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축하해, 여보. 그런데 그 아이 당신 아이 아니잖아: Chapter 11 - Chapter 20

21 Chapters

11화 — 친자가 아니어도 후계자

“태준은 아이가 친자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석 달 전부터 알았군요.”이경이 계약서를 조정위원 앞에 펼쳤다.가사조정실에는 이경과 태준, 양측 변호사만 들어왔다. 혜란은 복도에 남았지만 유리문 너머로 모든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태준의 변호사가 서둘러 말했다.“기업 승계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예비 문서입니다. 실제 친자관계를 부정하는 자료는 아닙니다.”“그럼 이 문장은 왜 필요했죠?”조정위원이 해당 부분을 읽었다.‘임신 당사자는 친부 확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강태준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출생신고 및 후계자 지위를 보장한다.’아래에는 세라가 계약을 위반하면 백억 원을 배상한다는 조항도 있었다.태준은 턱을 굳힌 채 문서를 바라봤다.“회사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였습니다.”“사기당한 피해자라는 뜻입니까?”“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그럼 알고 선택했다는 뜻이군요.”긴 침묵 끝에 태준이 말했다.“친자가 아니어도 내가 인정하면 내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이경은 그 말 속 모순을 들었다. 피가 가족의 전부가 아니라는 남자가, 이미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던 봄은 법적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봄이도 당신이 인정하면 딸이 될 수 있었어.”“그 애는 이 문제와 달라.”“뭐가 다르지? 세라 씨 아이는 회장 자리를 주고, 봄이는 이미지에 방해되니까 시설로 보내도 된다는 것?”태준이 시선을 피했다.조정위원은 두 번째 서류를 꺼냈다. 결혼 전 남성불임 전문병원의 확정 진단서였다.“강태준 씨, 진단 사실을 언제 알았습니까?”“혼인신고 전입니다.”“배우자도 알았습니까?”“같이 들었습니다.”“그런데 지난 칠 년간 문혜란 씨와 한주재단은 서이경 씨가 임신하지 못해 후계가 없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열세 차례 했습니다.”조정위원이 기사 묶음을 내려놓았다.“정정한 적 있습니까?”태준의 변호사가 대신 입을 열려 했다.“본인이 답하세요.”“없습니다.”“배우자가 모욕받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알고 있었습니다.”두 문장이 너무 쉽게 나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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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그는 회사를 골랐다

“백세라 씨의 아이는 제 아이이며 한주의 후계자입니다.”태준은 기자회견문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었다.사흘의 선택 기한이 끝나기 두 시간 전이었다. 그의 앞에는 법무팀이 작성한 위험 검토서가 놓여 있었다.‘친자 가능성 불확실. 허위 공표 책임 및 향후 주주 소송 위험.’태준은 마지막 장까지 읽고 직접 서명했다.“생물학적 검사 여부는 가족의 사생활입니다. 이혼 조정 중인 배우자 서이경 씨가 의료정보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회사와 임신부를 공격한 데 유감을 표합니다.”이경은 어머니 작업실에서 생중계를 소리 없이 보고 있었다.정 실장이 리모컨을 들었다.“끄실까요?”“끝까지 볼게요. 무슨 말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기자가 물었다.“결혼 전 무정자증 진단은 사실입니까?”“치료 가능성과 개인의 존엄을 고려해 답하지 않겠습니다.”“서이경 씨가 칠 년 동안 불임으로 비난받은 사실은요?”태준은 준비한 문장으로 돌아갔다.“부부 사이의 어려움을 일방의 책임으로 돌린 적 없습니다.”바로 다음 화면에 혜란의 과거 인터뷰가 붙었다. ‘며느리 건강이 허락하면 손주를 볼 것’이라는 자막이었다.태준은 그 영상을 보고도 정정하지 않았다.회견이 끝나자 한주 주가는 잠깐 반등했다. 후계 구도가 유지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그 대가로 이경의 작업실 앞에는 계란이 깨지고 욕설 쪽지가 붙었다.‘임신부 질투하는 불임녀.’정 실장이 쪽지를 떼려 하자 이경이 먼저 사진을 남겼다.“아이 오기 전에 치우죠. 신고할 자료만 보관하고.”한주가 거짓말을 고른다고 월백에 당장 승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전을 문의한 고객 두 명이 다시 계약을 취소했다. 임신부를 공격한 브랜드와 엮이기 싫다는 이유였다.이경은 위약금을 받지 않았다.취소한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세 번 했다.“부모님이 기사를 보고 반대하세요. 저는 대표님을 믿지만 결혼식까지 싸울 힘이 없어요.”“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수 기록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까요?”“전부 지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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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흉터를 가릴까요

“긴 소매부터 그리셨네요.”김수아의 말에 이경의 연필이 멈췄다.작업대 위 스케치에는 손목까지 내려오는 레이스 소매가 이미 완성돼 있었다. 수아는 화상 자국이 있는 왼팔을 그대로 내놓고 있었다.“가족분들이 가리길 원하신다고 해서요.”“저는 아직 모르겠다고 썼는데요.”이경은 신청서를 다시 봤다.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위급한 고객을 돕겠다고 골라 놓고, 정작 고객보다 먼저 답을 정했다.이경은 스케치북을 덮지 않았다. 잘못 그은 선도 보이게 두었다.“제가 성급했습니다. 죄송해요.”수아의 예비 신랑 박도현이 옆에서 말했다.“양가 부모님은 사진에 흉터가 보이면 수아가 평생 후회할 거래요.”“도현 씨 생각은요?”“저는 수아가 편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 말도 수아 대신 답하는 것 같네요.”그는 입을 다물었다.이경은 천 견본도 치우고 물었다.“수아 씨는 흉터가 보일 때 어떤 게 가장 싫으세요?”“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보는 거요.”수아는 왼팔을 손끝으로 쓸었다.삼 년 전, 혼자 운영하던 빵집에서 오븐이 과열됐다. 손님을 내보내고 불을 끄다가 팔을 데었다. 치료비와 휴업 손실 때문에 아직 대출도 남아 있었다.“상처 자체는 안 부끄러워요. 그런데 결혼식에서 처음 보는 사람 백 명한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요.”그때 수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어머니’라고 떴다.수아가 받지 않자 음성 메시지가 이어졌다.‘레이스 두껍게 해 달라고 꼭 말해. 사돈댁 사진에도 남는데 보기 흉하면 어떡하니.’수아는 메시지를 끄며 웃었다.“엄마는 제가 흉터를 보면 사고 날이 떠올라 아플 거라고 해요. 그런데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엄마를 불쌍하게 볼까 봐 무서운 거예요.”“어머니를 설득하는 게 수아 씨 책임은 아닙니다.”“결혼식 날 싸우고 싶지도 않아요.”이경은 가족을 물리치라는 쉬운 답도 쓰지 않았다. 드레스는 전쟁의 깃발이 아니라 수아가 하루를 견딜 옷이어야 했다.“가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남들이 의미를 붙이겠군요.”“네. 그래서 아직 모르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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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 싼 드레스는 없다

“숨이 안 쉬어져요.”막내 재단사 민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이경은 즉시 작업실 불을 켜고 구급차를 불렀다. 다행히 과로와 공복으로 인한 과호흡이었다. 병원에서는 며칠 쉬라는 진단이 나왔다.빈 의자 앞에 돌아온 이경은 밤샘 일정표를 찢었다.자기가 더 일하면 된다는 계산 안에는 직원도 같이 더 일한다는 사실이 빠져 있었다.정 실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고객을 돕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약속하고 직원이 쓰러지면 그건 선의가 아니에요.”“맞아요.”이경은 변명하지 않았다.다음 날 수아와 도현을 다시 불렀다. 완성된 견본 대신 수정 견적서를 내놓았다.“제가 어제 지킬 수 없는 가격과 납기를 약속했습니다.”수아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못 해 주신다는 거예요?”“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예식을 일주일 미루면 처음 디자인을 그 가격에 만들 수 있어요. 날짜를 지키면 장식을 줄인 새 디자인으로 가야 합니다. 둘 다 싫으시면 계약금 전액을 돌려드리겠습니다.”“돈을 더 내면요?”“밤샘 인력을 사는 방식은 받지 않겠습니다.”수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한주에서도 결국 돈 없는 신부라 안 된다고 했어요.”“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원가와 시간을 틀리게 계산했습니다.”이경은 항목별 비용을 모두 펼쳤다. 원단, 재단, 가봉, 급행 수당, 수선 예비비. 처음 견적에서는 자기 노동과 직원의 추가 시간을 거의 공짜로 처리해 놓았다.“싼 값에 맞춰 드리는 게 수아 씨를 존중하는 거라고 착각했어요. 누군가의 임금을 지우면 결국 그 옷도 오래 못 갑니다.”도현이 수정안을 읽었다.“장식을 줄이면 얼마나 달라져요?”이경은 국내산 무광 원단을 펼쳤다. 수입 실크보다 이름값은 낮지만 땀을 잘 흡수하고 움직임이 가벼웠다.“치맛단 자수는 없애고 선을 살리겠습니다. 소매는 같은 천으로 탈착식. 어머니 면사포는 허리 안쪽에 넣을 수 있어요.”“주머니는요?”수아가 물었다.“서약서 넣으신다고 했죠. 그건 남깁니다.”수아는 원단을 팔에 대 보고 작업실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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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 허락받지 않은 상처

“이 팔이 왜 모르는 사람들 휴대전화 안에 있어요?”수아가 삭제되지 않는 영상을 하나씩 가리켰다.원본 게시물은 올라온 지 세 시간 만에 조회 수 백만을 넘겼다. 수아가 소매를 벗고 가봉하는 장면, 화상 자국을 확대해 느리게 재생한 화면, 빵집 대출 내역까지 붙어 있었다.이경이 허용한 촬영 구역에서는 찍을 수 없는 각도였다.“지금부터 모든 촬영을 중단하겠습니다.”“중단하면 이미 본 사람들이 잊어요?”수아의 질문에 이경은 대답하지 못했다.삭제 요청을 보내는 동안 영상은 수십 개 계정으로 복제됐다. 어떤 계정은 흉터를 가려야 한다고 했고, 다른 계정은 당당하다면 왜 숨기느냐고 비웃었다.수아가 선택하기도 전에 양쪽 모두 수아의 몸에 의미를 붙였다.정 실장은 촬영기사 계약서를 찾아냈다. 원본 반출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그는 전날 밤 이미 연락을 끊었다.선우가 로안 출입 기록을 가져왔다.“기사가 나간 뒤 한주 홍보대행사 직원 차량에 탔습니다. 법무팀은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수아 씨가 원하는 것부터 물어야 해요.”이경은 수아 앞에 선택지를 놓았다. 전면 법적 대응, 익명 대응, 월백이 먼저 책임 발표 후 고객은 비공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도 넣었다.“저는 결혼식만 하고 싶었어요.”수아가 계약서를 밀었다.“이 옷도 보면 사람들이 팔부터 찾을 거예요. 취소할게요.”“전액 환불하겠습니다.”“대표님 잘못 아니라고 잡지 않아요?”“월백에서 찍힌 영상입니다. 제가 막지 못한 책임이 있어요. 그리고 남을지는 수아 씨가 정해야 합니다.”수아는 완성되지 않은 드레스를 한 번 보고 돌아섰다. 도현도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그날 빵집 단체 주문 두 건이 취소됐다. 한 곳은 사내 행사에 논란이 있는 사람의 음식을 쓸 수 없다고 했다.수아의 어머니는 결혼식을 미루자고 했다. 도현의 친척은 가족 대화방에 영상을 올리며 처음부터 흉터를 가렸어야 했다고 말했다.이경은 그 말들을 반박하고 싶었지만 수아의 가족 대화까지 자기 전쟁터로 만들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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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신부가 스스로 걷은 소매

“월백 홍보 영상 전부 내리겠습니다.”이경은 조회 수가 가장 높던 영상부터 삭제했다.수아가 등장하지 않은 작업 영상까지 포함했다. 새 작업실을 알릴 유일한 홍보물이었지만, 어떤 파일이 어디로 복제됐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이러면 예약이 더 줄어요.”직원이 말했다.“줄어도 지금은 멈춰야 해요.”이경은 촬영 원본 저장장치를 고객별로 분리하고, 고객이 확인해야만 삭제 완료되는 기록표를 만들었다. 외주 촬영기사에게는 접근권을 주지 않고, 촬영 구역 밖에서는 렌즈 봉인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그러고도 수아의 영상은 사라지지 않았다.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복제본이 계속 나왔다. 이경은 삭제를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사이트에 무엇을 요청했고 남은 영상이 몇 개인지 매일 수아에게 보냈다.수아는 이틀 동안 답하지 않았다. 이경도 전화를 재촉하지 않았다.그 사이 월백은 외부 보안업체의 무료 점검을 거절하고 비용이 적힌 계약을 맺었다. 공짜 점검은 책임 범위가 없었다. 촬영 파일을 연 사람의 이름과 시간이 남도록 계정을 나눴다.직원들은 번거롭다고 했다. 이경도 납기 중 매번 승인을 받는 일이 답답했다.“편하려고 생략한 한 번이 고객한테 평생 남았습니다.”누구도 더 반대하지 않았다.사흘째 되는 날, 수아가 작업실 문을 열었다.“드레스 아직 있어요?”“네. 폐기 요청이 없어서 보관했습니다.”“다시 입어 볼게요.”이경은 환하게 웃지 않았다. 돌아온 이유를 성공담으로 만들지 않고 피팅룸 문부터 열어 줬다.수아는 탈착식 소매를 단 채 거울을 봤다. 잠시 후 왼쪽 소매만 떼었다가 다시 달았다.“인터넷에 떠밀려서 벗기도 싫고, 무서워서 가리기도 싫어요.”“식 당일에도 결정하지 못하면요?”“그럼 반만 하고 있을래요.”수아가 웃었다.이경은 한쪽 소매만 써도 디자인이 어색하지 않도록 어깨선을 고쳤다. 대칭을 맞추는 대신 선택이 달라도 완성되는 구조로 바꿨다.결혼식 날, 수아는 처음에는 양쪽 소매를 모두 달고 입장했다. 사진사는 사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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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 시어머니 출입 금지

“집행 대상부터 특정해 주세요.”이경은 혜란이 내민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지 않았다.작업실 문턱에는 집행관과 한주 법무팀,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엉켜 있었다. 피팅 중이던 고객 두 명은 직원이 뒷문으로 안내했다.“촬영부터 중단하십시오. 고객이 있는 영업장입니다.”혜란이 비웃었다.“남의 것을 훔쳐 파는 현장이지.”그녀는 월백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혼인 칠 년 동안 한주가 홍보하고 장소와 인력을 댔다. 상표 가치도 디자인도 부부 공동재산이다.”법무팀장이 집행관에게 봉인 목록을 건넸다. ‘월백 상표를 사용한 모든 의상과 원도안.’집행관이 물었다.“완제품 일련번호가 있습니까?”“현장에서 확인하면 됩니다.”“그렇게는 타인의 물건까지 봉인할 수 없습니다.”이경은 어머니 서명희의 상표 등록 원부, 혼인 전 원도안 공증 목록, 원단 구매 계좌를 테이블에 펼쳤다.각 도안 봉투에는 날짜뿐 아니라 함께 만든 장인의 이름이 있었다. 혜란 측 목록은 모든 작업을 ‘한주 디자인팀’ 한 줄로 묶어 놓았다.정 실장이 자기 서명을 찾아 손가락으로 짚었다.“이 드레스 허리 구조는 제가 수정했습니다. 한주에서는 제 이름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다른 재단사도 보관증을 냈다. 이경은 직원들을 자기 소유권의 증인으로만 세우지 않고, 각자의 기여가 별도 권리라는 확인서를 함께 제출했다.집행관은 한주 목록보다 월백 기록이 더 구체적이라고 지적했다.혜란의 얼굴이 굳었다.“며느리가 시키니 다 같이 말을 맞췄군.”“이제 전 며느리도 곧 아닙니다. 그리고 이름을 쓴 기록은 말보다 오래 남아요.”“상표는 결혼 삼 년 전에 등록됐고 작업실도 상속재산입니다. 한주는 전시와 대여 권한만 가졌습니다.”혜란이 진주 장식을 집어 들려 했다.“이건 한주 첫 전시에서 유명해졌다.”이경이 흰 천째로 장식을 뒤로 옮겼다.“어머니가 만든 날짜는 전시보다 육 년 빠릅니다.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만든 사람이 바뀌지는 않아요.”기자 하나가 각서 내용을 확대해 찍었다. 포기 대상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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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아이에게 증명시키지 않는다

“봄아, 엄마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집에 갈 수 있어?”아이의 질문에 조사실이 조용해졌다.한주 기사 댓글에서 본 문장이었다. ‘입양아가 직접 행복하다고 증명하면 된다.’이경은 무릎을 굽혀 봄과 눈을 맞췄다.“아니. 외운 말은 하나도 안 해도 돼.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조사관은 보호자와 아이를 따로 면담하겠다고 했다. 이경은 봄에게 어떤 답이 유리한지 설명하지 않고, 문밖에서 기다릴 사람만 고르게 했다.“정 실장 이모가 좋아.”봄은 선우가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낸 정 실장을 골랐다. 선우는 서운한 표정 없이 대기실 끝에 앉았다.이경의 면담에서는 작업 시간, 주거 환경, 학교 출석, 병원 기록을 확인했다.“아이가 밤늦게 작업실에 머문 적이 있습니까?”“있습니다. 납기 직전 제가 돌봄을 따로 구하지 못한 날들이었습니다.”“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습니까?”“그래서 지금은 근무 상한과 돌봄 일정을 분리했습니다.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완벽한 엄마처럼 보이려고 과거를 지우지 않았다.“강태준 씨가 아이를 양육했습니까?”“같은 집에 살았고 생활비를 부담했습니다. 학교 행사에는 주로 촬영이 있을 때 왔습니다. 법적 공동입양은 일곱 번 미뤘습니다.”“아이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요?”이경은 해외 위탁 조항, 학교 촬영, 허위 신고 승인서를 냈다.“호칭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 정보를 사용할 권리는 없습니다.”봄의 면담은 사십 분 뒤 끝났다. 조사관은 구체적인 대답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시설로 보내질까 반복해서 두려워하고, 카메라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불안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가족 갈등 노출을 줄이고 상담을 이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이경은 그 말을 기록했다. 신고가 기각되는 것만으로 봄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조사관들은 작업실과 집을 확인했다. 봄의 방, 약 보관함, 학교 준비물, 빨간 비상 가방까지 봤다.“가방은 왜 세 곳에 있습니까?”“신생아 때 응급실을 자주 다녔습니다. 제가 불안해서 만들었고, 이제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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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 오늘부터 전남편

“복귀 조항은 삭제해 주세요.”이경이 최종 합의서 마지막 문장을 두 줄로 그었다.태준은 조정실 맞은편에서 펜을 굴렸다.“마지막 선택지는 남겨 두자는 뜻이야.”“당신 선택이지 내 선택이 아니야.”합의서에는 대저택 지분과 거액 위자료가 적혀 있었다. 이경은 대저택을 포기하고 자신이 낸 초기 자금과 법정 몫만 받았다.대신 월백 상표·원도안·완제품 소유권, 직원 미지급 수당, 고객 기록 분리, 봄의 정보와 학교 위치 비공개 조항을 한 줄도 양보하지 않았다.태준이 금액표를 두드렸다.“이 돈이면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어.”“다시 시작하려고 필요한 것만 받는 거야.”“월백이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원단도 사람도 장소도 한주가 만들었어.”“그렇다면 내가 나간 뒤에도 잘되겠지.”태준의 손이 멈췄다.월백 직원 열 명의 야근수당과 익명 처리됐던 제작 기여도도 별첨됐다. 한주는 서른 날 안에 각 직원 이름으로 지급하고, 과거 수상 기록을 정정해야 했다.“집안일 도운 사람들까지 창작자로 올리겠다는 거야?”“당신은 아직도 일을 도움이라고 부르네.”이경은 직원들이 남긴 공정 기록을 펼쳤다. 누가 패턴을 수정했고 누가 새벽 수선을 맡았는지 날짜와 서명이 있었다.조정위원이 태준에게 물었다.“내용을 이해했고 자발적으로 서명합니까?”법무팀장이 귓속말했다.“직원 정정 범위는 향후 수상 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축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태준은 경고를 들은 뒤 이경을 봤다.“돌아오면 이 정정도 필요 없어.”“그 말을 하는 한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거야.”태준은 끝내 서명했다. 사과해서가 아니라 오늘 이혼이 미뤄지면 더 많은 서류가 공개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합의가 조정조서에 적히는 순간 법적 효력이 생겼다.칠 년의 혼인은 종이 한 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이경은 전자 이혼 신고가 접수됐다는 알림을 확인했다. 곧 갱신될 증명서에서 배우자 칸은 비어도, 봄의 모친 칸은 전과 똑같이 서이경일 터였다.무언가를 잃은 종이와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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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한쪽 무릎의 공간

“신부 입장은 꼭 걸어서 해야 하나요?”윤서진이 상담 의자 옆에 지팡이를 세웠다.오른쪽 다리에는 무릎부터 발목까지 보조기가 있었다. 한주에서 받은 기존 스케치는 풍성한 치맛자락으로 장치를 완전히 가리는 디자인이었다.“가족분들은 걸어 들어오길 원하시나 봐요.”“기적처럼 보일 거래요.”서진은 마른웃음을 지었다.“저는 이미 매일 걸어요. 다만 오래 서면 통증이 오고, 급하게 돌면 무릎이 잠겨요. 결혼식에서까지 누군가 감동하라고 버티고 싶지는 않아요.”서진의 어머니는 상담실 밖에서 계속 전화했다. 화면에 ‘이번만 참고 걸으면 평생 사진이 남는다’는 메시지가 떴다.“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안 하면 작업실로 올 사람이에요.”서진은 짧게 ‘내가 정할게’라고 보내고 휴대전화를 껐다.이경은 가족과 함께 다시 상담하는 선택을 제시했지만 서진은 오늘만큼은 혼자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동행하지 않은 가족의 뜻을 드레스 요구사항에 몰래 넣지 않았다.이경은 줄자를 내려놨다.“어떤 식으로 들어가고 싶으세요?”“아직 모르겠어요. 지팡이를 쓸 수도 있고, 중간부터 의자에 앉을 수도 있어요. 아픈 날이면 처음부터 앉고요.”김수아의 소매가 떠올랐다. 마음이 바뀌어도 완성되는 옷이 필요했다.이경은 서 있는 치수부터 재지 않았다. 낮은 받침대와 팔걸이 의자를 놓고 서진이 평소 하는 동작을 보여 달라고 했다.앉기, 일어나기, 오른쪽으로 돌기, 지팡이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기기.“치마를 손으로 들 수 있어야 해요.”“들어 올리는 고리를 안쪽에 달죠.”“손목 힘이 빠질 때도 있어요.”“그럼 고리만으로는 안 되겠네요.”처음에 이경은 치맛자락 안쪽으로 보조기를 완전히 숨기는 덮개를 그렸다. 서진이 그림을 보고 물었다.“왜 보조기를 안 보이게 하셨어요?”“사진에서 시선이—”이경은 말을 멈췄다. 한주가 수아의 흉터에 했던 판단을 자기도 반복하고 있었다.“또 먼저 정했네요. 보이게 둘까요?”“장치는 보여도 괜찮아요. 천이 걸리지만 않으면요.”이경은 덮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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