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시작될 오전 열 시, 한지원은 로안호텔 신부대기실이 아니라 한주호텔 주주총회장 문을 열었다.하얀 베일도, 가문 문장이 박힌 다이아몬드도 없었다. 월백이 드레스용으로 재단했던 흰 울 실크가 단정한 정장이 되어 지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오늘 결혼은 취소합니다.”웅성임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지원의 아버지가 맨 앞줄에서 일어섰다.“마이크 내려놔.”“제 결혼이었으니 취소도 제가 말하겠습니다.”지원은 떨리는 손을 연단에 얹었다. 이경은 객석 뒤 비상문 곁에 서 있었다. 대신 말하지도, 손짓으로 문장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지원이 원하면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열린 문만 지켰다.지원은 준비한 종이를 보지 않았다.“상대 회사와의 합병 조건에 제 혼인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결혼 뒤 맡기로 한 재단도, 제 이름으로 발표된 기부도 실제 결정권은 양가 회장에게 있었습니다.”화면에 혼인 부속 합의서가 떴다. 임신 계획과 공개 행사 횟수까지 숫자로 적혀 있었다.기자들이 한꺼번에 셔터를 눌렀다.“한지원 씨,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입니까?”세라가 흘린 기사가 질문으로 되살아났다. 지원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이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 지원이 정한 규칙이었다.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에는 스스로 종료를 선언하기.지원이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했다.“상담받았습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거부하려고요. 상담받은 사람은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거부합니다. 진료기록을 훔쳐 본 쪽이 설명하십시오.”앞줄의 한주 법무팀이 서로를 돌아봤다.지원의 아버지가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이 연단으로 다가오자 지원이 손바닥을 들었다.“접근하면 퇴장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 회사 지분 의결권은 독립 신탁으로 옮기고, 합병안에도 반대표를 행사합니다.”대형 화면의 위임 철회 접수 시각은 오전 아홉 시였다. 결혼식 한 시간 전, 지원이 직접 전자서명한 기록이었다.“누가 시켰어?”아버지의 고함이 회의장을 갈랐다.지원은 처음으로 객석 뒤를 보았다.
Last Updated : 2026-09-15 Read more