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돌아보니 사랑이었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다만 여울이 새우를 자주 다루게 된 건 해준이 좋아하는 식재료이기 때문이었다.“먹을 만한 정도예요. 잘한다고 할 수준은 아니고요.”두 사람은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눴다. 길이 막힌 탓에 20분 넘게 걸려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여울은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하고 도운의 차에서 내렸다.여울이 단지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뒤에야 도운은 차를 출발시켰다.그때 도운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재가 보낸 메시지였다. 오늘 밤 라운지 클럽으로 나오라며, 돌아온 지 일주일도 넘었는데 아직 제대로 환영 자리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도운은 메시지만 확인한 뒤 핸드폰을 센터 콘솔 위에 내려놓았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예상대로라면 해준도 같이 갈 것이다. ‘그렇다면 구여울도 갈까?’민재는 여울에게도 장소를 보냈다. 오늘 저녁만큼은 꼭 얼굴을 보여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가능하면 갈게요.]여울은 답장한 뒤 주방으로 들어가 바쁘게 움직였다.두 사람이 먹을 만두라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 빚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여울은 시계를 확인했다. 해준의 회의가 끝났을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벨이 10초쯤 울린 뒤에야 통화가 연결됐다.전화받은 사람은 규리였다.[구 실장님, 해준 오빠한테 무슨 일이세요? 오빠는 지금 휴게실에서 옷 갈아입고 있어요.]여울은 입가를 비틀듯 웃었다. “별일 아니에요. 오늘 회의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드렸어요.”[아, 그럼 나오면 전해 드릴게요.]“괜찮아요.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알았어요. 저희도 조금 있다가 저녁 먹으러 갈 거라서요. 혹시 회사 일 생기면 구 실장님이 먼저 처리 좀 부탁드릴게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여울은 방금 다 빚은 만두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이 관계에서 가장 우스운 건 해준이 무심코 한 말 하나까지 자신만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다.여울은 만두를 그대로 음식물통에 버리려다가 두 시간을 들인 정성이 아까워 멈췄다. 결국 전부 보관용 봉투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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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여울은 대학에서 금융을 전공했고, 재학 중에 영어와 프랑스어도 따로 공부했다.졸업할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리해 둔 수업 노트까지 잡동사니와 함께 처분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덕분에 토요일에 가르칠 내용은 오래 걸리지 않아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여울은 배달 음식 용기를 옆으로 밀어 놓고 핸드폰을 켰다. SNS 피드 맨 위에는 규리가 올린 사진이 떠 있었다.3년 동안 수도 없이 마주했던 얼굴인데도, 남의 사진 속에서 보니 여전히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니 해준이 저 얼굴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처음부터 이 비밀스러운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여울도 별수 없이 속물이었다.여울은 핸드폰을 소파 위로 던져 놓고 금융학 책을 다시 펼쳤다.책을 읽은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해준이 들어왔다.해준은 바닥에 다리를 접고 앉아 있는 여울과 옆에 놓인 배달 음식 용기를 한 번 보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긴 해준이 안쪽으로 걸어왔다.“뭐야? 나 놀린 거야?”여울은 손가락 사이의 펜을 한 바퀴 굴리며 해준을 올려다봤다. “대표님은 좋은 분이랑 약속도 있으셨잖아요. 그렇다고 저더러 저녁까지 굶으라는 건 아니시죠?”해준의 움직임이 멎었다. 여울을 바라보던 눈매가 살짝 휘더니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질투?”여울은 펜을 굴리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거뒀다.“아니요.”‘내가 무슨 자격으로 질투해?’해준은 정장 재킷을 소파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쳐 두고 여울 옆의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시선은 그녀 앞에 펼쳐진 책으로 향했다.해준은 여울이 자기 계발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YL그룹 비서실장 자리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여울은 누구의 도움도 아닌 실력으로 지금 자리에 올라온 사람이었다.“진짜 내 것은 없어?”해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끝에는 드물게 서운한 기색까지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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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해준은 주방 쪽을 한 번 바라봤다.“여울이한테 말했어?”[당연하지. 오후에 연락했어. 가능하면 온다고는 했는데 별로 내켜 하진 않더라. 해준아, 구 실장 말이야. 겉으로는 욕심도 없고 남 배려도 잘하는 것 같지?][근데 마음먹고 끊어낼 땐 독할 타입이야. 지금부터라도 네 사람들한테 제대로 소개해 둬. 서로 얽힌 사람이 많아야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져도 찾을 실마리라도 생기지.]“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 해준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낮게 말했다. “여울이는 그런 식으로 사라질 여자가 아니야. 떠나더라도 나한테 직접 말하고 끝낼 사람이야.”[그렇게 자신만만해하지 마. 마음 돌아선 사람 무서운 줄 모르네.]“나랑 네가 같냐? 내 여자는 네가 만나 온 여자들이랑은 달라.”[그래, 그래. 너 잘났고 네 여자도 잘났다. 아무튼 빨리 와. 여기 사람들 다 기다린다. 끊는다.]설거지를 끝내고 나온 여울은 해준이 테이블 위에 펼쳐 둔 과외 준비 노트를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과외 일을 왜 다시 시작했느냐고 물을까 봐 여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 대표님이 오후에 연락했어요. 오늘 저녁에 녹턴으로 오라고 하던데요.”해준은 노트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가고 싶어?”여울은 해준 옆에 앉았다. “딱히 가고 싶지도 않고, 싫지도 않아요. 대표님 친구분이니까 제가 안 가도 괜찮다면...”“준비하고 가자. 민재가 직접 불렀는데 안 가기도 그렇잖아.”해준이 말을 잘랐다.여울은 옅게 웃었다. “알았어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민재의 말 중 하나는 맞았다. 자신도 이제 여울을 자신의 생활권 안으로 들일 필요가 있었다.예전에는 그런 자리를 남자끼리 노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여울을 데려간 적이 없었다. 여울도 먼저 가고 싶다고 한 적도 없었다.‘내가 잘못 생각했나?’여울은 선명한 붉은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허리선은 가늘게 잡혀 있었고 등 쪽은 어깨뼈 위까지 깊게 파여 있었다. 머리를 높게 말아 올리자 흰 목선과 등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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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여울은 해준을 흘겨본 뒤 몸을 옆으로 틀어 먼저 내리기를 기다렸다. 해준의 뒤를 따라 곧장 2층 룸으로 올라갔다.룸은 널찍했다.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공간 맞은편 벽 전체가 대형 스크린이어서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었다.옆에는 또 다른 문이 하나 있었다. 안쪽에 별도 놀이 공간이 있는 모양인지 두 사람이 들어갈 때 마침 누군가 그쪽에서 나왔다.“자, 다들 이쪽 좀 봐.” 민재가 여울 옆에 서서 손뼉을 두 번 쳤다. “소개할게. YL그룹 비서실장 구여울 씨.”자리에 모인 남녀는 대부분 민재와 같은 사교 모임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이라 해준과도 익숙한 사이였다.YL그룹 비서실장이라면 곧 해준의 최측근이었다.사회 경험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여울이 오늘 해준과 함께 왔으니 둘 사이를 두고 어느 정도 짐작하는 눈치였다.“여울 씨, 반가워요.”“구 실장님, 안녕하세요.”해준이 바로 옆에 있어서인지 “...”다들 짧은 인사만 건넸고 짓궂은 농담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여울은 미소를 띤 채 한 사람씩 인사를 주고받았다.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검은 오프숄더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여울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다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민재는 분위기를 띄우는 데 능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은 제법 활기를 띠었다.룸 안에는 웃음소리와 음악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여울은 소파 한쪽에 조용히 앉아 가끔 과일만 집어 먹었다.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민재가 해준의 옆에 앉더니 상체를 내밀어 여울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울 씨, 무슨 노래 할래요? 제가 찾아서 번호 눌러 드릴게요.”여울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 노래 못해요.”“노래를 아예 못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조금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지.” 민재는 테이블 위 태블릿을 집어 곡 목록을 넘겼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다들 놀러 온 거지 오디션 보러 온 거 아니잖아요. 잘 부르는 게 뭐가 중요해요. 즐거우면 됐지. 제가 그냥 다들 아는 걸로 골라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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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면 해준은 여울의 그 둥근 귓불에 입을 맞추고 싶었을 것이다.이미 두 사람의 얼굴은 꽤 가까운 거리였다.해준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도 될지 잠깐 망설였다.그때 룸 문이 열렸다.흰색 원피스를 입은 규리가 안으로 들어왔다.자리에 있던 사람 중 상당수가 규리와 아는 사이여서 인사는 여울이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친근했다.여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눈에 담겨 있던 편안한 웃음만 어느새 업무용 미소처럼 반듯하게 굳었다.반면 해준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민재는 놀라서 재빨리 음악을 껐다.‘내가 부른 적도 없는데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규리는 사람들의 미묘한 반응을 못 본 척한 채 곧장 여울 옆에 앉았다.“초대도 안 받고 와서 죄송해요. 구 실장님은 괜찮으시죠?”여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물론이죠.”이미 들어온 사람을 당장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민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 하나를 가져다 규리 앞에 놓은 뒤 슬쩍 자리를 피했다.규리는 와인을 따라 놓고 여울에게 물었다. “구 실장님도 조금 더 드실래요?”“괜찮습니다. 고마워요.”규리는 자기 잔을 단숨에 비운 뒤 다시 와인을 따랐다.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규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었다.갑자기 끌려간 규리가 중심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높은 스틸레토 굽이 여울의 신발 위를 그대로 밟았다.여울이 반사적으로 발을 뺐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발등이 아파서 화끈거렸다.규리는 짧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해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오빠, 좀 천천히 가. 나 못 따라가겠어.”해준은 화가 난 상태라 규리를 잡은 손에도 여유가 없었다. 사람이 없는 복도까지 데려간 뒤에야 손을 놓았다.해준이 입을 열기 전에 규리가 손목을 감싸 쥐며 먼저 해명했다. “나 둘 사이 방해하려고 온 거 아니야. 할머니가 갑자기 전화해서 여기로 가라고 하셨어. 늘 하던 것처럼 오빠랑 같이 있는 사진을 보내 달라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해?”해준의 눈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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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해준이 다시 룸으로 돌아왔을 때 여울은 이미 소파에 없었다.민재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내가 규리 부른 거 아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도 모르겠어. 괜히 분위기 다 망쳤네.”“여울이는?”“갔어. 내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너한테 말 좀 전해 달라더라.”해준은 더 묻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2층에서 막 내려왔을 때 출입구 쪽에서 여울이 남자 둘에게 가로막혀 있는 게 보였다. 그중 하나는 손을 여울의 등에 올리기 직전이었다.안 그래도 해준의 속이 뒤틀려 있던 참이었다.몇 번 주먹이 오가자 남자 둘은 금세 얼굴이 엉망이 됐다. 한 명은 콧등이 터져 피가 얼굴을 타고 흘렀다.여울이 해준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해요. 더 때리면 진짜 크게 다쳐요.”해준의 눈을 채우고 있던 살벌한 기색이 조금씩 누그러졌다.“꺼져.”유흥가를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허세만 부리는 사람과 정말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았다.눈앞의 남자는 옷차림부터 태도까지 평범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얻어맞은 두 남자는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바닥에서 일어나 황급히 자리를 떴다.바를 나와 차에 탄 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둘 사이에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해준의 차가 루미엘 레지던스 지하주차장에 멈춘 뒤에야 여울이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피곤하셨잖아요. 이제 가서 쉬세요.”옆에서 안전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에는 해준이 몸을 기울여 여울의 입술을 덮쳤다.여울은 저녁에 와인을 조금 마셨다. 해준은 여울의 입안에 희미하게 남은 향을 조금이라도 놓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깊게 삼켰다.여울은 해준의 가슴과 조수석 사이에 갇혔다. 등이 가죽 시트에 눌려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대표님...”“내 이름으로 불러.”해준은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붙인 채 낮게 말했다.여울은 바로 앞의 짙은 눈을 바라봤다. 해준의 이름이 목 안에서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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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둘이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여울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그래도 해준의 태도는 의외였다. 먼저 여울을 위로하고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다.해준이 먼저 이렇게 나온 이상, 오늘만큼은 조금 더 제멋대로 굴어도 될 것 같았다.“목말라요.”해준이 머리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물 가져올게.”말을 마치고 침대에서 일어나 맨몸으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잠깐... 그렇게 나가게?”해준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이 집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뭐가 문제야.”여울은 이불을 확 끌어당겨 얼굴까지 덮어 버렸다.‘이 남자 대체 왜 이래?’안방을 나온 해준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평소 단단하기만 하던 여울에게 이런 부끄러움도 있고, 투정도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다음 날 아침, 여울은 드물게 늦잠을 잤다. 침대 옆 협탁에서 핸드폰이 계속 울리는 바람에 겨우 잠에서 깼다.[여울아, 너 어디야? 오늘 같이 병원 가기로 했잖아. 한 시간 넘게 기다려도 안 오면 어떡해. 같이 가기 싫었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전화받자마자 둘째 외숙모 이선영의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여울의 목소리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도 제 일이 있어요. 아무 때나 바로 빠질 수 있는 건 아니에요.”외삼촌 진대호는 여울의 기분이 상한 걸 알아채고 곧바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여울아, 외숙모 말은 마음에 담지 마. 급해서 그래. 태희가 오늘 진료 예약을 잡아 줬다고 했는데 병원에 와 보니 등록된 게 없대. 갑자기 이러니까 속상해서 말이 좀 거칠어진 거야. 화내지 마.]여울은 미간을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통화가 아직 끊기지 않았는데 전화 너머로 이선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쟤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고 바빠. 돈 많은 남자 옆에 붙어 아직도 안 일어난 거 아니야?][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 다 보잖아.]이선영은 진대호가 이미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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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여울이 멈칫했다. “누구라고요?”진대호는 잘못 들은 줄 알고 태희가 보내 준 메시지를 다시 찾아 여울에게 보여줬다.“주도운. 이 사람 맞아.”지난번 마트에서 만났을 때 도운이 호우대병원 의사라고 한 적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세 번째로 마주칠 줄은 몰랐다.“내가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어. 예약이 안 됐다는 게 말이 되나?”“제가 먼저 확인해 볼게요. 두 분은 일단 여기 앉아 계세요.”여울은 도운의 진료실 쪽으로 걸어갔다.문 앞에 있던 간호사가 여울을 보고 정중하게 안내했다. “환자분이면 저쪽 대기 구역에서 호출 기다려 주세요.”여울이 설명했다. “주도운 선생님 지인인데 잠깐 여쭤볼 일이 있어서요.”간호사는 여울을 잠깐 살펴보다가 미소 지었다. “그러시면 들어가셔도 돼요. 안에 계신 환자분 진료가 거의 끝났어요.”여울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의사 가운을 입은 도운은 평소보다 한층 더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 항목을 입력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여울을 보고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곧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도운은 환자에게 검사 안내서를 건네고 주의사항을 설명한 뒤 문 앞까지 배웅했다. 밖에 있던 간호사에게는 잠시 다음 환자 호출을 미뤄 달라고 부탁했다.“일하시는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여울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외삼촌이 선생님 진료를 예약했다고 하는데 시스템에는 없다고 해서요. 혹시 무슨 문제인지 확인해 줄 수 있어요?”도운은 노트북 화면을 열며 물었다. “외삼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진대호요.”이름을 검색했지만 진료 예약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조금 오래 기다리셔도 괜찮으면 오늘 진료 끝에 추가로 봐드릴 수 있어요.”도운이 여울을 바라봤다.“그렇게 해도 돼요?”“네.”여울은 잠깐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도운은 당일 추가 진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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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오전 11시 50분쯤이 되어서야 간호사가 진대호의 이름을 불렀다.진대호와 이선영은 곧바로 일어나 도운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울은 문 앞에 남아 기다렸다.조금 전부터 간호사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모르는 척하기 어려워진 여울이 먼저 웃어 보였다.그러자 간호사가 가까이 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주 선생님 여자친구세요?”여울은 잠깐 당황했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아는 사이예요.”사실 평범한 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아직은 만난 횟수가 너무 적었다.간호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요? 그래도 선생님이 정말 특별하게 대해 주시네요. 전에도 지인이 당일 진료 부탁하러 온 적 있었는데 그때는 어렵다고 하셨거든요.”여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다행히 간호사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15분 뒤 진대호와 이선영이 진료실에서 나왔다.“여울아, 오늘 정말 고맙다. 네 시간도 반나절이나 잡아먹었네.” 진대호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회사 바쁘면 먼저 가도 돼.”“점심시간도 됐는데 식사부터 해요. 밥 먹고 오후에 할 수 있는 검사부터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오늘 할 수 있는 검사는 주 선생님이 다 적어 주셨어. 참 친절하더라.”이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미안하니까 그러는 거지. 방금 태희한테 연락이 왔는데 친구한테 다시 알아봐 달라고 했대. 이제야 자기 지인 통해 예약한 환자인 줄 알고 잘해 주는 거겠지.”그때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도운이 진료실 쪽에서 걸어 나왔다.이선영의 말도 분명 다 들었을 거리였다.여울은 민망해서 먼저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하지만 도운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많이 기다리셨죠? 배고프시겠어요.”여울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괜찮아요. 그럼 지금 갈까요?”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뒤에서 따라가던 진대호와 이선영은 눈을 크게 뜬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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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도운의 오후 진료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여울은 병원에서 가까운 식당을 골랐다.인터넷으로 찾아본 곳이었다. 분위기도 좋았고 가격대도 전문의와 함께 식사하기에 지나치게 가볍지 않았다.입구에 들어설 때 여울은 도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직원들이 두 사람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건 보지 못했다.“안녕하세요. 온라인으로 룸 예약했는데요.”“예약자 성함 부탁드립니다.”“구여울입니다.”직원이 예약 화면을 확인했다. “2층 ‘솔빛’ 룸으로 예약되어 있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여울은 별생각 없이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진대호와 이선영은 식당에 들어온 뒤부터 내부를 계속 둘러봤다. 한눈에 봐도 식사 한번 하기 만만한 가격대의 곳은 아니었다.이선영은 여울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못마땅하기도 했다.룸에 들어간 도운은 먼저 진대호와 이선영에게 자리를 권한 뒤 여울의 의자까지 빼 주었다. 여울이 앉은 뒤에야 자기 자리로 갔다.여울이 메뉴판을 도운에게 건넸다. “먹고 싶은 걸로 골라요.”도운은 메뉴판을 그대로 이선영에게 내밀었다. “저도 여울 씨처럼 외숙모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이선영은 금세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외삼촌이랑 두 분 드시고 싶은 걸로 편하게 고르세요.”이선영은 메뉴판을 두어 장 넘기다가 적힌 가격을 보고 놀랐다. 한참 들여다본 뒤 다시 도운에게 돌려줬다.“우리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두 사람이 골라요.”도운은 몇 장을 가볍게 넘기며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만 확인한 뒤 직원에게 여러 메뉴를 주문했다.이선영은 처음 도운을 봤을 때부터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다만 예약 문제 때문에 화가 나 있어 그 호감이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그런데 도운이 자신들에게 깍듯하게 대하자 불만은 금세 누그러지고 호감이 빠르게 올라갔다.“주 선생님은 올해 몇 살이에요?”여울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렸다. “외숙모, 처음 보는 분한테 나이부터 물어보는 건 실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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