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진우정과 심용하의 결혼식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심용하가 또다시 결혼식을 미루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인 백소은의 병이 도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백소은이 당장 몰디브 바다를 보러 가자며 울고불고 심용하를 들볶아댔다. 이 결혼식을 준비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진우정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심용하가 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신랑을 갈아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Lihat lebih banyak진우정은 심용하의 친구나 동창 중 누군가가 먼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우정이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가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괴한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며 인질이 되고 말았다.“진우정, 넌 왜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어? 왜 혼자서만 행복하게 살고 있냔 말이야!”진우정은 그녀를 잡은 사람이 심국해에게 쫓겨났던 백소은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마트 보안 요원들이 급히 달려와 진압봉을 든 채 백소은과 대치했고 주변에 있던 시민 중 누군가가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다.“백소은, 진정해. 곧 경찰이 올 거라 도망갈 수도 없어. 네 인생을 이런 식으로 망치는 게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해?”백소은이 쥔 칼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칼날이 진우정의 피부를 스치자마자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진우정은 백소은이 그녀를 미행해 목숨까지 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심용하의 시신을 거둔 것도 아마 그녀였을 터. 그를 향한 사랑이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너 자신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생각해야지. 그 어린애를 혼자 두고 떠날 셈이야? 넌 아직 젊고 기회도 있어. 제발 충동적으로 굴지 마.”백소은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심용하와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였다.법적으로 여전히 심용하의 아내였기에 사고 소식을 가장 먼저 통보받은 것도 그녀였다.그녀와 심용하는 이익 공동체였다. 심용하가 죽자 그가 짊어지고 있던 막대한 빚은 고스란히 백소은의 몫이 되었다.“네가 대체 나보다 뭐가 잘났길래 용하 오빠를 해울에서 여기 목주까지 쫓아오게 만들어? 게다가 너 때문에 죽었어. 오빠는 내 거야. 죽어서도 내 거여야 한다고!”백소은은 심용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미 삶의 의지를 잃었다.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타인의 손을 빌려 죽는 계획을 세웠다. 이게 백소은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진우정이 인질로 잡혔다는 연락을 받은 송준혁은 강의 중이었다는 사실도
진우정이 입을 열기 전에 뒤에서 송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냐고? 그 이유를 용하 씨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아? 우정이의 진심을 먼저 저버린 것도, 상처를 준 것도 용하 씨야.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염치로 따져 묻는 건데?”송준혁이 들고 있던 만둣국을 내려놓고 진우정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우정이는 이제 내 아내야. 혼인신고까지 마친 합법적인 부부라고. 그런데 이 시점에 내 아내한테 달려와 사랑 고백을 해? 너무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6년이라는 시간 동안 용하 씨한테는 이 관계를 되돌릴 기회가 수만 번도 더 있었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그때 뭘 했는지.”“우정이는 용하 씨한테 빚진 게 없어. 그러니 이제 와서 사랑한다느니 후회한다느니 하는 말로 도덕적 굴레를 씌우려 하지 마. 용하 씨가 사랑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용하 씨 자신뿐이었어.”“지금 후회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용하 씨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던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송준혁의 일침에 심용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진우정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 심용하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심용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우리 사이가 소원해진 틈을 타서 비겁하게 끼어들었어. 네가 내 우정이를 뺏어간 거라고!”심용하의 억지에 송준혁은 단 몇 마디로 그를 침묵시켰다.“내가 없었더라도 우정이는 용하 씨랑 끝까지 가지 않았을 거야. 더 좋은 사람한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여자거든. 용하 씨 곁에서 청춘을 낭비하며 시들어가야 할 사람이 아니야.”진우정은 헤어진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고 각자 결혼까지 했는데도 심용하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심용하, 만약 오늘 날 축하해주러 온 거라면 기꺼이 환영할게. 하지만 지난 일을 들춰내며 억지를 부리러 온 거라면 그만해. 시간이 늦었어. 나랑 아기가 쉬어야 하니까 이만 가 줘.”진우정이 단호하게 내쫓았다. 심용하의 가슴속에 남은 마지막 불씨마저 꺼져 버렸다.‘하긴.
심국해가 아직 몸조리 중인 백소은을 집에서 쫓아냈고 백소은이 낳은 아이 역시 보육원으로 보내버렸다.애초에 그가 백소은과 심용하의 결혼을 승낙했던 것도 그녀가 심용하의 아이를 가져서였다.심용하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기에 심국해는 그 아이를 그의 후계자로 키워낼 생각이었다.그래서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던 그가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참고 백소은과 심용하를 결혼시켰던 것이었다.하지만 헛물만 켠 꼴이 돼버렸다. 그 아이는 심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다.심국해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가 살아남아야 훗날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아들 심용하는 이미 답이 없는 상태라 마지막으로 이용하기로 했다.그는 비밀리에 자신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뒤 회사 법인 명의를 심용하로 변경하여 거액의 빚을 전부 심용하에게 떠넘겼다.심용하가 법원 소장을 받았을 때는 이미 심국해가 해외로 도주한 후였다. 법원이 심용하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 은행 계좌를 동결했다.몇 생을 걸쳐도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빚을 떠안고서야 심용하는 얼마 전 심국해가 그에게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던 이유가 그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심용하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다행히 예전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몇몇 친구들이 그가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돈을 모아 집을 얻어주었고 돌봐줄 시간제 도우미까지 붙여주었다.심용하는 매일 침대에 누워 숏폼 영상을 넘겨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소연지의 SNS에 들어가 봤다가 소연지와 진우정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사진 속의 진우정이 품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득녀를 축하해. 결혼을 잘하면 이렇게 행복하구나.]사진 속 익숙한 얼굴, 그리고 진우정의 행복한 미소를 보던 심용하는 가슴이 지독하게 아려왔다.그 행복은 원래 그의 몫이어야 했다.가슴 깊은 곳에서 사그라들었던 오기가 다시 솟구쳐 올랐다. 심용하는 지극히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 목주시로 가서 진우정을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진우정이 걱정할까 봐 송준혁은 구출된 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지 않고 매일 극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집으로 돌아와 진우정을 간호했다.그 후 진우정의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조수진이 그날 밤의 아찔했던 상황을 진우정에게 털어놓았다.“준혁이 정말 진국이야. 현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 중 아무도 네 아빠를 구하러 내려가지 못했는데 오직 준혁이만 용기를 냈어. 준혁이 아니었다면 네 아빠는 아마...”진우정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조수진의 얘기를 들은 진우정이 송준혁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 바람에 송준혁의 셔츠가 눈물과 콧물 자국으로 얼룩졌다.“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왜 숨겼냐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꼭 말해줘야 해. 숨겼다간 가만 안 둬.”송준혁이 진우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보야, 우리 아이가 외할아버지를 못 보게 할 수는 없잖아. 장인어른은 네 아빠이기도 하지만 내 아버님이기도 해. 그러니 구하는 게 당연하지. 네가 걱정할까 봐 말 안 한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진 마. 지금 우리 둘 다 무사하잖아?”진우정이 눈물을 머금은 채 눈앞의 송준혁을 바라보았다. 송준혁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만 하면 덜컥 겁이 났다.진우정의 배가 날이 갈수록 불러왔고 정기 검진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임신한 후로 기억력이 점점 나빠진 진우정은 자주 물건을 흘리고 다녔다.송준혁의 섬세함에 그녀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인터넷에서 아기 성장 기록 수첩을 따로 구매해 진우정의 산전 검사 결과지를 차곡차곡 정리해 보관했다.그리고 정기 검진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함께 병원에 갔고 심지어 여가 시간을 쪼개 산모 회복 교실에 등록해 임산부와 신생아를 돌보는 법까지 배웠다.진우정이 입맛이 없으면 요리를 매번 다르게 해서 만들어 주었고 한밤중에 배고프다고 하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차려줬다.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송준혁의 뒷모습을 보던 진우정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뒤 조수진에게 보냈다.[엄마, 내가 찾은 건 남편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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