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후우…”
방으로 돌아온 준호는 알콜이 섞인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웠다.
장모, 혜정이 차려준 안주 앞에서 소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다. 술기운이 얼굴을 달구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져 있었다.
잔을 부딪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날 밤, 그녀의 방에서 새어 나왔던 소리. 낮고 가늘게, 숨이 섞인 듯한—잠결에 들은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혼자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냈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장모는 손자를 둔 나이였지만 동안의 얼굴과 탄력을 잃지 않은 몸매는 여전히 성욕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적어도 준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모두 잠든 새벽,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위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밤에.
자위를? 신음소리를 참지도 않고?
그것도 정말로, 사위와 단 둘이 사는 이 집에서?
준호는 술이 올라온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다 스스로 얼굴을 찌푸렸다.
혹시 일본 야동에서나 나오는 장면처럼, 자신이 과감하게 문을 열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망측한 상상만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자신을 대하는 혜정의 복장이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 자연스러운 말투, 가끔 건네는 잔소리까지.
그녀의 말대로 그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이겠지. 준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도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가슴골이 자꾸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나던 하얀 살결, 잔을 기울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그 곡선.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전날 밤의 소리 탓인지, 시선은 자꾸만 그곳으로 미끄러졌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혹시나 또 그 방에서 그 소리가 날지, 촉각을 곤두세워 보았다.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술이 한 잔 더 필요해…'
소주를 더 꺼내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어두웠고, 건너편 장모의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
책상 위에 소주가 담긴 유리글라스를 내려놓았다.
— 탁
생각보다 큰 소리에 의미 없이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준호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노트북을 열었다.
성인 사이트의 알고리즘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버린 것인지, AV 사이트에는 '장모', '유부녀', '엄마' 따위의 영상만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장모와 부딪힌 소줏잔의 울림이 아직 귓가에 남아서, 어서 클릭할 것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 딸깍
목이 말랐다. 준호는 침을 삼키려다 책상 위에 놓인 소주가 떠올라 한 모금 들이켰다.
화면은 어두운 침실부터 시작했다.
린넨 시트 위에 중년인 듯 보이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창문으로 스며든 바람이 나시 끈을 흔들고, 쇄골 아래 흰 살을 스쳤다. 잠들지 못한 몸이 천천히 뒤척였다. 손끝이 허벅지 안쪽의 얇은 천을 더듬었다. 처음엔 무의식처럼 보였지만, 이내 천 사이로 말려 들어간 감촉에 허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은 서두르지 않았다. 허벅지 안쪽을 위아래로 문지르다, 가랑이 사이의 천을 살짝 잡아당겨 주름을 만들었다. 그 주름 사이로 살결이 비쳤다. 여자가 숨을 들이쉬자 가슴이 나시 안에서 작게 올랐다. 손끝이 중심을 향해 미끄러지고, 아슬하게 걸친 천 위를 훑다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윽…”
숨이 새어 나왔다. 질척한 소리가 아직 크지 않았다. 손가락이 입구만 문지르다 한 마디를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천이 점점 어두운 색으로 번졌고, 허벅지가 천천히 벌어졌다. 무릎이 시트를 밀며 각도가 열렸다. 손이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신음은 짧고 높아졌다.
“흐읏… 후읍… 하아…”
두 손가락이 천을 밀어낸 채 안쪽의 꽃잎을 벌렸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검갈색의 늘어진 꽃잎. 그러나 그것은 남자를 기다리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손목이 돌아가며 문지르는 각도가 바뀌자, 여자의 허리가 시트에서 살짝 떴다.
엄지가 바깥쪽 클리토리스를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이 안을 긁어내듯 움직였다. 츄북거리는 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준호의 고막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베개를 옆으로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가, 숨이 막히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입술이 열리고, 침이 입술 끝에 맺혀 흔들렸다.
준호도 따라 침을 삼켰다. 전날 밤 장모 방에서 들렸던 그 요상한 숨소리와, 화면 속 신음이 겹쳐 들렸다. 술자리에서 스쳤던 혜정의 가슴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화면 속 여자의 나시 끈이 어깨에서 더 흘러내렸다. 한쪽 가슴이 거의 드러날 듯 흔들렸다.
화면 속 여자의 손가락의 리듬이 빨라졌다. 다리 사이에서 나는 소리가 더 진해지고, 시트가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허공에 들며 허리를 비틀었다. 손끝이 안쪽의 미끄러운 경계를 긁어낼 때마다 몸이 작게 경련했다. 발끝이 움츠러들고,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하윽… 하아… 안… 하읏…”
절정이 가까워지자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천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손가락이 빠질 때마다 끈적한 실이 빛났고, 다시 들어갈 때마다 철벅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여자는 온몸을 젖힌 채 허리를 들어 올렸다. 짧은 침묵 뒤, 숨이 터지듯 새어 나왔다.
“하윽…!”
몸이 활처럼 휘고, 한쪽 다리가 공중에서 떨렸다. 손은 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조여 들었고, 질척이는 열기 속에서 살갗을 긁듯 파고들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나시 아래로 유두가 단단히 비쳤다. 절정의 파문이 지나간 뒤에도 손가락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작은 경련이 몇 번 더 일고 나서야 손이 축 늘어졌다.
그 순간, 화면 한쪽 어둠 속에 서 있던 남자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발소리가 거의 없었다. 남자는 문틈에서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 뒤, 천천히 다가갔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처럼 여자의 벌어진 다리와 젖은 손, 뒤틀린 시트를 비췄다. 여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다만 그가 침대 가장자리에 손을 얹자, 골반이 아주 조금 밀려들 듯 반응했다.
남자의 손바닥이 젖은 윤기를 머금은 엉덩이 위에 내려앉았다. 엄지가 곡선을 따라 흘러 틈새를 벌리자, 질척—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이미 열어 둔 자리를 한 번 더 확인하듯 쓸었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 척했지만, 허벅지 안쪽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바지가 내려갔다. 단단히 선 물건이 그녀의 열린 꽃잎 사이에 닿았다. 귀두가 입구를 문지르며 미끄러졌다. 한 번, 두 번. 들어가려다 말고, 다시 문질렀다. 여자의 숨이 가늘어졌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밀어 넣었다.
“끄흐으응…!”
여자의 목이 젖혀지고, 베개 속으로 얼굴이 파묻혔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지그시 누르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듯이
처음엔 길고 깊게, 수면 밑에서 두 몸이 섞이듯 끝까지 넣었다가 거의 빠질 때까지 빼는 동작이 반복됐다. 들어갈 때마다 여자의 허리가 내려앉고, 나올 때마다 엉덩이가 따라 올라왔다.
“하읏… 흐읍… 하아…”
리듬이 바뀌었다. 짧고 빠르게, 철벅거리는 소리와 스프링의 낮은 떨림이 겹쳤다. 남자의 한 손은 골반을 틀어쥐고, 다른 손은 등줄기를 타고 어깨를 눌렀다. 나시가 완전히 흘러내려 가슴이 시트에 쓸렸다. 땀이 번지고, 젖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밤의 고요를 가득 채웠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결합 부위를 가까이 비췄다. 빠질 때마다 번들거리는 것이 끌려 나왔다가, 다시 삼켜지듯 들어갔다. 여자의 손가락이 시트를 구겨쥐었다. 그녀는 더 이상 숨을 감추지 않았다. 엉덩이를 무의식적으로 밀어 올리며 더 깊이 달라붙었다.
“하아… 거기… 흐응… 하윽…”
남자는 허리를 세우고 박자를 끌어올렸다. 머리채를 쥔 손이 강해지고, 여자의 얼굴이 베개 속으로 더 묻혔다. 짧은 신음이 베개에 막혀 둔탁하게 울렸다. 몇 번의 깊은 삽입 뒤, 남자는 거의 빼지 않은 채 잘게 흔들었다. 여자의 다리가 떨리고, 발뒤꿈치가 허공에서 경련했다.
준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모가 만들어준 안주, 부딪힌 잔, 벌어진 옷깃 사이로 보이던 가슴골. 그리고 전날 밤의 신음. 그 모든 것이 영상 속 여자의 떨리는 등과 겹쳤다. 화면 속 남자가 허리를 내릴 때마다, 준호의 목구멍도 같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영상은 끊기지 않았다. 남자는 자세를 바꿔 여자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 무릎이 시트에 꺾이고, 더 깊은 각도로 들어갔다.
“하으으응…!”
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철벅, 철벅. 리듬이 다시 길어졌다가 거칠어졌다. 여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이 반쯤 떠져 초점이 없었다. 깨어 있으면서도 꿈결처럼 몸을 열고 있었다.
어느새 준호의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었다.
단단하게 발기한 자지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소주를 삼켰다. 눈앞의 여자는 남자의 흘러내리는 침을 받아마시고 있었다.
거의 같은 박자로 준호는 소주를 꿀꺽 삼켰다.
손이 빨라졌다.
---
"허윽… 허어그ㅡ…"
입을 틀어막듯, 숨이 턱에서 터졌다. 손에 힘이 들어갔고, 쥔 주먹 사이에서 불거진 귀두 끝이 튀어오르듯 흔들렸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감각이 마치 정수리를 향해 치솟는 듯했다.
숨을 꾹 눌러 삼켰다. 혹여 벽 너머까지 들릴까, 헤드셋을 급히 벗으며 방문 밖의 기척부터 살폈다.
귀를 벗어난 영상 속 소리는 예상보다 더 야하게, 더 생생하게 울려왔다.
티슈를 얼른 뽑아,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묽고 뜨거운 액체를 덮었다. 손목에 묻은 감촉, 아직 미처 정리되지 않은 두어 방울이 바지 위를 스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스스로를 자극하는 그 마지막 떨림과 화면 속의 어지러운 움직임, 자신의 상상 끝자락을 느꼈다.
모니터 속에서는 여인의 허연 등짝이 여전히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남자의 몸이 천천히, 마치 조각을 떼어내듯 뽑혀 나오자, 그 사이에 번들거리는 액체가 실처럼 흘러내렸다.
무심코 화면에 시선을 붙들렸다.
화면 속 두 사람이 무언가를 나누는 듯했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여인이 머리를 돌리며 중얼거렸고,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마주 보았지만, 여인은 여전히 접힌 팔꿈치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후우…”방으로 돌아온 준호는 알콜이 섞인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웠다.장모, 혜정이 차려준 안주 앞에서 소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다. 술기운이 얼굴을 달구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져 있었다.잔을 부딪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날 밤, 그녀의 방에서 새어 나왔던 소리. 낮고 가늘게, 숨이 섞인 듯한—잠결에 들은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혼자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냈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장모는 손자를 둔 나이였지만 동안의 얼굴과 탄력을 잃지 않은 몸매는 여전히 성욕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적어도 준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모두 잠든 새벽,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그렇지만…아무리 그래도 사위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밤에.자위를? 신음소리를 참지도 않고?그것도 정말로, 사위와 단 둘이 사는 이 집에서?준호는 술이 올라온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다 스스로 얼굴을 찌푸렸다.혹시 일본 야동에서나 나오는 장면처럼, 자신이 과감하게 문을 열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망측한 상상만 꼬리를 물었다.그러나 오늘 저녁, 자신을 대하는 혜정의 복장이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 자연스러운 말투, 가끔 건네는 잔소리까지.그녀의 말대로 그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이겠지. 준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그런데도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가슴골이 자꾸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나던 하얀 살결, 잔을 기울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그 곡선.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전날 밤의 소리 탓인지, 시선은 자꾸만 그곳으로 미끄러졌었다.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혹시나 또 그 방에서 그 소리가 날지, 촉각을 곤두세워 보았다.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술이 한 잔 더 필요해…'소주를 더 꺼내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어두웠고, 건너편 장
“허억…”“하응…”“허윽…”새벽 네 시. 귓바퀴 안을 파고드는 얇은 숨이 두어 번 더 밀려왔다. 준호는 머리맡의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 화면이 꺼지자 이불을 다시 끌어올렸다. 소리는 한 번 가라앉았다가 벽을 타고 또 올라왔다.“흐윽…”아침 욕실 문턱에서 스치던 물빛 실루엣—젖은 머리칼이 목선을 따라 붙었다 떨어지던 장면이 술기운에 녹아 되살아났다. “뭐지?” 입술 안쪽으로만 맴도는 소리.뇌리에 어디서나 본 듯한 구도가 자동으로 겹쳤다. 일본의 성인물에서 나오는 흔한 설정.욕망에 쩐 새엄마들은 말도 안 되게 사소한 계기에도 손가락이 다리 사이를 더듬고, 아들이나 사위가 들으라는 듯 흘리는 신음은 발정의 페로몬처럼 그들을 끌어들여 결국 이어지게 만든다는…그때 문득 떠오른 건 오래전, 다희와 잠자리 뒤에 나눈 짧은 대화였다. 여자도 자위를 하냐는 질문 끝에 돌아온 말.‘정말 잠이 안 올 때는 혼자 해본 적이 있어. 포르노처럼 손가락을 깊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살짝 문지르는 정도?’그땐 농담처럼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귓속에서 현실처럼 울렸다.‘뭔가 하려고 작정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그 문장이 둥글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벽 너머의 호흡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시트가 사락— 하고 한 번 더 당겨지고, 준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멈췄다.“허윽…”깊어지는 숨. 안경을 찾느라 다시 켠 휴대폰 불빛이 거실 바닥에 가는 선을 그었다.***준호는 거실을 살금살금 건넜다. 벽 너머 혜정의 방에서 울리던 얕은 숨을 이미 하나의 장면으로 결론지어 둔 채, 까치발로 몸을 세웠다.맨발이 마룻바닥에 쩍— 달라붙었다 떼어낼 때마다 숨이 길게 눌렸다. 문 앞에 닿자 소리는 “딱” 끊겼다.문손잡이 위에서 손가락이 원을 그리다 멈췄다.‘한 뼘만 열어볼까’금속의 냉기가 손바닥에 얇게 번졌다. 그 짧은 망설임 사이, 머릿속에선 문이 먼
저녁상이 차려지면, 늘 그랬듯 아이의 숟가락은 금세 멈췄다. 반찬을 건너뛰고 물컵을 들여다보며, 젓가락으로 밥풀을 옮겨 심는 데만 열중했다.집안 공기가 어제보다 더 얇아진 탓인지 투정이 유난했다. 준호의 손이 무심코 휴대폰을 더듬었다. 다희가 없을 때면 늘 꺼내 들던 마지막 수단—그녀는 못마땅해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넘어가던 방식.그때 혜정의 손이 가볍게 그의 손등을 눌렀다.“자꾸 그런 거 보여주고 그러면 안 좋대.”유튜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난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빠짐없이 하는 경고. 전두엽 손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나도 약사라구요, 안 좋은 거 안다구요’ 준호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혜정의 눈빛이 먼저 움직였다.혜정은 딱히 대안이 필요없는 손짓과 눈빛으로 아이의 투정을 제압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인상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아이는 그 기세에 눌렸다가, 할머니 특유의 미소가 지어지자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아이가 고개를 젖히며 기세를 올리는 순간마다, 혜정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먼저 올라갔다 내려가며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아이는 따라 웃으며 입을 벌렸다. 고전은, 늘 통했다.“내가 먹일 테니까, 자네나 얼른 먹어. 배고플 텐데.”혜정의 밥그릇엔 공기가 반쯤 남아 있었다. 준호는 ‘됐어요’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그녀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밥풀을 한 알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아이 입술 가장자리까지 행주로 쓸듯 닦아내며 템포를 이어갔다.숟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세 번 정도 더 났을 때, 아이의 접시는 반 이상 비워졌다. 준호는 뒤늦게 젓가락을 들어 한 술 삼켰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지나갈 때, 휴대폰은 식탁 끝에서 조용히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 공기는, 오래된 방식대로 천천히 평온 쪽으로 되돌아갔다.***분리수면을 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의 팔꿈치를 꼭 쥐어야만 잠이
분주하고 들뜬 아침 공기가 겨우 내려앉은 듯하다. 오늘따라 부산한 일들이 반 박자씩 밀려 아이 손을 잡은 준호의 발걸음도 서두른다.그렇게 서둘렀지만 늦었는지, 어린이집 앞은 한산하다. 그래도 늘 늦는 집은 있기 마련, 유모차를 미는 몇 명의 엄마들과 마주친다. 준호가 익숙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 감정 없는 미소와 짧은 목례가 연달아 되돌아온다.그 사이 아이의 걸음은 모래에 잠기듯 둔해지고, 손바닥엔 땀이 맺힌다. 결국 두 팔이 그의 어깨를 더 깊게 감싼다. 처음 이 문턱을 넘던 날의 무게와 닮았지만, 지금은 그의 가슴께가 더 묵직하다.문이 열리자 선생님이 먼저 다가왔다.아이의 엄마가 오늘 새벽에 미국으로 떠났다는 연락을 미리 해 둔 터라, 말보다 손이 앞선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아 작은 장난감을 흔들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손바닥에 척 붙여주며 속삭인다.“하윤이한테만 주는 거야. 선생님하고 비.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듯 두 사람은 눈을 맞춘다. 아이의 표정이 금세 풀리고, 작은 발뒤꿈치가 타일 위로 또박또박 멀어진다.닫히는 문틈에 남는 뒷모습은 여전히 가늘다. 준호의 마음이 잠깐 저민다. 천천히 돌아나오며 휴대폰을 꺼낸다.아내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보낸 뒤, 화면에 남은 마지막 인사 시각을 본다. 불과 몇십 분 전. 이제 비행기는 바다 위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그때, 몇 시간 전의 일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아이와 장모가 깊게 잠들기를 기다려 겨우 치른 짧은 이벤트, 그 뒤에야 간신히 닿은 잠, 스탠드 불빛 아래 협탁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정액을 닦은 티슈 몇 뭉치가 번쩍 떠오른다.장모 혜정은 부지런하다. 먼지가 집에 내려앉는 걸 참지 못하는 데다, 사위 집에 몸을 기대고 사는 미안함이 손부터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다.오늘 아침 아이 눈치를 보느라, 장모와 둘만 남은 공기를 더듬느라 치울 틈이 없었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알았다”고는 하지만, 설거지통에 먼저 손을 담그는
거실의 스탠드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커튼은 반뼘쯤 열려 있고, 맞은편 아파트의 희미한 사각빛이 밤공기와 함께 얇게 스며들었다. 벽은 두껍고 단단했기에 이 시간의 소리는 대개 숨까지 얇아진다.그래서인지 건너방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이 없었다. 다른 방 사람들은 이제 잠들었을 것이다. 아파트의 새벽은 그런 확신을 조용히 허락한다.소파 옆 테이블 위에는 여권과 항공권, 호텔 바우처가 겹겹이 놓여 있었고, 여권 표지는 스탠드 불빛을 받아 얇게 번들거렸다. 모서리에 얹은 손가락 하나가 그 광택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캐리어는 반쯤 채워진 채 소파 옆에 기대어 있었다. 접어 넣은 옷 사이로 남겨둔 칸이 눈에 띄었다. 그 빈칸은 돌아올 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것들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었다.바닥 한쪽에는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누워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 까닭을 아이는 알까. 마치지 못한 놀이의 아쉬움을 말하듯 장난감은 아직 서랍에 들어가지 않았다.아이가 내일 아침 이것을 본다면 또 엄마와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할 것만 같아 준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바쁜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잦았기에,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평소의 외출이라고 녀석은 생각하겠지. 분명 며칠 뒤면 아이는 엄마를 찾아댈 테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준호에게는 그것까지 대비할 여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애먼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만 매만지며 서 있었다.아이가 엄마와 함께 이 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날이 언제일지 생각하다가, 준호는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온 욕실 문 여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아.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호와 아내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소소한 투정과 화해로 이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였다. 그래서 더 조용히 마음이 아팠다.내일이면 저 방은 한동안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 사실을 논쟁이나 원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