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가족사진에서 내 딸을 밀어내고 임신한 불륜녀를 후계자의 어머니로 세운 남편에게, 나는 생중계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축하해, 여보. 그런데 그 아이, 당신 아이 아니잖아.”
View More“하객석 맨 앞줄, 바퀴 들어갈 자리 비워 주세요.”평일 아침 여섯 시 사십 분. 구민회관 이 층 강당.경미가 결혼식 시작 이십 분 전에 그 말부터 했다.강당 문이 열릴 때마다 근무복 차림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야간 근무를 막 끝낸 요양보호사들이었다. 회색 조끼, 남색 점퍼, 병원 이름이 박힌 셔츠. 그 위에 하나같이 하얀 코사지를 달고 있었다.“코사지는 신부가 돌렸어요. 근무복 벗고 올 시간이 없을 거라고.”정 실장이 이경 귀에 속삭였다.신랑 오준석은 여섯 시 오십오 분에 뛰어 들어왔다. 택배 조끼를 벗으며.“한 건만 하고 온다는 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요. 십오 층.”하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경미가 신랑을 위아래로 훑었다.“땀 냄새 나. 식 끝나고 혼날 줄 알아.”“알지.”경미의 드레스는 아이보리 면 혼방이었다. 허리를 조이는 대신 등판에 주름을 잡아 숨 쉴 때마다 천이 따라 늘었다. 치마 양옆으로 주머니 두 개. 입구는 십오 도 기울어 있었다.오른쪽 주머니는 열린 주머니였다. 개인폰이 들어갔다.왼쪽 주머니에는 지퍼가 달려 있었다. 안쪽에 작은 글씨로 수가 놓여 있었다.‘꺼 두는 주머니.’경미가 회색 업무폰을 꺼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화면이 꺼졌다. 그녀는 그것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육 년 만에 처음 꺼 봐요.”그녀가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근데 이거 지퍼 소리 좋네요. 찌익. 퇴근 소리 같아.”지퍼 손잡이는 이경이 일부러 무거운 놋쇠로 골랐다. 장갑 낀 손으로도, 피곤한 새벽 손으로도 한 번에 잡히게.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열리지 않게.일곱 시 정각, 강당 문이 다시 열렸다.휠체어 한 대가 들어왔다. 박 할머니였다. 딸이 휠체어를 밀었다. 할머니는 꽃무늬 블라우스에 브로치까지 달고 있었다.경미가 입을 막았다.할머니는 맨 앞줄 비워 둔 자리에 멈췄다. 경미를 올려다보더니 손을 흔들었다.“이쁘네.”그 한마디였다.할머니는 하객이었다. 담당 보호사를 되찾으러 온 보호자
“엄마, 오늘은 눈이 안 빨개.”봄이 식탁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경의 얼굴을 들여다봤다.새벽 여섯 시 반. 이경은 집 부엌에서 달걀을 부치고 있었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뒤집는 데 세 번 실패했다.“엄마 계란 못 하네.”“엄마는 실은 계란보다 천을 잘 뒤집어.”“그럼 계란에 시접을 넣어.”봄이 진지하게 말했다. 작업실에서 주워들은 단어를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요즘 봄의 놀이였다.어젯밤 월백에서는 남도은과 직원 둘이 처음으로 수당을 받는 야간 교대를 섰다. 경미의 새벽 피팅도 그 조가 맡았다. 이경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결과 보고 문자를 읽었다.‘피팅 완료. 주머니 각도 OK. 신부님이 대표님 안부 물음. 대표님 자고 있다고 함. 신부님이 박수 침.’봄은 터진 노른자를 밥에 비비며 말했다.“엄마, 오늘은 나 학교 갈 때까지 있어?”“응. 오늘은 교문까지 갈게.”“그럼 상담 선생님한테 자랑해야지. 엄마가 계란 했다고.”“터진 계란이라고는 말하지 마.”“말할 건데.”이경은 웃으며 봄의 머리를 묶었다. 고무줄이 한 번 튕겨 나갔다. 봄이 자기가 하겠다고 손을 뻗었다.그날 오전, 경미가 노조 조끼를 입은 여자 둘과 함께 왔다.“요양보호사 노조 분들이에요. 저 직접 노동청에 진정 넣을 거예요. 근무표 보복으로요.”경미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월백한테 부탁할 건 하나예요. 제가 동의할 테니까, 업무폰으로 문자 보낸 날짜랑 시각 기록만 주세요. 그 이상은 하지 마세요. 증언도, 기자회견도, 본부 전화도.”“알겠습니다.”이경은 3인 승인 절차를 거쳐 문자 발송 기록을 뽑았다. 경미의 서면 동의서를 첨부했고, 다른 고객 정보는 한 줄도 섞이지 않았는지 정 실장과 도은이 각각 확인했다.노조 측 활동가가 기록을 넘겨보며 말했다.“발송 다음 날마다 근무표가 바뀌었네요. 이 정도면 진정 요건은 충분합니다. 다만 결론까지는 몇 달 걸려요.”“몇 달이요.”경미가 따라 말했다. 결혼식은 삼 주 뒤였다.이경은 다른 서류를 하나 더
“업무폰으로 문자 보낸 건 제 잘못입니다.”이경은 경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처음 적어 주신 번호를 그대로 썼어요. 어느 번호인지, 누가 그 폰을 관리하는지 묻지 않았어요. 그 문자 한 통 한 통이 회사에 일정표를 넘겨준 거예요.”경미가 손을 저었다.“제가 그 번호를 적었잖아요.”“고객이 번호를 적는 건 실수가 아니에요. 그 번호로 뭘 보낼지 정하는 건 우리 일이었어요.”사과 뒤 이경은 곧바로 움직였다. 한주케어 운영본부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찾았고, 근무표 변경 사유를 서면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오후에는 직접 본부에 찾아갈 생각이었다.경미가 그 사실을 안 건 저녁이었다.“대표님, 본부에 전화하셨어요?”“사유를 요구했어요. 문서로 받아야 나중에…….”“하지 마세요.”경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빠르던 말이 처음으로 끊겨 나왔다.“대표님이 나서면 저 진짜 잘려요. 대표님은 사장님이잖아요. 저는 근무표 한 장에 목숨 거는 사람이고요. 대표님이 본부에 전화한 거, 벌써 팀장이 알아요. 오늘 저한테 ‘월백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었어요.”이경은 휴대전화를 쥔 채 굳었다.구하려던 손이 또 한 번 경미의 목줄을 당긴 셈이었다. 경미의 직장은 이경이 들어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문을 두드린 대가는 경미가 다음 날 아침 근무표로 받았다.“……찾아가지 않을게요.”그날 밤 열한 시. 이경은 재단대에 엎드려 있었다. 새벽 한 시 피팅 전에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그대로 잠들었다.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대표님. 대표님, 여기서 주무시면 목 돌아가요.”도은이었다. 퇴근했어야 할 시간이었다.“도은 씨가 왜 여기…….”“정 실장님이 불렀어요. 저희 다 있어요.”재단실 문가에 직원 넷이 서 있었다. 맨 앞에 정 실장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대표님, 하나만 물을게요.”“……네.”“혼자 밤새우는 게 원칙 지키는 거예요?”이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 실장이 말을 이었다.“직원 야근 금지라면서요. 그러니까 대표님이 혼자 야근한
“또 바뀌었어요. 이번 주만 세 번째.”경미가 업무폰을 흔들며 들어왔다. 화요일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월요일엔 화목 새벽이라더니, 수요일엔 수금 새벽이래요. 오늘 아침엔 또 화목이래요. 제가 무슨 택배 상자예요?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게.”“그럼 저도 옮기면 되죠.”이경은 바로 달력을 열었다. 근무표가 바뀔 때마다 피팅 시간을 옮겼다. 새벽 다섯 시에서 여섯 시로, 다시 새벽 한 시로.경미가 화면을 들여다봤다.“대표님, 새벽 한 시에 피팅하고 다섯 시에 또 피팅하면 언제 주무세요?”“세 시간이면 충분해요.”“그 말 하는 사람치고 충분한 사람 못 봤어요. 제가 그런 분들 기저귀도 갈아 드려요, 나중에.”농담이었지만 경미는 웃지 않았다.새벽 다섯 시 반, 문밖에서 트럭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택배 조끼를 입은 남자가 캔커피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오준석이었다. 첫 배송 터미널이 근처라 했다.“신부님 피팅 구경은 반칙이라길래, 커피만 놓고 갑니다.”그는 커피를 재단대 끝에 내려놓고 정말로 돌아섰다. 문 앞에서 한 번 뒤돌아봤다.“대표님. 이 사람 숨 쉬는 옷, 꼭 부탁드려요. 이 사람 숨 참는 거 선수예요.”경미가 커튼 너머에서 소리쳤다.“빨리 가! 늦으면 또 별점 테러 당해!”그 주 이경은 매일 세 시간씩 잤다. 봄의 밤은 등록해 둔 야간 돌봄 선생님이 지켰다. 봄이 잠든 뒤 나왔다가 봄이 깨기 전에 돌아가는 날들이었다.봄은 아침마다 엄마 눈이 왜 토끼 같냐고 물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묻지 않고, 자기 눈을 손가락으로 당겨 빨간 척을 했다. 같이 토끼가 되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경은 웃었지만, 그 웃음 끝이 조금 아팠다.목요일 오전, 가봉 치수표가 도은에게 넘어갔다. 월백의 이중 치수 확인 절차였다. 대표가 잰 치수도 예외는 없었다.도은이 표를 들고 재단실로 왔다. 조심스러운 얼굴이었다.“대표님, 이 숫자 두 번 다르게 적으셨어요.”진동 둘레. 앞장에는 38, 뒷장에는 83.숫자를 뒤집어 적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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