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Chapter 11 - Chapter 20

95 Chapters

최애가 형의 집에 찾아왔다

그런데도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은 손목에 닿았던 태준의 손과 조금 전 가까이 마주쳤던 눈빛이었다.“정신 차리자, 민유리.”유리는 작게 중얼거리며 침구를 펼쳤다.최애의 형에게 정체를 들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일이었다. 그 남자의 얼굴과 몸까지 의식하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었다.그녀는 한나에게 무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불을 껐다. 낯선 공간이라 쉽게 잠들지 못할 줄 알았지만 온종일 촬영한 피로가 몰려와 금세 눈꺼풀이 무거워졌다.얼마나 잤을까.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는 잠결에 눈을 뜨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어젯밤 자신이 어디에서 잠들었는지 떠올린 유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태준에게 인사라도 해야 했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묶고 문을 열었다.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대신 욕실 문이 열리며 태준이 나왔다.유리는 그대로 굳었다.태준은 막 샤워를 마친 모습이었다. 젖은 검은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졌고, 상의는 입지 않은 채 짙은색 수건만 허리에 걸치고 있었다. 정장 아래 감춰져 있던 어깨와 가슴은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다. 물기가 목선을 따라 쇄골과 복부로 천천히 흘러내렸다.어제 손끝에 스쳤던 감촉이 착각은 아니었다.유리의 시선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황급히 올라왔다.태준도 그녀가 나와 있을 줄은 몰랐는지 잠깐 멈췄다. 그러나 놀란 쪽은 유리뿐인 것처럼 그는 태연하게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일어났습니까?”“왜 옷을 안 입고 나와요?”“제 집이니까요.”“사람이 자고 있잖아요.”“문을 잠갔기에 아직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그래도 미리 옷을 가져가야죠.”“제 집 욕실에서 씻을 때마다 손님이 있는 상황까지 가정해야 합니까?”태준이 한 걸음 다가오자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발뒤꿈치가 소파베드 모서리에 걸리며 몸이 휘청였다.태준이 재빨리 허리를 감싸 잡았다.뜨거운 팔이 잠옷 위로 유리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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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오해받았습니다

“……형. 여자 있었어?” 정시온의 목소리가 현관에 떨어진 순간, 세 사람 사이의 시간이 완벽하게 멎었다. 민유리는 정태준의 단단한 가슴에 손바닥을 댄 채였고, 정태준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급하게 붙잡은 탓에 손가락이 얇은 잠옷 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태준의 몸에 걸쳐진 것이 허리의 수건 한 장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넘어질 뻔한 사람을 구해 준 자세였는데, 현관에서 바라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은밀했다. “문부터 닫아.” 먼저 정신을 차린 태준이 낮게 말했다. “아, 응.” 시온은 순순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손은 도어록에, 시선은 두 사람에게 고정한 채였다. 무대 위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아이돌답지 않게 두 눈이 커다랗게 뜨여 있었다. “놓, 놓아 주세요.” 유리가 속삭이자 태준이 팔을 풀었다. 그러나 완전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비틀거리는 유리의 어깨를 한 번 더 붙든 뒤 균형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거뒀다. “괜찮습니까?” “네. 아주 괜찮으니까 옷부터 좀…….” 유리는 차마 아래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이 뜨거워진 정도가 아니었다. 귀와 목덜미까지 모조리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김이 날 것 같았다. 반면 태준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는 소파 위에 벗어 두었던 셔츠를 집어 들었다. 유리는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시야 한쪽으로 움직임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넓은 등 위에서 물방울이 미끄러지고, 셔츠가 단단한 어깨를 덮었다. 길고 곧은 손가락이 단추를 하나씩 채울 때마다 조금 전 손바닥 아래에서 느꼈던 체온이 되살아났다. ‘미쳤어. 그걸 왜 기억해.’ 유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설명해 봐.” 시온이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뭘.” “형이 아침부터 반쯤 벗은 채로 여자를 안고 있었던 이유.” “넘어질 뻔해서 붙잡은 거야.” “그 앞부분 말고. 왜 형 집에 잠옷 입은 여자가 있느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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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오해받았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형은 대학 때부터 저렇게 살았거든요. 잠깐만요.”그는 현관 앞에 내려놓았던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그래서 아침 사 왔습니다. 연락을 안 받기에 굶어 죽은 줄 알고.”“회의 중이었어.”“새벽 세 시에?”“통화할 사람이 있었습니다.”“아, 옆집의 민유리 씨와?”태준의 미간이 좁혀지자 시온은 얼른 식탁 쪽으로 도망쳤다.유리는 태준의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잠옷을 벗으려는데 허리에 남은 감각이 신경 쓰였다. 넘어지는 순간 자신을 붙잡아 세운 힘, 맨살에 닿았던 손바닥, 머리 위에서 들렸던 거친 숨소리까지 너무 생생했다.손을 대자 체온이 다시 오르는 것 같았다.“정신 차리자, 민유리.”거울 속 자신에게 낮게 경고한 유리는 어제 입었던 셔츠와 청바지를 다시 걸쳤다. 옷에서 희미하게 태준의 집 냄새가 나는 듯해 괜히 호흡까지 조심스러워졌다.거실로 나오자 태준은 어느새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짙은 셔츠에 검은 슬랙스, 흐트러짐 없이 넘긴 머리. 불과 몇 분 전 수건 한 장만 두르고 있던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손목은 어떻습니까?”태준이 의자를 빼 주며 물었다.“어제보다 나아요.”“확인해 보죠.”“괜찮다니까요.”그는 대답 대신 유리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받친 채 손목을 천천히 돌려 보고, 부어오른 부위를 엄지로 가볍게 눌렀다. 아프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유리는 맞은편에 앉은 시온의 눈이 자신들에게 고정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진짜 어제 처음 대화한 사이 맞아요?”“동생분 표정이 왜 저래요?”유리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태준이 손을 놓으며 무심히 답했다.“원래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합니다.”“내 상상력이 아니라 형 행동이 문제 같은데.”시온은 죽과 샌드위치를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유리는 대화를 피하듯 물을 마셨지만, 시온의 시선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반짝였다.“그런데 사건 관계자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설마 어제 유포된 사진 때문에 위험해진 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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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오해받았습니다

전시회 준비 당시 인쇄물에 문제가 생겨 시안을 세 번이나 수정했다. 한나는 회사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리 역시 촬영 일정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결국 프린트랩 직원과 행사 대행 업체 직원이 공유 폴더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링크를 열어 뒀다.누군가 마음만 먹었다면 워터마크 원본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공유 폴더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확인해 볼게요. 아, 그리고 좀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말씀하세요.”—전시 끝난 뒤에 어떤 사람이 메일을 보냈어요. 시온이 팬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면서 온리원 님의 원본 사진을 협찬 자료로 쓰고 싶다고요. 당연히 거절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제 메일 주소를 알았는지 모르겠어요.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메일 원본을 전달해 주세요. 첨부파일이나 링크는 열지 마시고, 헤더 정보가 남도록 그대로 전달하십시오.”통화가 끝나자 식탁 위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온리원?”시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리의 어깨가 움찔했다.“방금 온리원이라고 하지 않았어요?”태준이 시온을 똑바로 바라봤다.“들은 내용은 전부 잊어.”“왜?”“수사와 법적 대응에 필요한 비공개 정보니까.”“형.”“네가 끼어들수록 상대가 원하는 대로 돼. 지금은 모르는 척해.”시온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시선이 유리의 손목과 카메라 가방을 천천히 훑었다. 소파 옆에 놓인 검은 가방 지퍼 사이로 파란 별 모양 장식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유리는 그것을 발견한 순간 숨이 멎었다.시온의 눈길도 같은 곳에서 멈췄다.“저거…….”유리가 급히 가방을 잡으려 했지만 태준이 먼저 일어났다. 긴 다리로 두 걸음 만에 소파 앞에 도착한 그는 가방을 들어 자신의 등 뒤로 옮겼다.“왜.”“그 장식, 어디서 본 것 같아서.”“흔한 별 모양이야.”“아니, 저 색이랑 모양이 정확히…….”그 순간 유리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도착한 메시지였다.유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태준이 즉시 다가왔다.“보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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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정체를 들켰습니다

“민유리 씨가 혹시, 온리원 님입니까?” 정시온의 질문이 떨어진 뒤 거실은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해졌다. 민유리는 입술을 열지 못했다. 아니라고 부정해야 했다. 시온은 파란 별 장식을 본 적이 있을 뿐이고, 자신이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준 것도 아니었다. 팬 사인회에 참석한 적도 없으니 얼굴을 기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면 아직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시온과 눈이 마주치자 준비했던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없이 찍어 온 사람이었다. 가장 빛나던 순간뿐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지쳐 있던 얼굴도, 다친 발목을 숨기며 끝까지 웃던 모습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니 묘한 서운함이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 동시에 두려웠다. 유리가 사랑했던 것은 시온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던 적당한 거리였다. 무대 위의 사람과 객석에 있는 팬.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순간을 나눌 수 있는 거리. 그 선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준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유리는 넓은 등 뒤에 가려졌고, 시온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차단됐다. “형.” “확인할 필요 없는 일이야.” “하지만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온리원 님이라면 나도 알아야 해.” “네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보다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게 먼저다.” “호기심 때문에 묻는 거 아니야.” 시온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온리원 님은 내 데뷔 때부터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야. 이번 일 때문에 그 사람이 협박받고 있다면 모른 척할 수 없어.” “안다고 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적어도 사과는 할 수 있잖아.” 태준의 어깨 너머로 시온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태준의 셔츠 자락을 가볍게 잡았다. 그가 즉시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말할게요.” 유리는 태준의 등 뒤에서 한 걸음 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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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정체를 들켰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온은 팬으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의 눈을 보았고, 유리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시온의 얼굴을 보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준의 표정만 점점 냉랭해졌다.“언제까지 손을 잡고 있을 겁니까?”유리는 그제야 시온의 팔을 붙든 채라는 것을 깨닫고 얼른 손을 놓았다.“죄송해요.”“온리원 님이 왜 형한테 사과해요?”시온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러게요. 제가 왜 변호사님한테 사과했죠?”유리도 뒤늦게 고개를 갸웃했다.태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도 왜 거슬렸는지 설명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정체를 알았으면 이제 만족했겠지.”“만족의 문제가 아니라니까.”“그럼 더 이상 묻지 마. 밖에서도 아는 척하지 말고.”“당연하지. 이게 알려지면 얼마나 위험한데.”시온은 곧바로 진지해졌다.“멤버들과 회사에도 말하지 않을게요. 매니저 형이 물어도 모른다고 할 겁니다.”“그리고 당분간 공식 일정 외의 이동은 전부 회사와 공유해. 혼자 다니지 말고.”“형이 내 변호사야, 엄마야?”“둘 다 하기 싫으니까 말 좀 들어.”“우리 엄마도 형처럼 무섭지는 않아.”형제의 대화에 유리가 작게 웃자 태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날카롭던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 변화는 짧았다.“갈아입을 옷과 필요한 물건부터 챙기죠.”“어디 가게요?”“민유리 씨 집입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하잖습니까.”“저 혼자 다녀올게요. 바로 옆인데.”“비상계단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아직 건물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태준은 반론을 차단하듯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제가 먼저 복도를 확인할 테니 뒤에 계십시오.”“나도 갈게.”시온이 따라나서려 하자 태준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넌 여기 있어.”“왜?”“너까지 복도에 나왔다가 CCTV에 찍히면 설명하기 귀찮아져.”“형 집에 동생이 오는 게 왜 설명할 일이야?”“모자부터 제대로 써. 창가에도 서지 말고.”시온은 못마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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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정체를 들켰습니다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좁은 침실 안에서 둘 사이의 거리가 단숨에 줄었다. 침대 끝에 걸린 유리는 더 물러나지 못하고 손으로 매트리스를 짚었다.“갑자기 보면 누구나 놀라죠.”“누구나 넘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바닥이 미끄러웠어요.”“우리 집 바닥은 안 미끄럽습니다.”“제가 잠이 덜 깨서 그랬나 보죠.”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유리를 내려다봤다. 짙은 눈동자가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변명을 거듭할수록 스스로 더 수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유리가 시선을 피하자 그가 허리를 조금 숙였다.“정말 놀라기만 한 겁니까?”귓가로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가까워진 체온과 옅은 향수 냄새에 유리의 호흡이 흐트러졌다.“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그건 제가 묻고 있습니다.”“정말 뻔뻔하시네요. 먼저 벗고 나온 건 변호사님이잖아요.”“제 집 욕실에서 나올 때 누가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저도 최애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올 줄은 몰랐고요.”“그런데 지금은 최애보다 제가 벗고 있던 게 더 신경 쓰이는 모양입니다.”정곡을 찔린 유리의 눈이 커졌다. 태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웃었다기보다는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사람의 표정이었다.“아니거든요.”“그렇습니까?”“네. 전혀 신경 안 쓰여요.”“그런데 얼굴은 왜 빨개집니까?”태준의 손이 유리의 귓가로 다가왔다. 긴 손가락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걷어 냈다. 손끝이 귓불을 스치는 순간 유리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여기까지.”그가 붉어진 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다 빨개졌는데.”“정태준 변호사님.”“네.”“지금 저 놀리는 거죠?”“확인하는 겁니다.”“뭘요?”태준의 시선이 유리의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 워낙 짧은 순간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귀에 닿은 손끝이 내려오며 목덜미 옆을 스치자 숨이 막혔다.“민유리 씨가 절 얼마나 의식하는지.”그 순간 거실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두 사람이 동시에 문 쪽을 바라봤다. 태준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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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는 문을 부수지 않았다

옷장 안쪽에서 진동음이 다시 울렸다. 부우웅―. 짧고 낮은 소리가 옷걸이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익숙한 휴대전화 진동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숨죽여 웃는 소리보다 섬뜩했다. 정태준은 곧바로 민유리를 자신의 뒤로 밀어냈다.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단단히 붙잡은 채, 다른 손을 들어 옷장 쪽으로 다가가려는 정시온을 막았다. “움직이지 마.” “안에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 “사람이 들어갈 공간은 아닙니다.” 유리의 옷장은 붙박이 형태였지만, 안쪽 깊이는 옷과 수납 상자를 넣을 정도에 불과했다. 성인 한 사람이 몸을 숨기기에는 지나치게 좁았다. 그러나 누군가 없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어느 것 하나 단정할 수 없었다. 태준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 뒤 옷장 전체와 주변을 촬영했다. 이어 방 안에 있던 긴 옷걸이 봉을 집어 들고 가장 바깥에 걸린 코트를 조심스럽게 밀어 냈다. 몇 벌의 옷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 사이로 검은 화면이 드러났다. 부우웅―. 정체불명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저거, 제 거 아니에요.” 유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검은색 휴대전화는 겨울 코트 안주머니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카메라가 방 안을 향하도록 렌즈 부분만 교묘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옷장 문을 손바닥 한 뼘 정도 열어 두면 침대와 옷장 사이가 고스란히 촬영되는 각도였다. 조금 전 유리가 옷을 챙기던 자리도 정확히 그 안에 들어갔다. 태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유리의 허리를 감싼 손이 뜨겁고 단단했다. 평소라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라고 의식했겠지만, 지금은 그 체온이 아니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형,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시온이 화면을 바라봤다. 액정에는 발신자 표시 없이 통화 아이콘만 깜빡이고 있었다. 일반 전화가 아니라 특정 앱의 수신 화면처럼 보였다. 몇 차례 진동하던 휴대전화는 이내 잠잠해졌다. “누가 우리가 찾았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한 걸까?” “그럴 가능성이 커.” 태준은 옷장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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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는 문을 부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보다 낫다.”“내가 보기에는 형이 위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내가?”태준의 시선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회사에 알리지도 않고 혼자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그건…….”“지금 즉시 매니저에게 연락해. 회사 차량이 지하 주차장으로 오게 하고, 오늘 일정이 끝날 때까지 혼자 움직이지 마.”“유리 씨는?”“내가 맡아.”대화가 끊긴 자리에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시온은 할 말이 더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휴대전화를 꺼냈다. 태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경찰이 도착한 것은 십여 분 뒤였다. 정복 경찰 두 명과 여성 수사관 한 명이 현관으로 들어오자 태준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조작된 사진이 처음 유포된 시각부터 협박 메일과 문자,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 문 앞에 놓인 상자와 방 안에서 발견된 휴대전화까지 빠짐없이 설명했다.여성 수사관은 장갑을 낀 채 옷장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기기의 앞뒤와 위치를 촬영한 뒤 투명한 증거 봉투에 넣었다.“충전선이 연결되지 않은 걸 보면 설치된 지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유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정말요?”“정확한 건 포렌식을 해 봐야 알겠지만, 영상 촬영과 실시간 전송을 계속했다면 배터리가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보조 배터리도 없고요.”“그럼 오늘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까?”태준이 물었다.“어젯밤 이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절전 상태에서 움직임을 감지해 촬영하는 방식이면 조금 더 오래됐을 수도 있고요.”안도하기에는 애매한 답이었다. 그래도 몇 주나 몇 달 동안 촬영당했을 가능성이 작다는 말만으로 숨통이 조금 트였다.수사관은 옷장 문과 현관 도어록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이 파손되거나 억지로 열린 흔적도 없었고, 창문도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저 말고는…… 한나가 알아요. 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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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는 문을 부수지 않았다

유리가 대답하기 전에 태준이 문을 열었다.“일정 늦겠다.”“형, 질투해?”“나가.”“아니면 말고.”시온은 웃으며 문밖으로 사라졌다. 복도 끝까지 동행한 경찰의 발소리가 멀어진 뒤 태준이 현관문을 닫았다.집 안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조금 전까지 여러 사람이 오갔는데도 갑자기 지나치게 조용해졌다. 유리는 빈 현관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태준의 말이 떠올랐다.“질투한 거 아니죠?”“뭘 말입니까?”“시온 씨와 제가 이야기하는 걸 계속 방해했잖아요.”“그건 방해가 아니라 돌려보낸 겁니다.”“그게 그거 아닌가요?”“정시온은 오늘 일정이 있습니다.”“저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요.”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실에 놓인 유리의 여행 가방을 집어 들었다.“필요한 물건을 더 챙기십시오. 이 집에는 당분간 출입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말 돌리지 마세요.”“돌린 적 없습니다.”“그럼 질투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요.”“왜 그렇게 확인하고 싶습니까?”태준이 몸을 돌렸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오자 유리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오전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길게 들어왔지만 그의 얼굴 절반은 그늘에 잠겨 있었다.“제가 질투했으면 좋겠습니까?”“그게 아니라…….”“아니면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습니까?”“두 개만 선택지예요?”“질문한 사람이 선택해야죠.”태준은 유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얼마 전 침실에서보다 더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장난스럽게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유리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떤 쪽도 고르지 못했다. 질투했다면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었고, 아무렇지 않았다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았다.그 모순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자 태준의 손이 턱 아래로 들어왔다. 강제로 들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이 닿은 자리에서 열이 번졌다.“대답하기 어렵습니까?”“지금 이런 이야기 할 상황이 아니잖아요.”“아까 먼저 물은 건 민유리 씨입니다.”“그때는 이렇게 진지하게 대답할 줄 몰랐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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