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Chapter 1 - Chapter 10

12 Chapters

프롤로그. 최애의 형에게 정체를 들켰다

민유리는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빛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무대 위로 푸른 조명이 쏟아지는 순간, 그녀는 정시온의 눈가에 번지는 웃음을 보았다. 객석을 가득 채운 함성과 빠르게 움직이는 조명, 귀가 먹먹할 만큼 큰 음악 속에서도 그 표정만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유리는 숨을 짧게 들이마신 뒤 셔터를 눌렀다.찰칵, 찰칵, 찰칵.시온이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 때마다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는 각도와 조명이 바뀌는 주기, 다음 동작에서 시선이 머무를 위치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데뷔 전 작은 야외무대에서부터 그를 찍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시온이 언제 왼쪽 입꼬리부터 올려 웃는지, 긴장하면 마이크를 쥔 손가락을 한 번씩 움직인다는 것까지 유리는 렌즈 너머에서 오래 지켜봤다.“온리원 님, 오늘 자리 대박이네요.”옆에 있던 홈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리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작게 웃었다.“그러게요. 조명도 잘 들어오고요.”“아까 시온이가 이쪽 봤어요. 분명히 온리원 님 카메라 찾은 것 같은데.”“여기 카메라가 몇 대인데 저를 찾겠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 전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시온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와 마주친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유리는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을 오래 남겨주고 싶었다. 언젠가 시온이 지금보다 더 큰 무대에 서게 되더라도, 아무도 이름을 모르던 시절부터 열심히 달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공연은 루미너스의 신곡 무대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멤버들이 취재진과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유리는 카메라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흔들린 사진과 눈을 감은 사진을 우선 걸러내고, 시온의 표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담긴 장면에 표시를 남겼다.오늘도 좋은 사진이 많았다.특히 행사 후반, 시온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광고주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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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남자가 최애의 형이라니

정시온의 형입니다.그 한마디를 들은 뒤로 민유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정태준은 그녀가 몇 달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고, 택배 상자가 잘못 배송될 때마다 문 앞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던 옆집 남자였다. 늘 단정한 정장을 입고 다니며 새벽에도 전화로 누군가와 법률 용어를 주고받는, 직업을 굳이 묻지 않아도 바쁘고 까다로운 일을 할 것 같던 사람이었다.그가 변호사라는 사실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정시온의 친형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태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굵게 자리 잡은 눈썹과 차갑게 뻗은 눈매는 시온과 달랐지만, 입술을 다문 채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는 버릇에는 분명 닮은 구석이 있었다. 시온이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짓는 표정과도 비슷했다.“그렇게 보시면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습니까?”태준의 질문에 유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누가 찾았다고 했어요?”“조금 전부터 제 얼굴을 훑어보고 있지 않습니까.”“사실인지 확인한 것뿐이에요.”“확인됐습니까?”유리는 대답 대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괜히 아니라고 우기기에는 닮은 점을 이미 찾아버렸다. 무엇보다 태준이 시온의 데뷔 전 무대와 파란 별 장식까지 알고 있었다. 시온 본인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었다.그렇다고 자신의 정체까지 솔직하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태준은 스타웨이의 법률대리인이었고, 지금 온리원을 사진 유포자로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이 팬이라는 사실보다 어떤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서 촬영했는지를 먼저 확인하려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형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시려고요?”유리의 물음에 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가족관계증명서라도 보여드려야 합니까?”“요즘은 명함도 위조하고 가족도 사칭하는 세상이잖아요.”“의심이 많은 편이군요.”“조금 전까지 저를 사진 유포자로 의심하던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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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형의 집에 찾아왔다

“필요한 물건만 챙기십시오.”정태준의 말은 제안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에 가까웠다.민유리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그의 손과 어두워진 거실을 번갈아 바라봤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조금 전 도착한 사진이 떠 있었다. 오피스텔 로비로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과 파란 별 장식, 그 아래 적힌 짧은 문장.온리원, 찾았다.장난이라고 넘기기에는 사진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누군가는 공연장에서부터 유리를 따라왔고, 그녀가 사는 건물까지 알아냈다. 어쩌면 지금도 맞은편 건물이나 주차된 차량 안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그럼에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의 집에서 밤을 보내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가 변호사이고 시온의 형이며 같은 층 옆집에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호텔로 가면 안 돼요?”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지금 이동하는 동안 다시 노출될 수 있습니다.”“경찰에 신고하면요?”“신고는 할 겁니다. 다만 이 사진 한 장만으로 당장 신변 보호를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발신자 추적을 요청하고 건물 보안도 강화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변호사님 집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있고요?”유리의 질문에 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제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까?”“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옆집 남자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최애의 형이라고 하더니, 제 집에 들어와서 사진을 확인하고, 이제는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고 있잖아요. 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태준은 곧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목에서 손을 놓고 반걸음 물러났다. 단단하게 닿아 있던 온기가 사라지자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맞는 말입니다.”순순히 인정하는 대답이 돌아오자 오히려 유리가 당황했다.“제가 민유리 씨라면 저 역시 경계했을 겁니다. 그러니 선택권을 드리죠. 제 집 현관과 거실에는 보안 카메라가 있습니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영상을 켜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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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오해받았습니다

“……형. 여자 있었어?”정시온의 목소리가 현관에 떨어진 순간, 세 사람 사이의 시간이 완벽하게 멎었다.민유리는 정태준의 단단한 가슴에 손바닥을 댄 채였고, 정태준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급하게 붙잡은 탓에 손가락이 얇은 잠옷 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태준의 몸에 걸쳐진 것이 허리의 수건 한 장뿐이라는 사실이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넘어질 뻔한 사람을 구해 준 자세였는데, 현관에서 바라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은밀했다.“문부터 닫아.”먼저 정신을 차린 태준이 낮게 말했다.“아, 응.”시온은 순순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손은 도어록에, 시선은 두 사람에게 고정한 채였다. 무대 위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아이돌답지 않게 두 눈이 커다랗게 뜨여 있었다.“놓, 놓아 주세요.”유리가 속삭이자 태준이 팔을 풀었다. 그러나 완전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비틀거리는 유리의 어깨를 한 번 더 붙든 뒤 균형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거뒀다.“괜찮습니까?”“네. 아주 괜찮으니까 옷부터 좀…….”유리는 차마 아래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이 뜨거워진 정도가 아니었다. 귀와 목덜미까지 모조리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김이 날 것 같았다.반면 태준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는 소파 위에 벗어 두었던 셔츠를 집어 들었다. 유리는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시야 한쪽으로 움직임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넓은 등 위에서 물방울이 미끄러지고, 셔츠가 단단한 어깨를 덮었다. 길고 곧은 손가락이 단추를 하나씩 채울 때마다 조금 전 손바닥 아래에서 느꼈던 체온이 되살아났다.‘미쳤어. 그걸 왜 기억해.’유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이제 설명해 봐.”시온이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뭘.”“형이 아침부터 반쯤 벗은 채로 여자를 안고 있었던 이유.”“넘어질 뻔해서 붙잡은 거야.”“그 앞부분 말고. 왜 형 집에 잠옷 입은 여자가 있느냐고.”“사건 관계자다.”“사건 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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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에게 정체를 들켰습니다

“민유리 씨가 혹시, 온리원 님입니까?”정시온의 질문이 떨어진 뒤 거실은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해졌다.민유리는 입술을 열지 못했다. 아니라고 부정해야 했다. 시온은 파란 별 장식을 본 적이 있을 뿐이고, 자신이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준 것도 아니었다. 팬 사인회에 참석한 적도 없으니 얼굴을 기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면 아직 넘어갈 수 있었다.그런데 정작 시온과 눈이 마주치자 준비했던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수없이 찍어 온 사람이었다. 가장 빛나던 순간뿐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지쳐 있던 얼굴도, 다친 발목을 숨기며 끝까지 웃던 모습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니 묘한 서운함이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동시에 두려웠다. 유리가 사랑했던 것은 시온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던 적당한 거리였다. 무대 위의 사람과 객석에 있는 팬.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순간을 나눌 수 있는 거리.그 선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다.“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태준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유리는 넓은 등 뒤에 가려졌고, 시온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차단됐다.“형.”“확인할 필요 없는 일이야.”“하지만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온리원 님이라면 나도 알아야 해.”“네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보다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게 먼저다.”“호기심 때문에 묻는 거 아니야.”시온의 목소리도 낮아졌다.“온리원 님은 내 데뷔 때부터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야. 이번 일 때문에 그 사람이 협박받고 있다면 모른 척할 수 없어.”“안다고 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적어도 사과는 할 수 있잖아.”태준의 어깨 너머로 시온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태준의 셔츠 자락을 가볍게 잡았다.그가 즉시 뒤를 돌아봤다.“왜 그러십니까?”“괜찮아요.”“뭐가 괜찮다는 겁니까?”“말할게요.”유리는 태준의 등 뒤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왔다. 보호받는 것은 고마웠지만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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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는 문을 부수지 않았다

옷장 안쪽에서 진동음이 다시 울렸다.부우웅―.짧고 낮은 소리가 옷걸이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익숙한 휴대전화 진동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숨죽여 웃는 소리보다 섬뜩했다.정태준은 곧바로 민유리를 자신의 뒤로 밀어냈다.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단단히 붙잡은 채, 다른 손을 들어 옷장 쪽으로 다가가려는 정시온을 막았다.“움직이지 마.”“안에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사람이 들어갈 공간은 아닙니다.”유리의 옷장은 붙박이 형태였지만, 안쪽 깊이는 옷과 수납 상자를 넣을 정도에 불과했다. 성인 한 사람이 몸을 숨기기에는 지나치게 좁았다. 그러나 누군가 없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어느 것 하나 단정할 수 없었다.태준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 뒤 옷장 전체와 주변을 촬영했다. 이어 방 안에 있던 긴 옷걸이 봉을 집어 들고 가장 바깥에 걸린 코트를 조심스럽게 밀어 냈다.몇 벌의 옷이 좌우로 흔들렸다.그 사이로 검은 화면이 드러났다.부우웅―.정체불명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저거, 제 거 아니에요.”유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검은색 휴대전화는 겨울 코트 안주머니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카메라가 방 안을 향하도록 렌즈 부분만 교묘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옷장 문을 손바닥 한 뼘 정도 열어 두면 침대와 옷장 사이가 고스란히 촬영되는 각도였다.조금 전 유리가 옷을 챙기던 자리도 정확히 그 안에 들어갔다.태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유리의 허리를 감싼 손이 뜨겁고 단단했다. 평소라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라고 의식했겠지만, 지금은 그 체온이 아니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형,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시온이 화면을 바라봤다.액정에는 발신자 표시 없이 통화 아이콘만 깜빡이고 있었다. 일반 전화가 아니라 특정 앱의 수신 화면처럼 보였다. 몇 차례 진동하던 휴대전화는 이내 잠잠해졌다.“누가 우리가 찾았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한 걸까?”“그럴 가능성이 커.”태준은 옷장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미 출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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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은 최애가 아니었다

다음은 친구 차례예요.사진 아래 적힌 한 문장을 확인한 순간, 민유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어두운 차 안의 조수석에는 서한나의 사원증과 휴대전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은색 입장 팔찌는 휴대전화 위에 일부러 잘 보이도록 펼쳐져 있었고, 사진 오른쪽 위에는 한나가 늘 차에 걸어 두는 작은 토끼 방향제가 찍혀 있었다.한나의 차가 분명했다.“전화해 볼게요.”유리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한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두 번 이어졌지만 받지 않았다. 사진 속에 휴대전화가 놓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통화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안 받아요.”“회사로 전화하십시오.”정태준은 경찰에게 사진과 발신 번호를 보여 주며 차량 수배와 위치 확인을 요청했다. 조금 전까지 유리를 향해 있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의 냉정한 얼굴만 남아 있었다.유리는 다온북스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는 짧은 시간조차 견디기 어려웠다. 연결된 직원에게 한나의 이름을 말하자 잠시 기다려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아침에 잠깐 출근했다가 지하 주차장에 내려간 뒤로…….”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는 전화를 끊었다.“주차장에 내려갔대요.”“언제요?”“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제가 회사로 가 볼게요.”유리가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자 태준이 손목을 잡았다.“경찰이 먼저 확인할 겁니다.”“한나가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그러니까 더더욱 혼자 움직이면 안 됩니다.”“혼자 안 가요. 변호사님도 같이 가 주세요.”유리는 태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차가운 손끝이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부탁이에요.”태준의 시선이 맞잡힌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잠시 후 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제 옆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하십시오.”“약속할게요.”“무슨 일이 생겨도 먼저 뛰어가지 말고요.”“네.”“제가 멈추라고 하면 이유를 묻기 전에 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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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찍는 사람

누군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대 위의 정시온이 아니라 렌즈 뒤의 민유리를 지켜보고 있었다.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유리는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얇은 잠옷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해졌다. 사진 속 자신은 언제나 무방비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카메라를 점검하거나, 사람 없는 복도에서 렌즈를 교체하고, 촬영이 끝난 뒤 지친 얼굴로 벽에 기대 있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어느 사진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알아차리지 못했다.유리에게 사진은 좋아하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누군가의 기쁨과 노력, 찬란하게 빛난 한순간을 선명히 남겨 두는 일이었다.그런데 같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자 사진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기억이 아니라 감시였다.애정이 아니라 침범이었다.정태준은 유리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계속 화면을 넘기던 엄지가 멈추고, 그제야 그녀의 시선도 사진에서 떨어졌다.“더 보지 마십시오.”“사진 속에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경찰이 확인할 겁니다.”“저도 사진을 오래 찍었어요. 촬영 장소나 각도만 보고 알아볼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어요.”“지금은 분석할 상태가 아닙니다.”태준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유리가 다시 가져가려 하자 그의 손이 먼저 그 위를 덮었다.“민유리 씨.”“괜찮아요.”“그 말을 믿으라고요?”낮게 가라앉은 질문에 유리는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키스를 나누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은 차갑게 식었고, 누군가에게 지켜보인 흔적을 발견한 뒤로는 태준 앞에 서 있는 것조차 불안했다.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범인의 시선은 다르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사진 속에 갇힌 자신이 계속 떠올랐다.태준은 그런 유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소파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왔다. 맨다리가 가려지도록 허리 아래를 감싸고, 벌어진 옷깃도 손으로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저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에요.”“알고 있습니다.”“변호사님 시선이 싫다는 뜻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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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아는 사람

“여기 위치도 들켰습니다.”정태준의 말이 떨어지자 민유리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도시의 불빛이 유리창 너머로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수많은 창문 중 어느 곳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낯설어졌다. 욕실과 옷장을 샅샅이 확인하고, 출입 카드가 있어야만 올라올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왔는데도 범인은 두 사람을 따라왔다. 정확히는 유리가 자신의 손으로 범인의 눈을 이곳까지 데려온 셈이었다.파란 별 장식 속에서 꺼낸 추적기의 불빛이 다시 깜빡였다.“이거 아직 작동하고 있는 거죠?”“네.”“그럼 지금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보고 있을 수 있고요?”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부터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 이어 유리의 휴대전화도 받아 같은 조치를 한 뒤, 침실 서랍에서 은박 포장지와 금속 재질의 아이스 버킷을 꺼냈다. 추적기를 직접 만지지 않도록 장갑을 낀 채 여러 겹으로 감싸 버킷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완전히 차단됐을까요?”“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기 종류를 확인해야 합니다.”그는 숙소에 설치된 유선 전화로 오현석에게 연락했다. 추적기가 발견된 경위와 현재 위치가 노출됐을 가능성을 짧고 정확하게 설명한 뒤, 경찰과 건물 보안팀에 동시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숙소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전부 막고, 지하 주차장 출입 차량을 확인해. 건물 밖에서 장시간 정차 중인 차량도.”—너희는 바로 이동할 거야?“보안팀이 동선을 확보할 때까지 기다린다. 추적기는 별도로 빼서 반대 방향으로 이동시켜.”—미끼로 쓰려고?“경찰 판단에 맡길 거야. 일단 신호가 갑자기 끊어진 것처럼 보이면 상대가 직접 확인하러 올 수도 있으니 주변부터 잡아야 해.”통화를 끊은 태준이 현관문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유리는 담요를 두른 채 거실 중앙에 서 있었다. 얇은 티셔츠와 짧은 수면 바지 차림이라 급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옷부터 갈아입을게요.”“지금은 침실에 혼자 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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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하나를 만든 사람

윤서린.이름이 드러난 순간 민유리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공개 일정이 있을 때마다 팬들의 줄을 정리하고, 위험하게 밀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달려와 막던 직원이었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맡은 일은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칠 주년 전시회 마지막 날에도 윤서린은 소속사 관계자 자격으로 찾아왔다. 루미너스 멤버들에게 전달할 편지와 선물을 확인한다는 이유였고, 유리는 그녀에게 직접 은색 스태프 팔찌를 건넸다.그때 나눈 말은 짧았다.전시회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시온 씨가 좋아해 주시면 좋겠네요.윤서린은 전시장 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유리는 촬영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났고, 이후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그런데 사진 속 윤서린은 분명 은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시온아.”정태준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당겼다.“윤서린 대리 지금 어디 있지?”—오늘 회사에 안 나왔어. 어젯밤 늦게 몸이 안 좋다면서 연차를 냈대.“연차 신청 시각은?”—열한 시 조금 넘어서. 그런데 형, 그때면 유리 씨 가방에 있던 추적기가 레지던스로 이동하고 있었을 때잖아.회의실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굳었다.윤서린이 갑자기 연차를 낸 시각과 추적기의 위치가 새 숙소로 이동한 시각이 겹쳤다.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했다.“연락은?”—팀장님도 계속 전화 중인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어. 경찰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고.“혼자야?”—매니저 형이랑 보안팀 직원도 있어.“윤서린 자리에는 접근하지 마. 개인 물건도 만지지 말고.”—알았어. 그런데 형…….시온이 말을 멈췄다. 망설이는 숨소리 뒤로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윤 대리가 범인이라면 나 때문일까?“그게 왜 네 탓이지?”—내 팬을 관리하는 직원이었잖아. 팬레터와 일정도 전부 알고 있었고. 온리원 님이 언제 오는지 파악한 것도 결국 나를 통해서였을 테니까.“정시온.”태준은 동생의 말을 단호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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