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그려진 잠옷 차림으로 욕실에서 나온 구여울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엄해준을 발견했다.해준은 깃이 느슨하게 벌어진 검은색 실크 로브를 입고 있었다. 여울이 토하는 바람에 엉망이 된 값비싼 정장은 아직 세탁 바구니 안에 그대로 있었다.여울은 늘 해준이 갈아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 두곤 했다. 해준이 이 집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드물었지만, 가끔 둘이 격하게 얽힌 날이면 입고 온 옷을 다시 입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여울이 나오는 걸 본 해준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담배의 끝이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른 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베란다 유리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해준의 표정에는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기색이 남아 있었다.“그렇게 결혼하고 싶어? 남자면 아무나 상관없을 정도로?”여울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제가 자란 동네에선 25살쯤 되면 슬슬 결혼 얘기가 나오거든요. 26살을 넘기면 늦는다고 주변에서 성화고요.”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여울의 태도에 해준의 화는 더 치밀었다.눈을 가늘게 뜬 해준이 가까이 다가왔다. 한 손으로 허리를 감아쥐고, 다른 손으로 턱을 들어 올렸다. “지금 나한테 뭐라도 암시하는 거야?”여울의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선이 또렷한 해준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자, 잠시 외면했던 기대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엄해준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뜻?”그 말에 여울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흐려졌던 정신도 금세 또렷해졌다.윤명희 회장도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말끝에 묻어 있던 가벼운 비웃음까지 해준과 닮았다.어쩌면 이렇게 묻는 편이 맞을지도 몰랐다. 호우시에서 해준의 아내 자리를 마다할 여자가 몇이나 될까?하지만 여울은 그럴 수 없었다.두 사람은 태어난 환경부터 달랐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거리였다.애초에 두 사람 사이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 선을 넘어서 더 많은 걸 원한 건 여울이었다.다행이라면, 얼마 전 들은 해준의 소식이 여울의 욕심을 단번에 깨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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