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인기 아이돌 정시온을 데뷔 전부터 찍어온 유명 홈마 ‘온리원’. 그 정체는 평범한 출판사 편집자 민유리다. 어느 날 그녀의 사진이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시온의 열애설에 이용되고, 원본을 확인하러 온 연예계 전문 변호사 정태준에게 정체를 들킨다. 그런데 태준은 시온의 친형이자 유리의 옆집 남자였다. 최애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두 사람의 비밀 공조. 어느 순간부터 유리의 카메라보다 태준의 시선이 먼저 그녀를 쫓기 시작한다.
もっと見る민유리는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빛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
무대 위로 푸른 조명이 쏟아지는 순간, 그녀는 정시온의 눈가에 번지는 웃음을 보았다. 객석을 가득 채운 함성과 빠르게 움직이는 조명, 귀가 먹먹할 만큼 큰 음악 속에서도 그 표정만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유리는 숨을 짧게 들이마신 뒤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시온이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 때마다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는 각도와 조명이 바뀌는 주기, 다음 동작에서 시선이 머무를 위치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데뷔 전 작은 야외무대에서부터 그를 찍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시온이 언제 왼쪽 입꼬리부터 올려 웃는지, 긴장하면 마이크를 쥔 손가락을 한 번씩 움직인다는 것까지 유리는 렌즈 너머에서 오래 지켜봤다. “온리원 님, 오늘 자리 대박이네요.” 옆에 있던 홈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리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작게 웃었다. “그러게요. 조명도 잘 들어오고요.” “아까 시온이가 이쪽 봤어요. 분명히 온리원 님 카메라 찾은 것 같은데.” “여기 카메라가 몇 대인데 저를 찾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 전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시온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와 마주친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유리는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을 오래 남겨주고 싶었다. 언젠가 시온이 지금보다 더 큰 무대에 서게 되더라도, 아무도 이름을 모르던 시절부터 열심히 달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공연은 루미너스의 신곡 무대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멤버들이 취재진과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유리는 카메라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흔들린 사진과 눈을 감은 사진을 우선 걸러내고, 시온의 표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담긴 장면에 표시를 남겼다. 오늘도 좋은 사진이 많았다. 특히 행사 후반, 시온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광고주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시온이 한 여성과 악수하며 웃고 있었지만 주변에는 다른 멤버와 소속사 직원, 광고주 관계자들이 함께 서 있었다. 그중 한 직원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눈을 감고 있어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유리는 사진에 별 두 개만 표시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공개하지 않을 사진도 원본은 전부 보관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필요 없어 보여도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쓸 일이 생기곤 했다. 카메라 전원을 끈 유리는 장비를 가방에 정리했다. 무거운 망원렌즈를 분리해 완충재 사이에 넣고 지퍼를 잠그자, 스트랩 끝에 달린 파란 별 장식이 작게 흔들렸다.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 선배에게 받은 물건으로, 그녀가 홈마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함께한 장식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온리원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었다. 현장에서 유리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파란 별이 달린 카메라를 보면 슬쩍 자리를 비켜주거나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유리는 공연장을 나서기 전에 장식을 스트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출판 기획 자료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 반차까지 썼다. 여기서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에 자신이 온리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회사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한나가 알면 이번에는 정말 계정 비밀번호부터 바꾸겠지.’ 물론 서한나는 이미 유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들켰으니 지금까지 5년 넘게 비밀을 지켜준 셈이었다. 다만 최근 마감을 앞둔 원고가 세 편이나 쌓인 상황에서 유리가 반차를 쓰고 공연장에 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유리는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에는 아직도 수많은 팬이 머물러 있었다. 누군가는 조금 전의 무대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유리도 당장 카메라를 열어 사진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기로 했다.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택시에 올라탄 직후였다. 화면에는 한나의 이름 대신 루미너스 단체 채팅방 알림이 연달아 떠올랐다. 행사가 끝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취재 사진과 짧은 영상이 쏟아지고 있었다. 유리는 습관처럼 시온의 이름을 검색하려다가 멈칫했다. 평소와 다른 단어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정시온 여자 누구야?] [오늘 행사장에서 여자랑 따로 만났다는 거 진짜야?] [사진 떴는데 온리원 워터마크 있음.] 유리의 손끝이 굳었다. 잠시 후 채팅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오늘 행사 후반, 시온이 광고주 관계자와 인사하던 순간이었다. 유리가 조금 전 카메라에서 확인했던 바로 그 사진. 다만 원본과는 구도가 달랐다. 시온과 여성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잘려나가 있었다. 두 사람만 남도록 사진을 좁게 자른 탓에 누가 보아도 은밀한 만남처럼 보였다. 배경에 있던 브랜드 로고마저 흐리게 지워져 공식 행사장이라는 사실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는 유리의 워터마크가 남아 있었다. ONLY ONE. “이게 왜…….” 유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자신이 올린 사진이 아니었다. 아직 메모리카드에서 꺼내지도 않은 사진이 외부로 퍼질 리도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작에 쓰인 것은 완전히 같은 장면이 아니었다. 유리가 지난달 공개한 다른 공식 행사 사진 위에 오늘 촬영된 시온과 여성의 모습을 합성하고, 워터마크만 남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팬들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사진의 출처가 온리원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유리의 계정으로 몰려들었다. [해명해 주세요.] [공개 스케줄만 찍는다면서 몰래 따라간 거예요?] [열애설 퍼뜨리고 싶어서 일부러 올린 거 아니야?] [사진 원본 공개하세요.] 알림 숫자가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올라갔다. 유리는 계정을 닫는 대신 우선 공지문을 작성했다. [현재 유포 중인 사진은 제가 게시한 사진이 아닙니다. 오늘 행사는 사전에 공지된 공식 일정이며, 사진 속 장소 역시 행사장 내부입니다. 정확한 상황을 확인한 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신상 정보 및 관계자 사진의 재유포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린 유리는 잠시 망설였다. 성급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논란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침묵하면 사진을 유포했다는 의심이 굳어질 것이다. 결국 유리는 공지문을 올렸다. 곧장 소속사 공식 이메일로 연락하려 했지만 발신인에 본명을 적어야 할지, 온리원이라는 계정명만 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원본을 보내면 촬영 위치와 시간이 확인되고, 현장에 있던 일반인의 얼굴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온라인에 바로 공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유리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눈을 감았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 않자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지금은 누구와도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팬인지 기자인지, 아니면 사진을 조작한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는 대신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사진 원본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습니다. 스타웨이 엔터테인먼트의 법률대리인 정태준 변호사입니다.] 유리의 눈썹이 가늘게 모였다. 정태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유리는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 옆집 남자가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택배 상자가 뒤바뀌었을 때 문 앞에 붙어 있던 명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설마 같은 사람일 리는 없겠지.’ 정태준이라는 이름이 드문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옆집 남자는 늘 늦게 출근하거나 새벽에 돌아왔다. 직업을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말끔한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회사원쯤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유리는 답장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법률대리인이 맞더라도 곧바로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다. 먼저 소속사의 공식 연락처를 통해 본인 확인부터 해야 했다. 한 시간 뒤,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유리는 어깨를 짓누르는 카메라 가방을 고쳐 멨다. 반대쪽 손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까지 들려 있었다. 장시간 촬영한 탓에 손목이 뻐근했고 눈도 따가웠지만, 집에 들어가면 곧바로 원본부터 확인해야 했다. 로비는 조용했다. 경비 직원에게 인사를 건넨 유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틈 사이로 들어왔다. 센서가 작동하며 문이 다시 열렸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올라탔다. 유리는 반사적으로 한쪽으로 비켜섰다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옆집 남자였다. 정태준. 낮게 내려온 검은 머리 아래로 단정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차가운 인상과 달리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줄 때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피곤한지 넥타이가 조금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한 손에는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리가 먼저 인사하자 태준도 짧게 고개를 숙였다. “늦으셨네요.” “일이 좀 있었어요.” 평소라면 그 정도로 대화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둘만 남자 유리는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조금 전 받은 문자 속 이름 때문이었다. 그녀는 태준의 옆얼굴을 슬쩍 바라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닐 거야.’ 세상에 정태준이 한 명뿐인 것도 아니었다. 스타웨이의 법률대리인이 하필 같은 층 옆집에 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엘리베이터가 출발하자 유리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카메라 가방의 어깨끈이 흘러내렸다. 무게 중심이 기울며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 가방까지 아래로 떨어졌다. “아……!” 유리가 황급히 몸을 숙였지만 태준이 더 빨랐다. 그는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카메라 가방을 붙잡았다. 반대쪽 손으로는 유리의 팔꿈치를 받쳐 기울어진 몸을 세웠다. 단단한 손이 팔에 닿았다가 곧 떨어졌다. “괜찮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놀란 유리는 카메라 가방부터 살폈다. 다행히 지퍼는 닫혀 있었고 장비가 부딪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밀어 넣었던 파란 별 장식이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엘리베이터 조명 아래에서 푸른 장식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유리는 그것을 감추려고 급히 손을 뻗었다. 그보다 먼저 태준의 시선이 움직였다. 파란 별에서 카메라 가방으로, 다시 유리의 얼굴로. “이거 놓아주세요.” 유리가 손잡이를 당겼지만 태준은 바로 놓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무심하던 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피곤함은 사라지고 상대의 작은 반응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날카로운 기색이 자리 잡았다. “이 장식.”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울렸다. “어디서 났습니까?” “제가 산 거예요.” “언제부터 사용했죠?” “그걸 왜 물어보세요?”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손을 놓은 뒤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을 몇 번 누른 그가 유리에게 보여준 것은 온리원의 계정이었다. 유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면에는 몇 달 전 시온의 생일 전시회에서 찍힌 사진이 떠 있었다. 시온의 대형 사진 옆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의 손이 희미하게 비쳤고, 스트랩 끝에서 파란 별 장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리는 사진을 올리기 전 여러 번 확인했지만 그것이 찍힌 줄은 미처 몰랐다. “팬이세요?” 유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죠. 요즘 루미너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팬이냐고 물은 게 아닙니다.” 태준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민유리 씨가 이 계정의 주인인지 묻는 겁니다.” 엘리베이터가 유리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지만 유리는 내리지 못했다. 먼저 나간 태준이 열린 문을 한 손으로 잡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안에 남으면 오히려 대답을 피하는 모양이 될 것 같았다. 유리는 카메라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그럼 질문을 바꾸죠.” 태준이 유리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길게 뻗은 복도 끝에는 나란히 붙은 두 집의 문이 보였다. 멀쩡한 옆집 남자와 함께 귀가하는 평범한 상황이어야 했지만, 유리는 취조실로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저녁 여덟 시 십칠 분, 한강컨벤션센터 안에서 정시온을 촬영했습니까?” 유리의 손가락이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그 시간에 제가 어디 있었는지까지 말씀드릴 이유는 없어요.” “사진 원본을 가지고 있겠군요.” “대체 누구신데 자꾸 원본을 찾으세요?” 태준이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의 집 사이,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가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유리에게 내밀었다. 희고 단정한 명함 중앙에 검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로운 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 정태준. 휴대전화로 받은 문자 속 이름과 정확히 같았다. 유리는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가능성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문자 보내신 분이었어요?” “세 번 전화했습니다.”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어요.” “문자는 확인하셨습니까?” “본인 확인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제 정보를 먼저 줄 수는 없잖아요.” 태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겁을 먹거나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수많은 작가와 계약서를 검토하는 편집자였고, 사진을 공개할 때마다 초상권과 저작권 문제를 확인해왔다. 변호사라는 직함만으로 주눅이 들 생각은 없었다. “스타웨이 엔터테인먼트에 확인하셔도 됩니다.” “확인한 다음에는요?” “사진 원본을 제출해주셔야겠습니다.” “온라인에 공개하지는 않을 거예요. 원본에는 일반인 얼굴과 미성년 연습생도 찍혀 있어요.” “공개하라는 게 아닙니다. 법률대리인에게 제출해달라는 겁니다.” “그쪽이 정말 소속사 법률대리인이라는 게 확인되면 필요한 부분만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원본 파일 자체를 넘기지는 않겠습니다.” 태준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본인이 유포한 게 아니라면 숨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유리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예의 바른 미소가 사라졌다.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겁니다.” “워터마크만 보고요?” “사진은 온리원의 이름으로 퍼졌습니다.” “제 워터마크를 누군가 도용한 거예요. 저는 그 사진을 게시한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 잘라서 올릴 이유도 없어요.” “그걸 증명하려면 원본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정식 절차로 요청하세요. 변호사라는 사람이 한밤중에 옆집 복도에서 상대를 몰아세우는 게 정식 절차는 아닐 텐데요.” 유리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하루 종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시온의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유리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넘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태준이었다. “옆집이라는 사실은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믿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제가 이 건물에 먼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따라 이사 왔다는 뜻인가요?” “아직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은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유리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을 범인으로 정해놓고 질문하는 것 같았다. 스타웨이의 법률대리인이라면 시온을 보호하려는 태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 없이 자신의 일상과 집까지 의심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소속사에 직접 연락할게요. 필요한 자료도 그쪽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유리는 대화를 끝내려고 현관문에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때 태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민유리 씨.” “또 뭐예요?” “계속 중요한 질문을 피하고 있습니다.” 유리는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무슨 질문이요?” “당신이 온리원인지.” 도어록이 잠금 해제음을 냈다. 유리는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인정하면 자신의 5년이 한순간에 타인의 손에 넘어갈 것 같았다. 부정하기에는 파란 별 장식과 카메라, 오늘 촬영된 사진까지 너무 많은 증거가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요?” “믿기 어렵겠죠.”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유리가 문을 열려던 순간 태준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시온이가 이 장식을 기억합니다.” 손잡이를 잡은 유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태준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었지만 조금 전처럼 범인을 추궁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무슨 뜻이에요?” “데뷔 전 첫 행사부터 같은 파란 별이 달린 카메라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관객이 스무 명도 되지 않았던 무대에서 자신을 끝까지 찍어준 사람이었다고.” 그날을 유리도 기억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작은 야외무대. 대부분의 관객은 비를 피해 처마 아래로 들어갔지만 시온은 예정된 곡을 끝까지 불렀다. 고장 난 음향 장비 때문에 반주가 몇 번이나 끊겼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리는 젖은 카메라를 옷으로 감싼 채 마지막 인사까지 찍었다. 그 사진이 온리원의 첫 게시물이었다. 시온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얘기를 변호사님한테 했다고요?” “했습니다.” “아무리 담당 변호사라도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합니까?” 태준의 입가에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잠시 유리를 바라보다가 명함을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담당 변호사라서 들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요?” “가족이니까요.” 복도의 센서등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졌다. 희미한 빛이 태준의 얼굴을 훑었다. 그 순간 유리는 그에게서 익숙한 흔적을 발견했다. 눈매와 콧날은 달랐지만 입술을 굳게 다물 때 생기는 선,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버릇이 시온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이미 답을 알아챈 듯 거세게 뛰었다. 태준이 마침내 말했다. “정시온의 형입니다.” 유리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가장 오래 좋아해온 최애의 친형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몇 달 동안 택배를 바꿔 받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나누고, 늦은 밤이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었던 옆집 남자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남자가 연예계 전문 변호사이며, 현재 자신을 사진 유포자로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태준의 시선이 파란 별을 지나 유리의 눈에 닿았다. “민유리 씨.” 한 치의 도망갈 틈도 주지 않는 목소리였다. “당신이 온리원 맞죠?” 유리는 품에 안은 카메라를 내려다봤다. 렌즈 안에는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시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을 가득 채운 사람은 시온이 아니었다. 그의 형, 정태준이었다. 최애에게는 5년 동안 들키지 않았던 비밀을. 최애의 형에게는 단 하루 만에 들켜버렸다.그래도 그 사람을 선택할 건가요?오늘 오후 일곱 시까지 대답하세요.남기혁이 남긴 질문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민유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는 그 대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생각이었다.정태준을 선택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을 더 공격할 것이고, 선택하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이 유리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을 것이다. 아무런 답을 하지 않더라도 침묵을 거절로 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온리원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은 삭제되지 않은 채 계속 퍼지고 있었다. 소속사가 플랫폼 측에 계정 탈취 사실과 불법 촬영 자료임을 알렸지만, 긴급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진은 수천 개의 계정으로 복사됐다. 원본 게시물을 지운다고 이미 저장된 파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온라인에서는 유리의 정체를 추측하는 일이 놀이처럼 번졌다.온리원이 과거 행사장에서 착용했던 옷과 사진 속 옷을 비교했고, 카메라 가방에 달려 있던 파란 별 장식을 단서로 예전 영상들을 뒤졌다. 행사장에 출입한 여성들의 얼굴을 무단으로 캡처해 후보 목록을 만드는 계정까지 생겼다.다온북스라는 회사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오전 일곱 시가 조금 지난 뒤였다.온리원 출판사 직원이라는 말 있던데?아동 출판 쪽에서 일한다는 얘기 예전부터 있었음.정시온이 동화책 추천했던 것도 온리원이 뒤에서 부탁한 거 아냐?근거 없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시온이 몇 달 전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이 편집한 책을 추천했던 일을 기억했다. 출판사에서 광고를 의뢰한 적도, 유리가 책을 전달한 적도 없었다. 시온이 개인적으로 읽고 좋았던 책을 소개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것마저 형에게 접근하기 위한 계획으로 왜곡되고 있었다.유리가 댓글을 내리던 손을 멈추지 않자 태준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어디까지 알려졌는지 확인해야 해요.”“제가 확인합니다.”“제 이야기잖아요.”“그래서 당사자인 당신이 계속 볼 필요가 없습니다.”태준은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테이블 반대편으로 밀어
사진은 회의실 유리벽 바로 바깥에서 찍혀 있었다.정태준은 화면을 확인한 즉시 민유리의 어깨를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자신의 등으로 그녀를 완전히 가린 채 유리벽 너머의 복도를 살폈다. 붉은 비상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였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문 잠그세요.”그의 지시에 보안 직원이 회의실 문을 걸어 잠갔다. 다른 직원은 전동 블라인드를 작동시켰지만 화재경보 시스템과 함께 전력이 일부 차단됐는지 반응하지 않았다.“수동 가림막 없습니까?”“회의실 안쪽 수납장에 있습니다.”보안 직원들이 이동식 패널을 유리벽 앞으로 세우는 동안 태준은 유리를 회의실 가장 안쪽으로 데려갔다. 유리는 그의 셔츠를 움켜쥔 채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누군가 불과 몇 초 전까지 저 유리벽 너머에 있었다.벽 하나가 아니라 얇은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태준의 품에 안긴 자신을 촬영했다. 사진의 각도만 보면 렌즈는 허리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었다. 몰래 몸을 숙여 찍었거나 복도에 카메라를 미리 설치한 것일 수도 있었다.“경찰이 있는 건물 안까지 들어왔어요.”유리가 속삭였다.“아직 건물 안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태준이 짧게 대답했지만 팔에 들어간 힘은 느슨해지지 않았다.“사진은 실시간이잖아요.”“자동 전송되는 카메라를 설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그게 더 무서운 말인 건 알죠?”태준은 대답 대신 유리의 뒤통수를 감싸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붉은 불빛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단단한 몸과 빠른 심장 소리만 가까워졌다.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태준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실제 화재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수사관이 보안팀과 함께 무전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화재 신호가 감지된 곳은 같은 건물 육 층 자료실이었다. 천장 감지기가 작동했으나 CCTV에서는 연기나 불꽃이 확인되지 않았다.누군가 의도적으로 경보를 울린 것이라면 목적은 분명했다.회의실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복도로 끌어내는 것.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유리에게 접근하는 것.
윤서린.이름이 드러난 순간 민유리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공개 일정이 있을 때마다 팬들의 줄을 정리하고, 위험하게 밀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달려와 막던 직원이었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맡은 일은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칠 주년 전시회 마지막 날에도 윤서린은 소속사 관계자 자격으로 찾아왔다. 루미너스 멤버들에게 전달할 편지와 선물을 확인한다는 이유였고, 유리는 그녀에게 직접 은색 스태프 팔찌를 건넸다.그때 나눈 말은 짧았다.전시회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시온 씨가 좋아해 주시면 좋겠네요.윤서린은 전시장 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유리는 촬영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났고, 이후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그런데 사진 속 윤서린은 분명 은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시온아.”정태준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당겼다.“윤서린 대리 지금 어디 있지?”—오늘 회사에 안 나왔어. 어젯밤 늦게 몸이 안 좋다면서 연차를 냈대.“연차 신청 시각은?”—열한 시 조금 넘어서. 그런데 형, 그때면 유리 씨 가방에 있던 추적기가 레지던스로 이동하고 있었을 때잖아.회의실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굳었다.윤서린이 갑자기 연차를 낸 시각과 추적기의 위치가 새 숙소로 이동한 시각이 겹쳤다.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했다.“연락은?”—팀장님도 계속 전화 중인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어. 경찰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고.“혼자야?”—매니저 형이랑 보안팀 직원도 있어.“윤서린 자리에는 접근하지 마. 개인 물건도 만지지 말고.”—알았어. 그런데 형…….시온이 말을 멈췄다. 망설이는 숨소리 뒤로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윤 대리가 범인이라면 나 때문일까?“그게 왜 네 탓이지?”—내 팬을 관리하는 직원이었잖아. 팬레터와 일정도 전부 알고 있었고. 온리원 님이 언제 오는지 파악한 것도 결국 나를 통해서였을 테니까.“정시온.”태준은 동생의 말을 단호하게
“여기 위치도 들켰습니다.”정태준의 말이 떨어지자 민유리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도시의 불빛이 유리창 너머로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수많은 창문 중 어느 곳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낯설어졌다. 욕실과 옷장을 샅샅이 확인하고, 출입 카드가 있어야만 올라올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왔는데도 범인은 두 사람을 따라왔다. 정확히는 유리가 자신의 손으로 범인의 눈을 이곳까지 데려온 셈이었다.파란 별 장식 속에서 꺼낸 추적기의 불빛이 다시 깜빡였다.“이거 아직 작동하고 있는 거죠?”“네.”“그럼 지금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보고 있을 수 있고요?”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부터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 이어 유리의 휴대전화도 받아 같은 조치를 한 뒤, 침실 서랍에서 은박 포장지와 금속 재질의 아이스 버킷을 꺼냈다. 추적기를 직접 만지지 않도록 장갑을 낀 채 여러 겹으로 감싸 버킷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완전히 차단됐을까요?”“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기 종류를 확인해야 합니다.”그는 숙소에 설치된 유선 전화로 오현석에게 연락했다. 추적기가 발견된 경위와 현재 위치가 노출됐을 가능성을 짧고 정확하게 설명한 뒤, 경찰과 건물 보안팀에 동시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숙소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전부 막고, 지하 주차장 출입 차량을 확인해. 건물 밖에서 장시간 정차 중인 차량도.”—너희는 바로 이동할 거야?“보안팀이 동선을 확보할 때까지 기다린다. 추적기는 별도로 빼서 반대 방향으로 이동시켜.”—미끼로 쓰려고?“경찰 판단에 맡길 거야. 일단 신호가 갑자기 끊어진 것처럼 보이면 상대가 직접 확인하러 올 수도 있으니 주변부터 잡아야 해.”통화를 끊은 태준이 현관문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유리는 담요를 두른 채 거실 중앙에 서 있었다. 얇은 티셔츠와 짧은 수면 바지 차림이라 급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옷부터 갈아입을게요.”“지금은 침실에 혼자 들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