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Chapter 91 - Chapter 100

312 Chapters

91.한 칸이 두 칸이 되는 동안

목요일 저녁.송유지는 작은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채도하의 집에 들어갔다.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드레스룸으로 향했다.며칠 전 채운 서랍.열어보니 자신이 넣어둔 옷들이 그대로 있었다.유지는 봉투 하나를 열었다.새 양말 몇 켤레.편하게 입을 티셔츠.그리고 얇은 가디건.하나씩 접어 넣었다.서랍은 금세 더 꽉 찼다.유지는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아래쪽 서랍을 봤다.비어 있었다.손잡이를 잡았다가 멈췄다.“이건 욕심인가.”혼잣말을 하고 있는데.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온 모양이었다.잠시 뒤.“왔어?”유지가 드레스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네.”도하가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또 뭐 가져왔어?”유지는 바로 봉투를 뒤로 숨겼다.“왜요.”“표정이 그런데.”“무슨 표정.”도하는 웃으며 가까이 왔다.그리고 열린 서랍을 봤다.“많이 찼네.”유지가 괜히 어깨를 폈다.“채우라면서요.”“응.”도하는 아래쪽 빈 서랍을 한번 봤다.유지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봐요.”“아니.”“또 그 말.”도하가 잠깐 웃었다.“그것도 써.”유지의 눈이 커졌다.“이것도요?”“응.”“한 칸이면 된다면서요.”“내가 언제.”“그런 뉘앙스였는데.”도하는 빈 서랍을 열었다.“여기도 비어 있어.”유지는 그 안을 바라봤다.“진짜 저 쓰라고?”“응.”“이러다 두 칸 다 제 거잖아요.”도하가 자연스럽게 말했다.“그러면 어때.”유지는 몇 초 말이 없었다.저녁을 먹은 뒤.유지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도하는 옆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각자 다른 걸 하고 있는데도.이상하게 조용함이 불편하지 않았다.유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하 씨.”“응.”“우리 요즘 만나서 말 안 할 때도 많아졌죠.”도하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응.”“예전에는 계속 무슨 얘기 해야 할 것 같았는데.”“지금은?”유지는 소파에 더 깊이 기대었다.“그냥 있어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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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그냥 와도 되는 사람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면서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평소라면 작은 가방이라도 들었을 텐데.오늘은 정말 휴대전화와 지갑뿐이었다.채도하의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신발장 옆에 자신의 슬리퍼가 보였다.유지는 자연스럽게 갈아 신었다.거울을 한번 보고.가방도 아닌 작은 파우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그 순간 조금 웃음이 났다.“진짜 아무것도 안 가져왔네.”이제 필요한 건 거의 다 이 집에 있었다.칫솔도.화장품도.옷도.베개도.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자신의 간식 칸에서 요거트를 꺼냈다.그리고 소파에 앉았다.누군가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느낌이 아니라.그냥 먼저 돌아와 있는 기분이었다.한 시간쯤 뒤.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왔다.유지가 소파에서 고개만 들었다.“왔어요?”도하는 현관에 서서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응.”“왜요?”“진짜 아무것도 안 들고 왔네.”유지가 손을 펼쳐 보였다.“휴대전화랑 지갑.”도하가 웃었다.“편하긴 하겠다.”“엄청.”유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준비할 게 없어요.”“좋네.”도하는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그냥 오면 되니까.”그 말에 유지가 잠깐 멈췄다.어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그냥 오기만 하면 되는 곳.유지가 작게 웃었다.“그러네요.”저녁을 먹고 난 뒤.유지는 드레스룸으로 갔다.두 번째 서랍이 아직 비어 있었다.유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도하가 뒤에서 물었다.“또 서랍 봐?”“뭘 더 넣을까 생각 중.”“급하게 채울 필요 없는데.”유지가 돌아봤다.“지난번에는 채우라면서요.”“채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도하가 옆에 앉았다.“필요한 게 생기면 넣으라고.”유지는 잠깐 서랍 안을 바라봤다.“그러면.”“응.”“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을래요.”도하가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봤다.“왜.”“생각해보니까.”유지는 손잡이를 잡고 서랍을 닫았다.“자리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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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사람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걸 봤다.도하는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유지에게 물었다.“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왜요?”“친구들이 잠깐 보자는데.”유지가 걸음을 멈췄다.“도하 씨 친구들이요?”“응.”“저도 같이?”“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봤어.”유지는 조금 당황했다.지금까지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가족과 몇몇 주변 사람 정도였다.하지만 도하가 일부러 자신의 지인들에게 데려가는 건 처음이었다.“저를 뭐라고 소개하려고요?”도하는 이상하다는 듯 봤다.“여자친구.”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유지가 웃었다.“망설임이 없네요.”“다른 말로 소개할 이유가 없잖아.”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저녁.작은 식당 안에는 도하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몇 명이 먼저 와 있었다.유지는 들어가기 전 잠깐 도하의 소매를 잡았다.“저 조금 긴장돼요.”“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잖아요.”도하는 자연스럽게 유지 손을 잡았다.“나 있잖아.”유지는 그 말에 조금 안심했다.문이 열리고.몇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 향했다.도하가 먼저 말했다.“인사해.”그리고 유지 쪽을 바라봤다.“내 여자친구.”순간.유지의 심장이 조금 세게 뛰었다.이미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느낌이 달랐다.친구들은 크게 놀리지도 않았다.“드디어 소개하네.”“반갑습니다.”가벼운 인사가 이어졌다.유지도 웃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그걸로 끝이었다.누구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누구도 두 사람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적어도 이 자리에서는.유지는 그냥 채도하의 여자친구였다.식사 중.도하의 한 친구가 물었다.“둘은 오래 만났어?”유지의 손이 잠깐 멈췄다.도하가 먼저 대답했다.“아니. 얼마 안 됐어.”“근데 되게 오래 만난 사람들 같네.”유지가 도하를 한번 봤다.친구가 웃으며 말했다.“말 안 해도 서로 뭐 필요한지 아는 것 같아서.”그제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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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월요일 저녁.송유지는 나현과 카페에 마주 앉아 있었다.나현은 빨대를 만지작거리다가 유지의 휴대전화 뒤에 끼워진 사진을 발견했다.“이거 남자친구랑 찍은 거지?”“응.”“근데 나 아직 얼굴 제대로 못 봤잖아.”유지의 손이 잠깐 멈췄다.그동안 나현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말했다.복잡한 사람이라고도 했다.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왜 가족이 반대했는지는 끝까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나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너 아직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유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있어.”“역시.”“근데 이제 말하려고.”나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유지는 잠시 주변을 확인한 뒤 말했다.“내가 만나는 사람.”“응.”“도하 씨야.”나현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도하 씨?”잠시 뒤.표정이 굳었다.“설마.”유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언니 남편이었던.”나현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채도하?”“응.”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유지는 일부러 재촉하지 않았다.당연한 반응이었다.자신도 처음 마음을 인정했을 때 수없이 흔들렸으니까.“그래서 그렇게 복잡하다고 한 거였구나.”“응.”나현은 유지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부모님도 알아?”“알아.”“반응은?”“처음엔 헤어지라고 했어.”“지금은?”유지는 조금 생각했다.“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닌데.”잠깐.“우리 만나는 건 알고 있어. 도하 씨 집에도 같이 간 적 있고.”나현의 눈이 커졌다.“거기까지 갔다고?”“응.”유지는 작게 웃었다.“생각보다 많이 진행됐어.”나현은 한참 뒤에야 음료를 마셨다.“솔직히 좀 놀랐어.”“알아.”“근데.”나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괜찮아?”유지가 고개를 들었다.“뭐가?”“미안해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응.”“외로워서 기대는 것도 아니고?”이번에는 유지가 바로 대답했다.“아니야.”“확실해?”“응.”유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처음에는 나도 헷갈렸어.”언니가 없는 집.그 안에서 자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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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처음으로 미래를 묻다

수요일 저녁.송유지는 채도하의 집 소파에 앉아 있었다.도하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TV는 켜져 있었지만 둘 다 제대로 보고 있지는 않았다.유지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말했다.“도하 씨.”“응.”“나현이가 그러더라고요.”도하가 커피잔 두 개를 들고 왔다.“뭐라고.”“우리 되게 진지해 보인다고.”도하는 유지 앞에 컵을 내려놓았다.“틀린 말은 아니네.”“그렇죠.”유지는 컵을 손으로 감쌌다.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면.”“응.”“도하 씨는 어디까지 생각해봤어요?”도하가 그녀를 봤다.“뭘.”유지는 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우리.”짧은 침묵.“앞으로요.”도하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갑자기?”“그냥 궁금해서.”유지는 바로 웃었다.“아, 이건 그냥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도하도 짧게 웃었다.“어디까지라는 게.”“같이 사는 얘기도 했잖아요.”“응.”“그 다음.”유지는 말끝을 조금 흐렸다.도하는 재촉하지 않았다.결국 유지가 먼저 말했다.“결혼 같은 것도.”말하고 나서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도하 역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예상보다 길었다.유지는 괜히 긴장됐다.“부담스러우면 말 안 해도 돼요.”“아니.”도하가 고개를 저었다.“생각 안 해본 건 아니라서.”유지의 손이 멈췄다.“해봤어요?”“응.”“언제요?”도하는 잠깐 생각했다.“정확히는 모르겠어.”유지가 작게 웃었다.“또.”“진짜 모르겠는데.”도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네가 여기 자주 오기 시작하고.”“응.”“물건 늘어나고.”“응.”“아침에 같이 밥 먹고.”도하의 시선이 유지에게 머물렀다.“그때부터 가끔.”유지의 심장이 천천히 빨라졌다.“뭘 생각했는데요?”도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이게 계속되면 어떨까.”유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잠시 뒤.유지가 물었다.“계속된다는 게.”“응.”“진짜 오래요?”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몇 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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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다음 계절에도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채도하의 집 식탁에 앉아 달력을 보고 있었다.도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 물었다.“뭐 봐.”“다음 달.”“왜.”“휴일이 있잖아요.”유지는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이때 어디 갈래요?”도하가 날짜를 확인했다.“여행?”“하루나 이틀 정도.”“가고 싶은 데 있어?”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아직은.”도하가 맞은편에 앉았다.“그럼 찾아보자.”유지는 그 말에 괜히 웃었다.“이것도 처음이네요.”“뭐가.”“미리 같이 뭘 계획하는 거.”지금까지는 대부분 당일 약속이었다.영화.바다.저녁.도하의 집.하지만 한 달 뒤의 일을 같이 정하는 건 조금 달랐다.“도하 씨는 어디 가고 싶어요?”“너 안 가본 데.”“그 기준 너무 넓은데.”“바다 말고.”“산?”“싫어?”유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등산만 아니면.”도하가 웃었다.“그럼 숙소 좋은 데로.”“완전 찬성.”둘은 한동안 휴대전화로 숙소를 찾아봤다.유지가 사진 하나를 확대했다.“여기 예쁘다.”도하도 화면을 봤다.작은 독채 숙소였다.통창 너머로 숲이 보이고.테라스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여기 어때요?”“괜찮네.”“근데.”유지가 예약 화면을 보다가 멈췄다.“침대 하나네.”도하도 잠깐 조용해졌다.둘은 이미 같은 침대에서 잔 적이 있었다.그런데 여행지에서.처음부터 둘이 같이 잘 숙소를 예약한다는 건 또 다르게 느껴졌다.유지가 괜히 말했다.“다른 데 볼까요?”도하가 그녀를 봤다.“왜.”“그냥.”유지는 바로 웃었다.“아, 그냥 금지.”도하도 피식 웃었다.“불편해?”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아니요.”“그럼?”“조금 실감 나서.”“뭐가.”“우리 여행 가는 거.”도하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가기 싫어졌어?”“아니.”유지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가고 싶어요.”도하는 다시 화면을 봤다.“그럼 여기 예약할까.”유지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네.”예약 완료 화면이 떴다.유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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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처음으로 함께 고른 여행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카페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다음 달 여행.숙소는 이미 예약했다.이제 남은 건 뭘 할지 정하는 일이었다.유지가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여기 근처에 산책로 있대요.”도하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얼마나 걸려.”“한 시간 정도.”“괜찮네.”“그리고 카페도 있고.”“또 카페.”유지가 웃었다.“여행 가서 카페 안 가요?”“갈 거야.”“그럼 됐네.”유지는 다시 화면을 내렸다.그러다 한 곳에서 멈췄다.“여기.”도하가 고개를 기울였다.“뭔데.”“작은 시장.”“시장?”“응. 지역 음식도 팔고.”유지는 사진을 보여줬다.“이런 데 같이 돌아다니면 재밌을 것 같아요.”도하가 잠깐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가자.”“진짜?”“응.”“도하 씨 이런 데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너 좋아하잖아.”유지는 순간 조용해졌다.도하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유지가 작게 말했다.“요즘 여행 계획도 거의 제 취향인데.”“싫어?”“아니요.”유지는 웃었다.“좋아서 그래요.”한참 계획을 세우다.유지가 갑자기 물었다.“근데 우리 여행 가면.”“응.”“사진 많이 찍을 거죠?”도하가 그녀를 봤다.“너 찍고 싶으면.”“이번에는 얼굴 나온 것도.”“응.”유지는 조금 망설였다.“둘이 같이.”“응.”대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유지는 피식 웃었다.“예전 같으면 이런 것도 고민했을 텐데.”“뭘.”“누가 볼까 봐.”도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지금도 완전히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잖아.”“맞아요.”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숨기고 싶지는 않아요.”도하가 낮게 말했다.“나도.”그 말에 유지가 조금 안심한 듯 웃었다.카페를 나온 뒤.둘은 여행용품 매장을 구경했다.유지가 작은 파우치를 집었다.“이거 살까.”“뭐 넣게.”“충전기.”도하가 옆에 있던 조금 큰 걸 집었다.“이게 낫지 않아?”“왜요?”“둘 다 넣을 수 있잖아.”유지가 멈췄다.“둘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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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여행 전에 생긴 약속

일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의 집 식탁에 앉아 여행 준비 목록을 다시 보고 있었다.충전기.화장품.여벌 옷.운동화.삼각대.간식.도하는 맞은편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유지가 휴대전화를 내리며 말했다.“도하 씨.”“응.”“우리 여행 가기 전에 하나 정해요.”도하가 시선을 들었다.“뭘.”“규칙.”“여행 규칙?”“네.”유지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첫째. 싸워도 혼자 먼저 숙소 나가기 금지.”도하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우리가 가서 싸울 거라고 생각해?”“혹시 모르잖아요.”“벌써 걱정해?”“미리 대비.”도하가 웃었다.“알겠어.”유지는 두 번째 손가락을 들었다.“둘째. 기분 나쁘면 바로 말하기.”“그건 평소에도 하는 거잖아.”“여행에서는 더 중요하죠.”“왜.”“둘이 계속 붙어 있을 거니까.”도하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맞네.”“셋째.”유지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혼자 다 계획하지 않기.”도하가 바로 물었다.“그건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도하 씨.”“왜 나야.”“뭐든 알아서 해놓는 스타일이잖아요.”도하는 반박하지 않았다.유지가 웃었다.“봐요.”“그럼 너도 정해.”“그래서 지금 정하는 중.”도하는 노트북을 닫았다.“그럼 나도 하나.”유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뭔데요?”“피곤하면 무리해서 따라다니지 않기.”“그건 도하 씨가 더 그래요.”“너도.”“알겠어요.”“그리고.”도하가 말을 멈췄다.유지가 기다렸다.“싫은 건 싫다고 하기.”유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뭐가요?”“그냥 다.”도하는 담담하게 말했다.“일정이든.”잠깐.“숙소에서든.”유지는 그 의미를 알아듣고 조금 조용해졌다.둘은 이미 같은 침대에서 잔 적이 있었다.몇 번이나.그렇지만 여행은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처음부터 둘이 함께 밤을 보내기로 정하고 떠나는 일이니까.유지가 천천히 말했다.“알겠어요.”도하가 덧붙였다.“네가 싫다고 하면 거기서 끝.”유지는 그를 한동안 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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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처음 떠나는 날

여행 당일 아침.송유지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준비해둔 가방은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전날 밤에도 몇 번이나 확인한 목록.충전기.화장품.여벌 옷.운동화.삼각대.간식.그리고 마지막.도착하면 엄마에게 연락하기.유지는 체크 표시를 하나씩 다시 보다가 웃었다.“진짜 간다.”채도하와 처음 떠나는 여행.하루 넘게.아무 일정에도 쫓기지 않고.둘만 있는 곳으로.생각할수록 괜히 긴장됐다.도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유지가 가방을 들고 나오자 차에서 내려 바로 받아 들었다.“무거워?”“별로 안 무거워요.”도하는 트렁크에 가방을 넣었다.유지가 물었다.“도하 씨 짐은요?”“이미 있어.”“설마 또 엄청 간단하게?”“하루인데 뭘 많이 챙겨.”유지는 고개를 저었다.“여행 감성이 없네.”“네가 다 챙겼잖아.”“제가 언제.”“간식부터 삼각대까지.”유지가 웃었다.“그건 필요하죠.”도하가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타.”유지는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출발하기 전에 하나.”“뭐.”“사진.”“벌써?”“첫 여행 출발 사진.”도하는 잠깐 어이없다는 듯 봤지만 결국 옆에 섰다.유지는 휴대전화를 들고 두 사람을 화면에 담았다.이번에는.누구도 얼굴을 피하지 않았다.찰칵.유지는 사진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됐어요.”도하가 화면을 힐끗 봤다.“잘 나왔네.”“저장.”차가 출발했다.처음 한 시간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여행지에서 뭘 먹을지.시장부터 갈지.숙소에 먼저 갈지.유지가 음악을 바꾸며 말했다.“우리 여행 규칙 기억해요?”“응.”“말해봐요.”도하가 운전하며 하나씩 말했다.“싸워도 혼자 나가지 않기.”“응.”“기분 나쁘면 바로 말하기.”“또.”“혼자 다 정하지 않기.”유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잘 외웠네.”도하가 덧붙였다.“싫은 건 싫다고 하기.”유지의 시선이 잠깐 그에게 머물렀다.“그것도.”“제일 중요한 거잖아.”“알아요.”유지는 창밖으로 시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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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돌아갈 시간이 없는 밤

숙소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송유지는 테라스 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조용했다.집에서 함께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정적이었다.밖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누군가 갑자기 찾아올 일도 없었다.오늘은 정말 둘뿐이었다.채도하가 물었다.“씻을래?”“네.”유지는 대답하고도 잠깐 그를 바라봤다.도하가 눈썹을 올렸다.“왜.”“아니.”유지는 바로 웃었다.“저 먼저 씻을게요.”*샤워를 마치고 나온 유지는 준비해온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거울을 한번 보고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했다.평소 도하의 집에서 자고 갈 때도 비슷한 옷을 입었다.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더 신경 쓰였다.욕실 문을 열자 도하는 창가 근처에 서 있었다.유지를 보더니 말했다.“다 했어?”“네.”“피곤해?”“조금.”유지는 침대 쪽을 한번 봤다.도하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둘 다 알고 있었다.오늘은 처음부터 같은 방에서 잘 걸 알고 예약한 여행이었다.도하가 먼저 말했다.“불편하면 말해.”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진짜.”“네.”유지는 그를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도하 씨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도하가 잠깐 침묵했다.“맞아.”유지의 눈이 조금 커졌다.“인정하네요.”“왜 안 해.”“평소에는 태연하잖아요.”“오늘은 좀 다르니까.”그 말에 유지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다.*도하가 씻고 나온 뒤.둘은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았다.TV는 켜지 않았다.유지가 먼저 말했다.“오늘 재밌었어요.”“응.”“시장도 좋았고.”“응.”“숙소도 좋고.”도하가 유지 쪽을 봤다.“다행이네.”유지는 손가락을 천천히 맞물렸다.“그리고.”“응.”“같이 와서 좋아요.”도하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그가 유지 손을 잡았다.“나도.”둘은 잠시 그렇게 앉아 있었다.유지가 먼저 도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짧게 입을 맞췄다.도하가 바로 따라오지 않았다.유지가 조금 떨어져 물었다.“왜요.”“확인하려고.”“뭘.”“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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