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면서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평소라면 작은 가방이라도 들었을 텐데.오늘은 정말 휴대전화와 지갑뿐이었다.채도하의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신발장 옆에 자신의 슬리퍼가 보였다.유지는 자연스럽게 갈아 신었다.거울을 한번 보고.가방도 아닌 작은 파우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그 순간 조금 웃음이 났다.“진짜 아무것도 안 가져왔네.”이제 필요한 건 거의 다 이 집에 있었다.칫솔도.화장품도.옷도.베개도.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자신의 간식 칸에서 요거트를 꺼냈다.그리고 소파에 앉았다.누군가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느낌이 아니라.그냥 먼저 돌아와 있는 기분이었다.한 시간쯤 뒤.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왔다.유지가 소파에서 고개만 들었다.“왔어요?”도하는 현관에 서서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응.”“왜요?”“진짜 아무것도 안 들고 왔네.”유지가 손을 펼쳐 보였다.“휴대전화랑 지갑.”도하가 웃었다.“편하긴 하겠다.”“엄청.”유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준비할 게 없어요.”“좋네.”도하는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그냥 오면 되니까.”그 말에 유지가 잠깐 멈췄다.어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그냥 오기만 하면 되는 곳.유지가 작게 웃었다.“그러네요.”저녁을 먹고 난 뒤.유지는 드레스룸으로 갔다.두 번째 서랍이 아직 비어 있었다.유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도하가 뒤에서 물었다.“또 서랍 봐?”“뭘 더 넣을까 생각 중.”“급하게 채울 필요 없는데.”유지가 돌아봤다.“지난번에는 채우라면서요.”“채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도하가 옆에 앉았다.“필요한 게 생기면 넣으라고.”유지는 잠깐 서랍 안을 바라봤다.“그러면.”“응.”“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을래요.”도하가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봤다.“왜.”“생각해보니까.”유지는 손잡이를 잡고 서랍을 닫았다.“자리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Last Updated : 2026-10-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