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겸이 서리를 처음 본 것은 오 년 전, 북방에서였다.당시 이겸은 스물둘, 서리는 열다섯이었다. 서 장군을 따라 국경에 머물던 시기였다. 이겸의 기억 속 서리는 화려한 무예를 뽐내는 소녀가 아니었다. 부상병들 사이를 오가며 상태를 살피고,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필요한 것을 빠르게 알아듣던, 침착한 아이였다. 위험한 소식이 전해질 때조차 물러서지 않고 아버지 곁을 지켰다.그 이상의 기억은 없었다. 길게 대화를 나눈 적도, 특별히 마음에 담아둔 적도 없었다. 그저 '서 장군의 딸'이라는 짧은 인상과, 또래답지 않은 침착함이 남았을 뿐이었다.지금 돌이켜보면— 오늘 밤, 촛대를 쥐고 물러서지 않던 서리의 모습에는 그때의 소녀가 겹쳐 있었다.서 장군은 젊은 시절부터 삼십 년 가까이 북방을 오갔고, 삼 년 전 마지막으로 나선 바람목 전투에서는 북계병마사로 군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지원이 늦어진 대가를 가장 먼저 치렀다. 서 장군도, 두 아들도 모두 그 전투에서 죽었다. 남은 것은 서리 하나뿐이었다.그리고 그 서가의 마지막 사람이, 스스로 걸어 들어와 자신의 아내가 되었다.—연택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겸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태자와 왕후를 피하려는 정치적 선택인가. 서가의 죽음을 조사할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것인가. 혹은— 이겸이 실제로 깨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그 위에서 계산한 선택인가.어느 쪽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지난 열흘, 서리가 영안궁에서 보인 행동들은 그 어떤 가능성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혼인 문서를 한 줄 한 줄 확인했다는 보고. 영안궁 사람들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살폈다는 것. 탕약과 처방 기록을 매일 대조했다는 것. 곳간의 사소한 착오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바로잡았다는 것. 그리고— 병상의 자신에게 불필요한 속내를 털어놓지도, 동정하지도, 영웅으로 떠받들지도 않았다는 것.이겸은 그 보고들을 들으며 한 가지는 확신할
Last Updated : 2026-09-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