. 장모님 깨실지도 몰라.”
그가 그녀의 귓불에, 숨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하아… 응.”
다희의 답도 숨만큼 작았다.
준호의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감싸쥐었다. 두툼한 살결의 무게가 손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앉았으며 미세한 맥동이 손가락 사이로 퍼져 갔다. 망사가 섞인 검은 란제리는 선이 가늘고 면적이 모자라, 담지 못한 풍만함이 가장자리로 밀려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을 반달처럼 감싼 그의 손이 대신 브래지어가 된 듯했다. 낯선 직물의 까슬함에 유두는 이미 단단히 서 있었다. 둥근 살결이 그의 손바닥에 눌리며 꾹 하고 모양을 남겼다.
미묘한 통증과 열이 겹쳐 올라와, 베개에 얼굴을 묻은 다희의 입술이 느슨해졌다. 숨이 짧게, 얇게 새었다.
“하… 하아… 후으.”
그녀의 숨은 짧게 꺾였다가 길게 이어졌다. 소리는 언제나 베개솜에서 한 번 죽고 돌아왔다.
“흐읍…”
짧게 걸린 숨을 다시 베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건너방의 잠들어 있는 아이와 엄마를 깨우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입술을 베개 모서리에 눌러 대고 숨을 접었다 펴는 동작만 반복했다.
준호는 분위기가 충분히 달아올랐음에도 옷을 벗지 않았다. 천과 천이 스치는 마찰이 낮게 울릴 뿐, 그의 체온은 차분하게 가까워졌다. 셔츠의 단단한 촉이 등을 스치고, 팔이 젖가슴을 감싸며 도망칠 여지를 닫듯 그녀를 품고 있었다.
작은 천조각 두 개만 겨우 걸친 다희는 그것이 더 수치스러웠고, 그것이 오랜 기간 외로움을 견뎌 내야 할 남편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다.
— 하.
그의 숨은 낮고 길었다. 끝에서 갈라지려는 소리를 억누르듯, 턱이 한 번 굳었다. 다희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가 내려왔다.
“쉿.”
등 뒤에서 준호의 나지막한 소리가 명령처럼 들려왔다. 강압적인 분위기가 주는 거부감이 느슨해졌던 마음에 다시 긴장을 주는 듯했지만, 다희는 애써 그것을 참아주려 고개를 더 깊게 파묻었다.
“…응… 하읏!!”
고개를 끄덕일 새도 없이 엉덩이 둔덕의 갈라진 틈에 아슬하게 끼어 있던 팬티 사이로 단단한 손가락이 느껴지자, 다희는 베개를 거의 입에 물 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 흐긋.
아이가 생긴 뒤, 두 사람은 거의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칠게 맞부딪히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과시하듯 달려들던 남자들이 순간의 흥분을 쏟고 나면 금세 힘이 빠지는 모습이 늘 한심해 보였다.
그런 장면이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에게 겹쳐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렇다고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남편을 배려한 탓도 있었고, 남편 앞에서 가면 쓰는 법을 몸소 보여준 엄마의 영향도 있었다.
대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리를 두었고, 다행히 준호 역시 감각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자연스레 무르익는 날에만 그를 받아주면, 관계가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오늘의 과감한 시도는 그녀 자신에게도 낯설었다. 남편을 대하는 자태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웠고, 체온이 다르게 전해졌다. 당장 관계를 즐기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남녀가 서로에게 쉽게 끌리는 이유쯤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적어도 지금, 속옷 가장자리를 비켜 닿아오는 남편의 단단한 손끝이 주는 감각은 참을 만할 것이라던 다짐을 손쉽게 뒤집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거실 너머에는 막 잠든 아이와 불면증으로 뒤척이는 엄마가 있다. 달아오를수록, 소리는 모서리에서 잘려 나갔다.
다희는 ‘아—’ 하고 터질 것 같은 탄성을 ‘흐…’로 꺾어 삼켰고, 준호는 ‘하—’로 치닫는 들숨을 ‘…읍’으로 묶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은 시트 주름을 더 깊게 파고들고, 발끝에서부터 모인 힘은 이내 흩어졌다 돌아왔다. 그녀의 어깨뼈 아래가 물결처럼 흔들릴 때마다, 그의 들숨이 한 박씩 길어졌다.
— 츄북 츄북.
서로의 숨소리가 낮게 깔려서인지, 남편의 손가락이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은밀한 그곳을 휘저을 때마다 들리는 질컥이는 소리가 더 적나라하게 아래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것은 자신이 평소보다 훨씬 더 축축하게 젖었으며, 남편은 평소와는 달리 훨씬 더 과감하게 자신 앞에 엎드린 여성을 마음대로 다루는 증거였다.
‘이런 걸 좋아했었나.’
남편 역시 늘 이런 것에 대한 내색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일상적이었다. 입맞춤과 서로의 성기를 쓰다듬고, 뭐 적당히 취하거나 분위기가 무르익은 날에는 입으로 조금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정도.
두 사람 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다희는 이제 한동안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나누는 과감한 원나잇 섹스처럼 행동하는 남편의 태도가 놀라웠다.
— 찌이익.
그가 셔츠를 벗을 줄 알았지만, 밤을 가르는 건 조용히 내려가는 지퍼 소리뿐이었다. 다희의 손가락이 시트를 깊게 움켜쥐었다. 그녀가 남편을 돌아보자, 그의 눈은 애정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처가 쪽을 원망하는 기색이 스치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희는 아주 조금—거의 보이지 않게—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허락이 굳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준호는 순서를 정확히 따르듯 움직였다.
— 찌걱.
살을 찢을 듯이 파고들어오는 두꺼운 느낌. 어째서인지 그것은 평소보다 훨씬 더 굵고 단단했다. 기둥을 감아 올라가는 맥동하는 혈관 가닥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음순을 잡아당기듯 안쪽으로 깊게 밀려들었다. 다희는 흐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흐읍… 하…”
“…하아…”
두 숨이 어긋나 겹쳤다 갈라지고, 다시 포개졌다. 베개는 그때마다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응답했다.
커튼의 반 뼘 틈은 그대로였지만, 방의 공기는 더 얇아졌다. 얇아질수록, 숨 억누르는 소리는 또렷해졌다.
— 철벅 철벅.
절정이 가까워지자, 다희는 베개를 더 깊게 물었다. 입술이 베개 천에 눌려 ‘읏—’ 하고 부서진 음이 새었다. 손등은 하얗게 질리고, 발가락은 오그라들어 시트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등줄기가 한 번 길게 떠올랐다가 내려앉는 동안, 준호의 턱선이 굳어지고 어깨가 사납게 흔들렸다.
“하… 하… 하—”
끝을 낮추려 애쓰는 소리, 그러나 낮출수록 거칠어지는 숨. 그러나 둘 다 끝내 참지 못했다. 다희의 숨이 한 번 길게 솟구쳐 베개를 뚫고 나왔고,
“하—… 하아!”
준호의 숨이 그 뒤를 두 번 끊어 쏟아졌다.
“후—… 윽… 하아—”
숨이 겨우 가라앉을 즈음, 준호는 한 번 깊게 들이쉰 뒤 타액으로 젖은 바지를 벗어버리고는 협탁 위에 놓인 티슈 몇 장을 뽑는다. 종이가 사각—하고 낮게 울렸다.
다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만 천천히 오르내렸다. 숨을 터뜨릴까 조심하는 기색이 가볍게 흘렀다.
준호는 말없이 다가가, 그녀의 엉덩이 근처부터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린 정액의 흔적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그는 티슈를 한 번 접고, 또 접고, 가장 깨끗한 면만 골라 썼다.
마지막 장을 접어 흔적이 보이지 않게 말아 쥔 다음, 협탁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그가 새 티슈를 뽑아 자신의 몸을 닦을 때 즈음, 다희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아주 조금만 돌려, 베개 속으로 반쯤 묻힌 채 말했다.
“그냥… 안에 해도 됐는데.”
“습관인가 봐.”
준호의 대답은 담담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톤. 오래된 버릇을 확인하듯 평평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다희는 눈을 감은 채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켰다 내보내고, 조용히 덧붙였다.
“빨아줄까?”
준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팔을 감아 그녀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손바닥이 한 번, 머리카락을 정리하듯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제야 다희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가 가라앉는다. 둘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후우…”방으로 돌아온 준호는 알콜이 섞인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웠다.장모, 혜정이 차려준 안주 앞에서 소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다. 술기운이 얼굴을 달구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져 있었다.잔을 부딪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날 밤, 그녀의 방에서 새어 나왔던 소리. 낮고 가늘게, 숨이 섞인 듯한—잠결에 들은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혼자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냈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장모는 손자를 둔 나이였지만 동안의 얼굴과 탄력을 잃지 않은 몸매는 여전히 성욕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적어도 준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모두 잠든 새벽,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그렇지만…아무리 그래도 사위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밤에.자위를? 신음소리를 참지도 않고?그것도 정말로, 사위와 단 둘이 사는 이 집에서?준호는 술이 올라온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다 스스로 얼굴을 찌푸렸다.혹시 일본 야동에서나 나오는 장면처럼, 자신이 과감하게 문을 열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망측한 상상만 꼬리를 물었다.그러나 오늘 저녁, 자신을 대하는 혜정의 복장이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 자연스러운 말투, 가끔 건네는 잔소리까지.그녀의 말대로 그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이겠지. 준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그런데도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가슴골이 자꾸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나던 하얀 살결, 잔을 기울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그 곡선.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전날 밤의 소리 탓인지, 시선은 자꾸만 그곳으로 미끄러졌었다.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혹시나 또 그 방에서 그 소리가 날지, 촉각을 곤두세워 보았다.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술이 한 잔 더 필요해…'소주를 더 꺼내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어두웠고, 건너편 장
“허억…”“하응…”“허윽…”새벽 네 시. 귓바퀴 안을 파고드는 얇은 숨이 두어 번 더 밀려왔다. 준호는 머리맡의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 화면이 꺼지자 이불을 다시 끌어올렸다. 소리는 한 번 가라앉았다가 벽을 타고 또 올라왔다.“흐윽…”아침 욕실 문턱에서 스치던 물빛 실루엣—젖은 머리칼이 목선을 따라 붙었다 떨어지던 장면이 술기운에 녹아 되살아났다. “뭐지?” 입술 안쪽으로만 맴도는 소리.뇌리에 어디서나 본 듯한 구도가 자동으로 겹쳤다. 일본의 성인물에서 나오는 흔한 설정.욕망에 쩐 새엄마들은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계기에도 손가락이 다리 사이를 더듬고, 아들이나 사위가 들으라는 듯 흘리는 신음은 발정의 페로몬처럼 그들을 끌어들여 결국 이어지게 만든다는…그때 문득 떠오른 건 오래전, 다희와 잠자리 뒤에 나눈 짧은 대화였다. 여자도 자위를 하냐는 질문 끝에 돌아온 말.‘정말 잠이 안 올 때는 혼자 해본 적이 있어. 포르노처럼 손가락을 깊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살짝 문지르는 정도?’그땐 농담처럼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귓속에서 현실처럼 울렸다.‘뭔가 하려고 작정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그 문장이 둥글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벽 너머의 호흡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시트가 사락— 하고 한 번 더 당겨지고, 준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멈췄다.“허윽…”깊어지는 숨. 안경을 찾느라 다시 켠 휴대폰 불빛이 거실 바닥에 가는 선을 그었다.***준호는 거실을 살금살금 건넜다. 벽 너머 혜정의 방에서 울리던 얕은 숨을 이미 하나의 장면으로 결론지어 둔 채, 까치발로 몸을 세웠다.맨발이 마룻바닥에 쩍— 달라붙었다 떼어낼 때마다 숨이 길게 눌렸다. 문 앞에 닿자 소리는 “딱” 끊겼다.문손잡이 위에서 손가락이 원을 그리다 멈췄다.‘한 뼘만 열어볼까’금속의 냉기가 손바닥에 얇게 번졌다. 그 짧은 망설임 사이, 머릿속에선 문이 먼
저녁상이 차려지면, 늘 그랬듯 아이의 숟가락은 금세 멈췄다. 반찬을 건너뛰고 물컵을 들여다보며, 젓가락으로 밥풀을 옮겨 심는 데만 열중했다.집안 공기가 어제보다 더 얇아진 탓인지 투정이 유난했다. 준호의 손이 무심코 휴대폰을 더듬었다. 다희가 없을 때면 늘 꺼내 들던 마지막 수단—그녀는 못마땅해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넘어가던 방식.그때 혜정의 손이 가볍게 그의 손등을 눌렀다.“자꾸 그런 거 보여주고 그러면 안 좋대.”유튜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난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빠짐없이 하는 경고. 전두엽 손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나도 약사라구요, 안 좋은 거 안다구요’ 준호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혜정의 눈빛이 먼저 움직였다.혜정은 딱히 대안이 필요없는 손짓과 눈빛으로 아이의 투정을 제압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인상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아이는 그 기세에 눌렸다가, 할머니 특유의 미소가 지어지자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아이가 고개를 젖히며 기세를 올리는 순간마다, 혜정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먼저 올라갔다 내려가며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아이는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 고전은, 늘 통했다.“내가 먹일 테니까, 자네나 얼른 먹어. 배고플 텐데.”혜정의 밥그릇엔 공기가 반쯤 남아 있었다. 준호는 ‘됐어요’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그녀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밥풀을 한 알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아이 입술 가장자리까지 행주로 쓸듯 닦아내며 템포를 이어갔다.숟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세 번 정도 더 났을 때, 아이의 접시는 반 이상 비워졌다. 준호는 뒤늦게 젓가락을 들어 한 술 삼켰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지나갈 때, 휴대폰은 식탁 끝에서 조용히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 공기는, 오래된 방식대로 천천히 평온 쪽으로 되돌아갔다.***분리수면을 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의 팔꿈치를 꼭 쥐어야만 잠이
분주하고 들뜬 아침 공기가 겨우 내려앉은 듯하다. 오늘따라 부산한 일들이 반 박자씩 밀려 아이 손을 잡은 준호의 발걸음도 서두른다.그렇게 서둘렀지만 늦었는지, 어린이집 앞은 한산하다. 그래도 늘 늦는 집은 있기 마련, 유모차를 미는 몇 명의 엄마들과 마주친다. 준호가 익숙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 감정 없는 미소와 짧은 목례가 연달아 되돌아온다.그 사이 아이의 걸음은 모래에 잠기듯 둔해지고, 손바닥엔 땀이 맺힌다. 결국 두 팔이 그의 어깨를 더 깊게 감싼다. 처음 이 문턱을 넘던 날의 무게와 닮았지만, 지금은 그의 가슴께가 더 묵직하다.문이 열리자 선생님이 먼저 다가왔다.아이의 엄마가 오늘 새벽에 미국으로 떠났다는 연락을 미리 해 둔 터라, 말보다 손이 앞선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아 작은 장난감을 흔들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손바닥에 척 붙여주며 속삭인다.“하윤이한테만 주는 거야. 선생님하고 비.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듯 두 사람은 눈을 맞춘다. 아이의 표정이 금세 풀리고, 작은 발뒤꿈치가 타일 위로 또박또박 멀어진다.닫히는 문틈에 남는 뒷모습은 여전히 가늘다. 준호의 마음이 잠깐 저민다. 천천히 돌아나오며 휴대폰을 꺼낸다.아내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보낸 뒤, 화면에 남은 마지막 인사 시각을 본다. 불과 몇십 분 전. 이제 비행기는 바다 위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그때, 몇 시간 전의 일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아이와 장모가 깊게 잠들기를 기다려 겨우 치른 짧은 이벤트, 그 뒤에야 간신히 닿은 잠, 스탠드 불빛 아래 협탁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정액을 닦은 티슈 몇 뭉치가 번쩍 떠오른다.장모 혜정은 부지런하다. 먼지가 집에 내려앉는 걸 참지 못하는 데다, 사위 집에 몸을 기대고 사는 미안함이 손부터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다.오늘 아침 아이 눈치를 보느라, 장모와 둘만 남은 공기를 더듬느라 치울 틈이 없었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알았다”고는 하지만, 설거지통에 먼저 손을 담그는
거실의 스탠드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커튼은 반뼘쯤 열려 있고, 맞은편 아파트의 희미한 사각빛이 밤공기와 함께 얇게 스며들었다. 벽은 두껍고 단단했기에 이 시간의 소리는 대개 숨까지 얇아진다.그래서인지 건너방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이 없었다. 다른 방 사람들은 이제 잠들었을 것이다. 아파트의 새벽은 그런 확신을 조용히 허락한다.소파 옆 테이블 위에는 여권과 항공권, 호텔 바우처가 겹겹이 놓여 있었고, 여권 표지는 스탠드 불빛을 받아 얇게 번들거렸다. 모서리에 얹은 손가락 하나가 그 광택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캐리어는 반쯤 채워진 채 소파 옆에 기대어 있었다. 접어 넣은 옷 사이로 남겨둔 칸이 눈에 띄었다. 그 빈칸은 돌아올 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것들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었다.바닥 한쪽에는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누워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 까닭을 아이는 알까. 마치지 못한 놀이의 아쉬움을 말하듯 장난감은 아직 서랍에 들어가지 않았다.아이가 내일 아침 이것을 본다면 또 엄마와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할 것만 같아 준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바쁜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잦았기에,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평소의 외출이라고 녀석은 생각하겠지. 분명 며칠 뒤면 아이는 엄마를 찾아댈 테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준호에게는 그것까지 대비할 여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애먼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만 매만지며 서 있었다.아이가 엄마와 함께 이 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날이 언제일지 생각하다가, 준호는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온 욕실 문 여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아.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호와 아내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소소한 투정과 화해로 이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였다. 그래서 더 조용히 마음이 아팠다.내일이면 저 방은 한동안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 사실을 논쟁이나 원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