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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계획에 없던 사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9 16:26:13

숨이 찼다.

이겸은 사내를 바닥에 짓누른 채로, 자신의 팔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석 달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뒤늦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어깨의 오래된 상처가 욱신거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뻐근했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이겸은 그 사실을 몸으로 먼저 실감했다.

"다친 데는."

짧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며칠— 아니, 석 달을 거의 쓰지 않은 목이었다.

서리가 고개를 저었다. 촛대를 쥔 손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였다. 겁에 질려 주저앉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손이었다.

이겸은 그 손을 잠깐 눈에 담았다.

'무가의 여식답군.'

그 이상의 생각을 더 이어가진 않았다. 지금은 다른 것들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바닥에 짓눌린 사내가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무언가를 삼키려는 움직임이었다. 이겸은 반사적으로 사내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벌렸다. 손끝에 작고 단단한 것이 걸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이자를 묶어라."

이겸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시비들의 비명,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 하나.

"주군!"

백우였다. 이겸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다른 이들 앞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달려 들어왔다.

이겸은 그 순간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 했다.

"혼백이…… 정말 돌아오신 겁니까."

백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연기였다. 다만 그 떨림 안에 아주 작은 진심도 섞여 있다는 걸, 이겸은 알고 있었다.

"모르겠다."

이겸은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대답했다. 정말로 방금 의식을 되찾은 사람처럼, 눈가를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정신이…… 흐릿하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혼란을 연기하되, 지나치게 어눌하게 굴지는 않았다. 정말로 깨어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혼란은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동안, 이겸의 시선은 슬쩍 서리를 향했다.

서리는 촛대를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이겸을 보고 있었다. 방금 사람들 앞에서 보인 '혼란'과, 사내를 제압할 때의 '정확함' 사이의 간극을 눈치챈 얼굴이었다.

이겸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읽히지 않도록, 시선을 조금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부인은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이겸이 서리에게 물었다.

말을 뱉고서야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정신을 차린 사람이 낯선 호칭을 저리 쉽게 입에 담을 리 없었다.

서리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부인이라 부르시는군요."

서리가 조용히 되물었다.

"정신이 흐릿하시다면서, 제가 누구인지는 또렷이 아시나 봅니다."

이겸은 잠깐 말을 골랐다.

"방금 사람들이 그리 부르는 걸 들은 것도 같소. 다른 건…… 아직 흐릿하오."

그럴듯한 핑계였다. 실제로 백우와 시비들이 소란 속에서 그 호칭을 몇 번이나 입에 올렸으니까. 그러나 서리의 눈에 남은 의문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채였다.

"괜찮습니다."

서리가 짧게 답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물었다.

"그보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방금 그건, 도저히 석 달을 누워 계셨던 분의 움직임 같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물음이었다. 이겸은 잠깐 침묵했다.

"급하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이겸이 답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도 아니었다.

서리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 눈에 남은 의문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는 걸 이겸은 알 수 있었다.

시비들이 붙잡힌 사내를 결박하는 사이, 이겸이 몸을 일으키려다 휘청였다.

"저자를…… 묶어서……"

말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끊겼다. 백우가 재빨리 다가와 부축하듯 어깨를 짚으며 말을 받았다.

"주군께서는 쉬셔야 합니다. 나머지는 소인이 처리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다른 시종들을 향해 낮고 빠르게 명했다.

"오늘 밤 이 방을 지켰던 자들을 전부 불러들여라. 교대가 왜 어긋났는지 낱낱이 알아내."

"예."

백우가 사내를 끌어 넘기며 이겸과 짧게 눈짓을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나눌 수 없는 종류의 눈빛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침전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리도 시종들과 함께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 뒤였다. 홀로 남은 이겸은 다시 침상에 몸을 뉘었다. 그러나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을 이유가 없었다. 더는.

본래대로였다면, 오늘 밤도 그저 눈을 감은 채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조금씩 조각을 맞춰가야 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문서가 있었다. 아직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몸이 먼저 움직여버렸다.

이겸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 사실을 곱씹었다. 굳이 이유를 붙여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뿐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의 궁에 들어온 지 열흘 된 여인이라 해도.

석 달이었다.

바람목에서 화살 두 대를 맞고 말에서 떨어진 순간부터, 이겸은 정말로 의식을 잃었다. 도성으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처음 며칠간의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그건 위장이 아니라 몸이 버텨낸 시간이었다.

의식이 돌아온 건 도성에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눈꺼풀이 떨리던 그 순간, 이겸은 눈을 뜨는 대신 숨을 죽였다.

방 안에 낯선 기척이 있었다.

의관의 것이 아닌 손이 탕약 그릇 위로 무언가를 조심스레 흘려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이 이겸의 손목을 짚었다. 맥을 짚는 손길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머물렀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가늠하는— 혹은 확인하는 손이었다.

이겸은 숨을 더 얕게 눌렀다. 그 손이 물러가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참았던 숨을 겨우 내쉬었다.

그날 이후로, 이겸은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낯선 일은 아니었다. 생모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이겸의 자리는 어릴 적부터 늘 누군가에게 위협이자 동시에 이용할 거리였다. 원인 모를 낙마, 갑자기 탈이 난 음식, 이유 없이 사라진 호위. 이번에도 같은 종류의 손이었다. 다만 전공을 세운 뒤라, 그 손이 전보다 훨씬 대담해져 있었다.

깨어났다고 알리는 순간, 그 손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방법으로.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계속 죽어가는 사람으로 남는 것.

혼백을 잃었다는 소문은 처음엔 사실이었다. 다만 그 소문을 굳이 바로잡지 않은 것은, 이겸 자신의 선택이었다. 의관 하나와 늙은 시종 하나, 그리고 백우를 포함한 옛 부하 몇만이 진실을 알았다. 나머지는— 영안궁의 사람들을 포함해— 여전히 그가 정말로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뜻밖에도 유용했다.

의식 없는 사람 곁에서는 누구도 말을 조심하지 않았다. 문병 온 대신들은 침상 곁에서 태연히 조정의 셈을 주고받았다. 시비들은 서로의 뒷말을 흘렸다. 이겸은 그렇게 몇 달 동안, 눈을 감은 채로 궁 안의 지도를 다시 그려가고 있었다. 자신을 노린 손이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그 손이 영안궁 안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그 뿌리를 캐다 보면, 자연스레 오래전의 일까지 함께 걸려들었다. 그 전장에서 지원군과 군량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일. 단순한 불운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서가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전장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한 세력이 오랜 시간을 두고 되풀이한 일인지, 서로 다른 손이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겸이 서리를 처음 본 것은 오 년 전, 북방에서였다.

당시 이겸은 스물둘, 서리는 열다섯이었다. 서 장군을 따라 국경에 머물던 시기였다. 이겸의 기억 속 서리는 화려한 무예를 뽐내는 소녀가 아니었다. 부상병들 사이를 오가며 상태를 살피고,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필요한 것을 빠르게 알아듣던, 침착한 아이였다. 위험한 소식이 전해질 때조차 물러서지 않고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 이상의 기억은 없었다. 길게 대화를 나눈 적도, 특별히 마음에 담아둔 적도 없었다. 그저 '서 장군의 딸'이라는 짧은 인상과, 또래답지 않은 침착함이 남았을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늘 밤, 촛대를 쥐고 물러서지 않던 서리의 모습에는 그때의 소녀가 겹쳐 있었다.

서 장군은 젊은 시절부터 삼십 년 가까이 북방을 오갔고, 마지막 바람목 전투에서는 북계병마사로 군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지원이 늦어진 대가를 가장 먼저 치렀다.

서 장군도, 두 아들도 모두 그 전투에서 죽었다. 남은 것은 서리 하나뿐이었다.

이겸은 아직 그 죽음에 왕실이나 태자궁이 직접 관여했다고 결론짓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쫓고 있는 지원 지연의 흔적과, 서가의 몰락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가능성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서가의 마지막 사람이, 스스로 걸어 들어와 자신의 아내가 되었다.

연택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겸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태자와 왕후를 피하려는 정치적 선택인가. 서가의 죽음을 조사할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것인가. 혹은— 이겸이 실제로 깨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그 위에서 계산한 선택인가.

어느 쪽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지난 열흘, 서리가 영안궁에서 보인 행동들은 그 어떤 가능성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혼인 문서를 한 줄 한 줄 확인했다는 보고. 영안궁 사람들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살폈다는 것.

탕약과 처방 기록을 매일 대조했다는 것.

곳간의 사소한 착오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바로잡았다는 것.

그리고— 병상의 자신에게 불필요한 속내를 털어놓지도, 동정하지도, 영웅으로 떠받들지도 않았다는 것.

이겸은 그 보고들을 들으며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서리는 어리석지도, 순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최근 며칠, 탕약을 넘기는 순간마다 서리의 시선이 자신의 목과 호흡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눈치챈 건가.'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서리에게서, 태자를 향한 미련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밤의 습격을 다시 떠올렸다.

사내는 침상보다 먼저 서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목적이 자신이었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서리를 죽여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태자를 거절한 데 대한 보복인가. 서가의 남은 권리를 노리는 세력인가. 아니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위장을 깨뜨리려는 함정인가.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서리는 연택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부터, 이미 표적이 되어 있었다는 것.

이겸은 그 순간의 판단에 별다른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판단 하나로, 석 달간 지켜온 위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는 완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서리를 가까이 두고, 직접 확인하는 것.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이 예정에 없던 사람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번엔 위장이 아니라, 단지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오늘 밤을 기점으로, 그가 지나온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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