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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그 짧은 두 마디를 본 순간 심용하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고 숨조차 멎는 듯했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뭐야? 내 화를 돋우겠다고 이런 어리석은 방법을 써?”진우정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얼마나 피곤한지, 그리고 그녀의 이런 밀당 따위에 장단 맞춰 줄 기운도, 흥미도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말해줄 작정이었다.그런데 야속하게도 휴대폰에 배터리가 없었다. 충전기를 꽂아둔 뒤 일단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욕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심용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세면대 위에 놓여 있던 진우정의 물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컵 걸이에 걸려있던 양치 컵도 사라졌고 옅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그제야 심용하는 진우정이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핏발이 선 눈으로 안방으로 달려갔다.옷장이 텅 비어 있었고 둘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에도 심용하만 남아있었다.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도 갈아치워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남아있지 않았다.심용하는 당장 진우정에게 그 쪽지가 대체 무슨 뜻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이 연애에서 언제나 주도권을 쥐었던 건 심용하였다. 진우정이 이런 방식으로 그의 삶에서 사라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그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전원을 켜고 진우정과의 대화창을 열었다.따져 묻는 글을 작성했다가 문득 너무 거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고 그저 진우정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마음을 진정한 뒤 작성했던 메시지를 전부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시위하는 건 아니잖아. 집에서 기다릴 테니까 얼른 들어와. 얘기 좀 하자.]메시지를 보내기 직전까지만 해도 심용하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면 진우정이 당장 달려올 것이라고. 예전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뿐이라고 믿었다.심지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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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웨딩 사진이 누가 봐도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 상황처럼 보였지만 심용하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진우정이 그에게 이별을 고하자마자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지난 6년 동안 진우정의 삶은 심용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인간관계 역시 심용하가 철저히 관리해 왔기에 다른 남자가 끼어들 틈 따위는 없었다고 확신했다.그런데 결혼이라니, 죽어도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사진 속 이 남자는 우정이가 날 자극하기 위해 고용한 사람일 거야. 내가 위기감을 느껴서 고개를 숙이게 하려는 뻔한 수작이라고.’그 생각에 심용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진우정이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지금 당장 진우정을 찾아가 사과하고 달래주기만 하면 못 이기는 척 다시 용서할 게 틀림없었다.소연지가 진우정이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녀의 고향 집 주소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6년을 만나는 동안 그녀의 고향에 딱 한 번 함께 내려갔었다. 그마저도 며칠 있지 않고 백소은을 달래야 한다며 서둘러 올라왔기에 주소를 기억할 리 만무했다.결국 다시 소연지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우정이 고향 집 주소 좀 보내줘.]메시지를 확인한 소연지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뜨렸다. 6년이나 만났는데 여자친구의 고향 집 주소조차 모르다니.소연지의 말투가 차갑게 변했고 약간의 조롱도 섞여 있었다.[곧 결혼하는데 찾아가서 뭐 하게? 가서 깽판이라도 치려고?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이제 와서 남의 행복 방해하지 말고 그냥 꺼져줘. 우정이는 좋은 여자야. 그러니까 더는 상처 주지 마.]자존심 강한 심용하가 이런 모욕을 참을 리 없었다. 소연지가 주소를 알려주지 않자 더 이상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결혼식을 사흘 앞둔 날, 진우정이 심용하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그동안 낯선 번호로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 왔다. 전부 끊어버렸었는데 이번에는 참다못해 받았다.전화가 연결된 순간 심용하가 흥분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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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심용하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른 끝에 대학 동창으로부터 겨우 진우정의 고향 집 주소를 알아냈다.원래는 당장 목주시로 날아갈 생각이었는데 출발 전 백소은이 또다시 그를 붙잡았다.심용하가 진우정과 무사히 결혼할 수 있도록 심국해는 백소은을 해외로 보내 요양시키려 했다.그런데 백소은이 죽어도 못 간다며 약을 먹고 손목을 그었다. 그 바람에 유민희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백소은이 병원에서 사흘 동안 난동을 부리자 참다못한 심국해가 의사를 시켜 진정제를 투여하고서야 비로소 얌전해졌다.심용하가 목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날이 바로 진우정의 결혼식 날이었다....결혼식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송준혁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모든 세부 사항이 완벽했다. 송준혁이 미리 준비한 덕에 진우정은 다른 신부들처럼 바삐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그는 진우정이 하객들 앞에서 가장 눈부신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거액을 들여 유명 연예인 담당 메이크업 팀까지 섭외했다.진우정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상상해 왔었다. 곁에 서 있는 남자가 당연히 심용하일 줄 알았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와 함께 식장에 들어갈 사람은 송준혁이 되었다.진우정을 바라보는 송준혁의 두 눈에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메이크업이 끝난 후에는 진심 어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내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네. 화장도 그저 거들 뿐이고. 너 같은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다니. 난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자야.”지금 이 순간까지도 진우정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지난 6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달콤함과 감동을 맛보았다.송준혁의 세심하고 깊은 배려에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부모님이 결혼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송준혁과 함께하고서야 진우정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남자가 이성을 대할 때 얼마나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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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의사가 심국해에게 연락을 취한 건 사고가 발생하고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두 다리가 차바퀴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진 바람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절단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의사가 전했다.설상가상으로 과다출혈과 저혈압으로 인한 혈전 증상 때문에 양팔까지 괴사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자칫하면 팔다리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심국해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같은 시각, 결혼식장.진우정이 송준혁이 그녀를 위해 고심해서 고른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버지 진동원의 팔짱을 낀 채 장미 꽃잎이 흩뿌려진 버진로드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몽환적인 결혼식 무대 중앙, 송준혁이 화려한 조명 아래에 서서 그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진우정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애지중지 키운 딸이 좋은 인연을 만난 모습에 진동원이 결국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그가 눈물을 애써 참으며 진우정의 손을 송준혁의 손 위에 살포시 내려놓은 뒤 떨리는 목소리로 송준혁에게 당부했다.“준혁아, 오늘부터 내 딸을 너한테 맡길게. 아끼고 사랑해주고 평생 행복하게 해줘.”너무나도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평소 점잖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진우정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송준혁이 진우정의 손을 잡고 진동원의 앞에서 굳게 맹세했다.“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우정이를 존중하고 아끼고 지켜주겠습니다. 우정이 눈에서 눈물 나는 일 없도록 할게요.”수많은 하객의 축복 속에서 송준혁과 진우정이 반지를 주고받았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입을 맞추던 그때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진우정이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나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한편 심용하의 사고 소식이 백소은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날 오후 백소은은 심국해, 유민희와 함께 목주시로 날아왔다.두 다리를 잃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심국해는 비통함에 가슴을 쳤다.온 정성을 다해 키워온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희망이었던 심용하가 한순간에 쓸모없는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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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백소은이 입을 다물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심용하의 분노가 화염처럼 치솟았다.“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네가 들러붙지만 않았어도 우정이가 날 떠나는 일은 없었어.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어. 다 너 때문이야,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라고!”심용하의 호흡이 거칠고 가빠졌다. 미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다.“당장 꺼져. 너 같은 건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심용하의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겁을 먹은 백소은이 뒷걸음질 쳤다.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며 충격적인 비밀을 말했다.“오빠, 나 임신했어. 오빠 아이야.”백소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용하가 반박했다.“말도 안 돼.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네가 어떻게 내 아이를 가져?”백소은이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거짓말 아니야. 몰디브에 갔던 그날 밤 오빠 필름 끊겼었잖아. 오빠가 날 진우정으로 착각하고 관계를 가졌어. 오빠가 날 탓할까 봐 흔적을 다 치우고 해가 뜨기 전에 방에서 나왔던 거야.”“단 한 번으로 임신할 줄은 나도 몰랐어. 그래서 오빠가 진우정이랑 결혼하는 걸 막으려 했던 거고. 두 사람이 결혼해 버리면 난 어떡해?”그녀는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백소은은 심용하를 사랑했다. 처음부터 심용하가 진우정과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번번이 두 사람 사이를 방해했던 것이었다.사실 너무나 억울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심용하의 동생인데 왜 그녀의 사랑은 축복받지 못해야 한단 말인가?심국해가 심용하와 진우정의 결혼을 밀어붙인 이유가 진우정의 집안 배경 때문이라는 것쯤은 백소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심용하의 인생에 먼저 나타난 건 백소은이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걸까?“진우정이 입만 열면 오빠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정작 오빠가 필요로 할 때 어디 있었어? 걔는 거짓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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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꿈 깨. 난 절대 너랑 결혼 안 해. 배 속의 애도 당장 지워. 설령 내 아이라 해도 인정 안 할 테니까.”심용하의 완강한 태도에 심국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용하야, 제발 이러지 마. 우정이는 이미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어.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소은이는 너만 바라보고 살았고 이제 네 아이까지 가졌어. 둘이 사이좋게 살아. 더는 아버지 속을 태우지 말고.”심용하는 두 다리를 절단했고 두 팔마저 보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였다.한때는 유능하고 잘나가던 엘리트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어느 여자가 이런 그에게 시집오려 하겠는가?예전에 심국해는 심용하와 백소은의 관계를 단호히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제 백소은만이 심용하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심용하는 뼛속까지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과거 그는 늘 사랑받는 위치에 있었고 진우정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고 무서울 것 없이 굴었다.그러다가 진우정이 떠나고 나서야 그녀가 이미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백소은에 대한 연민은 그저 오빠로서의 감정에 불과했다.심용하는 진우정이 이런 일로 진짜 끝낼 리 없다고, 모든 골칫거리를 완벽하게 해결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주어 그의 신부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그녀가 떠난 지난 며칠간 심용하의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장면이 바로 진우정이 기타를 품에 안고 남자 기숙사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었다.그날 비가 그렇게 억수로 쏟아졌는데 어쩜 그리 독하게 그녀를 밤새 빗속에 세워두었을까?가끔 사람은 완전히 잃고 나서야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깨닫게 되나 보다.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심용하는 온 마음을 다해 진우정을 아껴주고 다시는 눈물 흘리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진우정은 심용하가 그렇게 심각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결혼식이 끝난 후 송준혁은 학교에 휴가를 내고 진우정과 함께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났다.그 한 달 동안 두 사람은 북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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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진우정은 송준혁이 그녀에게 심용하와 백소은의 결혼식에 참석하라고 권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심용하가 왜 청첩장을 보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자랑하려고?이미 심용하에게 마음이 완전히 떠났기에 이 일은 진우정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청첩장까지 보냈는데 안 가면 오히려 그녀만 괜히 미련이라도 남아서 옹졸하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그래. 겸사겸사 해울에 있는 친구도 만나고 오지 뭐.”두 사람은 함께 해울시로 향했다. 결혼식장에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연애를 6년이나 했고 청첩장까지 돌렸던 진우정과 심용하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하객들이 혀를 찼다.“난 둘이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그러게 말이야. 체면을 그렇게 따지던 심씨 가문이 심용하의 여동생을 심용하한테 시집보내다니. 아무리 친동생이 아니어도 그렇지, 이러면 족보가 다 꼬이잖아. 심국해가 앞으로 해울 재계의 웃음거리가 되겠어.”“듣자 하니 백소은이 벌써 임신 몇 개월이라더라고. 속도위반으로 급하게 식 올리는 거래. 역시 심용하가 진우정한테 잘못한 거였어. 그러니 저쪽도 갑자기 딴 남자한테 시집을 갔지.”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던 진우정이 시기를 가늠해 보았다. 두 사람은 진우정과 심용하가 헤어지기도 전에 이미 선을 넘었던 게 분명했다.과거 심용하는 백소은과 절대 선을 넘지 않았다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었다.‘어쩐지 청첩장을 보냈더라니. 백소은이 아이를 가져서였구나.’진우정은 이 모든 게 틀림없이 백소은의 머리에서 나온 수작일 거라 생각했다. 이런 유치한 장난질을 제일 좋아했으니까.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우정은 이미 심용하를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버렸기에 이런 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송준혁이 소유권을 주장하듯, 그리고 진우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아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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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진우정은 심용하가 버진로드 위를 지나가는 걸 보고서야 지난 교통사고로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를 알게 되었다.경악과 충격 너머로 심용하를 향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그토록 도도하고 한때 수많은 여학생의 이상형이었던 심용하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이 현실이 심용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진우정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문득 조금 후회가 밀려들었다. 만약 그때 그런 식으로 심용하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심용하가 목주시까지 쫓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진우정의 감정 변화를 알아챈 송준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너무 속상해하지 마.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고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신랑의 자리에 선 심용하의 얼굴에 웃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멍한 표정만 감돌았다.그는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기계적으로 식순을 치렀다.심국해의 안색 역시 차갑게 굳어 있었고 유민희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 참았던 감정이 터져 크게 오열했다.백소은은 그녀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딸이 행복하기만을 바랐건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데다가 딸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앞으로 남은 인생을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결혼식 내내 분위기가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객들 역시 그저 밥이나 한 끼 먹고 구경거리나 즐기러 온 이들이 태반이었다.식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객의 절반 이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우정 역시 식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일어났다.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해버린 현실은 늘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법이었다. 진우정은 이 음울한 감정에 더 이상 자신을 옭아매고 싶지 않았다.심용하가 송준혁과 다정히 손을 잡고 멀어져 가는 진우정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 또한 진우정의 발걸음을 따라갔다.백소은은 어쩌면 오늘 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신부일지도 모른다.머리를 쥐어짜며 수를 쓴 끝에 심용하와의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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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진우정은 요즘 들어 부쩍 잠이 많아졌고 생리도 한 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었다.송준혁이 진우정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를 받아 든 그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우정아, 임신이래. 나 이제 아빠 되는 거야?”그가 들고 있는 검사 결과서를 내려다보던 진우정은 한참 후에 상황을 파악했다.“나 정말 임신한 거야?”송준혁이 검사 결과서를 진우정에게 건넸다.“응. 틀림없는 사실이야.”진우정은 손에 쥔 검사 결과서를 보면서도 선뜻 믿기지 않았다.그가 진우정의 볼을 감싸 쥐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당분간 무조건 쉬기만 해. 집안일은 전부 나한테 맡기고 몸조리에만 신경 써. 임신하면 많이 힘들 텐데 내가 진짜 잘 돌봐줄게.”비록 진우정은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았고 이 아이 역시 계획에 없었으나 송준혁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속에 피어오르던 염려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그래. 준혁이만 옆에 있으면 내가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진우정의 임신 소식에 양가 부모님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해외에 있는 송준혁의 부모님이 진우정을 위해 몸에 좋은 식재료를 한가득 보내왔다. 그러고는 송준혁에게 진우정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우정이는 이제부터 특별 보호 대상이니까 네가 세심하게 잘 챙겨줘야 해. 임산부는 감정 기복이 심하거든. 혹시라도 기분이 안 좋아서 너를 깨물거나 발로 차더라도 군말 말고 다 받아줘.”새로 태어날 생명 덕분에 두 집안 모두 경사 분위기였다. 그런데 진우정이 임신 3개월이 되던 때 그만 출혈을 보이고 말았다.혼비백산한 송준혁이 진우정을 데리고 유명하다는 병원 여러 곳을 다녔다. 검사 결과 유산의 징후였다. 진우정의 몸이 약한 탓에 아이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아이를 지키기 위해 진우정은 침대에서 절대안정을 취해야만 했다.진동원과 조수진이 목주시에서 내로라하는 명의들을 집으로 불러 진우정을 진찰하게 했다.다행히 유산에 특효가 있는 처방을 얻어냈으나 그중 한 가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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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진우정이 걱정할까 봐 송준혁은 구출된 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지 않고 매일 극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집으로 돌아와 진우정을 간호했다.그 후 진우정의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조수진이 그날 밤의 아찔했던 상황을 진우정에게 털어놓았다.“준혁이 정말 진국이야. 현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 중 아무도 네 아빠를 구하러 내려가지 못했는데 오직 준혁이만 용기를 냈어. 준혁이 아니었다면 네 아빠는 아마...”진우정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조수진의 얘기를 들은 진우정이 송준혁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 바람에 송준혁의 셔츠가 눈물과 콧물 자국으로 얼룩졌다.“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왜 숨겼냐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꼭 말해줘야 해. 숨겼다간 가만 안 둬.”송준혁이 진우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보야, 우리 아이가 외할아버지를 못 보게 할 수는 없잖아. 장인어른은 네 아빠이기도 하지만 내 아버님이기도 해. 그러니 구하는 게 당연하지. 네가 걱정할까 봐 말 안 한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진 마. 지금 우리 둘 다 무사하잖아?”진우정이 눈물을 머금은 채 눈앞의 송준혁을 바라보았다. 송준혁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만 하면 덜컥 겁이 났다.진우정의 배가 날이 갈수록 불러왔고 정기 검진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임신한 후로 기억력이 점점 나빠진 진우정은 자주 물건을 흘리고 다녔다.송준혁의 섬세함에 그녀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인터넷에서 아기 성장 기록 수첩을 따로 구매해 진우정의 산전 검사 결과지를 차곡차곡 정리해 보관했다.그리고 정기 검진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함께 병원에 갔고 심지어 여가 시간을 쪼개 산모 회복 교실에 등록해 임산부와 신생아를 돌보는 법까지 배웠다.진우정이 입맛이 없으면 요리를 매번 다르게 해서 만들어 주었고 한밤중에 배고프다고 하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차려줬다.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송준혁의 뒷모습을 보던 진우정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뒤 조수진에게 보냈다.[엄마, 내가 찾은 건 남편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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